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와 아들 >
나는 거실 유리창 앞에 서서 창밖을 바라봤다.
아직도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정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부모님의 머리 위로 소복소복 함박눈이 흩날렸다.
한 편의 그림 같았다.
‘추울 텐데.’
목도리도 가져가서 둘러드리고 싶지만.
숄이라도 가져가서 덮어드리고 싶지만.
나는 차마 저 아름다운 그림 사이로 뛰어들지 못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을 테니 나눠야 할 말이 참 많겠지.’
부모님에게는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나는 유리창 너머로 어머니의 웃음과 아버지의 눈빛을 지켜봤다.
보기만 해도 예쁘다.
아름다운 연인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정말 사랑하는군.’
아버지가 남긴 시계를 애지중지하는 것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긴 했었으나.
아버지 앞에서 어머니가 저렇게 신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그 마음이 확 와닿았다.
그린 듯이 미소를 짓기는 하지만, 좀처럼 큰 소리로 웃지는 않으셨던 어머니였는데.
아버지 앞에서는 활짝 핀 장미꽃처럼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게.
‘그건 우리 아버지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버지는 또 어떤가.
좀처럼 웃지 않는 사내는 어머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차갑고, 딱딱하고, 과묵하고, 묵직해 보이는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아버지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어머니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마치 세상에 오직 한 사람만 존재하는 것처럼 뜨겁게.
‘잘 어울리는 한 쌍이야.’
흐뭇했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도 좋았다.
‘우리 어머니 나이가 올해 스물일곱이던가, 스물여덟이던가. 참 꽃다울 때 나를 낳았네.’
젊은 여자가 홀로 나를 낳고 키우기까지.
그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어머니는 인생에서 가장 꽃다운 나이라는 이십 대를 날 위해 바쳤다.
그래서 고마웠고, 그래서 미안했다.
내가 죽을 때까지 아름답고 따뜻했던 기억을 잔뜩 남겨 주었던 어머니.
나는 45년간 어머니를 꿈에서나마 다시 만나기를 바랐다.
어머니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버지는 몇 살이나 됐지?’
그러고 보니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내가 아는 것은 우리 아버지 이름 석 자와 아버지가 태성그룹 총수의 막내아들이라는 것.
또 태성건설을 맡기로 예정되었다가 비행기 추락사로 이른 나이에 죽었다는 것.
그걸 새삼 깨닫자마자 가슴 어딘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저 사람이 바로 내 아버지였어.’
뒷모습만 봐도 왠지 멋져 보이는 남자였다.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잘생겼고, 집안도 좋고, 머리도 좋아 보였다.
걷는 걸음걸이부터 하고 있는 자세까지.
뭐 하나 나무랄 데가 없다.
제대로 교육받고 올곧게 자란, 고급스러운 품위와 위압감이란 게 느껴진달까.
‘우리 어머니가 잊지 못할 만도 했네.’
나는 아버지의 시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거 아버지에게 돌려드리면 좋아하려나. 어머니가 애지중지 아꼈던 아버지의 물건이라고 말하면서······.’
그래서 안방에서 슬쩍 챙겼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돌려줄 때 돌려주더라도 이건 내가 아니라 우리 어머니가 돌려드려야지. 그게 맞겠지.’
나는 시계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이 시계 하나만 믿고 여기까지 왔구나.’
고작 일곱 살짜리 가난한 어린애.
내가 최후의 수단으로 믿었던 건 결국 이 아버지의 시계였다.
어머니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재호 아버지에게 이걸 주고 트럭을 빌려서 병원에 갈까 고민했었다.
산소 치료를 일찍 끝마치려 했을 때, 의사를 회유하기 위해서도 이 시계를 뇌물로 건넬까 했었고.
이 집을 사기 위해 전당포에 이 시계를 담보 잡히려고 가져갔었고.
어머니가 주방 설거지 일을 하겠다니까 이 시계로 생활비를 바꿔올까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팔지 않길 잘했다.’
사실 이건 그냥 물건일 뿐이란 걸 아는데.
이 시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추억은 물론 어머니의 마음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참 예쁘네. 우리 부모님.’
