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대장 받아내기 (2) >
유종태는 현무건설 사장실로 들어왔다.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태성그룹 경호부 소속 제5 팀장 유종태라고 합니다.”
“대뜸 찾아와서 내게 이런 쪽지를 전한 의도가 뭘까 궁금해서 불렀다. 날 놀리는 거라면 재미없을 거야.”
“그럴 리가요. 전 이걸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유종태는 서류 봉투에서 몇 장의 서류를 꺼내 내밀었다.
그걸 확인한 현무건설 오 사장은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수서동 땅이었다.
지형적으로 썩 좋은 곳도 아니고, 땅 평수도 대단지 아파트를 건설하기엔 작지만, 그래도 강남땅이다.
현무건설 오 사장은 유종태를 돌아봤다.
“태성건설이 요즘에 공사도 하지 않고, 위아래로 돈 뿌리면서 놀고먹느라 자금 사정이 몹시 안 좋다더니. 다른 곳도 아니고 강남의 아파트 부지를 팔아치워야 하는 지경까지 왔나 보네?”
비웃음이었다.
“태성건설 차 사장이 보내서 왔나? 우리가 아파트 부지를 팔아가며 겨우 아파트를 지어 올릴 때 그렇게 비웃더니, 그쪽은 우리보다 더 심하구만? 어쩐지 태성건설 주식이 똥값이더라!”
현무건설 오 사장이 아파트 부지 서류를 일부러 팔랑팔랑 흔들었다.
유종태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서였다.
“태성건설 사장이 땅을 팔겠다고 은행장들을 만나고 다닌다면서? 결국 나한테까지 사람을 보내다니. 요즘 돈이 많이 달리나 봐?”
하지만 유종태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해하지 마시길. 태성건설의 자금 사정이 안 좋아서 그걸 처분하는 게 아닙니다.”
“웃기고 있네.”
“그건 태성건설 소유의 땅이 아니거든요. 개인 소유의 땅이죠.”
“뭐?”
현무건설 오 사장은 깜짝 놀란 눈으로 다시 한번 수서동 땅을 확인했다.
“······어?”
저 땅은 할아버지가 내 몫으로 챙겨준 것이다.
그 전에 태성건설 전(前) 사장이 미리 빼돌려 팔겠다며 명의를 돌려놓은 땅이기도 하고.
“태성건설이 아파트를 지으려고 개발 허가까지 다 받은 줄 알았는데. 누가, 왜, 내게 이런 걸 보낸 거지?”
“······.”
유종태의 눈동자가 슬쩍 돌아갔다.
어디까지, 뭘 얼마나 대답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보는 듯했다.
“······.”
결국 유종태는 지체 없이 2라고 적힌 쪽지를 내미는 쪽을 택했다.
분명 쪽지 안에 뭐가 적혀 있는지 안 봐서 모를 텐데.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허락되지 않은 정보를 멋대로 방출하는 놈보다 차라리 맡긴 일에만 충실한 놈이 나으니까.’
내 두 번째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건 제가 현무건설에 보내는 호의이자 뇌물입니다. 딱 시세대로만 받겠습니다. 땅 주인이 누구냐보다는 왜 이 땅을 이렇게 싸게 넘기느냐가 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현무건설 오 사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걸 시세대로 팔겠다고?”
유종태는 눈빛을 번뜩였다.
그러더니 한결 여유로운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무의 사정을 몰라서 건네는 제안이 아닙니다.”
“그래. 우리 현무의 사정을 뻔히 알고 있다면 시세보다 비싼 가격을 불렀을 텐데. 왜 제값만 받겠다는 건지 의문이 드는데?”
원래 사정이 급하고 애가 닳는 사람이 밑지는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
현무건설 오 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유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와 태성건설은 딱히 접점이 없잖나. 그러니 사업상 양보할 거리도 없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건설사는 태성건설이라 할 수 있었다.
태성건설은 전쟁 이후 서울시를 복구하면서 크게 이름을 날렸다.
한강의 다리도 태성이 놓았고, 관공서와 도로는 물론 학교와 병원까지 태성이 지었다.
그런 태성건설에 비하면 현무건설은 체급이 조금 뒤처졌다.
“이 정도로 한쪽만 유리하게 좋은 조건을 받았을 땐 딱 두 가지를 의심하면 돼. 사기, 아니면 뇌물.”
그래서 나는 쪽지에 미리 뇌물이라고 적시해 놓았다.
하지만 현무건설 오 사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왜 태성이 우리한테 뇌물을 주겠다는 거야? 청탁을 해도 우리가 해야 할 입장인데.”
“사기 아니면 뇌물이라면서요? 전 처음부터 여기 올 때 태성그룹 소속임을 확실하게 밝히고 들어왔습니다. 그런 제가 사기를 쳐요? 그 후환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뇌물이다?”
