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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만렙 아들-42화 (42/189)

< 일석삼조 탈탈탈! (1) >

철구 아저씨는 살벌한 눈빛으로 하우스 도박장을 노려보았다.

“이 나라에 해악을 끼치는 불법 사설 도박판! 난 보고도 못 본 척은 못 하겠다.”

철구 아저씨는 20대에는 국군 장교로 나라를 지켰고, 30대가 되어서는 중정 요원으로 애국수호에 몸 바친 사람이다.

“아저씨 혼자 쳐들어가서 뒤집어엎어 봐야 그 틈에 말대가리가 도망가면 그만이에요. 그렇게 해서는 도박장 못 없애죠.”

그래서 말했다.

“아저씨, 잘 들어봐요. 내가 저놈들 주머니도 탈탈 털고, 이 도박장도 탈탈 털고, 말대가리 멘탈도 탈탈 털 수 있는 일석삼조의 비법을 알려드릴게요.”

나는 초대장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내 목적은 단순히 초대장을 전하는 것이 아니에요. 송년의 밤에서 말대가리가 이쪽 편을 들도록 만드는 거죠.”

솔직히 말하면 말대가리가 보유한 엄청난 현금이 탐난다.

태성건설의 금고에 구멍이 생기는 바람에 1,800억이나 하는 지하철 공사를 진행할 건설 자금이 많이 모자라거든.

정부에서 단번에 그 많은 돈을 다 내어줄 것도 아니니까.

“난 이참에 여길 탈탈 털어서 공사 대금을 마련하고, 그걸 빌미로 말대가리를 강제 동참시킬 생각이에요.”

말대가리는 반골 기질이 강해서 순순히 말을 들을 놈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의 계획에 적극 협조할 놈도 아니고.

더구나 우리 태성에게 막대한 현금을 거저 후원할 놈도 아니다.

그래서 놈에게는 채찍과 목줄이, 꼼짝 못 하도록 옭아맬 협박이 꼭 필요하다.

“아저씨, 귀 좀.”

나는 철구 아저씨의 귀에 대고 속닥거렸다.

한참 집중해서 듣던 철구 아저씨가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푸하핫! 그게 되겠냐?”

아저씨가 서빙고 지하실에서 풀려나 우리 집에 처음 와서도 똑같은 말을 했거든요?

그때도 결국 아저씨는 ‘이게 되네?’로 끝났다는 걸 기억하세요?

“유 팀장님, 그럼 이번 심부름도 부탁할게요.”

“좋습니다. 이번에도 3분 컷으로 끊어보겠습니다.”

힘들 텐데요.

말대가리가 말대가리 같은 짓을 벌인다면 그것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거예요.

나는 염려를 듬뿍 담아 유종태에게 우산을 건네주었다.

“초대장이란 말을 전하자마자 이것부터 펴세요. 찬물 세례, 소금 세례 받기 싫으면요.”

유종태는 우산을 두어 번 펴보고 접다가 씩 웃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철구 아저씨와 나는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었다.

“그럼 잘 다녀와요.”

“이따 합류하자고.”

“합류?”

유종태는 합류란 단어에 고개를 갸웃대다가 손을 흔들며 달려 나갔다.

유종태가 들고 있는 초대장은 유독 황금빛이 번쩍거렸다.

스승님께 내어줬던 것보다 몇 배나 더!

왠지 거하게 뜯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면 말고!

* * *

유종태가 뒷문으로 들어간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도통 나올 줄을 몰랐다.

말대가리의 수작질에 곤란을 겪고 있을 게 눈에 훤했다.

‘이렇게 될 줄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곱게 말하면 안 듣는단 말이지. 좋다! 그럼 나도 봐주지 않겠다. 이쪽도 실력 행사를 하는 수밖에.’

나는 김 비서의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전화 한 통 하고 올게요.”

“저기 있네. 같이 가자.”

결론은 하나다.

