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배 >
대통령이 물었다.
“사우디 왕실의 국빈으로 초대받게 된 이유.”
“사우디의 도로 공사를 맡아 완공시켰습니다. 그 와중에 별것 아닌 공을 하나 세웠습니다.”
“공?”
대통령이 흥미를 보였다.
대통령이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국위선양이었다.
한국 전쟁 이후 분단이 되면서 공장과 광산 등 돈 되는 산업은 죄다 북한에 남았고, 대한민국은 폐허가 된 땅덩이와 반토막 난 인구만 끌어안았다.
대통령이 군사정변으로 집권했을 때, 한국은 이런 조롱을 받고 있었다.
-아프리카보다 더 가난한 나라!
-미국과 서방의 원조가 없으면 굶어 죽는 나라!
-1인당 국민 소득이 150달러밖에 안 되는 나라!
대통령은 이를 악물고 경제성장에 매달렸다.
하지만 워낙 가난한 나라였기에, 외국의 원조와 차관을 끌어오는 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 어디 남의 돈 먹기가 쉬울 리 있나.
그건 개인이 아니라 기관이나 국가도 마찬가지였다.
돈을 빌려오려면 자존심과 체면은 내려놓아야 했다.
-차관과 원조는 받을지언정 굴욕적이고 비굴한 대통령으로 비춰지는 건 싫다!
대통령이 국위선양과 체면에 관해 몹시 민감하게 반응하는 까닭이었다.
대통령이 겉으로 드러난 뇌물수수와 부정부패 척결을 용서하지 않는 이유도.
기를 쓰고 경제성장에 매달려서 ‘수출만이 살길이다!’를 외치는 이유도.
반공과 무장 공비 색출을 부르짖으며 자주국방 강화를 부르짖는 이유도.
세계 지도자 회의에서 약소국, 최빈국, 미래가 없는 나라, 답 없는 나라의 대통령이란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보통 공이 아니었겠군.”
허접한 공으로는 왕실의 국빈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운 좋게 반역도를 잡게 되었습니다.”
“반역도?”
“예, 몇 년 전에 사우디 국왕 암살 사건이 있었잖습니까?”
1975년 3월 25일.
사우디의 초대 국왕인 이븐 사우드의 3남이자, 제3대 국왕이었던 파이살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그는 정신이상이 있던 조카 파이살 빈 무사이드의 저격으로 사망했다.
“국왕 암살 직후 봉기하기로 예정되었던 무장 반군 세력을 먼저 발견하고 반역도 색출의 공을 인정받았습니다.”
“뭐?”
대통령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뭐?’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중동 가서 도로 깔고 공사한다는 소리를 듣긴 했으나, 그런 공을 세웠을 줄은 몰랐지!
‘아니, 태성그룹 보고서에도 그런 기록은 단 한 줄도 없었는데?’
태성그룹 보고서에는 아버지에 대해 적힌 문장이 몇 줄 안 되었다.
그저 ‘젊은 나이에 사고로 요절했다.’, ‘막내아들이 죽고 난 후 태성은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정도에 그쳤을 뿐이었다.
‘아버지, 대체 사우디에서 뭘 어떻게 하고 다니신 겁니까?’
그간의 행적이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그건 여기 룸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그러한 모양이다.
대통령마저도 흥미로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여 아버지의 말에 집중했다.
“자세히.”
“죄송합니다. 그 이상은 알려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왕실의 반역과 같은 치부가 외부로 드러나면 망신살이 뻗치잖습니까. 조용히 덮고 함구하기로 약조했습니다.”
대통령은 작게 혀를 찼다.
“하다못해 훈장이라도 받아오지 그랬나?”
“대신 사우디 왕실에 빚을 하나 달아두었습니다.”
대통령의 얼굴에 싸늘함 대신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사우디에서 뭘 받아내려고?”
“태성이 받아내는 것보다 각하께서 받아내시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각하께서 원하신다면 기꺼이 내놓겠습니다.”
“애국하는 청년이로군.”
대통령의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개인이 세운 공을 국가가 강탈해 가면 쓰나. 마음만 받지.”
대통령은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 술잔을 내밀었다.
쪼로록.
청와대 경호실장이 즉시 달려와 대통령의 빈 잔을 채워 주었다.
대통령의 손짓에 구 시장의 잔에도, 아버지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대통령은 술잔을 들었다.
“그냥 넘어가기엔 아까운 공이다.”
“예, 맞습니다. 인제 보니 젊은 친구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여 주었군요. 이보다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구 시장도 술잔을 들어 올리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게다가 그 공을 나라에 바치겠다니. 애국 청년의 본보기가 될 겁니다. 허허허.”