유종태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송년의 밤 행사에 초대할 몇 분의 손님을 위해 초대장과 바꾸고 싶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유종태에게 이번 임무의 목적을 밝혔다.
눈치 없이 굴다가 쫓겨나는 건 상관없지만, 초대장을 못 받아오면 곤란하다고.
“초대장?”
현무건설 오 사장은 쪽지를 잘못 읽었나 다시 읽었다.
눈을 비비고 봐도 역시나 똑같다.
시세대로 팔겠다는 글자가 바뀔 리 없었다.
“겨우 송년의 밤에 참석할 수 있는 초대장 몇 장과 맞바꾸겠다고 강남의 아파트 부지를 싸게 팔아?”
돈 계산이 영 안 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요즘 강남 개발 때문에 하루만 자고 일어나도 땅값이 미친 듯이 오르는데? 이거 진짜 맞아?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이런 손해를 감수하겠다고?”
유종태는 과장되게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우리는 현무건설의 사정을 이용하여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팔아치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는······.”
“이유는?”
“현무호텔이 우리 쪽에서 청한 손님을 너그럽게 받아주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유종태는 눈 딱 감고 마지막 쪽지를 건넸다.
<결정하세요. 아파트 부지냐, 초대장이냐. 전 오 사장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고민할 시간은 3분이면 충분하겠죠?>
현무건설 오 사장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걸 고작 3분 내에 결정하라고?”
유종태의 눈빛이 또 번뜩였다.
“3분! 더는 안 됩니다! 우리도 바쁜 사람이에요.”
“현무건설 아파트 사업이 걸린 일이야! 사업성을 검토하려면 넉넉하게 3일은 줘야지!”
“3분! 고작 초대장 몇 장과 바꾸는 일입니다.”
현무건설 오 사장은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와락 구겼다.
‘누군 시간이 남아도나?’ 하는 표정이었으나, 지금 손에 든 건 수서동 아파트 부지였다.
없는 시간이라도 짜내어 땅 주인을 찾아가 제발 팔아달라고 간청해야 하는 처지는 현무건설 쪽이었다.
현무건설 사장은 다다다다 빠르게 질문했다.
“뇌물이라며? 무슨 꿍꿍이야? 진짜로 초대장 몇 장이면 되나? 조건이 너무 좋잖아. 태성의 누가 내게 이렇게 호의적으로 구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정도로 인심 좋게 내어줄 사람이 없는데?”
“······.”
현무건설 오 사장이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 것처럼 다그치자, 유종태는 신경질을 버럭 냈다.
“아, 거참! 고작 초대장 몇 장이랑 바꾸는 거잖습니까! 아무리 봐도 손해는 우리가 보는데, 이게 뭐 그렇게 어려운 결정이라고.”
유종태는 배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싫으면 마십시오!”
현무건설 사장은 유종태와 손에 든 수서동 서류를 번갈아 보았다.
절로 끙 소리가 나고 있었다.
유종태는 일부러 보란 듯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벌써 30초 지났습니다. 똑딱똑딱!”
입으로 똑딱거리며 얄밉게도 압박한다.
너무 대놓고 놀리고 있어서 지켜보던 나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제법 눈치껏 잘 해내는군.’
문득 김 비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유종태만으로는 힘드실 텐데요. 당장 현무건설 사장을 상대하는 일부터가 문제일 겁니다.
하지만 생각 외로 유종태는 여유롭게 잘 대처하고 있었다.
‘확실히 태성그룹 경호원이라는 신분만으로는 현무건설 사장을 상대하기 어렵지.’
그래서 난 일부러 쪽지를 썼다.
태성그룹 경호원이라는 유종태가 ‘심부름꾼’을 자처했기 때문에 현무건설 사장은 제안을 의심했을지언정 사기라고 부정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고작 태성그룹 경호원이 강남의 아파트 부지를 팔러왔다면 말 그대로 사기꾼 취급을 받고 단번에 쫓겨났겠지만 말이다.
“사장님, 이건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인 것 같습니다!”
“아파트 부지란 뇌물에 비해 청탁이라는 건 고작 초대장 몇 장! 크게 기우는 저울인데요?”
“이건 태성의 호의가 분명합니다! 먼저 내민 손을 굳이 쳐낼 필요 있겠습니까?”
임원들은 환호했다.
여기저기서 호의적인 반응이 속출했다.
“아파트 부지가 확실합니다. 요즘에 이런 땅 절대 못 구합니다.”
“이미 서울시의 개발 허가까지 득한 곳입니다.”
“여기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공사 착수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분양 대금이 있습니다. 당장 오늘이라도 잔금 전부 치르고 땅을 받아올 수 있습니다.”
현무건설은 압구정 현무 아파트 분양이 대성공한 덕에 돈이 많았다.
“2분 지났습니다. 똑딱똑딱!”
현무건설 임원들이 한목소리로 신경질을 버럭 냈다.
“거 그만 좀 보채!”
“우리도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어!”
