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만렙 아들-1화 (1/189)

< 인생의 성적표 >

아들이 장가를 갈 모양이다.

자고로 상견례는 양가가 만나 치르는 총성 없는 전쟁터라고 했다.

‘아들의 단란한 가정을 위해! 성질 죽이고 들어가 보자!’

그렇게 각오 단단히 하고 나왔다.

상견례 자리에 나온 사돈 쪽 사람들이 날 보자마자 흠칫했다.

“어머나, 세상에!”

“크흠!”

내 얼굴 반 이상을 덮고 있는 화상 흉터 때문이었다.

나는 중절모를 벗으며 최대한 정중하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우 아비, 차정혁입니다.”

예상대로 면전에서 쏟아지는 말은 칼끝보다 날카로웠다.

날 위아래로 훑어보며 견적을 매기는 눈빛이 뜨겁다.

마치 내 인생을 평가하는 자리인 것처럼.

“신림동 다가구 주택에서 사신다면서요?”

“그럼 빌라 전세금조차 도와줄 형편이 안 된단 소리인데. 커흠!”

“더러운 돈으로 먹고산다면···, 혹시 환경미화원?”

어쩌다 보니 인생이 더럽게 풀려서 블랙머니를 만지며 살고 있다.

이 바닥 사람들은 나더러 ‘신림동 개미지옥’이라고 부른다.

재벌가 사람들이 양지에서 활동한다면, 우리는 음지에서 움직인다.

나는 대한민국의 지하금융을 장악한 다섯 명의 거물 중 하나였다.

“당연히 노후 준비도 안 됐을 테고.”

“설마 애들한테 생활비 얻어 쓰실 생각인가요?”

이건 중요한 문제이니만큼 확실하게 뜻을 전해야 했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요. 부모가 돼서 애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기생충처럼 들러붙겠습니까. 제가 그 정도로 뻔뻔하지는 못합니다.”

오해를 바로잡고자 한 말이었는데.

사돈 쪽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내 손만 쳐다보고 있다.

나는 뭉툭한 손을 테이블 아래로 감추면서 웃음으로 분위기를 무마하려 했다.

실패.

윗니 4개, 아랫니 8개인 금니 때문에 분위기는 한층 더 냉랭해졌다.

“손가락이 두 개나 없네요?”

이건 왕년에 조폭이랑 얽혔을 때··· 사실대로 말하면 기함하려나.

“아까 보니까 다리도 절뚝이시던데.”

그건 조선족 청부업자랑 얽혀서··· 이것도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화제를 돌려야겠군.’

나는 미리 준비해 온 것을 주섬주섬 꺼냈다.

낡디낡은 통장이 두 개였다.

“이건 죽은 강우 친엄마가 남긴 겁니다.”

그녀는 푼돈이나마 차곡차곡 모아두는 여자였다.

통장을 보자마자 사부인 될 사람이 독수리처럼 낚아채갔다.

뒤적뒤적 살피더니 코웃음을 친다.

“먼지를 암만 모아 봤자 먼지밖에 더 돼요? 이딴 것도 통장이라고 들이밀다니. 내 참 기가 막혀서.”

예비 사부인이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그러더니 딸을 매섭게 째려봤다.

“얘, 너 진짜 이 결혼 꼭 해야겠니? 어떻게 남자를 골라도 꼭 고아보다 못한 애를 골라와서는!”

그러더니 입 모양으로 소리 없이 다그쳤다.

-돈 많다며!

추궁당한 예비 며느리는 입을 꾹 다문 채 내 아들을 야멸차게 노려보았다.

아들은 결혼할 여자에게까지 눈으로 욕을 먹고 있었다.

“제사며 명절이며 다 됐고 내다볼 필요도 없으니, 저는 없는 사람인 셈 치고.”

나는 고개를 수그렸다.

“우리 애만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비만 떼고 보면 꽤 번듯한 앱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에는 반드시 성의가 수반되어야 하는 법.

‘이럴까 싶어서 124평형 한강뷰 펜트하우스로 준비했지.’