‘말대가리를 잡으려면 역시 사업장부터 털어야겠어.’

나는 손을 탁탁 털었다.

‘태성의 금고를 네 돈으로 채워야겠다. 네 돈이지만 네놈의 후원 의사 따윈 중요하지도 않게 될 거야. 그래서 넌 강제 동참인 거지.’

철구 아저씨를 돌아봤다.

“아저씨, 각오는 됐어요?”

“물론이지.”

“좋아요. 약속대로 내 말에 따라주는 거예요? 오늘은 내가 쩐주니까요.”

나는 동전 지갑에서 오백 원짜리 지폐를 꺼내며 씩 웃었다.

“우리 오늘 한번 도박장을 발칵 뒤집어 봐요.”

“고작 오백 원으로 그게 되겠냐?”

“두고 봐요. 난 운이 꽤 좋은 편이거든요.”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이 오백 원으로 이놈들의 주머니를 어디까지 털 수 있는지 도전해 보자고요. 어때요?”

“까짓것 잃어도 겨우 오백 원이지. 좋다, 꼬맹이 네가 하란 대로 하자!”

가장 싼 하얀 칩 하나에 오백 원.

딱 좋다!

난 돈 걸린 일에 관해서라면 웬만해선 절대 안 지거든.

* * *

하우스 안은 매캐한 담배 연기가 자욱해서 꼭 너구리 굴 같았다.

진한 피비린내까지 코를 찔렀다.

이쪽 구역에선 닭싸움이 한창이었다.

“죽여! 꺾어!”

“봐주지 말고 밀어붙여!”

투계 판에 오른 수탉들의 발에는 면도칼이 달려 있다.

칼날에 스칠 때마다 피가 튀고, 피가 튈 때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피가 잔뜩 튀어야 훨씬 도박판이 재밌어지니까 일부러 저렇게 해놓은 것이다.

오랜만에 그 꼴을 보자, 나는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여긴 내 취향이 아니라니까.’

나는 깔끔한 승리와 은밀하게 해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옛날에 스승님 심부름으로 와서 기다릴 때, 심심풀이 겸 안목도 기를 겸 도박판에 몇 번 참가해 보긴 했지만, 전혀 재밌지 않았다.

철구 아저씨도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

동감이었다.

“진짜 개미 떼처럼 바글거리네. 이 새끼들은 도박판에 애들은 왜 데려온 거야?”

“애들 앞세워서 개평 뜯어내려고요.”

“이런 미친 새끼들이 진짜······!”

이 역시 동감이다.

하지만 다른 놈들 눈에는 날 데리고 다니는 철구 아저씨도 비슷하게 보일 텐데?

······그건 굳이 알려줄 필요 없겠지.

때로는 모르는 게 속 편한 법이니까.

“저놈들은 또 뭐냐? 도박판에서 왜 책상을 꺼내 놓고 앉았냐?”

도박판 한쪽 구석에는 나란히 책상을 두고 앉아 있는 사람이 둘 있었다.

둘 다 흰 가운을 입었는데, 그 앞에 놓인 도구가 사뭇 달랐다.

“수의사와 요리사예요.”

“뭐? 수의사는 그렇다 치고 요리사는 또 뭐야?”

“투계에서 진 닭을 잡아다가 즉석에서 백숙으로 만들어서 나눠줘요.”

“허······, 미친 새끼들이 진짜 가지가지 하네.”

수의사의 책상 앞에는 구급상자가, 요리사의 책상 앞에는 가스버너가 올라가 있었다.

지면 백숙 신세고, 이겨도 병원 신세다. 여차하면 둘 다 백숙이 되거나.

그게 투계장에 나온 수탉들의 운명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광분하며 좋아한다.

“어차피 재수 없다면서 투계 도박사들은 투계로 만든 백숙은 절대 입에도 대지 않는데도 저렇게 일부러 보란 듯이 보여줘요. 일종의 쇼맨십이랄까요?”

