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집 마련 (2) >
이게 단돈 2,800만 원이라니!
‘잠깐. 여긴 암만 봐도 남산 찰거머리의 집인데?’
남산 찰거머리.
한번 물면 피를 다 빨아 먹을 때까지 들러붙어 절대로 떨어지지 않다는 독종 중의 독종!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피 묻은 돈을 빨아먹는 것을 재밌어 하던 놈!
놈은 이태원과 용산을 중심으로 서울역까지 장악한 지하금융의 거물이자, 내 스승님을 해쳤던 빌어먹을 새끼였다.
놈은 이 집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하하하, 대한민국 최고로 용한 점쟁이가 장담하더군. 여긴 대한민국의 돈과 힘을 모조리 쓸어 담는 곳이랬다.
-웬만한 사람들은 이 집터에 눌려 비명횡사를 면치 못한다지만, 난 달라!
-봐. 여기 이사 온 후부터 손대는 일마다 대박이 터지잖아!
놈은 공들여 이 집을 휘황찬란하게 꾸몄다.
특히 주말마다 여자와 부하들을 잔뜩 불러다 놓고 광란의 파티를 벌이는 것을 좋아했다.
그 새끼는 만날 때마다 우리 집은 다 무너져가는 신림동 다가구 주택이라며 대놓고 비웃었고.
‘다른 건 몰라도 이 집만큼은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드네?’
그놈도 이 집에서 잘만 살았는데, 내가 여기서 못 살 건 또 뭐야?
“이 집, 직접 가서 보고 싶은데요.”
“서류만 보셔도 충분합니다. 서류에 나온 그대로거든요. 괜히 왔다 갔다,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지 마시고······.”
복덕방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탁자 위에 서류를 착착착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즘엔 역시 아파트가 최고죠. 잠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쑥쑥 올라! 투자용으로도 딱이에요.”
“전 이 집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는데요?”
“에이, 거긴 가봤자······ 헉!”
복덕방 아저씨는 아파트 서류를 늘어놓다 말고 흠칫했다.
김 비서가 서늘하게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일어나시죠.”
“왜, 왜 그러십니까?”
“도련님 말이 잘 안 들리는 것 같은데. 잠시 귓구멍부터 뚫고 와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가시죠!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복덕방 아저씨는 벌떡 일어났다.
“제 차로 이동하실까요?”
복덕방 아저씨의 차는 1,600cc형 코티노였다.
복부인을 얼마나 많이 태웠던지, 뒷좌석 가죽 시트가 반질반질했다.
뒷선반에는 방향제 대신 모과가, 종이봉투에 넣은 부동산 서류와 서울시 지도책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
얌전히 뒷좌석에 타려는 어머니를 김 비서가 팔을 뻗어 제지했다.
“이쪽입니다.”
가게 앞에 세워진 최신형 벤츠였다.
김 비서가 직접 뒷좌석 문을 열어주면서 말했다.
“타시죠.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복덕방 아저씨가 보조석 문을 열며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우와, 차 진짜 좋네요. 히터도 빵빵한 게······.”
김 비서가 눈을 번뜩이자, 복덕방 아저씨는 즉시 문을 탕 닫았다.
“제 차를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 * *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다.
‘이 집은 돌담부터 돈지랄이로구나.’
크고 작은 조약돌로 7미터 높이까지 촘촘하게 쌓았다.
이게 진짜 돈 잡아먹는 작업이거든.
거기에 중간중간 백열등도 예쁘게 달아놨다.
‘외벽은 최고급 벽돌을 썼고, 유럽풍 발코니도 세련됐어. 지붕부터 창문까지 하나같이 최고급으로 꾸몄다. 딱 유럽의 성 같은 느낌.’
마음에 든다.
‘여기 근방 땅값이 얼만데, 이런 고급 주택이 고작 이천팔백만 원? 이 정도면 헐값이 아니라 똥값이라고 해야지.’
돌아볼수록 흐뭇해진다.
‘수영장도 제대로 만들었고. 정원수랑 정원석도 죄다 비싼 걸로만 골라서 쫙 박아놨군. 이건 죄다 팔아 치워도 목돈 짭짤하게 떨어지겠는데?’
저택을 싹 밀고 땅만 되팔아도 이천팔백보다 더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겠다.
이건 사면 무조건 돈 버는 집이다!
‘왜 이렇게 좋은 집이 똥값에 나왔나 했더니, 이제야 이유를 좀 알 것 같군.’
다만 아주 사소한 문제가 걸리는데.
“하, 하하. 마침 집주인이 요양 중이라 최근에 관리가 좀 소홀했다는군요.”
얼마나 오랫동안 정원 관리를 하지 않았는지.
잔디밭 자리엔 어른 허리만큼 자라서 말라비틀어진 잡초가, 정원수로 심은 최고급 소나무 분재마저 박살 나서 죽은 가지가 축 늘어졌다.
“가격만 봅시다! 2,800만 원이면 헐값이나 다름없어요. 이 동네 땅값이 얼만데요. 같은 평수 강남 아파트도 이 가격엔 못 삽니다.”
