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흰 뒈졌어 >
철구 아저씨는 빼앗은 권총을 대충 휙 던졌다.
“곡소리 새지 않게 주둥이부터 재갈로 틀어막고.”
“아깐 자백을 받아낸다고······.”
“어허! 다 순서가 있다니까 그러네. 나 중정이야.”
태성그룹 경호원들은 기절한 놈들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수갑 있으면 채우고.”
“······.”
“복면 있으면 씌우고.”
“······.”
태성그룹 경호원들이 삐딱한 자세로 철구 아저씨를 노려봤다.
“아까부터 자꾸 우리 일에 끼어드시는데 말입니다. 민간인은 이쯤에서 빠지시죠.”
“민간인이 아니고 중정이라니까.”
철구 아저씨는 지갑을 열어 신분증을 내보였다.
“대충 자체 수사 중이라고 치고.”
중정은 주로 남파 간첩 및 좌익 사범을 색출하고, 대북 및 대외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한다.
검찰, 경찰, 교정기관을 배후에서 휘두르며 수사권과 기소권까지 실질적으로 행사하곤 했다.
철컥! 철컥!
경호원이 수갑을 꺼내 채웠다.
못마땅함과 짜증이 묻어나는 태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철구 아저씨는 숨겨놓은 잭나이프까지 몇 자루 더 찾아내서 휙 던졌다.
철컥, 철컥, 철컥철컥철컥!
철구 아저씨가 총기를 분해하기 시작하자, 태성의 경호원들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경호원 중 누군가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총기 분해하는 속도가 장난이 아닌데. 중정에서는 이런 교육도 따로 받습니까?”
“아, 이건 중정이 아니라 군에서 익혔는데.”
“군? 어느 부대 소속이었습니까?”
“특전사. 어쩌다 보니 군 생활 내내 무장공비만 때려잡았지.”
철구 아저씨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경호원은 퍼뜩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자, 잠깐! 무장공비라면···, 혹시 기수가······.”
“육사 기수? 아니면 장교 임관 기수? 내가 육사 다닐 때 사고를 좀 치는 바람에 두 기수쯤 꿇었거든.”
“어어? 거하게 사고 쳐서 두 기수를 꿇은 장교라면···, 혹시 성함이?”
“박철구.”
“헉! 전설의 빡대가리 빡 중령님이셨습니까?”
빡대가리?
아무리 박씨 성을 쓰고 있다고 해도 중령에게 그런 별명을 함부로 붙일 리가 없는데?
태성그룹 경호원들은 즉시 거수경례를 붙였다.
“하도 빡치게 구니까 원스타를 마빡으로 들이박아 병원으로 보내버렸다던 분!”
“그날부로 전역해서 중정으로 튀었다는 육군의 전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존경 어린 눈빛이 불꽃처럼 뜨거웠다.
“창군 이래 최강 군인!”
“무장공비 최악의 천적!”
“간첩 수색의 스페셜리스트!”
“간첩 잡는 훈장 수집가!”
분명 초면일 텐데, 순식간에 태성그룹 경호원들의 호감도와 충성도가 쑥쑥 오르는 듯했다.
“참, 아까 복면 찾으셨죠? 복면은 없지만, 여기 커피색 스타킹은 있습니다. 그거라도 이 새끼들 면상에 씌울까요?”
“빡 중령님, 이 새끼들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이런 잡범 새끼들 때문에 빡 중령님이 수고를 감수하실 필요는 없죠!”
철구 아저씨는 미간에 주름을 빡 세웠다.
“아니. 어쩌면 이 새끼들은 강도가 아니라 간첩일지도.”
“······갑자기요?”
“대충 간첩이라고 치자니까. 내가 이쪽 방면으로는 나름 전문가거든. 나 중정 공안부 소속이야.”
“아······! 역시!”
확실히 철구 아저씨에게 붙은 호칭은 죄다 ‘간첩’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그럼 이 새끼들은 나한테 맡기는 거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철구 아저씨는 기절한 요원들의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갔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데, 그 발걸음이 몹시도 가볍고 경쾌했다.
“아오, 이놈의 간첩 새끼들은 어째 때려잡고 또 때려잡아도 박멸되지를 않냐!”
철구 아저씨가 걸음을 멈춘 곳은 정원에 물 주는 용도로 마련된 수도꼭지 앞이었다.
아저씨는 수도꼭지를 힘껏 열었다.
고무호스 끝을 눌러 압력을 높이는 건 덤이었다.
촤아아아악!
한겨울 밤에 느닷없이 찬물 세례를 받게 된 중정 요원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읍! 읍읍읍!”
하지만 입에는 재갈이,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고, 몸은 꽁꽁 묶인 상태였다.
언제 씌웠는지도 모를 스타킹 때문에 눈을 뜨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안 그래도 밤인데, 여긴 정원수 그늘까지 너무 짙었다.
