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를 구하다 >
고사리처럼 작아진 손이 덜덜 떨렸다.
정신은 멀쩡하나, 작달막한 팔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예전에 한 번 겪어봤던 일이었다.
‘연탄가스 중독!’
일산화탄소는 공기보다 무거워서 밑으로 가라앉는데, 몸에 흡수되면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이 떨어져서 질식 상태에 빠지게 된다.
“엄마, 정신 차려요!”
코골이는 일산화탄소 중독이 중증일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나는 있는 힘껏 어머니를 흔들었다.
“엄마, 눈 좀 떠 봐요! 이렇게 세상모르고 자다가 죽는다고요!”
아무리 흔들어도 어머니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때 웅크린 어머니 뒤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날 데려갔던 저승사자였다.
[황천길까지 1시간 남았다.]
“안 돼!”
말 그대로 저승사자의 사망선고였다.
“이대로 엄마를 잃을 순 없어!”
고작 일곱 살이던 시절.
과거엔 어찌할 바를 몰라서 한참이나 목 놓아 엉엉 울었다.
그게 어머니의 시간을 헛되이 흘려버리는 줄도 모르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일단 환기부터!’
나는 벌떡 일어나서 방문을 열었다.
드르륵!
문이란 문은 전부 다 열었다.
휘이잉.
12월 말 북풍한설.
살을 에는 칼바람에 진눈깨비가 섞여 있었다.
‘이걸론 부족해! 선풍기도 돌린다!’
대신 체온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이불을 꽁꽁 여몄다.
장롱에서 두꺼운 외투란 외투는 전부 꺼내어 어머니 위에 덮었다.
‘이건 처음 보는 물건인데.’
장롱 속에 꽁꽁 숨겨둔 보석함.
이건 과거 어머니의 유품 목록에 없던, 우리 집 형편에 비해 지나치게 귀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지금은 이런 것에 정신 팔릴 때가 아니야. 어떻게든 어머니를 방 밖으로 옮겨야 해.’
하지만 이 몸뚱이로는 턱도 없다.
‘도움을 구해야겠다.’
나는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양말이나 신발을 챙겨 신을 정신도 없었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한겨울밤.
흙바닥은 질척질척했고, 내딛는 걸음마다 맨발이 따끔거렸다.
“도와주세요! 연탄가스예요! 여기 사람이 죽어요!”
휘이잉.
쉬어 버린 목소리는 자꾸만 칼바람에 흩어졌다.
그래서 나는 근처에 세워둔 연탄집게를 들고 샷시문을 마구 때렸다.
땅땅땅땅땅!
그 소리에 놀란 동네 개가 일제히 컹컹 짖어대자, 컴컴하던 판자촌에 하나둘씩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나는 고래고래 악을 썼다.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요!”
드르륵!
“정혁이냐?”
주인집 창문이 열리더니 주인집 할머니가 창밖으로 몸을 기울였다.
어라, 이 할머니는 한번 자면 업어가도 못 일어나는 분인데?
“아이고, 세상에! 추운데 왜 내복 차림으로 나와 있어? 네 엄마는?”
“연탄가스가······!”
“연탄가스? 아이고, 이게 다 무슨 일이래?”
주인집 할머니는 당장 달려와 어머니를 흔들었다.
“정혁이 엄마, 정신 좀 차려 봐! 이걸 어째!”
주인집 할머니는 어머니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고 밖으로 끌어내려고 끙끙대신다.
“꿈에 저승사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라 깼더니만, 그놈이 정혁이 엄마를 잡아가려고 왔던 모양이네!”
주인집 할머니 뒤에서 유령처럼 스윽 나타난 저승사자가 엄지를 척 들었다.
[57분.]
할머니가 어머니를 질질 끌어냈다.
반쯤 단칸방 밖으로 나온 것.
그게 할머니의 최선이었다.
헥헥대면서 할머니는 크게 외쳤다.
“동네 사람들! 사람 살려! 밖으로 좀 나와보소!”
어린아이가 내지르는 소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쩌렁쩌렁한 목청이었다.
할머니는 이 동네에서 제일 야무지고 목소리 큰 분이셨다.
“창식이 아부지! 민호 아부지! 용권이 아부지! 얼른 와서 도와줘요!”
