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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만렙 아들-24화 (24/189)

< 뒤통수를 치다 >

중정 감찰국장실 앞에서 양복 입은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박철구를 고문하던 그 남자였다.

똑똑똑.

“국장님, 서문철입니다.”

“들어와.”

서문철은 감찰국장에게 경례를 붙였다.

“박철구를 공안국에서 빼내갔습니다. 아직 조사도 다 끝마치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막무가내로 굴더군요.”

“알아. 내가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했어. 위에서 잔소리가 떨어졌거든.”

감찰국장은 손가락으로 천정을 가리켰다.

“국장님, 우광건설이 이를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감찰국장은 여유로웠다.

“우광이 원하는 건 과정이 아니라 결과야. 결과만 확실하게 가져다주면 돼.”

“그게 문제잖습니까. 박철구가 빼돌린 우광건설 뇌물 장부를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럼 내가 멍청해서 박철구를 순순히 놓아준 줄 알아? 아니면 공안국장한테 쫄아서?”

“······죄송합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감찰국장은 의자를 돌려 앉았다.

“박철구, 그놈은 죽으면 죽었지 끝까지 입을 안 열 독종 중의 독종이야. 뻣뻣하기가 어디 보통이야?”

“하지만······.”

“독하고 사나운 놈은 힘으로 꺾으려 들면 안 돼. 몇 날 며칠 힘겨루기만 하다가 서로 진을 다 뺄 뿐이지. 차라리 함정을 파서 뒤통수를 치라고.”

감찰국장은 담배를 물었다.

“원래 죽다 살아난 놈들은 하나같이 똑같이 군다. 풀려나면 가장 먼저 제일 중요한 것부터 챙기지. 어떤 놈은 돈, 어떤 놈은 가족, 어떤 놈은 복수.”

감찰국장은 라이터를 켰다.

“박철구는 제가 뭣 때문에 죽다 살아났는지 잘 알아. 우리 이번엔 뇌물장부를 쉽게 가로채 보자고.”

서문철을 바라보면서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미행은?”

“붙여놨습니다.”

“이번 일은 자네가 직접 나서서 마무리해. 뒤탈 없게 확실하게 처리하자고.”

“예, 알겠습니다.”

“나가 봐.”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가려던 서문철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 무력은 어느 선까지 사용 가능하겠습니까?”

“그거야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흔적만 남기지 마.”

감찰국장은 턱을 쓸었다.

“이틀이나 종일 고문받은 놈이야. 어디 반항이나 제대로 하겠어?”

서문철도 음흉하게 웃었다.

“맞습니다. 박철구, 그놈도 한직에서 썩더니만 어느새 이빨 빠진 호랑이가 다 됐더군요.”

* * *

나는 철구 아저씨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읽었다.

<태성건설 사장이 은밀히 임원진과 대주주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제보가 있었다.>

<외국에서 따낸 공사 대금으로 돈 잔치를 벌였다던데. 외부 인사들은 뇌물로 입단속을 시키고, 내부 결속은 술 파티로 다지고.>

<실상은 빼돌린 돈으로 몰래 태성건설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었다. 물론 차명으로.>

<태성건설 회계를 맡고 있는 회계사에게서 얻어낸 정보였다.>

철구 아저씨는 <하지만 증거는 없다!>는 대목에만 느낌표를 다섯 개나 붙이고, 별 다섯 개는 물론, 밑줄도 다섯 개나 연달아 그었다.

<다음 날 회계사는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딱 잡아뗐다.>

<태성건설 사장은 은행장들을 만나서 경매와 압류에 관해 논했다. 태성건설이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 개발 예정지를 처분할 예정이라고 하던데.>

<도청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녹음도 실패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태성건설 부사장이 중동을 돌며 해외 건설 수주를 굉장히 많이 따냈다는데, 태성건설은 중동으로 보낼 건설 자재와 인부를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국내 건설 사업은 더 엉망진창이다. 준공 일자까지 받아놓은 공사를 하염없이 미루고만 있다.>

<현장은 놀고 있고, 인부들은 흩어졌고, 기계는 방치되었다. 이대로라면 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할 것이고, 태성건설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건만.>

<왜 태성건설은 이런 문제들을 그냥 방치하고 있는 걸까. 마치 이 모든 문제를 계획한 것처럼.>

이제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얼추 알 것 같다.