“갓 잡아 즉석에서 만든 투계 백숙이라면 싱싱하고 쫄깃하니 맛있긴 하겠다.”

“······.”

아니, 이 양반 머릿속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거야?

이 피비린내 풍기는 생사결의 투계 판을 보면서······.

‘호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왼쪽 수탉에게서 황금빛이 돈다!’

철구 아저씨도 투계장에 오른 수탉들을 보더니 턱을 쓸었다.

“난 왠지 저 왼쪽 놈이 이길 것 같은데?”

나랑 똑같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왜요?”

“그냥 찍었다.”

“······.”

“기세가 좋잖아? 딱 보면 저놈 약하고, 저놈 강하다. 끝!”

저승사자가 살그머니 나타나 손가락을 튕겼다.

선택받지 못한 오른쪽 수탉 머리 위에 황천길 카운터가 반짝거렸다.

[5분]

푸드득! 푸드득!

과연 승부는 고작 5분 만에 갈렸다.

“우와아아! 썬더블랙이 이겼다!”

“땄다! 이겼다아!”

투계 판이 떠나가라 환호성과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판 승부에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린 것이다.

툭툭.

나는 철구 아저씨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우리도 슬슬 시작해 볼까요?”

“좋지.”

철구 아저씨의 촉이 있고, 저승사자가 있고, 내 눈이 있는데.

이만하면 도박판에서 한 끗발 날릴 것 같지 않아요?

아니면 말고!

* * *

엉겁결에 도박판에 붙들린 유종태는 한숨을 쉬었다.

말대가리를 구경도 하지 못한 탓에 여태 초대장을 전해주지 못했다.

‘하우스 최고의 도박꾼들을 내게 붙여놓은 모양인데. 진짜 실력이 좋긴 좋네.’

그들은 이 바닥에서 최고로 쳐주는 전문가가 분명했다.

유종태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미 저들의 정체는 눈치껏 파악한 지 오래였다.

‘어차피 여기선 아무리 용써봤자 답이 없다.’

눈치가 빠르면 뭘 하나.

저 징글징글한 인간들은 눈보다 손이 더 빠른데.

짜고 치는 고스톱, 뒷패 돌리는 포커판에선 홀로 이길 장사가 없었다.

‘이러다간 날이 새도록 초대장을 못 전해줄 것 같은데. 어쩐다? 막무가내로 깽판부터 치고 봐?’

유종태가 초조하게 테이블 밑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이유였다.

하지만 유종태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분명 도련님이랑 빡대가리 빡 중령님이 합류한다고 했겠다?’

그런데 언제, 어떻게 합류하겠다는 것인지는 묻지 못했다.

3분 내에 초대장을 전하고 돌아올 생각이었으니까.

그만 방심하고 만 것이다.

“우와아아! 도신이다! 도신이 나타났다!”

“미쳤다! 온갖 종목들을 돌면서 가뿐하게 연승 기록을 세우고 있어!”

“덕분에 나도 땄어! 도신, 만세 만세 만만세다!”

아까부터 저쪽 도박장에서는 우레와 같은 함성과 환호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여기까지 쩌렁쩌렁하게 들려왔다.

“끝내준다, 무조건 올인인데 전부 이기고 있어!”

“벌써 몇 번째 연승이지? 한 15연승쯤 되나?”

“몰라! 어느 순간 함성 소리가 들리기에 이게 뭔가 했으니까. 저 칩 좀 봐! 산더미야!”

“저것도 칩 색깔 바꿔가면서 저렇게 쌓은 거라고!”

“이대로 가다간 진짜 오늘부로 이 하우스 문 닫겠는데?”

다들 한목소리로 열광했다.

“승리의 불곰!”

“도신! 도신!”

“개평! 개평!”

“한 번 더! 한 번 더!”

반대로 이쪽의 포커판은 점점 싸늘하게 식어갔다.

사색이 된 하우스 매니저가 달려와서 자꾸 귓속말을 전했기 때문이었다.

