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차별 꿈살포 >
정혁이 엄마가 공중전화 앞에서 한참이나 서성일 때.
같은 시각 태성그룹 차 회장의 집은 발칵 뒤집히고 있었다.
초저녁부터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따르릉.
차 회장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버지, 저 첫째예요. 방금 저랑 아내는 물론 아이들까지 전부 이상한 꿈을 꿨습니다. 글쎄, 저승사자가 꿈에 나타나서······.
차 회장은 흠칫했다.
사실 그도 5분 전에 같은 꿈을 꿨다.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다가 순간 기절하듯 깜빡 졸다 꾼 악몽이었다.
-재수 없게 성준이가 새해 첫날 비행기 추락사로 비명횡사하는 겁니다.
“으음!”
-성준이에게 일곱 살짜리 아들이 있다는데, 그 목석같은 녀석에게 처자식이요? 그것도 일곱 살이나 되는 애가 있을 리 없잖아요. 하하하!
“크흐으음!”
첫째 아들의 말이 길어질수록 차 회장은 관자놀이가 욱씬욱씬 쑤셔왔다.
아까 혼비백산한 처가 달려와서 떠들어댄 내용과 똑같아서 더 골치가 아팠다.
“그만 끊어라. 고작 악몽 하나 꾼 거 가지고 너무 유난을 떠는구나.”
-하지만 저승사자가 생년월일을 자세히 읊는 것부터 너무 소름 끼치도록 생생해서······.
“그만하래도!”
-예. 쉬세요, 아버지.
전화를 끊자마자 따르릉 소리가 또 울렸다.
“여보세요?”
-아버지. 저 둘째예요. 방금 우리 부부가 너무 신기한 꿈을 꾼 거 있죠? 저승사자가 꿈에 나타나서······.
둘째 아들도 첫째와 똑같은 말을 떠들어댔다.
차 회장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지금 여덟 시도 안 됐다! 이런 초저녁부터 자빠져 잠이나 쿨쿨 자니까 네가 맡은 회사 실적이 그 모양인 거 아냐! 끊어!”
둘째 아들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따르릉!
-아빠!
“너도 저승사자 꿈을 꾼 건 아니겠지?”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아빠가 신내림을 받으셨나? 꿈에서 성준이가······.
“하아······.”
차 회장은 몹시 피곤해졌다.
그래서 딸의 전화에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바로 끊었다.
털썩.
차 회장은 소파에 몸을 묻었다.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나긋나긋한 몸짓.
“회장님, 꿀물 타 왔어요.”
차 회장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아내가 쟁반을 내려놓았다.
“이거 드시고 진정하세요.”
꿀물을 건네주는 아내의 손이 작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성준의 모친이었으며, 미신을 맹신하는 여자였다.
그래서 종종 다른 이들과 함께 유명한 점집에 다녀오곤 했다.
“회장님, 전 정말 너무 무서워요. 혹시라도 우리 성준이에게 그런 몹쓸 일이······.”
“허튼소리!”
차 회장은 노성을 내질렀다.
가슴이 콱 막혀서 꿀물을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켜다가 뿜었다.
“크흐흡!”
“그거 뜨거운 거예요!”
“이런 빌어먹을! 냉수나 가져오지, 이 판국에 왜 뜨거운 꿀물을······! 에잇!”
차 회장은 머그컵을 탁 내려놓았다.
안 그래도 타들어가던 속이 홀랑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듣도 보도 못한 기사(奇事)였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온 집안사람들이 전부 똑같은 꿈을 꾸다니. 이게 정녕 가능한 일인가?’
차 회장은 미신 따윈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귀신도, 종교도, 꿈이나 전설도 믿지 않는 마당에 저승사자는 무슨.
‘솔직히 우리 성준이에게 일곱 살이나 먹은 자식 놈이 있을 리가 없는데, 그 무슨 해괴망측한······!’
차 회장은 평소 아내가 유명한 점집이랍시고 종종 드나드는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다.
분명 그랬었는데······.
따르릉.
또 전화가 울렸다.
차 회장은 머리가 지끈거려서 손을 내저었다.
“귀찮아 죽겠군. 이번엔 당신이 좀 받아.”
“여보세요?”
-사모님, 저 인왕산 선녀보살이에요.
인왕산 선녀보살.
