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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470화 (470/483)


470.








콰과가가가강-!


릴이 배틀 해머를 휘두르자 주변 일대의 지축이 흔들렸다.


정령들 역시 릴의 감정에 동조하여 강력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감탄했다.


‘계약한 정령들과 동화율이 엄청나게 높군.’


정령사는 계약한 정령의 힘을 극한으로 끌어내 싸우는 존재다.


상위 정령과 계약한다고 해서 그 정령의 잠재력을 모두 끌어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다.


그리고 정령의 힘을 끌어내는 데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동화율이다.


릴은 자신의 감정을 정령들에게 영향을 줄 정도로 계약한 정령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보통은 상위의 정령과 계약으로 강해지려 하지만. 릴답다고 해야 하나. 내실을 잘 다졌어.’


성실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도 세심하게 노력을 기울이는 건 쉽지 않다.


‘역시 괜히 괴수라 불리는 게 아니라니까.’


레오가 감탄하는 사이.


“후. 루메른을 대표하는 학생들이 입이 거칠군.”


세티언이 탄식을 내뱉었다.


“너희는 너희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 더욱 자각할 필요가 있겠어. 루메른을 대표한다는 건 결코 가볍지 않다.”


세티언의 서늘한 시선이 레오에게 향했다.


“특히 레오 플로브. 그대는 영웅의 자리에 오른 인물, 타의 모범이 되어야…….”


콰가가가가가각-!


“……!”


레오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오러가 세티언의 목을 노렸다.


곁에 있던 또 다른 저스티스 길드의 기사가 방패를 이용해 레오의 공격을 막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뿜어져 나온 검격.


오러로 무장된 방패가 거칠게 떨렸다.


“무슨 힘이…….”


여기사는 낯빛을 굳히며 레오를 바라보았다.


“지금 설교 같은 걸 할 처지가 아닐 텐데?”


저벅-


레오가 저스티스 길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 중에서 가장 전투력이 강한 건 저 조렌이라는 녀석이야.’


레오가 릴과 맞붙고 있는 조렌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고 루메른 출신답게 어중이떠중이는 결코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전장을 넘은 실력자. 그리고 그건 이 녀석들 역시 마찬가지야.’


어떤 정신 나간 가치관을 가졌든 세계에서 명성 높은 저스티스 길드의 길드원.


레오의 붉은 눈이 네 명의 저스티스 길드원에게로 향했다.


‘기사 클래스 둘, 소환사 하나, 마법사 하나.’


파티로서 이상적인 조합이다.


레오의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그걸 본 방패를 든 여기사가 어깨를 살짝 떨었다.


“흉포한 살기. 영웅답지 않은 모습이군요, 레오 플로브.”


여기사는 표정을 수습하며 창을 들었다.


“영웅이라면 응당 모범을…….”


“아까부터 계속 모범을 보이라는 둥 개소리하는데.”


레오가 검을 어깨에 걸치고 말했다.


“나는 딱히 영웅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거든. 옛날이나 지금이나 말이야.”


“뭐라고요?”


“나는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영웅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거든.”


‘세계를 변혁하고 올바른 곳으로 인도하며 무수히 많은 사람에게 꿈을 보여주는 게 영웅이라면…… 난 그 누구보다도 영웅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지.’


딱히 그렇게 될 생각도 없다.


“루메른에 입학한 것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확인할 게 있어서였고.”


레오가 피식 웃었다.


“영웅도 딱히 목표로 하거나 되고 싶어서 노력한 적 없어. 그래. 그냥 하다 보니 되었달까?”


어깨를 으쓱거리는 레오를 보며 저스티스 길드의 얼굴이 굳었다.


“그런 나한테 영웅으로서 모범을 보이라 하는 것도 웃기지 않아?”


“당신은…… 당신은 대체 영웅을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알게 뭐야. 영웅이란게 뭘까? 라는 게 깊게 고민할 가치가 있었던 건가?”


여기사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뿐만 아니었다.


다른 저스티스 길드의 얼굴에도 분노가 깃들었다.


“당신 같은 인간이 영웅이라니! 용납할 수 없습니다!”


“너희가 용납하든 말든 난 이미 영웅인데?”


