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첨 >
어머니는 기쁨에 겨워서 비명 같은 소리를 내었다.
“정혁아! 세상에, 이거······ 웁!”
“엄마, 조용히.”
나는 어머니의 입을 틀어막고 경고했다.
“밖에 판자촌 사람들이 있어요.”
어머니는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 눈으로 물어봤다.
“저 사람들이요, 1천만 원짜리 1등 당첨 복권이 여기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나올까요?”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제 철거가 코앞이에요. 눈이 뒤집힐 거라고요.”
그제야 어머니의 안색이 변했다.
“알아요. 좋은 사람들이라는 거. 하지만 당장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잖아요.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고요.”
나는 잘 알고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뒷골목 세계에서는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평소에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던 사람들도 막장에 다다르면 눈이 뒤집힌다.
“밤에 칼이라도 들고 찾아오지 않으면 다행이죠. 그때 엄마는 이 복권을 지켜낼 자신 있어요?”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전부 떠날 때까지 조용히 하기로 해요. 생각은 그다음이고요. 알았죠?”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제야 입을 막았던 손을 뗐다.
“조심해서 나쁠 거 없잖아요.”
날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이 묘하게 깊어졌다.
그때였다.
똑똑똑.
“정혁이 엄마.”
어머니는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불투명한 유리를 끼운 알루미늄 샷시문 너머로 어른들의 그림자가 비쳤다.
나는 재빨리 복권을 어머니의 카디건 주머니에 넣었다.
엄마가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알루미늄 샷시가 드르륵하고 열렸다.
“무슨 일이에요?”
“아니, 그냥. 걱정이 좀 돼서.”
동네 아줌마들은 문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두리번거렸다.
말로는 걱정되어 찾아왔다면서 눈으로는 값 나가는 물건이 없는지 훑어본다.
“도둑 든 건 아니지?”
“뭐 잃어버린 건 없고? 이를 테면 패물이나 통장 같은 거.”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진즉에 귀중품이랄 것은 전부 내가 챙겨 갔었다.
“어휴, 여긴 냉골이 따로 없네.”
“집주인 할머니가 보일러 못 고쳐주겠다고 했지? 사람 안 부르는 것 같더라.”
“보아 하니 이사할 집도 못 구한 것 같고.”
“보증금에 월세 내려면 꽤 목돈이 필요하지 않아? 얼마나 들고 있어? 정혁이 엄마라면 야채 팔아서 제법 모았을 텐데.”
“당장 오늘 잘 데도 없을 거 아냐. 정 곤란하면 우리 집으로 와. 내가 방 싸게 내줄게. 우리 연탄 보일러는 쌩쌩해.”
“같은 가격이면 우리 집으로 와. 난 아침도 챙겨줄 수 있어!”
난데없이 불 붙은 아줌마들의 경쟁에 엄마는 난처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앞마당에서 남자 어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만 집으로 돌아가자는 재촉이었다.
“우리 이만 갈게.”
“정혁이 엄마, 잘 쉬어. ”
집주인 할머니 앞마당에 모여 사이좋게 복권 추첨 방송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썰물이 빠지듯 사라졌다.
“······.”
어머니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엄마, 우리 이사 가요. 압구정 현무 아파트는 어때요?”
“현무 아파트?”
압구정 상업지구는 조만간 땅값이 수직 상승할 예정이라서.
하지만 아까 날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테레비에 많이 나오잖아요. 압구정으로 오세요~♬ 현무 아파트가 좋아요~♬”
그래서 일부러 어린애답게 CM송을 불렀다.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천마 아파트도 좋고요.”
“대치동 천마 아파트를 말하는 거지?”
“천마에는~♬ 좋은 학교~♬ 좋은 학원~♬ 신도시 새 아파트~♬”
학군이 좋거든.
그 말은 교육열 높은 학부모 덕분에 아파트 가격 떨어질 일 없다는 소리고.
나는 고사리손으로 두 주먹을 꽉 쥐어 보이며 웃었다.
“난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교에 갈 거예요.”
어머니가 대학 등록금용으로 만든 통장을 본 후다.
어머니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었다.
먹고살기 바빠서 학교는 포기해야 했던 게 한이기도 했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교! 어때요?”
“그럼 너무 좋지.”
어머니는 몹시 기뻐하는 표정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머니가 혼잣말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 우리 정혁이도 곧 국민학교에 들어가야 하고, 나중에 대학교에도 들어가려면······.”
난 아직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호적에도 오르지 못했다.
“어제처럼 내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그럼 혼자 남게 될 우리 정혁이는 어떡하라고.”
결심을 굳힌 목소리였다.
그래서 은근하게 물었다.
“엄마, 우리 아빠는 이름이 뭐예요?”
우리나라에서 차씨 성을 쓰는 유일한 재벌가는 역시 태성그룹뿐이다.
또 하나 더.
어머니 수첩에서 봤던 그 번호는 태성그룹 총수의 집 전화번호였다.
“아빠 이름은 차성준이야. 차씨 성에 성 자, 준 자 쓰셔.”