룸 7개, 욕실 4개, 세대당 주차대수 4대, 매매가 149억 원짜리 집문서다.

그걸 막 품에서 꺼내려는데, 나보다 아들이 더 빨랐다.

“아버지, 고개 드세요. 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계세요?”

아들이 냅킨을 내던지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현영아, 미안하다. 난 아무래도 이 결혼 못 할 것 같다.”

“강우 씨!”

“이유는 굳이 설명 안 해도 될 것 같고.”

“이것만 물을게. 강우 씨 진짜 강남의 80평형대 아파트 한 채도 못 해 와?”

아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강우 씨가 하고 있는 명품에, 외제차, 씀씀이까지 전부 짝퉁이었어?”

“아버지, 그만하면 됐어요. 일어나세요.”

아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상견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나도 벌떡 일어났다.

“우리 애가 아직 어려서 뭘 잘 모릅니다. 제가 금방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흥, 됐어요! 앞으로 더는 볼 일 없을 것 같군요!”

예비 사부인이 신경질적으로 냅킨을 내던지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사돈 쪽 사람들을 향한 내 눈빛이 절로 차가워졌다.

눈이 마주치자 신경질을 내던 여자가 주춤했다.

“상견례, 아직 안 끝났습니다만. ”

자연히 내 말투도 차가워졌다.

사돈 쪽 사람들은 내 눈치를 보더니 쭈뼛거리다가 도로 착석했다.

“그 통장도 아직 사돈댁 거 아니고.”

예비 사부인이 슬쩍 챙긴 통장을 예비 사돈어른이 황급히 빼앗아 내 앞으로 밀었다.

그제야 나는 눈길을 거두고 등을 돌렸다.

불편한 다리를 절뚝이며 아들의 뒤를 쫓았다.

아직 수습할 여지는 남아 있다.

“강우야!”

아들은 후원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빨간 불빛이 담뱃대를 타고 빠르게 타들어간다.

그게 꼭 아들 속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아들에게 하려던 말이 목구멍 안으로 쑥 들어갔다.

어쩔 수 없이 아들 옆에 나란히 앉아서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줄 수밖에.

“욕봤다.”

“욕보긴요. 욕은 아버지께서 들으셨죠.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네가 죄지은 것도 아닌데.”

“여자 보는 눈이 없는 게 죄죠.”

아들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 녀석은 어려서부터 좋은 여자를 얻어 웃음소리가 끊기지 않는 가정을 만들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 애였다.

“결혼까지 생각했을 만큼 사랑하던 여자 아니었어?”

“됐어요.”

“그만하면 됐다. 돈 때문에 결혼 파투 낼 필요는 없어.”

“늘 헷갈렸었어요. 날 사랑하는 건지, 내 돈을 사랑하는 건지. 막상 진심을 확인하고 나니까 좀 씁쓸하긴 하네요.”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들이 불을 붙여 주었다.

“그 통장 말이에요. 어머니가 날 위해 모으셨다던.”

“그래. 아마 네 엄마 딴에는 쥐어짜서 모은 돈이었을 게다.”

내가 왜 그걸 이 자리에 가져왔는가.

“며느리한테 맛있는 거 사주고, 손주한테 까까도 사주고. 네 엄마가 집은 못 사줘도 그 정도는 사줄 수 있잖냐. 그건 네 엄마가 준비했던 결혼 선물이라 치자.”

“하······.”

아들은 착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준비한 네 결혼 선물이다.”

난 아들에게 아까 꺼내려던 집문서와 통장을 내밀었다.

아들은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어떻게 이것까지 받아요. 키워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아버지.”

“받아.”

나는 억지로 아들 손에 쥐여 주었다.

내 통장은 상당히 두둑할 터였다.

‘이게 바로 내 인생의 성적표지.’

난 거기에 서류 몇 장을 더 얹어서 내밀었다.

“이건 또 뭐예요?”

“여차하면 쓰려고 가져온 무기.”

그럼 전쟁터에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올까.

사돈댁 뒤를 탈탈 털었다는 소리였다.