“과찬이십니다.”
“건배.”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동시에 술을 털어 마셨다.
“이런 게 국위선양이지.”
대통령이 작게 손바닥을 부딪쳤다.
짝. 짝. 짝.
장관들도 합세해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
아버지는 곤란한 표정이 되어 대통령에게 허리를 굽혔다.
“과분합니다.”
“지나친 겸양은 넣어둬.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고 외국 왕실의 인정을 받은 일이다. 칭찬받아 마땅하다.”
“감사합니다.”
대통령은 흐뭇한 표정으로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
“태성의 미래가 기대되는군.”
대통령은 손짓했다.
“다들 앉아서 술 한잔하자.”
“감사합니다, 각하.”
벽에 붙어 서있던 장관들이 즉시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이 친구 덕분인 줄이나 알아.”
아버지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기에 기분이 좋아서 술 한 잔씩 내리겠다는 소리였다.
장관들은 저마다의 자리를 찾아갔고, 각자 빈 술잔을 돌리고 서로 술잔을 채워줬다.
“각하께 술을 석 잔이나 받다니.”
청와대 경호실장이 작게 중얼거리며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한쪽 입꼬리만 슬쩍 끌어 올렸는데, 아버지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흥미로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중동의 정세는 어떻지?”
아차, 대통령의 용건이 아직 다 안 끝났구나!
이번에야말로 내가 꼽은 마지막 예상 질문이 시작되었다.
대통령이 정말 궁금했던 것은 아버지가 어떻게 사우디 왕실의 국빈이 되었느냐가 아닐 터였다.
-중동의 정세가 대한민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게 바로 대통령이 아버지를 사석의 술자리에 부른 진짜 용건일 것이다.
‘중동의 이 나라 저 나라를 오가며 굵직한 공사를 따내 건설하다 보면 현지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현지에서 공사 인력과 재료를 수급해야 하고, 말단 관계 공무원들을 만나 일을 처리해야 한다.
‘돈이 오가는 자리엔 진짜배기 정보가 함께 오가는 법.’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현지의 밑바닥 정보였다.
‘중동의 정세를 소홀히 살필 수는 없겠지. 중동에서 석유가 나니까.’
외교부 장관과 중동 쪽 대사관 사람들이 술자리에 불려왔다는 대목에서 내가 감을 잡게 된 이유였다.
“현재 중동 전역은 국내외 할 것 없이 아주 어지럽습니다.”
“외무부.”
호명받은 외무부 장관이 술잔을 받다 말고 자세를 바로 고쳤다.
“현재 중동에선 벌어들인 오일머니로 국가 기간 산업을 육성하고, 사회적 인프라를 건설하여 도시를 개발하는······.”
“그만.”
외무부 장관은 즉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자네 생각은?”
“조만간 제2차 석유파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표정이 바뀌었다.
중동에서 오일머니로 도시 개발을 하는 건 대통령의 관심사가 아니지만, 중동발 석유파동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제2차 석유파동?”
불과 몇 년 전 중동에서 시작된 제1차 오일쇼크로 인해 전 세계의 경제가 휘청거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1차 오일쇼크 당시 노동집약적 경공업이 대세였던 한국은 선진국보다는 타격이 덜했으나, 자칫 중화학공업 육성계획 자체가 엎어질 뻔했지.’
중화학공업 육성은 대통령이 야심 차게 밀어붙이던 국가 정책이었다.
하지만 석유파동이란 악재 때문에 1973년 3.2%에 불과했던 물가상승률은 1974년과 75년에 걸쳐 연 25% 수준으로 껑충 뛰었다.
당연히 나라 여기저기에서 곡소리가 났었다.
대통령으로선 제2차 석유파동이란 단어를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만일 제2의 석유 파동이 발생한다면 대한민국은 지난 석유파동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극심한 타격을 받게 될 겁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면서 석유 의존도가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석유 감산 정책으로 석윳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
대한민국은 현재 그 타격을 직격으로 겪으며 고물가의 덫에 시달리고 있었다.
“중동에서는 특히 이란의 동태가 몹시 우려스럽습니다.”
제2차 오일쇼크는 이란 혁명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덮쳤다.
내가 자신 있게 이란을 콕 짚어 3번째 예상 답안지를 만든 이유였다.
“외무부.”
“이란은 현재 팔라비 왕조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한 상태입니다. 빈부 격차 문제가 어찌나 극심한지, 터지기 직전의 폭약고와 같습니다.”
이란은 제1차 석유파동으로 인해 1인당 국민 소득이 570불에서 2,300불로 급속히 올랐다.
하지만 국부는 왕실과 고위층 세력에만 집중되었다.