그녀는 집안 대대로 인왕산 백호신을 모신다는 몹시 유명한 무당이었다.
“보살님? 아니, 어쩐 일로 저희 집에 전화를 다 하셨어요?”
-방금 신기한 꿈을 하나 꿨거든요. 아무래도 그게 태성그룹 차 회장님 댁 일인 것 같단 말이죠. 저승사자가 나타나서······.
“네에?”
인왕산 선녀보살은 조선 독립부터 한국전쟁과 군사 쿠데타로 인한 정권 교체까지 전부 맞춘 것으로 유명했다.
그렇게 대한민국 정재계의 유명인사들은 그 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곤 했다.
심지어 일본에서도 고위 관료들이 점을 보러 찾아올 정도였다.
태성그룹 사모님도 인왕산 선녀보살의 단골 고객이었다.
-안 그래도 근래 차 회장님 댁에 살문(殺門)이 열려서 급사(急死)의 기운이 몹시 짙게 드리워졌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태성그룹 회장 사모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범상치 않은 꿈이더군요. 허투루 넘기면 안 될 것 같아서 전화드렸어요.
“시,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전화기를 잡은 손이 안쓰럽게 덜덜 떨렸다.
-사모님, 조만간 신당에서 뵙지요. 곧 집안에 새 사람을 들인다는 점괘가 나왔거든요.
인왕산 선녀보살은 전화를 끊었다.
“맙소사.”
처음이었다.
선녀보살이 먼저 전화를 거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고 알려져 있었으니까.
태성그룹 사모님은 남편을 돌아봤다.
“사실은··· 성준이에게 여자가 한 명 있긴 했었어요.”
“뭐?”
차 회장으로선 금시초문이었다.
“한국대학교 수석으로 들어간 이수진이라고 있어요. 회장님도 집 앞에서 성준이 대학 후배를 잠깐 만났다고 했었잖아요.”
“아, 그 단정하고 예쁘장하게 생겨서 귀티가 흐르는 애. 그런데 그 애가 성진이 여자친구였나?”
“아니에요. 7년 전에 내가 돈 봉투를 주면서 떼어내서······.”
차 회장의 눈썹이 크게 위로 올라갔다.
“그럼 어떡해요. 회장님이 일방적으로 우광그룹 막내딸과 성준이의 약혼을 밀어붙이셨잖아요.”
막내아들은 약혼이 결정되자 멋대로 군대에 들어갔다.
만기 전역 후엔 건설 수주를 따낸다며 밖으로만 돌았다.
그게 벌써 7년.
‘설마···, 아니겠지?’
차 회장은 이마를 짚었다.
사모님은 몇 번이나 입술만 달싹이다가 결국 안방으로 물러났다.
“김 비서!”
“예, 회장님.”
“중동에 가 있는 성준이 말이야. 즉시 귀국하라고 전보 보내.”
“알겠습니다.”
“하나 더. 이수진이라고 했던가? 자네도 알고 있었나?”
“예. 제가 직접 사모님의 명령을 수행했습니다.”
돈 봉투는 김 비서의 솜씨라는 소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내쫓긴 후 종적을 감췄더군요. 그래서 따로 조사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당장 찾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차 회장은 지끈대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그 이수진이란 아이가 정말 내 손자를 키우고 있는지, 어디서 어떻게 뭐 하면서 사는지. 자네가 책임지고 제대로 알아 와.”
“알겠습니다.”
“내가 한번 만나봐야겠군. 며칠이면 되겠나?”
“7년 동안 종적을 감춘 사람입니다. 적어도 보름은 걸릴 겁니다.”
“늦어! 열흘 후면 새해 첫날이야!”
저승사자는 새해 첫날에 막내아들이 비행기 추락사로 죽을 것이라 경고했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너무 찜찜해서 견딜 수 없었다.
“무슨 수를 써도 빨리 찾아내! 전국을 이 잡듯이 뒤져!”
“예.”
“태성그룹 정보팀 총동원하고, 명동 해결사들도 전부 부르고!”
“예.”
“중정에도 전화 한 통 넣어야겠군. 사람 잘 찾는 놈이 누구더라?”
따르릉.
차 회장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 오랜만입니다, 차 회장님. 저 이수진입니다. 막내아드님인 성준 씨와······.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전국을 이 잡듯이 뒤져서라도 찾아내야 할 사람이 먼저 전화를 걸어? 그것도 7년 만에?