그래서 더 섬뜩했다. 마치 중정 지하 고문실에 끌려온 기분이었다.
“너희들이 지금 누굴 건드린 줄 알기나 하냐?”
“웁웁!”
“담 넘으면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읍!”
“집 지키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여기 담장은 왜 이렇게 높은지, 이런 소리 하고 있는 새끼는 도대체 누구인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지?”
“······!”
“그래도 왠지 이거 하나만은 알 것 같을 텐데.”
철구 아저씨는 씩 웃었다.
“너네, 제대로 X 됐다?”
철구 아저씨의 협박이 먹혔는지, 필사적인 몸부림이 뚝 멎었다.
“중요 인물 암살 미수로 쥐도 새도 모르게 뒈질래?”
“읍읍!”
놈들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네놈들의 처분은······ 일단 패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자고.”
빠악! 빡! 빠악! 뻑!
마빡 깨지는 소리였다.
쩍! 쩌억! 빠각!
손바닥으로 뺨을 때렸을 뿐인데.
어째서인지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덤으로 들려왔다.
* * *
저승사자와의 시야 공유를 끊었다.
철구 아저씨가 어찌나 찰지게 잘 패는지 속이 다 후련했다.
전국구 조폭조차 한 수 물러줄 만한 솜씨였다.
무장공비를 때려잡아 훈장까지 받은 실력이라면 말 다 한 거지.
‘뺨 맞은 거랑 물통에 처넣은 빚까지 이자 톡톡히 쳐서 제대로 갚더라. 시원시원하게 패는 독한 손속! 역시 마음에 들어!’
침입자들은 철구 아저씨에게 맡겨 두고.
나는 부지깽이를 들고 모닥불 속을 뒤적였다.
“오, 잘 익었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감자와 고구마.
오늘 도둑 잡느라 수고한 경호원과 철구 아저씨에게 나눠 줄 간식이었다.
고생한 사람에게 뭐라도 내어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저씨들, 추운데 고생하셨어요! 이리 와서 간식 좀 드세요!
물론 곁들일 음료수도 함께다.
태성그룹 경호원들은 두 눈을 껌뻑였다.
“1947년산 화이트 말린 레드 와인?”
“1959년산 라피구부르크 레드 와인도 있어!”
“이, 이게 대체 얼마짜리 와인이야?”
나는 방긋 웃었다.
“어차피 배 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요. 이왕 마시는 거 좋은 거 마셔야죠.”
“아닙니다, 도련님. 도련님이 아직 어려서 잘 모르시나 본데, 이런 거 함부로 내주셨다가 나중에 크게 곤란해지실 겁니다.”
“내가 내 술을 내 사람에게 주겠다는데, 누가 나한테 뭐라고 해요?”
이건 우리 집 지하실 방공호 속 와인셀러에 있던 술이다.
잘 만들어진 지하실답게 와인 보관 상태가 아주 좋더라고.
“이 추운 겨울밤에 내내 밖에서 고생하신 분들인데, 내가 이 정도는 대접해야죠. 취하지 않게 딱 한 잔씩만 맛보는 거예요?”
태성그룹 경호원들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부엌에서 가져온 화채 그릇을 내놨다.
“대신 와인 잔으로는 섭섭할 것 같아서 조금 큰 잔으로 골라와 봤어요.”
“······!”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렇게 감격한 표정을 지을 건 없는데.
아차, 와인 오프너를 깜박했군. 어쩔 수 없지.
나는 정원 바닥에 대충 굴러다니던 잭나이프를 주워 들었다.
“도련님, 그거 내려놓으세요! 위험한 물건입니다!”
뽁!
나는 간단하게 코르크 마개를 땄다.
전당포에서 익힌 기술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금고도 잘 따고, 문도 잘 따고, 병뚜껑도 아주 잘 딴다.
이깟 레드 와인쯤이야 와인 오프너가 없이도 한 큐에 따지!
“······!”
이번에는 박수갈채도 모자라 휘파람까지 불어댔다.
태성그룹 경호원들은 어느새 날 귀여운 동물 보듯 보고 있었다.
이런 눈빛은 어색한데. 영 적응이 안 돼서 말이지.
나는 슬쩍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수갑도 딸 수 있는데. 저것도 따드려요?”
“······.”
왜 점점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듯이 보냐.
역시 술판이 벌어지면 어린애는 빠져주는 게 도리.
나는 공손하게 배꼽 인사를 했다.
“우리 엄마와 날 지켜줘서 정말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태성그룹 경호원들이 활짝 웃었다.
“뭘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도련님이 안 다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도련님, 추운데 계속 여기에 나와 계시면 안 돼요. 감기 들어요.”
“군고구마 하나 까 드려. 구운 감자도 적당히 잘 익은 거로 골라서 챙겨드리고.”
철구 아저씨는 한껏 후련해진 표정으로 건들건들 걸어왔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왠지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듯했다.