나는 자꾸만 수증기 때문에 흐릿해지는 유리창을 손바닥으로 쓱쓱 닦아냈다.
“어이, 꼬맹이. 여기서 괜히 청승 떨지 말고 그냥 너도 가서 끼워달라고 해. 가족이잖냐.”
“됐어요.”
나는 정원으로 달려가 흰 눈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는 대신, 수증기를 닦아가며 흐릿한 유리창 안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것을 택했다.
철구 아저씨는 나와 거실 유리창 앞에 나란히 서서 내 어깨를 짚었다.
“아빠 보고 싶지 않았냐?”
“보고 싶었죠.”
“그럼 달려가서 대뜸 덥석 안겨들어.”
“어떻게 그래요.”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나야 우리 아빠가 어딘가에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그려왔잖아요. 하지만 우리 아빠는 어쩌면 내 존재조차 몰랐을지도 몰라요.”
그렇지 않고서야 과거에 내가 일곱 살에 고아가 되었을 때, 찾아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을 리 없지.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어린애가 ‘아빠, 보고 싶었어요!’ 하고 대뜸 달려가면 얼마나 부담스러울 거예요.”
나는 유리창 너머의 아버지를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한겨울의 냉기가, 수증기의 물기가 묻어나왔다.
“넌 꼬맹이 주제에 생각이 너무 많아.”
철구 아저씨는 내 머리를 어지럽게 헝클어뜨렸다.
“일곱 살짜리 꼬맹이는 어른의 사정 따윈 무시해도 돼. 그게 어린애의 특권이란 거지.”
철구 아저씨는 내게 막대 사탕을 하나 내밀었다.
“먹을래?”
왠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커피도 블랙으로 마시고, 초콜릿을 입에 넣어주니까 오만상을 찌푸리던 양반이.
왜 어울리지도 않게 막대 사탕 따위를 샀겠어.
나는 사탕을 받아 물며 씩 웃었다.
“난 호의는 거절하지 않는 사내라서.”
“사내라면 직진이지. 일단 달려들어서 덥석 안기면 끝이라니까?”
나는 모른 척 막대 사탕을 빨았다.
“아빠가 좀 당혹스러워하면 뭐 어떠냐? 어쨌거나 네가 아들인데. 안 그러냐? 평생 이렇게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려고?”
그때 정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던 부모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란히 이쪽으로 걸어온다.
한 걸음 한 걸음.
현관문에 가까워질수록 내 가슴도 두근두근 점점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달칵.
현관문이 열렸다.
“들어와요, 선배.”
“그럼 사양하지 않고.”
아버지는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들어섰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아버지는 빙그레 웃었다.
“정혁아.”
순간 격하게 뛰던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준 순간이었다.
세상에 오직 아버지와 나만 남겨진 것 같은 아찔한 기분.
나는 거미줄에 걸린 나비가 된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한쪽 무릎을 꿇고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나는 차성준이라고 한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철구 아저씨의 말도, 그동안 했던 고민도, 태성그룹 경호원들의 응원도.
새하얀 함박눈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서 그 무엇도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에게 얘기를 들었을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네······.”
“아빠!”
나는 아버지를 향해 두 팔 벌려 달려가고 있었다.
“그래.”
아버지가 두 팔을 벌렸다.
나는 그 품에 와락 뛰어들었다.
아버지의 목덜미를 꽉 끌어안았다.
“아빠, 보고 싶었어요!”
“그래.”
무겁고 세련되며 고급스러운 남자 향수 냄새가 훅 끼쳤다.
그게 우리 아버지의 냄새라도 되는 것처럼.
폐부 깊이 들이마시며 나는 아버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나도 보고 싶었다.”
아버지도 나를 끌어안으며 나지막하게 웃었다.
기분 좋은 웃음소리였다.
나도 그렇게 아빠에게 예쁘게 웃어주고 싶었는데.
어째서인지 눈물부터 뿌옇게 차올랐다.
“아빠, 아빠······!”
내가 이 세상에서 눈을 뜬 날부터 내가 눈을 감았던 그 순간까지.