“오! 안 그래도 자네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네.”
차 회장은 몹시 기뻐하며 반겼다.
“그래, 무슨 일로 전화한 건가?”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존재 정도는 알려야 할 것 같아서요. 만약 제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훗날을 대비해 존재를 알려?
이건 늙은이의 주책맞은 헛소리라고 해도 할 말 없긴 한데.
“자네 혹시 일곱 살짜리 아이가 있나?”
-어, 어떻게 그걸!
진짜라고?
“정말 우리 성준이 아들이 맞는가?”
-······네. 정말 면목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
차 회장은 입을 떡 벌렸다.
‘이게 우연이라고?’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네?
차 회장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만나서 하지. 그 아이도 함께. 괜찮겠나?”
-······네.
전화 한 통 덕분에 최소 보름 후가 될 것이라 예상했던 만남은 불과 15시간 후로 앞당겨졌다.
* * *
“허억!”
나는 뜨끈뜨끈한 여인숙 방바닥에 대(大)자로 누워서 티비를 보다가 식겁했다.
“이런 시팔!”
정신이 번쩍 들어서 벌떡 일어났다.
“야, 저승사자! 지금 당장 내 앞으로 튀어온다. 실시!”
[시, 실시?]
스르륵.
저승사자가 당혹스러워하며 연기처럼 솟아올랐다.
나는 미간을 잔뜩 구겼다.
“너 지금 나 멕이는 거지?”
[······?]
“뭐? 우리 아버지가 탄 비행기가 추락해? 난 아직 우리 아버지를 만나보지도 못했는데? 이거 어쩔 거야!”
약속이 다르잖아!
금수저 물려준다며!
아버지 만나게 해준다며!
[아니, 애초에 난 네 꿈속에 들어간 적도 없거늘······.]
“그럼 내가 훔쳐봤다 치고!”
문득 염라대왕은 어머니더러 아버지가 누구인지 물어보라고 했지,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태성그룹 막내아들이 이른 나이에 객사하여 태성건설이 휘청거렸댔지. 그 일로 지하철 공사 입찰에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무력하게 나가떨어졌고.’
태성그룹 막내아들이 죽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어떻게 죽었는지까지는 몰랐다.
그런 건 태성그룹 주가와는 전혀 관계없는, 그저 오래전에 있었던 사실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건 내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누, 눈깔이 왜 그러한가?]
내 눈깔이 왜? 뭐? 왜!
그래, 나 지금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이야!
“어이, 수호신. 저승사자란 게 한국에서만 활동 가능한 거 아니지?”
[······?]
“지금 당장 지구 반대편에도 똑같은 꿈을 전송한다, 실시!”
[시, 실시?]
* * *
두바이 호텔에서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공사 입찰 서류를 작성하다가 그만 깜빡 졸았는데, 끔찍한 악몽을 꾸고 말았다.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뭐지? 꿈에서 웬 저승사자가······.”
새해 첫날 비행기 추락으로 아라비아해에 처박혀 죽을 것이란 경고를 받은 당사자.
차성준은 너무도 생생한 악몽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벌컥.
호텔방 문이 힘차게 열렸다.
친구이자 수행원인 이 비서가 방정맞은 스텝을 밟으며 다가왔다.
그가 비행기표를 요란하게 흔들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움하하하! 아주 어렵게 구해왔지! 짜잔, 이게 바로 봄베이행 왕복 항공권! 우리 인도 가서 건설 수주나 왕창 따오자!”
차성준은 눈앞에서 잔망스럽게 흔들리는 비행기표를 보았다.
<인도 항공 855편 출국 시각: 1월 1일 09:30>
단지 악몽일 뿐인데.
난 왜 이게 저승행 편도 티켓으로 보이냐?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 아이라고? 일곱 살이라면······.'
꿈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이 크게 뛰어서 좀처럼 진정할 수 없었다.
"한국행 비행기표 구해 봐. 다른 나라 경유해도 상관없고, 최대한 빨리 도착할 수 있게."
"한국에 들어가려고?"
"어."
이 비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몇 년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귀국하란 전보가 쏟아져도 모른 척하더니, 갑자기?"
< 무차별 꿈살포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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