내가 읽었던 태성그룹의 정보와 선후만 바뀌었지, 내용은 같다.

‘차 회장의 동생인 태성건설 차윤성 사장. 그는 일찌감치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군.’

그 이유도 짐작할 수 있었다.

‘태성건설은 차 회장이 아버지의 몫으로 내정한 곳이다. 그러니 제 자리를 위협받은 태성건설 사장이 딴생각을 품게 된 모양이야.’

그렇다면 일이 이렇게 되는 동안 차 회장은 뭐 했는가 하면,

‘아무래도 동생의 무능함을 적당히 눈감아 주고 있었나 본데. 막내아들이 돌아오면 한꺼번에 쓸어버릴 요량으로.’

하지만 차 회장의 계산은 상황적 악재 속에 어그러졌다.

‘해외에서 굵직한 공사 수주를 여럿 따내며 태성건설을 견인하던 아버지가 갑작스레 죽고 말았으니까.’

해외 건설 공사가 연달아 취소되고, 국내 건설 공사는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가 물밀듯이 쏟아졌다.

태성건설 사장 및 임원진들의 안일한 경영이 초래한 결과였다.

‘거기에 태성화학의 화재 사고까지 터졌지.’

이 사고로 23명이 죽고, 166명이 병원으로 호송됐다.

불과 열흘 만에 연달아 악재가 터진 것이다.

‘크게 노한 대통령까지 가세해 차 회장을 압박했지. 차 회장은 즉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사재 30억 원을 출연하여 태성재단을 설립했다. 자숙하는 의미로 잠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었고.’

태성은 차마 손쓸 새도 없이 도미노 무너지듯 걷잡을 수 없는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지하철 2호선 공사 입찰을 포기해야 했다.

그렇게 우광은 지하철 2호선 공사를 따내며 지하철역 인근 땅을 독식해 막대한 시세 차익을 거두게 되었다.

‘얼마 후 태성건설 사장은 태성건설의 빚을 홀로 책임지겠다며 충정의 결단이란 이름으로 계열을 분리시켰다. 그때 태성화학도 우광에게 빼앗겼다지?’

이게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기록이다.

‘알고 보니 태성건설 사장이 먼저 스노우볼을 굴리고 있었군? 그러니 지금 이 시점에서 몰래 대주주와 은행장을 만나고, 차명으로 주식을 사들이면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겠지.’

차 회장은 지금 어느 선까지 파악하고 있을까.

과거엔 언제든 대처할 수 있다는 오만으로 수수방관하다가 결국 제대로 뒤통수 맞았던데.

이번에도 차 회장이 똑같이 군다면 우리 아버지는 낭패를 면치 못할 터였다.

‘그건 안 되지!’

나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아직도 깊이 사랑한다고 했다.

그러니 아버지가 어머니를 완전히 외면하고 등 돌린다면 모를까.

그 전까진 나 역시 아버지를 외면할 생각 없다.

‘난 누가 내 가족, 내 식구의 밥그릇을 뒤집어엎는 꼴은 죽어도 못 봐! 태성건설은 우리 아버지 거야!’

잠깐. 이거 오히려 좋은 기회잖아?

‘잘만 하면 그간 골치 아팠던 문제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겠네?’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태성건설이 우광건설 뇌물 비리와 연관이 없다고 해도 난 상관없잖아?’

괜히 저 갱지가 황금빛으로 빛나는 게 아니로구만!

내가 주목한 건 또 있다.

우광건설 김광필과 몇 차례나 접선했다는 태성화학의 인부.

‘우광건설 사람이 태성건설도 아니고 태성화학과 만나? 그 이전엔 별다른 친분이나 교류도 없었는데? 확실히 여러모로 수상해. 이건 더 자세하게 파악해 볼 필요가 있겠어.’