“하, 참 쓰레기 같은 집구석이었네요.”

내가 준 서류를 넘기면서 아들은 자꾸만 피식피식 헛웃음을 뱉었다.

아들의 손아귀에서 서류가 와락 구겨졌다.

‘괜히 줬나? 아니지. 모르고 뒤통수를 맞는 것보다 알고서 각오를 다지는 게 백배 낫다.’

굳이 안 봐도 될 추잡한 꼴을 보고 나면 기분 더러워지는 것도 사실.

나는 아들의 어깨를 몇 번 더 두드려 주었다.

“들어가 봐라. 잡아야 할 여자라면 잡아야지.”

“아버진 이 집안 꼬라지를 보고서도 잡으란 말이 나와요?”

“포도알 몇 개 썩었다고 포도송이까지 전부 버려야 하는 건 아니니까.”

“······.”

“여자만 봐. 부모를 떼고 보면 괜찮은 여자인지, 부모를 감수하고서라도 평생 함께하고 싶은 여자인지. 네가 고민해야 할 건 그것뿐이야.”

나는 씩 웃었다.

“쓸데없이 자존심을 부리다가 소중한 사람을 잃지 말고. 그건 못난 사내나 할 짓이거든.”

“후······.”

“행복하게 잘 살면 돼. 난 정말 그거면 된다. 그러니까······.”

“그러고 보니 어머니 통장을 두고 왔네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들도 씩 웃었다.

결심을 굳힌 사내의 표정이었다.

“그건 현영이한텐 너무 과분하죠. 고마워요, 아버지!”

아들은 저쪽 집안을 탈탈 털어댄 서류를 보란 듯이 흔들며 상견례장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말했잖아요.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하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똥 묻은 휴지를 주워다 쓸 생각은 없습니다.”

망했다는 소리였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일단 지하실로 끌고 와서 협박부터 박고 상견례를 진행하는 건데.’

우리 회사 지하 작업장은 방음 시설까지 아주 끝내주는데 말이다.

나는 미간을 구기며 담배 연기를 폐부 깊이 빨아들였다.

“인생 참 쉽지 않아······. 쿨럭쿨럭!”

기침이 터졌다.

좀처럼 멎지 않았다.

우우우웅.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발신자는 태성대학병원장.

참고로 내 하나뿐인 불알친구 되시겠다.

-야, 차정혁! 당장 병원으로 안 튀어오냐? 넌 폐암 말기 환자라고!

아들의 결혼을 서두른 이유였다.

“어차피 길면 일 년, 짧으면 반년이라며? 언제는 마음의 준비나 하라더니.”

-그래서 손 놓고 곱게 뒈지시겠다? 그래, 좋다. 전화 끊어라. 바로 강우한테 전화할라니까.

“누가 안 간대? 간다, 가!”

-저 새끼는 아들 안 팔면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지. 30분 준다. 알았냐?

뚝.

녀석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하여간에 성질머리하고는. 누가 내 친구 아니랄까 봐.”

나는 필터 직전까지 타들어간 꽁초를 모래형 휴지통에 비벼 껐다.

*

따라오겠다는 놈들을 떼어두고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본격적인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병원으로 향하는 길은 제법 한산했다.

-전방에 어린이 보호 구역입니다. 안전 운전하십시오.

유치원 앞 사거리.

노란색 원복을 맞춰 입은 애들이 줄지어서 쫄래쫄래 버스에 오른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작고 예쁜 아이들이었다.

“우리 강우도 저만하던 시절이 있었지.”

한겨울에 길바닥을 헤매며 배고파 울던 아이를 데려왔을 때, 강우는 딱 저만했었다.

나는 차마 아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대신 집 안에 방치되어 있던 아이 부모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러 주고, 강우를 내 호적에 올려서 키우게 되었다.

부와아아앙.

맞은편 차선에서 25톤 트레일러가 질주해 왔다.

빨간불인데도 속도가 전혀 줄지 않았다.

‘어떤 미친 새끼가 운전을 저따위로······ 어어?’

졸음운전이었다.