저택 안은 더 가관이었다.
곳곳에 부서진 가구가 먼지와 거미줄을 뒤집어썼고, 목문(木門)도 경첩이 빠져 덜렁거렸다.
한겨울 찬 바람이 불 때마다 어디선가 끼익끼익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그딴 건 문제도 아니지.’
정원은 가꾸고, 집 안은 치우고, 물건은 고치면 그만이니까.
“이 집에서 몇이나 죽어 나갔는지는 쏙 빼놓고 설명하는군.”
그래, 바로 저게 문제였다.
나는 저택 주위를 맴돌며 기웃대는 귀신들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도련님, 여긴 이성물산 김 사장, 대륙기계 최 사장, 만국화학 박 사장 등 총 7명의 기업가가 패가망신하여 죽어 나간 곳입니다.”
김 비서 아저씨도 이에 대해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또한 정치계 인사들도 선거를 말아먹고 떠나긴 마찬가지입니다. 김철호, 이태광, 양효원, 박인섭 의원 등 총 8명이 낙선하고 수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크흠!”
“교통사고나 한강 변사체로 발견 등 급사로 죽은 법조계 인사도 읊어드립니까? 그쪽은 총 9명입니다만.”
“크흐흠!”
“정재계 고위급 인사들 사이에서 귀신 들린 집이라고 알려졌습니다. 그렇게 방치된 게 몇 년쯤 됐을 겁니다.”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어이, 수호신.’
스르륵.
저승사자가 연기처럼 솟아올랐다.
‘여기 귀신들, 네 선에서 해결 가능해?’
[물론이지.]
저승사자는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귀신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덜덜 떨었다.
[이 잡것들을 지금 당장 저승으로 끌고 갈······.]
‘잠깐! 웨이러 미닛!’
나는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건 계약서에 도장 찍은 다음에.’
아직 내 집도 아닌데, 굳이 공들여서 퇴마를 해 줄 필요는 없겠지.
집주인이 이걸 보고 마음 바꿔서 안 팔겠다고 나오면 곤란하거든.
“이런 흉흉한 저택은 귀한 도련님께서 관심을 두실 만한 물건이 아닙니다.”
“정혁아.”
어머니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작게 속삭였다.
“우리 천만 원밖에 없어. 여긴 사고 싶어도 못 살 것 같은데?”
이 집의 매매가는 이천팔백만 원.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현금은 고작 천만 원뿐이다.
나머지 천팔백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귀신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것 같고, 이제 남은 건 돈 문제뿐이로군.’
물론 그것도 해결할 방법이 있지.
게다가 믿는 구석도 있고.
‘이따 김 비서 아저씨와 같이 가면 돈 문제도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네.’
이거 든든하구만.
운이 좋았다.
김 비서 아저씨가 우리와 함께 움직여줄 줄이야.
덕분에 나 혼자라면 해결하기 어려웠을 돈 문제까지 쉽게 풀릴 것 같다.
“고객님, 서류를 보고 이거다 싶었는데 막상 눈으로 보니까 실망하셨습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겐 강남 아파트가 있잖습니까!”
복덕방 아저씨는 이때다 하고 챙겨온 종이봉투에서 아파트 서류를 꺼내기 시작했다.
“소형은 아무래도 눈에 안 차실 테고 대형이 좋겠군요. 원래 집은 크면 클수록 좋은 법! 거거익선(巨巨益善)이랄까요?”
어떻게든 강남 아파트를 팔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그때 정원 쪽에서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이 집 돌담벽 봤어? 와, 진짜 간지 장난 아니다! 마음에 딱 들었어!”
막 변성기가 시작된 소년의 목소리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착각인가?
“지붕에, 발코니에, 기둥에, 외벽까지 존나 화려해! 장담하는데, 여기 데려오면 여자애들 죄다 뻑 갈 거야!”
소년의 웃음소리가 어찌나 큰지, 여기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우와, 수영장도 있어! 좋아, 이번 내 생일선물은 이 집으로 결정했다! 형, 당장 엄마한테 연락해서 당장 계약하라 그래. 하하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귀신 들린 집이면 어때? 이참에 다 부숴버리고 새로 올리면 그만이지. 이게 바로 물리적 퇴마! 그럼 지들이 어쩔 거야? 강제 성불 당하는 거지 뭐!”
자신만만한 목소리였다.
“어린 손님께서는 벌써부터 이 집이 아주 마음에 드신 모양입니다.”
“멋있잖아! 간지 나잖아! 폼 나잖아! 애들 데리고 와서 놀기 딱 좋잖아!”
“운이 좋으셨습니다. 이 물건은 오늘 처음 급매로 들어와서 처음 소개하거든요. 분명 오늘 이 집 주인이 바뀔······응?”
벌컥.
현관문이 열렸다.
웬 아저씨와 서른 중반의 남자, 그리고 사춘기 소년이 집 안으로 들어오려다 멈칫했다.
열다섯 살짜리 싸가지 없게 생긴 새끼!
‘남산 찰거머리!’
아니, 어떻게 여기서 저 새끼를 딱 만났지?
< 내 집 마련 (2)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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