“아니! 당신은 영웅이 아닙니다! 절대 영웅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들의 선택을 받아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린 건 분명 오류입니다! 그래요! 그러니까 이명 같은 것이 없는 겁니다!”


히스테릭하게 소리치는 여기사를 무시하며 레오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래도 너희 같은 놈들보다는 내가 훨씬 영웅에 어울리지 않나?”


“헛소리.”


세티언이 분노를 드러냈다.


“어린 나이에 영웅이 되더니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보군. 숭고함도 목표는 고사하고 이상과 야망조차 없는 네놈이 영웅에 어울리는 자라고 생각되지 않는군! 영웅은 특별한 존재다! 세상을 위해 헌신하려는 자만이 영웅이 될 수 있단 말이다!”


그 외침에 레오가 피식 웃었다.


‘확실히 한 번도 가진 적 없는 것들이네.’


빛을 선망하고 잃어버린 빛을 되찾으려던 리시나스의 숭고함.


온 세상을 꽃으로 가득 채우겠다던 루나의 다소 엉뚱했지만 커다란 목표.


아이들이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던 아르온의 따뜻한 이상.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우겠다는 드웨노의 원대한 야망.


각자가 추구하는 길이 있었던 친구들과 달리 카일에게는 딱히 추구하는 것이 없었다.


그저 순리대로.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 결과가 세계를 구한 위대한 업적이지만.


레오는 지금도 의문이었다.


‘내가 왜 에레보스의 천적으로 태어나고 왜 또 기억을 가진 채 환생한 걸까?’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것도 아니면 필연인지조차 알 수 없다.


세계는 왜 하필 자신을 선택한 걸까?


‘분명 나보다 더 이 힘에 어울리는 자도 있었을 텐데.’


가령 리시나스 같은 자.


‘세상을 구원할 자로서 나 같은 것보다 훨씬 어울리지.’


잠시 고민하던 레오가 피식 웃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 중요한 건 녀석들과 함께 구한 이 세상을 후대에 넘겨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확실하게 네놈들이 틀렸다는 거지.”


레오는 자신을 압박하며 덤벼드는 중갑 기사를 바라보았다.


‘미스릴이군.’


영롱하고 순수한 빛.


고순도의 미스릴 중갑이다.


강력한 방어력과 빠른 기동성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갑옷이다.


롱소드와 방패를 쥐고 접근하는 기사.


후방에서는 세티언의 영창 소리가 들려왔고 소환사는 물의 정령을 소환했다.


세티언의 지팡이에 강력한 마력이 휘몰아쳤다.


푸화하하학-!


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물의 기둥이 레오를 집어삼켰다.


엄청난 수압이 레오를 압박했다.


이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자였다면 몸이 터졌을 공격이었지만 끝이 아니었다.


쩌저저저적-!


세티언의 마법이 완성되자 레오를 속박하던 물이 얼어붙었다.


얼음 속에 갇힌 레오는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레오를 노리고 오러가 깃든 검과 창이 날아들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빈틈없는 연계 공격을 가한 것이다.


“세상이 넓다는 걸 알려주마!”


세티언이 일갈했다.


그 순간.


얼음 속에서 레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쩌적-!


얼음에 금이 갔다.


콰지지직-!


얼음이 파괴되면서 레오가 해방되었다.


오러가 깃든 창과 검이 허공을 가르더니 교차했다.


콰앙-!


자세를 낮춰 공격을 피해낸 레오가 손에 들린 검을 투척했다.


콱-!


“커헉?!”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간 검이 정령사의 어깨에 박혔다.


그리고 검은 그대로 정령사의 어깨를 절단시켰다.


날아가 허무하게 바닥에 처박힌 정령사를 무시하고 레오는 빠르게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는 두 기사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파직-!


레오의 손에 닿은 검과 창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파괴되었다.


“아니……!”


“무슨!”


경악성을 무시한 레오의 주먹이 여기사의 방패와 다른 기사의 미스릴 아머에 닿았다.


여기사가 코웃음을 쳤다.


“이건 아만타디움 방패! 무적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콰득-!


아만타디움 방패는 허무할 정도로 파괴되었다.


“아니……!”


쾅-!


