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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만렙 아들-13화 (13/189)

< 내 집 마련 (3) >

남산 찰거머리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뭐야, 우리보다 먼저 집 보러 온 사람이 있잖아? 이 집 벌써 팔린 거야?”

“그, 그럴 리가요! 아까 집주인에게 안 팔렸다고 확인받고 나왔는데요?”

“그래? 그럼 됐어. 먼저 계약 끝낸 놈이 주인이지.”

놈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한쪽 눈은 사백안, 다른 쪽은 삼백안.

놈은 열다섯이던 시절에도 섬뜩한 눈을 하고 있었다.

남산 찰거머리는 한쪽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안 됐네, 코찔찔이. 이 집, 내가 살 거거든.”

“어쩌죠, 날라리 형? 이 집, 우리가 살 건데요.”

나는 씩 웃었다.

“아까 형이 그랬잖아요. 먼저 계약 끝낸 사람이 주인이라고.”

나는 등을 돌렸다.

“우리는 이만 돌아가죠.”

이런 게 악연이란 걸까.

그것참 희한하지?

왠지 이 새끼에겐 과자 한 개조차 양보하고 싶지 않다니까?

이 새끼와 난 지하금융계에서 앙숙으로 유명했다.

‘어이, 수호신.’

딱.

손가락 부딪치기가 무섭게 저승사자가 스르륵 솟아올랐다.

[왜 또?]

‘이 근방에 있는 귀신들 좀 박박 긁어와라.’

[굳이?]

저승사자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저 새끼 자금줄부터 끊어놓으려고.’

적의 보급은 끊어놓고, 아군의 자원은 확보한다.

전쟁의 기본이다.

하지만 저승사자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다.

[자금줄과 귀신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너 잘하는 거 있잖아, 꿈. 이 집이 귀신 소굴이란 거 제대로 알려 주자고.’

[아아, 이해했다. 집주인?]

‘아니, 저 새끼 모친.’

나는 씩 웃었다.

[상당히 야비한 웃음이로군.]

아, 그건 불가항력이다.

이 저택에 떠도는 수백 개의 혼령을 보고 저 새끼 모친께서 얼마나 기함할지 상상해 봤거든.

어차피 꿈인데 심장마비로 죽기야 하겠어?

이딴 귀신 소굴을 사겠다는 아들놈 등짝이나 실컷 때리며 잔소리를 퍼붓고 끝내겠지.

만일 이 집을 직접 와서 본다면 효과는 더 좋을 테고.

‘못 해?’

[그럴 리가.]

저승사자도 나와 똑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쪽 집안은 업보를 워낙 많이 쌓아놔서. 혼령들은 모여라!]

저승사자의 호출에 귀신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몰려들었다.

걸리면 그대로 저승까지 끌려가 심판받을 테니까.

귀신들한텐 저승사자가 절대갑이란 소리였다.

저승사자는 땅에 박혀 있는 지박령까지 단번에 우두둑 뽑았다.

[다녀오마.]

‘이거 든든하구만!’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반면 현관문을 열고 저택 안으로 들어서려던 남산 찰거머리는 부르르 떨었다.

“시팔, 뭐지? 갑자기 존나 섬뜩해졌는데? 나 지금 팔뚝에 소름 돋았어!”

하여간에 저 새끼가 촉은 좋아요.

하지만 내 촉은 다른 방면에서 울려댔다.

'고작 집값이 똥값이라서 이렇게까지 금빛이 번쩍거리는 건 아닌 것 같고. 혹시 여기 정원 어디에 금덩어리라도 파묻힌 거 아냐? 이 집을 거쳐간 부자와 권력자가 몇 명인데.'

아니면 말고.

그것도 다 내가 이 집의 주인이 되고 나서 생각해 볼 문제였다.

'자, 그럼 이제 돈 문제를 해결해 볼까?'

되도록 빨리!

저 새끼가 먼저 가로채기 전에!

그러니까 오늘 내로!

* * *

우리는 명동 복덕방으로 돌아왔다.

복덕방 아저씨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집주인이 잔금까지 전부 치르는 사람에게 집을 팔겠답니다. 선착순으로.”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두 명이나 됐기 때문이었다.

원래 경쟁이 붙으면 매도인이 유리해지는 법.