현무건설 임원진들은 미친 듯이 빠르게 주판알을 튕겼다.
해당 부지에 들어설 아파트의 규모, 땅값, 아파트 건설 단가, 분양가격, 홍보비용은 물론 단기차입금과 은행 대출 이자까지.
그 짧은 시간에 약식으로나마 검토해 보는 것이다.
“땡! 3분 끝났습니다!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면 들고 있는 서류나 도로 돌려주십시오.”
유종태의 최후 압박이었다.
마침내 현무건설 오 사장은 두 손을 들었다.
“초대장, 가져가게!”
“감사합니다.”
유종태는 방긋 웃었다.
그러더니 서류 봉투에서 계약서를 꺼내어 현무건설 오 사장에게 내밀었다.
“오늘 절 여기에 보내신 분은 말보다는 문서를, 새끼손가락 약속보다는 엄지 지장이 찍혀 있는 것을, 차용증보다는 공적인 서류를 몹시 좋아하십니다.”
“······.”
유종태는 서명 날인 부분을 손끝으로 톡톡 두들겼다.
“여기에 서명 날인하고 엄지 지장까지 꾹 눌러 찍어주시길 바랍니다. 계약금은 오늘까지, 잔금은 계약서에 적힌 날까지 치르시면 됩니다.”
계약서를 받아 든 현무건설 오 사장은 헛웃음을 흘렸다.
“내 살다 살다 아파트 부지를 매입하면서 이렇게까지 날치기 계약을 하는 경우는 또 처음 봤군. 그 와중에 계약서는 또 제대로 된 거야. 거참, 귀신놀음에 놀아나는 기분이네.”
현무건설 오 사장은 짐짓 느긋한 척 계약서를 임원에게 건넸다.
“자네는 이만 돌아가게. 계약서는 우리 측에서 꼼꼼하게 검토하고 빠른 시일 내에 확답을······.”
“이것까지 포함해서 3분 땡을 했어야 했을까요?”
“······!”
유종태는 얄밉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거래는 없던 일로······.”
“3분, 딱 세고 있어!”
현무건설 오 사장은 건네려던 계약서를 도로 홱 가져왔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빠르게 눈으로 훑어 내려갔다.
“똑딱똑딱! 벌써 30초 지났습니다.”
현무건설 임원들도 오 사장 옆에 달라붙어 계약서를 읽어내리다가 신경질을 버럭 냈다.
“거참 보채지 좀 말라니까!”
“우리 지금 눈알 빠지게 읽고 있잖아!”
“지장을 찍을 때 찍더라도 독소 조항은 없나, 특약사항은 없는지 정도는 검토하고 찍어야지!”
“물론 그딴 조건은 보이지도 않는 것 같지만!”
유종태는 얄밉게 똑딱거리며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3분. 땡!”
“가져가! 가져가라고!”
현무건설 오 사장이 신경질적으로 계약서를 내밀었다.
서명 날인은 물론 지장까지 확실하게 찍힌 계약서였다.
유종태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이 일로 나중에 서로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시비를 가리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어쨌거나 호의와 뇌물로 시작한 일이고, 결정은 오 사장님과 현무건설 임원들이 합의하에 내렸으니까요.”
나는 방금 유종태의 그 마지막 쐐기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안 그래도 송년의 밤 행사에서 거하게 깽판을 칠 예정이었으니까.
현무건설 오 사장은 몹시 피곤하단 얼굴로 마른세수를 했다.
“초대장을 내어준 이상 그들도 내 손님이야. 손님 박대할 일은 없으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이만 꺼지게. 자네를 상대하려니 피곤해 죽겠군.”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만족스러운 확답까지 얻어냈겠다, 유종태는 현무건설 사장실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 * *
‘좋았어!’
나는 시야 공유를 끊었다.
“우후훗.”
웃음이 절로 나왔다.
주차장 담벼락에 붙어서 나랑 나란히 쪼그려 앉아 건빵을 집어 먹던 철구 아저씨가 날 돌아보았다.
“꼬맹아, 너 방금 되게 음흉하게 웃은 거 아냐?”
“호빵이 맛있어서 웃은 건데요?”
나는 보란 듯이 호빵을 호호 불며 한 입 베어먹었다.
부드러운 단팥 소와 폭신폭신한 호빵피가 끝내주게 맛있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지!
“도련님!”
눈치 빠른 경호원, 자칭 넘버 투, 내 수족을 자처하는, 능력 있는 유종태가 나는 듯이 달려왔다.
두 손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초대장 네 장이 뿌듯하게 들려 있었다.
‘오옷, 황금빛 초대장!’
이야, 저렇게 멀리서도 이만큼이나 번쩍거리는구나.
누가 보면 성화 봉송하고 있는 줄 알겠네.
“유 팀장님!”
보자마자 벌떡 일어날 만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초대장을!
< 초대장 받아내기 (2)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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