유종태는 모른 척 귀를 쫑긋 세웠다.

“큰일 났습니다! 이러다 오늘 파산하게 생겼습니다!”

“뭐?”

“저희들로선 도저히 역부족이에요!

도박장이 실시간으로 발칵 뒤집어지고 있었다.

“미친놈처럼 모든 판을 올인으로 깨며 연전연승한 탓에 하우스의 칩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하우스 매니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전판 올인이니까 딱 한 판만 이기면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될 것 같은데, 그 한 판을 못 이기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후······! 어쩌다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거야?”

젊고 아름다운 여자 도박사, 마담이 물고 있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재떨이에 비벼 껐다.

“꾼이야?”

“글쎄요. 종목이 종목이니만큼 놈은 기술을 쓸 틈이 전혀 없었습니다.”

“확실히. 그쪽 하우스의 종목은 대부분 우리 쪽 딜러가 수작을 부릴 뿐, 게임 참가자는 돈만 거니까 기술을 부릴 여지조차 없지.”

마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럼 순전히 운이라고?”

“예, 마치 행운의 여신이 그놈을 가호하는 것 같았습니다. 기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꼭 귀신에 홀린 기분입니다.”

“그게 가능해?”

“달리 설명이 안 되잖습니까. 아시다시피 이 바닥엔 가끔 잭팟 터지는 놈들이 종종 보입니다. 다만······.”

“그 행운이 어디까지 가느냐가 문제지.”

마담의 눈초리가 차가워졌다.

“애초에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기 전에 네놈들이 진즉 실력으로 짓밟아줬어야 했던 일이야.”

“······죄송합니다, 마담.”

“골이 지끈대네. 어쩔 수 없지.”

마담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쪽으로 모셔와.”

“예, 마담.”

마담이 눈짓하자, 하우스 최고의 도박꾼들은 먹이를 보는 하이에나들처럼 동시에 눈을 빛냈다.

“오랜만이군. 저놈이 저렇게까지 호들갑을 떠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대체 어떤 놈이기에 저놈이 저리 사색이 되어서 여기까지 달려와?”

“혹시 전국구 평경장이라도 온 건가? 아니면 전라도 아귀나 경상도 짝귀인가?”

“누가 됐든 우리 도박장에 손님으로 찾아온 이상 결전은 피할 수 없다. 이제부터는 진검승부야.”

도박꾼들은 목을 좌우로 꺾고, 손가락도 우드득 풀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각오를 다잡은 후, 하우스 매니저를 바라보며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그제야 하우스 매니저는 유종태에게 허리를 굽히고 정중하게 말했다.

“손님, 특별한 손님을 한 분 더 이쪽으로 모시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하우스의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심심풀이 삼아 놀고 있던 거니까요. 합석하시라 해요.”

“그럼. 승낙하신 것으로 알고.”

하우스 매니저는 같은 테이블에 의자를 하나 더 놓았다.

촤르륵.

구슬로 꿴 발을 가르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유종태는 하마터면 벌떡 일어날 뻔했다.

‘빡대가리 빡 중령, 아니, 박철구 씨!’

쪼로로 따라 들어오는 어린애가 한 명 더.

‘도련님!’

일곱 살짜리 도련님은 불곰 같은 사내의 손을 잡고 걸어오다가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역시 도련님이라면 어떻게든 합류를······ 잠깐! 그럼 벌써 그때 여기까지 내다 본 겁니까?’

놀랄 일은 또 있었다.

유종태는 두 눈을 부릅떴다.

‘헉!’

하우스 매니저가 들고 있는 쟁반엔 칩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심지어 알록달록 다채롭기까지!

고작 흰 칩 몇 개만 굴러다니는 유종태의 테이블 위와는 사뭇 달랐다.

‘저게 다 얼마야?’

한눈에 가늠할 수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입이 떡 벌어질 액수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 일석삼조 탈탈탈! (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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