나는 철구 아저씨에게 받은 갱지를 곱게 접어 주머니에 쏙 집어넣었다.

그때였다.

“도련님, 지금 즉시 집 안으로 피신하십시오!”

대문 근처에서 보초를 서던 태성그룹 경호원이 달려왔다.

심각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일단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한 후에. 보고는 그다음입니다!”

경호원의 입에서 안전과 피신이란 단어가 나왔다.

철구 아저씨는 벌떡 일어났다.

날카롭게 번뜩이는 눈빛에는 살의와 적의가 가득했다.

“무슨 일이야?”

나는 철구 아저씨의 팔을 잡았다.

“아저씨는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잖아요.”

“가죽만 조금 상한 거야. 이까짓 건 침 바르면 나아.”

“도련님,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태성그룹 경호원이 날 번쩍 안고 달렸을 때였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어억!”

사람을 두들겨 패는 소리는 그다음이었다.

“잡았다!”

“붙들어!”

“이쪽도 잡았습니다! 전원 생포 완료!”

“됐어. 일단 기절시켜서 끌고 와!”

질질질.

태성그룹 경호원들이 기절한 남자 두 명을 끌고 왔다.

철구 아저씨가 갑자기 와하하, 크게 웃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누구야?”

기절한 남자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태성그룹 경호원이 물었다.

“혹시 아시는 분입니까?”

나도 고개를 쭉 빼서 살폈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게다가 태성그룹 경호원들이 빙 둘러싸고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이, 수호신!’

[소리 높이라고?]

‘기절한 놈들의 숨소리는 들어서 뭐 하게? 이럴 땐 시야 공유지!’

[알았다.]

시야가 바뀌었다.

* * *

저승사자가 태성그룹 경호원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제야 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자식은 철구 아저씨를 고문했던 놈이잖아?’

배후가 누구냐면서 막무가내로 몰아세우던 놈!

뺨을 때리고, 물통에 처박은 놈!

한마디로 우광의 끄나풀!

“그게, 음, 그러니까······.”

기절한 두 놈을 내려다보는 철구 아저씨의 눈동자가 광기처럼 번뜩인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르는 놈인데?”

철구 아저씨가 시치미를 뚝 떼었다.

“근데 이놈들은 뭐 하다가 잡혔어?”

“몰래 이 집 담장을 넘으려다 걸렸습니다.”

“아하, 도둑놈이란 말이네?”

철구 아저씨가 망설임 없이 놈의 품을 뒤졌다.

눈보다 빠른 속도!

오른손으로 놈의 품에서 권총을 꺼내는 순간 왼손으로 행한 은밀한 수작질!

신분증과 중요 소지품부터 몰래 빼돌린 것이다.

경호원들은 경악했다.

“총······!”

“이 미친 새끼들이! 총을 차고 왔어!”

대한민국에선 총기 사용이 금지되었다.

태성그룹 경호원의 눈빛이 사나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잠깐. 거기 권총집에 중정 마크가 찍혀 있는데?’

하지만 이번에도 철구 아저씨가 더 빨랐다.

오른손으로는 장전된 실탄을 보여주면서, 왼손으로는 솜씨 좋게 권총집을 슬쩍 빼돌렸다.

뒷골목 소매치기도 울고 갈 솜씨였다.

“인제 보니 이 새끼들은 도둑이 아니라 강도였나 본데?”

태성그룹 경호원들의 눈빛이 더욱 사나워졌다.

“이 새끼들 지하실로 끌고 가. 주둥이를 열어야겠다.”

“개새끼들 조지는 데 몇 분이나 걸린다고.”

철구 아저씨는 잇몸까지 드러내며 씩 웃었다.

“중정 몰라?”

없는 자백도 받아낼 수 있다는 곳!

“믿고 맡겨 봐.”

생긴 게 딱 불곰 닮았다고 했더니.

소매를 걷자 드러난 팔뚝은 사람 허벅지만큼 두꺼워 보였다.

이른바, 진실의 시간이다.

< 뒤통수를 치다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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