철구 아저씨 머리 위에서 반짝이던 죽음의 카운트다운도 사라졌다.
‘진짜 저 새끼들 때문에 철구 아저씨가 죽을 뻔했었나 본데?’
이런 괘씸한 놈들!
솔직히 내 맘 같아서는 저 새끼들을 뒷산에 내다 버리고 싶다.
흠씬 두들겨 맞은 데다 찬물까지 처맞았으니 동사를 면치 못할 테고.
하지만 여긴 뒷골목 세계도 아니고, 보는 눈도 많단 말이지.
“오오오! 안 그래도 출출했는데! 군고구마! 구운 감자! 근데 군밤은 없냐?”
아까 저녁을 걸신들린 거지처럼 무지막지하게 처먹고, 튀긴 건빵까지 한 봉지를 다 드신 분이!
나는 철구 아저씨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아저씨, 저 자식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으음!”
“총까지 들고 쳐들어온 새끼들을 우리 집에서 재워줄 생각은 없으니까 꿈도 꾸지 마시고요.”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길바닥, 서울역, 공원 벤치, 경찰서. 아니면 뒷산!”
“오오오! 넌 천재야! 역시 똑똑해! 훌륭한 해결책이다! 으하하핫!”
역시 철구 아저씨도 뒷산이었구만!
“역시 겨울엔 입 돌아가지 말라고 모포라도 던져주는 경찰서 유치장만 한 데가 없네? 으하하핫!”
철구 아저씨는 내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붕붕붕 돌려주었다.
“우와아앗!”
이런 빌어먹을 어린애 몸뚱이 같으니라고!
이게 뭐라고 재밌냐!
* * *
차 회장은 자택 집무실에서 김 비서의 보고를 들었다.
몹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후에 긴급 소집한 전 계열사 사장단 임원회의 때문이었다.
계열사마다 보고가 이어지고, 질의응답 시간이 길어졌다.
그럴수록 차 회장의 언성도 높아졌었다.
“다들 입 모아서 아무 문제 없다는 소리밖에 안 해! 하겠다는 일은 그렇게 많은데, 꼼꼼히 뒷일을 준비한 놈도 없어! 대충 하다보면 어떻게든 된다는 소리로밖에 더 들려?”
차 회장이 아직도 씩씩대는 이유였다.
“어째 하나같이 앵무새처럼 걱정할 것 없다는 소리만 해! 그러면서 실적을 물으면 또 죄송하고 면목이 없대!”
생각할수록 열이 받았다.
“이것들이 하라는 사업은 똑바로 안 하고! 벌써부터 누구한테 줄을 댈까 눈치만 보고 있으니! 나 아직 안 죽었어! 이런 괘씸한 놈들 같으니라고!”
차 회장은 아내가 타온 뜨거운 꿀물 대신 김 비서가 가져온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탁!
“김 비서.”
“예.”
“난 어떻게든 이번 지하철 2호선 공사를 꼭 따낼 생각이다.”
“그러실 겁니다.”
“예상 입찰가만 1,800억인 대공사! 예상 공사 기한만 최소 5년! 세계 초일류 토목공사 기술이 요구되는 국가 중요 시설! 서울시민들이 출퇴근 때마다 떠올리게 될 대한민국의 역사!”
쿵!
차 회장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난 그 역사를 태성의 이름으로 써내려가고 싶다.”
“물론 그렇게 될 겁니다.”
“우광이 고위 공직자와 언론, 정치인을 가리지 않고 뇌물을 뿌렸으니, 우리 태성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차 회장의 책상 위에는 검은색 커버로 작성된 서류철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표지의 제목은 <우광건설 비자금에 관한 조서>.
일곱 살짜리 손자가 내어준 중정 내부의 극비 자료였다.
“우광이 뇌물을 뿌렸더라도 수확은 태성이 거둬야겠다.”
처음 만난 어린 손자가 잘 부탁한다면서 뇌물이랍시고 가져온 무기였다.
그 기특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그러니 지금부터는 이 할애비가 나서서 제대로 썰어 보마!
“여기에 적힌 놈들에게 한 방씩 먹여 주자고. 은밀하게, 조용하게, 하지만 섬뜩하게. 어떻게 위협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흔적 없이 움직여서 분노의 화살을 우광 쪽으로 돌려놓겠습니다.”
“좋아. 지하철 공사 입찰까지 채 한 달이 안 남았어. 인력 충원이 더 필요한가?”
“문제없습니다. 뒷골목 해결사들을 풀고, 청소부들을 임시 고용할 생각입니다.”
“좋아. 그럼 이번에 우광건설 사장이 불러들인 일본 놈들은?”
김 비서는 은테 안경 너머로 싸늘한 눈빛을 번뜩였다.
“지하 터널에 관한 선진 토목 기술을 얻어내야 하니, 그놈들은 제가 직접 만나야겠군요.”
< 너흰 뒈졌어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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