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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만렙 아들-7화 (7/189)

< 이건 서비스 (2) >

예전엔 복권 따윈 거들떠도 안 봤다. 사 본 적도 없었다.

하늘이 내린다는 행운을 믿고 살기엔 내 인생이 너무 팍팍했었거든.

‘응?’

내가 산 것에 비하면 굉장히 미약하지만, 분명 황금빛이 일렁거리는 복권이 또 있었다.

“한 장 더 살게요. 요거로!”

그렇게 나는 황금빛이 맴도는 주택복권을 두 장 샀다.

“정혁아!”

어머니가 허둥지둥 따라왔다.

복권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옆 가판대에서 초콜릿 한 봉지를 샀다.

“정혁아, 엄마 진짜 놀랐잖아. 갑자기 차에서 내리··· 으응?”

어머니 입에 초콜릿 한 알을 쏙 넣어주었다.

엉겁결에 초콜릿을 받아먹게 된 어머니.

잔소리는 쏙 들어가고 달콤한 향내가 폴폴 풍겼다.

“배가 너무너무 고팠어요.”

너무나 아이다운 대답에 어머니의 표정도 풀렸다.

어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했어.”

“엄마도 배고프죠?”

나는 어머니의 입에 초콜릿 한 알을 더 넣어 주었다.

어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우리 모자가 사이좋게 손을 잡고 지프차로 돌아왔을 때,

“어이, 꼬맹이. 갑자기 왜 그렇게······ 큽!”

나는 잔소리 폭격을 준비하던 철구 아저씨의 입에도 초콜릿을 한 움큼 쑤셔 넣었다.

아저씨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우물거려야 했다.

커피도 블랙으로 마시는 사람이 초콜릿의 단맛을 좋아할 리 있겠냐마는.

“아저씨, 요건 덤이고요.”

받은 게 있으면 마땅히 갚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이건 서비스예요.”

나는 철구 아저씨 귀에 작게 속삭이며 아저씨 주머니에 주택복권 한 장을 찔러 넣었다.

온통 금빛으로 찬란하게 번쩍대는 내 것과는 확연히 다른, 밋밋한 금테를 두른 복권이었다.

“용돈이라도 하시라고요.”

“얼씨구?”

철구 아저씨는 주택복권을 확인하더니, 기가 찬다며 웃는다.

내 진짜 목적은 초콜릿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겠지.

“내 이놈의 요망한 꼬맹이를 진짜······!”

하지만 철구 아저씨는 이번엔 내 볼을 쫙 늘리지 못했다.

나는 이미 한입 가득 초콜릿을 장전하고 전투 준비를 끝냈기 때문이다.

비싼 지프차 안에서 침 묻은 초콜릿을 연속 발사하면 어떻게 될까?

어디 해 볼 테면 해 봅시다!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것이야!

* * *

집으로 가는 동안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무래도 지하철 1호선 개발이 성공하면서 구로역 인근 땅값이 치솟고 있기 때문에 강제 철거를 결정한 거겠지?’

구로역은 74년 수도권 전철 개통과 함께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이후 도시와 함께 빠르게 성장했고, 경부선과 경인선의 분기역으로 수도권 광역 전철의 주요 환승역으로 자리매김했다.

구로 차량사업소가 위치할 만큼 교통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더구나 공단이 즐비한 까닭에 공장 노동자들의 판잣집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곳이다.

‘게다가 아시안 게임이 곧 한국에서 열린다. 정부에서는 요즘 눈에 불을 켜고 도시 경관을 미화하고 있어.’

66년 미국 대통령 방한 때 남산의 판자촌이 TV화면에 잡혔다.

정부 관계자들은 외국인들 보이기에 창피하다는 이유로 도시 경관 미화를 시작했다.

서울 시내 재개발이 본격화되었고, 무허가 빈민촌 철거에 박차를 가했다.

‘거기에 70년대 강남 개발과 아파트 분양 붐까지 터지면서 우광건설이 나선 거야. 이곳에 아파트를 지어 팔면 돈이 될 테니까.’

군사정권은 70년대 강남 개발을 골자로 도시 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인구 이동을 유인하기 위해 대법원과 검찰청을 비롯해 굵직한 정부기관을 강남으로 옮겼다.

또한 강남 8학군이라 불리는 명문고등학교 이전을 추진했다.

그렇게 강남 개발은 성공했다.

복부인과 프리미엄이란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아파트는 짓는 족족 전부 팔렸다.

사람들은 아파트 가격과 땅값이 폭등하는 현상을 목격했고, 건설사들은 적은 돈으로 재개발할 수 있는 곳, 즉 판자촌과 빈민촌으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되면 판자촌 사람들은 길바닥으로 내몰리게 돼.’

70년대 서울 주택의 32%가 판잣집이었다.

‘쥐꼬리만 한 보상금으로는 갈 데가 없어. 요즘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데.’

강남 개발에 성공하면서 부동산 광풍이 서울 전역에 불기 시작했다.

70년대 평당 400원 하던 잠실 땅은 80년대 후반엔 40만 원에 육박한다.

고작 십여 년 만에 무려 1천 배나 뛰는 것이다.

‘70~80년대 강제 철거당한 사람들은 임시 판잣집도 허물려서 진짜로 땅굴을 파고 들어가서 살기도 했었어.’

나는 주머니를 힐끔 내려다보았다.