주인집 할머니에게 대놓고 호명당한 이웃집 아저씨들이 창문을 열고 몸을 내밀었다.
“사람 살려요! 연탄가스야!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쓰겠어!”
지금은 구급차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1981년 소방서에서 119구급대를 발족하여 구급 업무를 실시하기 전까지.
서울이나 부산의 일부 대형 병원에서나 자체적으로 야간통금 시간에 응급환자를 이송할 뿐이다.
차라리 택시를 이용해 직접 병원으로 데려가는 게 더 빠르다.
[53분.]
저승사자가 한마디 할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할머니, 제가 공중전화로 구급차 불러올게요! 안 되면 경찰차라도!”
이곳은 구로 판자촌.
공장 일로 근근이 살아가는 판자촌은 유독 가난한 집이 많았다.
전화기가 널리 보급되지 않은 시절이니, 다들 공중전화를 애용하곤 했다.
나는 방 안으로 뛰어들어 어머니 가방을 챙겼다.
혹시나 돈이 부족할까 싶어서 보석함도 가방에 쑤셔 넣었다.
“택시 잡아올게요!”
“정혁아, 지금 통금 시간이야. 택시가 돌아댕길 리 없다.”
주인집 할머니는 어머니의 팔다리를 주무르면서 한숨처럼 탄식했다.
“오늘 같은 날에 우리 철구는 왜 아직 안 들어와서는!”
철구 아저씨는 주인집 할머니의 외아들이었다.
불곰처럼 생겨서는 맨날 간첩 잡는다며 바쁘게 싸돌아다니곤 했다.
이 동네에서 제일 비싼 지프차를 몰고 다녔는데.
새벽에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거나 종종 외박하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어디 보자. 재호네 집에 트럭이 있을 것인데······.”
“재호네 집이 어딨는지 알아요! 사정해 볼게요!”
“그래, 먼저 가 있어라. 나도 사람들 도착하면 곧 뒤따라가마!”
든든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목길을 달렸다.
눈이 반쯤 쌓여 있는 골목길 어귀마다 연탄재 부스러기가 깔려 있는 곳.
공단 사람들이 모여 사는 판자촌 골목길엔 가로등 몇 개가 깜빡였다.
* * *
연탄가스 때문에.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웠다.
자꾸만 비틀비틀, 휘청거렸다.
그래도 지금은 달려야 했다.
타다다닷!
과거엔 연탄재 깔린 길을 달려갈 때면 몇 번씩 발에 걸려 나동그라지곤 했었는데.
오늘따라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용케 달렸다.
운이 좋았다.
뒷덜미가 오싹해서 뒤를 돌아봤더니, 저승사자가 유령처럼 뒤따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47분.]
“도와줄 게 아니라면 좀 닥쳐! 우리 어머니가 이대로 돌아가시면 나도 바로 멱 따고 저승 가서 염라대왕 멱살부터 잡을 테니까!”
약속이랑 다르잖아!
“어머니께 물어보라며! 그럼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나는 저승사자를 노려봤다.
“지금 난 눈에 뵈는 거 없어! 이번엔 천벌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시시비비 제대로 따져 보자고!”
난 한다면 하는 놈이다.
어째서인지 뜨끔한 표정이 된 저승사자가 입에 지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태성병원까지는 차로 15분 거리.’
나는 이 악물고 뛰었다.
‘이번에도 재호네 트럭은 얻어 타지 못하는 걸까?’
과거엔 그랬었다.
재호 아버지는 내 부탁을 야멸차게 거절했었다.
딴 사람이나 알아보라며 모질게 등을 돌렸었다.
‘덕분에 부탁에는 성의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지.’
나는 챙겨 나온 어머니 가방을 힐끔 바라봤다.
지갑에 있는 돈이라고는 기껏해야 9,850원뿐.
한숨이 나올 만한 액수였다.
“빌어먹을.”
다른 의미로 한숨이 나왔다.
재호 아버지의 인성을 못 믿어서다.
인정에 호소한다고 들어줄 인간이었다면 과거에 어머니를 외면하진 않았을 테니까.
“일단은 사정부터. 정 안 되면 손가락이라도 한 개 잘라 던져주는 수밖에.”
그러면 별수 없이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이다.