아니, 저승에서까지 나는 아버지를 만나면 항상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제가 아빠 아들이에요. 차정혁이에요.”
사실 아버지를 만나면 묻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다.
당신은 누구인지, 어떻게 내 존재를 알게 되었는지, 왜 우리 모자를 그렇게 내버려 둔 것인지.
묻고 싶은 물음도, 묻어야 할 원망도 아주 많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건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랑해요.”
언젠가 아버지가 나를 찾아온다면 반드시 꼭 해주마 다짐하던 말.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 보지 못하고 막연히 마음속으로만 그려왔던 말.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와는 초면인지라 어색해서 절대로 하지 못하리라 믿어왔던 말.
평생 가슴에 한처럼 남았던 말을 막상 입 밖으로 꺼내 놓고 나니.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아빠, 사랑해요.”
흐느낌과 울먹거림은 내 스타일이 아닌데.
“내 아들······.”
나는 아버지의 그 묵직하고 따뜻한 품이 마냥 좋았다.
“정혁아.”
아버지가 불러주는 내 이름이 마냥 좋아서.
“고맙다.”
나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훌쩍훌쩍 울었다.
빌어먹을, 어린애 몸뚱이란.
* * *
밥을 먹는 내내 식탁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위해 물을 따라주며 물었다.
“음식은 입에 맞아요?”
“응.”
“뭐가 제일 맛있어요?”
“전부 다.”
다행히 오늘 아침은 집주인 할머니가 만들었으니까.
집주인 할머니의 음식 솜씨는 구로동 판자촌에서도 첫손으로 꼽힐 만큼 유명했다.
아마 음식점을 냈다면 대박이 났을 거라나 뭐라나.
‘내 인생 처음이네.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다니.’
아버지는 과묵한 남자였다.
반면 어머니는 잔뜩 들떠 이것저것 종알종알 떠들었다.
‘우리 어머니가 저렇게 신나서 이야기를 하는 건 또 처음 보는 것 같고.’
어머니는 먹는 둥 마는 둥 아예 아버지를 향해 몸을 돌린 채였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니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
7년 만이 아니라 7시간 만에 다시 만난 연인들처럼.
7년 동안 단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사람들처럼 보기 좋았다.
“정혁이는 갈비 좋아하니?”
“네.”
아버지는 내 밥그릇 위에 갈비를 올려주었다.
나는 방긋 웃으며 아버지의 호의를 받아먹었다.
“맛있어요.”
“잡채는 싫어하려나?”
“아뇨. 다 좋아해요. 가리는 거 없어요.”
“착하구나.”
아버지는 어린애가 좋아할 법한 반찬들로만 골라 내 숟가락 위에 이것저것 올려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정혁이는 입이 좀 짧은 편인데, 오늘따라 정말 잘 먹네요.”
어머니, 전 입이 짧은 편이 아니라 어머니의 음식을 잘 못 먹는 것뿐입니다.
“정혁아, 우리 밥 다 먹고 같이 눈사람이나 만들까?”
“눈사람이요? 좋아요!”
나는 신이 나서 냉큼 대답했다.
꿈만 같았다.
얼른 다 먹고 밖에서 함께 놀고 싶었다.
나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정원에 내린 새하얀 눈 위에 선명하게 발자국을 찍어야지.
띵동! 띵동띵동!
초인종 소리였다.
눈치 빠른 태성그룹의 경호원, 자칭 넘버 투가 달려와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김 비서님이 뇌물 가져왔답니다.”
이렇게 빨리?
뇌물을 준비하려면 3일은 걸린다면서.
내가 그때 요구했던 뇌물은 네 가지다.
어머니께 무례를 사과하는 것, 결혼을 허락하는 것, 아버지를 데려오는 것, 태성의 주식 1억 원어치를 받아오는 것.
“차 회장님께서도 오셨답니다.”
어째서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뇌물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는지 깨달았다.
말 끝나기가 무섭게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정혁아, 할애비 왔다!”
쩌렁쩌렁하지만 다정한 기색이 역력한 음성.
차 회장이었다.
“아버지?”
아버지가 몹시 당혹스러워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아버지와 아들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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