레오의 주먹이 그대로 여기사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얼굴이 함몰당한 여기사는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다른 쪽 주먹은 미스릴 아머를 종잇장처럼 우그러트리더니 그대로 찢어발겼다.


가슴이 움푹 파고든 기사도 피를 토하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순식간에 세 길드원을 쓰러트린 레오가 무표정한 얼굴로 세티언에게 다가갔다.


“대, 대체…… 대체 무슨 술수를 부린 거냐!”


세티언의 입이 덜덜 떨렸다.


세계 최고의 영웅 길드 소속의 세 사람이 반항도 못 하고 쓰러졌다.


경악하는 세티언을 보며 레오가 손바닥을 펼쳤다.


“그냥 간단한 정령술이야.”


“뭐라?!”


“친구 녀석 흉내를 좀 내봤지.”


레오가 흉내 낸 건 다름 아닌 리시나스의 정령술이었다.


“기본기 문제랄까.”


레오는 덤덤히 손바닥을 펼쳤다.


물과 바람의 하급 정령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에헴!’ 하는 듯 팔짱을 꼈다.


“일반적인 정령술사는 정령을 소환하지 못하게 되면 무능력해지거든.”


레오는 바닥에 널브러진 정령술사를 보며 말했다.


“물의 정령을 다루는 정령사 같던데. 내가 계약한 정령에게 부탁해 저놈의 계약에 개입했어. 동화율이 형편없던데?”


정령사가 계약한 정령은 최상급 정령이었지만 계약을 푸는 것 자체는 간단했다.


“기사들의 경우에는 오러로 무구를 강화한다고 해도 무구가 파괴되면 순간적으로 무방비 상태가 되지. 그래서 정령술을 이용해 무구를 부식시켰어.”


“미스릴과 아만타디움이 그렇게 쉽게 부식될 리가……!”


“연금술의 기본만 알고 있으면 아무리 단단한 광물이어도 성질을 바꾸는 것 정도는 간단하지 뭐, 이것도 오러를 견고하게 가다듬으면 통하지 않겠지만.”


저벅-


레오는 세티언 앞에 도달했다.


“네 마법 역시 마찬가지야. 정령을 이용해서 술식 일부를 파괴했어. 그러니 제대로 작동이 안 되지. 술식이 조잡하던데? 기초 개념 공부가 부족했던 거 아니야?”


“우리를 모욕하는 것이냐! 그런 터무니 없는 게 가능할 리가! 특별한 힘을 사용한 거지?! 불공평해! 어째서 신께서는 너 같은 녀석에게 특별한 능력을 선물하신 거지! 대체 왜! 왜! 나에게는 평범한 능력을……!”


“신이고 자시고 그냥 네놈들이 게을렀을 뿐이잖아. 그러니 특별할 것도 없는 이런 간단한 정령술에 당한 거야.”


레오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사실 간단한 정령술이 아니었다.


이론적으로 간단했지만,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동화율과 정령술에 대한 이해. 그리고 경험이 필요했다.


말 그대로 상식을 초월한 정령술이다.


하지만 레오의 말처럼 기본기만 제대로 가다듬어졌다면 통하지 않았을 방법이다.


‘특별함만을 추구하고 기본기는 등한시한 녀석들에게 물 먹이기 딱 좋은 기술이지.’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매달려 온 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부실한 기초에 발목이 잡힌다.


레오가 아니었어도 이들은 결국 위업을 이루는 과정에서 죽었을 것이다.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도 모르는 주제에 잘도 영웅이 되겠다고 떠드는군.”


“놈!”


콰득-!


“컥?!”


레오는 세티언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피를 토하면서 쓰러지는 세티언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너희 같은 것들이 있는 걸 볼 때면 가끔 허탈할 때가 있어.”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정작 자신의 모든 걸 걸었던 많은 사람은 이 평화를 누리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깊게 숨을 내뱉은 레오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뭐, 감안하고 구했으니 딱히 후회는 하지 않지만.”


아마 세상을 구한 모든 이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레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래도 청소할 권리 정도는 나에게 있겠지.”


레오가 사납게 웃으며 허공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건 저스티스 길드를 향한 선전포고였다.


“다 쓸어 버려주마. 쓰레기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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