어린애 손가락을 자른 흉악범으로 몰리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손가락 하나로 어머니 목숨을 구할 수만 있다면 어쩌겠어. 잘라야지.”
이럴 줄 알았으면 창고에서 손도끼부터 챙겨 올 것을.
“아무리 야간통금이라고 해도 차 빌릴 데가 이렇게도 없다니!”
시대가 그랬다.
대한민국에서는 80년대는 되어야 마이카 열풍이 불었다.
공장에서 쓰는 트럭도 출퇴근 시 차 키를 반납하는 게 원칙인 때에, 어디서 차를 빌린단 말인가.
‘공중전화다!’
마침 골목길 어귀에서 공중전화 부스를 발견했다.
이때 공중전화 한 통에 얼마였더라.
근래에 도수당 10원으로 올랐다고 했었나?
“윽!”
동전을 넣기 위해 까치발을 들었다.
뛰어 봐도 소용없다.
닿지 않는다.
‘짧아!’
챙겨온 보석함 생각이 났다.
세로로 놓아 밟고 올라가면 얼추 동전을 넣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만 손이 미끄러져서 보석함이 퍽 소리를 내며 열렸다.
‘통장, 수첩, 남성용 최고급 명품 손목시계.’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나는 어머니가 숨기고 있던 보물을 챙겼다.
‘하, 바쉐론 콘스탄틴 패트리모니 1970 스페셜 에디션.’
1990년대 파덱 필립이 시계 브랜드의 제왕으로 부상하기 이전까지 업계 1위였던 스위스 시계 회사의 최고급 브랜드 제품이다.
이 시대 대한민국 짝퉁 장인들의 실력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의 명품 시계.
우리 집 형편으로는 죽었다 깨도 못 산다.
이걸 수입, 혹은 외국에서 직접 구입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재력가임을 의미했다,
‘우리 아버지가 진짜 재벌 2세였던 모양인데?’
그럼 우리 모자는 왜 이러고 살고 있냐.
‘이걸로 재호네 트럭을 빌리면 되겠네.’
비싼 시계가 탐날 테니, 돈 밝히는 재호 아버지가 트럭을 빌려줄 것이다.
빵빵!
클랙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지프차 창문이 스르르 내려가더니 30대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꼬맹아, 너 지금 거기서 뭐 하냐?”
주인집 할머니의 아들, 철구 아저씨였다.
“아저씨!”
눈물이 나도록 반가웠다.
물론 지프차가!
“혹시 간첩 신고하려고?”
“엄마가 쓰러졌어요, 연탄가스 때문에! 빨리 병원에 가야 해요!”
“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프차 보조석 문이 벌컥 열렸다.
나는 보석함까지 전부 챙겨 잽싸게 차에 올랐다.
부르릉.
지프차는 거침없이 골목길을 달렸다.
‘운이 좋아!’
과거 휑한 밤거리에서 택시를 잡는다고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그땐 아무리 목 놓아 외쳐봐도 택시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않았었다.
그놈의 야간통금이 다 뭐라고.
나는 하늘을 원망하며 길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었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어머니를 살릴 수 있어!’
집주인 할머니가 대문 앞까지 나와서 크게 외쳤다.
“얼른 병원으로 데려가! 숨 제대로 돌아왔고, 의식도 차렸어!”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응급조치를 제대로 해놓은 모양이었다.
비틀거리는 어머니를 지프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
*
태성병원 중환자실 복도.
나는 병원 담요를 온몸에 돌돌 만 채 의자에 앉아서 기다려야 했다.
‘저승사자는 카운트다운을 멈추고 물러갔어. 그러니 괜찮으실 거야.’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그제야 어머니 가방 위로 불룩 튀어나온 보석함에 눈길이 갔다.
‘시계 고르는 취향이 상당히 고급스럽고 화려하시던데. 우리 아버지는 대체 누구인 걸까?’
궁금해졌다.
‘한국에서 차씨 성은 흔한 성씨가 아니야. 더군다나 재벌가 중에 차씨 성을 쓰는 집안이라면 오직 한 곳.’
나는 눈을 감았다.
‘태성그룹인가?’
태성그룹.
전자, 화학, 건설, 자동차, 유통, 호텔, 병원, 식품, 패션 등.
대한민국 재계 서열 5위인 거대 재벌그룹이다.
< 엄마를 구하다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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