이란 혁명이 일어난 이유였다.
이란에서 시작된 이슬람 혁명이 중동 전역으로 어떻게 번질 것인가에 대한 공포심이 세계 경제를 얼어붙게 했다.
그게 바로 제2차 오일쇼크였다.
“각하, 제2의 석유파동이라면 허투루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석유파동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외무부가 보기엔?”
“동의합니다. 매우 높다고 봅니다.”
대통령은 턱을 쓸었다.
“재무부.”
“국가 경제가 짊어져야 할 부담을 고려할 때 악재를 대비하심이 옳습니다. 올해 예산을 편성할 때 신중히 검토하겠습니다.”
“상공부.”
“석유파동이 터지면 원자잿값이 폭등할 겁니다. 안 그래도 지금 한국은 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원자재는 많이 확보해둘수록 좋습니다.”
대통령이 외무부 장관을 돌아봤다.
“외무부 선에서 해결 가능한 일인가?”
“불가능합니다. 미국이나 영국이 앞장서도 쉽지 않을 겁니다. 자칫 중동에 내정간섭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일이라서 말입니다.”
“음.”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2차 석유파동이 발생한다고 치고, 사우디 왕실의 빚을 석유로 받겠다고 하면?”
대답은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신했다.
“가능은 하겠으나, 한계가 있을 겁니다. 석유는 사우디 국부의 근간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대한민국과 사우디 사이에 국교가 있다 한들······.”
“국교 차원이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 태성이 정유회사를 만든다 치면?”
어?
대통령의 발언에 나는 그만 눈이 동그래져 버렸다.
‘저건 내가 노리고 있던 건데?’
제2차 오일쇼크 때 시중에 나온 공룡 매물!
그건 바로 국영기업이었던 대한석유공사였다.
유공의 지분 50%를 보유했던 미국의 걸프사가 버티지 못하고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하자, 정부는 대한석유공사를 민영화하기로 결정한다.
걸프사의 지분 50%를 해결할 수 있는 돈만 있다면 대한석유공사를 넘겨주겠단 제안을 한 것이다.
그 인수자금이란 게 무려 1억 달러나 돼서 문제였지만 말이다.
이게 내가 투자회사를 세우려는 이유이자, 할아버지에게 회사 인수 각서를 받아낸 까닭이었다.
* * *
대통령은 장관들과 제2차 석유파동에 관해 심도 깊은 대화를 이어가고자 했고, 아버지는 축객령을 받았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문을 닫으며 말했다.
“이름이 뭐라고?”
“태성건설의 차성준입니다.”
“태성건설 차성준. 기억해 두지.”
청와대 경호실장은 황금빛이 번쩍번쩍 터지는 카드를 한 장 내밀었다.
“받아. 각하께서 허락하신 거다.”
“이게 뭡니까?”
“청와대의 신년 오찬 초대장.”
“예?”
“기업 총수들과 함께 신년 계획을 논하는 자리다. 영광으로 알아.”
고작 건설사를 맡은 아버지가 절대 낄 수 없는 자리였다.
쿵.
그렇게 문은 닫혔다.
아버지는 미련없이 등을 돌려 현무호텔 바에서 빠져나왔다.
“성준아!”
비상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던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보고 반색하며 달려왔다.
“어째서 이렇게 늦게 나왔어! 심하게 문책당한 것은 아니겠······ 음?”
할아버지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술을 얻어 마셨느냐?”
“예.”
“한 잔?”
“석 잔입니다.”
“뭐야? 석 잔씩이나?”
할아버지는 경악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문득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들고 있는 카드를 발견했다.
“그 초대장은···, 설마······!”
“예, 청와대 신년 오찬 초대장입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재벌 총수 중에서도 그거 못 받은 사람이 널리고 널렸는데!”
할아버지는 비명처럼 외쳤다.
“아니, 안에 들어가서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네가 그런 걸 받아 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냥 예상 답안지에 적혀 있는 걸 토대로 적당히 답했을 뿐입니다.”
“예상 답안지?”
“태성을 후원한다던 그 익명의 후원자 말입니다. 마치 각하의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딱 떨어지는 예상 질문과 답을 적어 보냈더라고요.”
“뭐?”
할아버지는 입을 떡 벌렸다.
“그게 가능한 일이냐?”
“그러게 말입니다. 꼭 귀신에 홀린 기분이라······.”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라니까.”
“대체 누굴까요? 왜 우릴 이렇게 도와주는 건지, 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무래도 김 비서님께 물어봐야겠습니다.”
“김 비서라면 여기······ 응?”
김 비서는 이미 튀고 없었다.
< 건배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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