이게 다 남산 찰거머리 새끼 때문이다.

‘이제 누가 먼저 돈을 마련하나 싸움이 되었군.’

나는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엄마, 나 진짜로 이 집 사도 돼요?”

“음.”

어머니는 조금 난처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귀신 소굴이라는 말을 들은 데다, 직접 엉망진창으로 방치된 저택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으셨다.

“우리 아들 덕에 얻는 집인데, 네 마음에 드는 곳으로 사야지. 엄마는 아파트도 좋고, 단독주택도 좋고, 다 좋아.”

이렇게 흔쾌하게 허락하실 줄이야.

나는 엄마 품에 뛰어들어 활짝 웃었다.

“엄마, 정말 고마워요. 역시 우리 엄마 최고!”

“하지만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돈으로는 좀 부족하니까······.”

어머니는 김 비서를 돌아보았다.

“김 비서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예, 말씀하십시오.”

“아까 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다면 얼마까지 가능할까요?”

“은행부터 사채까지. 알아봐 드립니까?”

어머니가 대답하기 전에 내가 먼저 대답했다.

“됐어요. 난 저 집을 담보로 대출받을 생각 없어요.”

“아니, 왜?”

“이자가 너무 비싸잖아요.”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쪽 방면이라면 빠삭하지.

지금은 21세기 제로 금리 시대가 아니다.

은행으로 대표되는 제도권 금융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까닭에, 부동산 담보대출 받는 것조차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자가 비싼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사람들은 연이율 40, 50%에 육박하는 고리대 사채도 울며 겨자 먹기로 쓰곤 했다.

“고작 집 하나 사려고 엄마에게 그 고생을 시켜요? 차라리 집을 포기하면 포기했지, 난 그런 꼴 못 봐요.”

그러니 이 방법은 패스.

“그럼 어쩌려고?”

“엄마, 아버지 시계를 팔아도 될까요?”

“이걸?”

“파는 게 싫으세요? 그럼 잠시 저당 잡히고 나중에 되찾아올까요?”

“전당포에 가겠다는 말이니?”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 동네에는 아주 유명한 곳이 있잖아요.”

“그래. 같이 가보자. 이거 맡겨서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엄마는 여기 남아 있어 주세요.”

“응?”

“집주인이 계약하러 왔다가 계약할 사람이 없다고 다시 돌아가버리면 곤란하거든요.”

사실 그건 핑계였다.

'돈 걸린 일이라면 스승님은 어린애라도 봐주지 않지. 틈만 나면 가차없이 후려치는 분인지라. 어쩔 수 없이 나도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협상에 임해야 할 것 같거든.'

어머니에게는 내 낯선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놀라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다.

착하고 예쁜 아들로 남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더 방긋 웃었다.

“30분이면 될 거예요. 엄마는 계약서를 꼼꼼히 읽고 체크해 주세죠.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면서. 어때요?”

후딱 해치워버려야지.

남산 찰거머리를 제대로 엿 먹이려면 서둘러야 한다.

“그럼 너 혼자 전당포에 가겠다는 말이니?”

“에이, 제가 왜 혼자 가요? 여기 흥정이라면 빠삭할 것 같은 사람이 한 분 계시잖아요.”

나는 김 비서 아저씨를 돌아보았다.

김 비서는 입이 매우 무겁고 능력 있는 자를 몹시 높게 쳐주는 남자다.

게다가 차 회장의 최측근.

내가 특출나면 날수록 호감을 보이면서 적극적으로 날 밀어줄 만한 자였다.

“제가 도련님을 모시고 다녀오겠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든다.

나는 두 손을 배꼽에 모으고 허리를 꾸벅 숙였다.

배꼽 인사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물론 아버지 시계는 아까 슬쩍 챙긴 후였다.

* * *

“도련님, 어쩌실 생각입니까?”

김 비서 아저씨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차 회장과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까지 이제 2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차라리 회장님께 한번 말씀드려 보시죠.”

“초면에 대뜸 돈 빌려달라고 구걸하라고요? 됐어요.”

남자가 존심이 있지.

내가 거지새끼도 아니고.

“힘드실 텐데요. 그 시계도 살 때야 비쌌지, 전당포에 가져가는 순간 똥값으로 후려칠 겁니다. 푼돈밖에 못 건진단 뜻입니다.”