트레일러가 유치원생 아이들을 향해 돌진했다.

“······!”

소리 없는 비명이 터졌다.

예견된 끔찍한 비극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안 돼! 애들이······!’

순간적으로 오만 생각이 다 떠올랐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젠장!’

결심부터 행동까지.

스스로 생각해도 믿기지 않을 만큼 빨랐다.

액셀을 힘껏 밟았다.

그다음은 브레이크였다.

브레이크 페달로는 부족해서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힘껏 당겼다.

끼이이익! 쾅!

돌진하는 트레일러가 내 차 측면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엄청난 충격이 뒤따랐다.

각오했던 것 이상이었다.

콰콰콰쾅.

차는 팽이처럼 돌면서 상하좌우가 자꾸만 뒤집혔다.

그게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염라대왕이 말했다.

[차정혁 52세, 사고사(事故死). 일평생 고군분투했구나. 박복한 인생이었다.]

주마등으로 보았던 52년의 인생이 두 단어로 정리되었다.

고군분투(孤軍奮鬪)와 박복한 인생.

딱히 반박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이리 더러운 팔자라면 장애인과 노숙자 신세에 고독사를 면치 못했을 터인데.]

나는 씁쓸한 얼굴로 불편했던 팔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육신이 사라진 탓에 그마저도 흐릿해 보였다.

하지만 얼굴의 화상 흉터나 돈 때문에 떼어다 팔아야 했던 한쪽 신장의 수술 자국은 여전히 욱씬거렸다.

[넌 천벌을 받고서도 용케 쓸만한 말년을 일궈냈구나. 훌륭하도다.]

그랬던가.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성긴 것 같아도 결코 그 그물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신기한 놈이로구나. 평생 뒷골목을 전전하면서 막장인생을 살았는데도, 늘 마지막 선만큼은 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

염라대왕이 자애롭게 웃었다.

[너는 그동안 남의 자식을 네 자식처럼 키웠고, 약자에게 관용을 베풀었으며, 틈틈이 불우한 이웃을 돌봤다. 그 공덕을 내가 어찌 외면하랴.]

나는 눈을 감았다.

이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진정한 성적표임을 깨달았다.

[또한 저승행을 예약했던 어린 영혼 열다섯을 대신해 스스로 목숨을 바쳤으니, 이는 가장 고결한 자기희생이라 할 것이다.]

다행이다. 애들은 무사했나 보다.

[이로써 전생에 지은 너의 죄를 모두 사하노라.]

잠깐. 웨이러 미닛.

“전생에 지은 죄라니요?”

[그렇다. 너는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다.]

설마하니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을 줄이야.

[넌 전생의 죄로 인해 박복하고 고달픈 현생을 살아야만 했으니, 하늘이 아닌 네 스스로를 원망해야 할 것이다.]

한때는 왜 내 인생만 이토록 시궁창이냐고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인제 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그 전생이라는 게 몹시 궁금해졌다.

“저는 어떻게 나라를 팔아먹었던 겁니까?”

암만 봐도 평범한 방법으로 팔아먹긴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만.

[좋다. 이번에 네가 세운 공을 생각해 특별히 직접 볼 수 있게 해 주마.]

무언가가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전생의 업보를 비추는 업경(業鏡)이다.]

업경이 전생을 비추었다.

가장 선두에서 조선을 침략한 왜구를 쓸어버리는 장군.

그 장군이 바로 나였다.

-물러서지 마라! 왜적을 물리치고 이 나라와 백성을 구해야 한다! 모두 나를 따르라!

그렇게 나는 마지막까지 왜적에 맞서 결사항전하다 전사했다.

[······.]

“······.”

정적이 흘렀다.

안 그래도 새하얗던 염라대왕의 안색이 순식간에 시퍼렇게 질렸다.

나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웃었다.

“천벌?”

염라대왕이 다급하게 외쳤다.

[천망회회 소이불실. 이번 생은 내가 책임지겠노라. 넌 유사 이래 최고의 행운아로 살 것이다!]

< 인생의 성적표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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