처음으로 아빠의 이름 석 자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기분이 묘했다.
‘우리 아버지가 태성그룹 막내아들이었어? 태성건설을 받기로 했던?’
과거 태성그룹 주식을 야무지게 쓸어담기 전에.
집안 가계도부터 그룹 속사정까지 정보란 정보는 있는 대로 박박 긁어모았다.
태성건설은 막내인 차성준의 몫이었다.
‘태성건설은 70년대 중반부터 중동 쪽 해외 건설 수주를 무지막지하게 따내면서 급성장했지. 그게 우리 아버지 솜씨였군.’
아버지는 중동에 도로 까느라 못 온다더니.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단지 걸리는 게 있다면······.’
똑똑.
두 번째 노크였다.
“흠흠, 저기 괜찮으시다면 잠깐 저희 집으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어머니께서 부르십니다. 긴히 전해 줄 게 있다는군요.”
집주인 할머니의 호출이었다.
“꼬맹아, 밥 다 먹었냐? 너는 그동안 아저씨랑 놀까?”
하여간에 저 양반은 꼭 중요한 때 초를 친다니까.
자연히 철구 아저씨를 향한 눈초리가 뾰족해졌다.
하지만 어머니가 내 등을 떠밀었다.
“그래, 아저씨 따라갔다 와. 엄마는 잠깐 주인집 할머니랑 얘기하고 올게.”
“······그러죠.”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으니까.
나는 철구 아저씨가 사준 새 운동화를 신었다.
뒷마당에 도착하자마자 철구 아저씨는 대뜸 물었다.
“꼬맹아, 이거 어떻게 된 거냐?”
“뭐가요?”
모른 척 시치미를 뗐지만, 사실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얼마짜리에 당첨됐는데요?”
“어, 어떻게 알았냐? 너 혹시 점쟁이냐?”
일부러 눈을 가늘게 뜨고 보자, 철구 아저씨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100만 원짜리더라.”
꼴랑 금테 두른 복권이었는데?
생각보다 큰돈이다.
판자촌 철거 보상금이 고작 10만 원이니까.
그래서 난 뿌듯하게 웃을 수 있었다.
“잘됐네요.”
“이걸 어떻게 샀냐? 설마 이게 당첨될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던 건······ 아니, 이게 말이 되나? 그럴 리가 없는데. 허, 참······.”
철구 아저씨는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저씨는 당첨된 복권을 내게 내밀었다.
“자. 이거 도로 가져가.”
“넣어둬요. 아저씨한테 준 거잖아요. 서비스.”
“이걸 진짜 나더러 가지라고?”
“그럼 사내가 치사하게 줬다 뺐어요?”
“그건······, 그러니까 내가 꼬맹이 삥 뜯는 스타일이 아닌데······.”
“이사 가는 데 보태 쓰시던가요.”
철구 아저씨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사 안 가고 계속 이렇게 버티려고요? 집주인 할머니가 혼자 계실 때 철거반이 들이닥치면요? 나이도 있으신데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건 절대 안 되지!”
“철거 반대하는 것도 좋고, 버티는 것도 다 좋은데요. 싸울 때 싸우더라도 내 가족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 후에 싸워야죠. 이사가 먼저예요.”
“그래. 그래야겠다.”
철구 아저씨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흠, 어디로 가야 하나. 아무래도 종로나 을지로 쪽이······.”
“강남으로 가시죠.”
아저씨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정부에서 강남 개발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잖아요. 관공서랑 명문고를 강남으로 이전하는 거 보면 몰라요? 분명 땅값이 크게 오를 거예요.”
쌀 때 사세요.
나중에 땅을 치면서 후회하지 말고.
“너 진짜 일곱 살 맞냐?”
어쩌다 보니.
나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아저씨, 아까 그 서류 있잖아요. 우광건설.”
“어허! 그건 잊으랬지?”
“그건 어떻게 쓸 계획이에요?”
대체 어떻게 썼기에 중정 요원이란 사람이 중정에서 고문받다 죽냐고.
“꼬맹이는 몰라도 돼.”
나는 속으로 참을 인(忍) 자를 새겼다.
‘함부로 객기 부리다간 개죽음을 면치 못해, 이 사람아. 댁이 딱 그렇게 죽더라고.’
내 눈으로 똑똑히 봤슈!
아저씨, 당신 일주일 후에 그것 때문에 고문받다가 죽어!
하, 이걸 대놓고 말해 줄 수도 없고.
‘어머니 목숨 빚진 것도 있고, 염라대왕이 인연을 잘 맺으랬으니까, 목숨 구할 조언 정도는 괜찮겠지.’
호의는 호의로.
악의는 악의로.
난 은원이 분명한 사람이라서.
'저 우광건설 서류만 제대로 쓰면······.'
저렇게 황금빛이 터져 나오지는데.
그냥 모른 척하긴 어렵단 말이지.
나도 좋고, 아저씨도 좋고.
우리 모두에게 전부 이득뿐인 윈윈의 방법이 떠올랐다.
< 당첨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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