김 비서는 우리 집 사정을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주택복권 당첨금으로는 부족 테고. 시계를 되파는 것 외에는 달리 현금을 융통할 방법도 없지 않습니까?”

벌써 내 뒷조사를 끝내셨다?

“회장님이 아니라면 설마 외가에 손 벌리실 작정입니까?”

외가?

‘그러고 보니 염라대왕이 외가에 한번 가보라는 소리를 하긴 했었지.’

어머니는 그 정도의 현금을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친정을 가졌다고?

그럼 왜 나랑 구로동 판잣집에서 월세 살았던 건데?

문득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아마도 나 때문이겠지. 허락받지 못한 아이.’

씁쓸했다.

어머니는 무슨 생각으로 날 홀로 키웠던 걸까.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어머니는 날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거면 된 거지. 어머니는 최선을 다하셨어.’

그러니 난 다른 건 보지 않겠다.

어머니와 나만 생각할 거고, 우리 모자의 미래만 바라볼 것이다.

“굳이 돈 빌리러 양가에 연락할 필요 있겠어요? 제 선에서 해결할 거예요.”

“양가의 도움 없이 도련님께서 직접?”

김 비서의 눈이 흥미롭다는 듯이 빛났다.

“저로서는 그 방법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군요. 가능하시겠습니까?”

“가능하도록 만들어 봐야죠.”

“1,800만 원. 아마도 예산은 그 정도쯤 부족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우리 통장 사정까지 전부 다 캤구만!

“태성그룹 정보팀 솜씨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그럼요. 자랑스러워하셔도 좋습니다.”

김 비서는 웃었다.

절대로 내가 1,800만 원을 마련할 길이 없다고 믿는 듯했다.

하긴. 고작 일곱 살짜리 어린애에게 무슨 기대를 하겠어.

그래서 나는 씩 웃었다.

“아저씨, 나랑 내기 하나 하실래요?”

“내기, 말입니까?”

“내가 오늘 이 집을 살 수 있는지 없는지. 나머지 1,800만 원을 마련할 수 있을지 없을지. 어때요?”

“호오.”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부탁 하나 들어주기.”

“좋습니다. 이거 기대되는군요.”

좋았어!

“만약 제가 이긴다면 저도 도련님께 약속을 하나 받고 싶습니다만.”

“콜.”

우리는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거래 성립이다.

‘이거 내기에서 이겨야 할 이유가 또 하나 더 생겼네?’

안 그래도 김 비서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다.

성의 없이 부탁하는 건 도리가 아니지.

그래서 영 꺼림직했었는데.

내기에서 이긴 후에 당당하게 요구하면 되겠네.

* * *

나는 낡은 3층짜리 건물 입구 앞에서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송골매 전당포>

여긴 스승님이 운영하고 있는 전당포였다.

‘여기도 오랜만에 오는군.’

스승님의 눈썰미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매의 눈으로 알짜배기 물건만 골라 쓸어담는 솜씨!

기가 막히게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

상대에 따라 확실하게 가격을 후려치는 흥정 실력!

그렇게 스승님은 대한민국 지하금융의 큰손이 되셨다.

“후우.”

선뜻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었다.

내 능력을 드러내도 괜찮을지 다시 한번 더 신중하게 가늠해 보았다.

'스승님과 김 비서. 두 사람 다 무능한 자에게는 가차없이 냉혹해지는 사람들이지. 반면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사죽을 못 쓰고. 게다가 둘 다 목숨처럼 중요한 정보를 독점하고 싶어하여 입을 매우 무겁게 쓰는 자들. 양지와 음지에서 내가 얻어야 할 최고의 조력자들이라 할 수 있다.'

역시 둘에게는 능력을 조금 보여주는 게 낫다.

잃는 것에 비해 얻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저 두 사람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려면 어쩔 수 없군. 한번 해 보자!'

딸랑.

“어서 오십시오.”

스승님의 인사를 받으며 나는 씩 웃었다.

'오늘 내 목표는 전당포에 맡기는 물건 없이 모자란 1,800만 원만 홀랑 뜯어내는 것으로 한다!'

< 내 집 마련 (3)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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