아까 산 주택복권은 여전히 황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다 왔다. 내리자.”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어린아이고 노인이고 할 것 없이 꽤 많은 사람들이 주인집 앞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일요일 낮 시간대에 이렇게 모여 있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부자인 주인집 할머니네 집에 흑백 텔레비전이 있었거든.

‘주택복권 추첨을 보러온 거네.’

곧 강제 철거가 진행될 판자촌.

갈 곳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의 희망은 오직 주택복권이란 행운뿐일 터였다.

1등 당첨금이 무려 1천만 원!

강남에 새로 지은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거금이 떨어진다.

“아이고, 정혁이 엄마!”

차에서 내리는 우리를 보고 동네 사람들이 반겼다.

“어제 큰일 날 뻔했다며? 몸은 좀 괜찮아?”

“얘기 들었어. 연탄가스 때문에 실려 갔다면서?”

“연탄가스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대. 얼른 들어가서 누워. 정혁이는 우리가 봐줄게.”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괜찮아요. 걱정해 주신 덕분에 무탈해요. 어제 다를 도와주셔서 정말 고마웠어요.”

다들 떠들썩하게 한마디씩 보탰다.

“정혁이가 제 엄마 살리겠다고 맨발로 뛰어다녔다며?”

“자긴 아들 덕분에 산 거야. 어쩜 그리 야무진지 몰라.”

“건강하게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자, 다들 정혁이 엄마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며 박수!”

동네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우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그렇게 우리는 시끌벅적하게 우리 집 단칸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혁아, 잠깐만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봐. 엄마가 금방 밥 차려올게.”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무려 45년 만에 먹는 어머니의 집밥이라니!

너무나 오래되어 기억조차 흐릿해진 어머니의 손맛은······.

“크읍!”

어린 시절의 철없는 반찬 투정으로 기억하고 있었건만.

이것만큼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내 기억은 세월에 따라 미화된 게 틀림없었다.

“엄마, 물!”

짜다! 맵다! 싱겁다! 밍밍해! 느끼해! 비려!

아니, 무슨 반찬이 저마다 자기주장을 이렇게 독특하게 해?

대체 음식에 무슨 짓을 하셨기에!

“이야, 우리 아들 오늘 밥 잘 먹네. 진짜 배고팠었나 보다.”

그렇게 뿌듯하게 웃지 마시라고요!

지금 억지로 밥 세 숟가락을 먹었을 뿐이거든요.

하, 인생······.

우걱우걱. 호로록.

그래, 효도가 별거냐.

우리 어머니가 웃으면 그게 효도지.

화생방 훈련도 아니건만, 왜 밥을 먹는데 눈물이 나오는 걸까.

달그락. 달그락.

나는 숟가락으로 밥그릇에 붙은 밥알을 긁어내며 물었다.

“엄마, 우리 아빠 말이에요.”

어머니는 수저를 내려놓으셨다.

한참이나 내 기색을 살펴보는데 표정이 잔뜩 굳었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모른 척했다.

“그렇잖아요. 어제 엄마가 병원에 실려 갔는데,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왜 아빠한테 연락을 안 하세요?”

“정혁아, 아빠는······.”

또 침묵이 길어지네.

“아빠가 우리를 버린 거예요?”

“그런 거 아니야.”

어머니는 물을 단숨에 벌컥벌컥 마시더니 한숨과 함께 말했다.

“아빠는 돈 많이 벌러 중동에 가셨어. 거기서 도로도 깔고 건물도 짓느라 못 오시는 거야.”

중동 건설 붐으로 해외 건설인부 파견은 80년대에 크게 성행하는 일이었다.

대운건설이 해외 건설수주로 일약 재벌의 반열에 올랐던 일로 유명했지.

하지만 지금은 아직 중동 건설 붐이 본격화되기엔 조금 이른 감이 있다.

‘제대로 알려주기 싫은 건가.’

어느 재벌 2세가 지금 중동에서 도로 깔고 건물 짓고 있겠냐고.

그게 아니라면······ 흠. 짐작 가는 일이 있긴 하다.

“엄마, 우리 아빠 이름은 뭐예요?”

엄마가 대답하기 전에, 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집 앞마당에서 애들이 크게 외쳤다.

“이제 1등 번호다!”

“1조!”

조 추첨이 끝났다.

“준비하시고~ 쏘세요!”

그 다음 여섯 자리 수는 다트 쏘기로 진행했다.

“2!”

애들이 큰 목소리로 따라 외쳤다.

화면이 너무 작아서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겐 숫자가 보이지 않으니까.

앞자리에 앉은 애들이 크게 외쳐주는 것이다.

“4!”

“9!”

잠깐!

나는 주머니에서 주택복권을 꺼냈다.

‘1조 2, 4, 9······.’

밖에서 아이들이 나머지 숫자를 마저 불러줬다.

“허억!”

그럴수록 내 손은 달달 떨렸다.

내 평생 단 한 번도 벌어지지 않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혁아?”

오죽하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만 푹 숙이고 있던 어머니가 의아해하며 다가오셨을까.

어머니도 내 손에서 파르르 떨리는 주택복권을 같이 들여다보았다.

이윽고 어머니 역시 나와 똑같은 소리를 내셨다.

“허억!”

어머니와 내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지진이 난 것 같은 눈동자였다.

“이, 일등······!”

당첨금 1천만 원!

강남 압구정동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 이건 서비스 (2)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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