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만렙 아들-69화 (69/189)

< 탐나는 인재 >

태성화학 사장과 임원들이 아버지에게 인사하자, 다른 계열사 사람들은 눈치껏 자리를 떠났다.

‘태성화학 심원철 사장. 태성건설부터 태성증권까지 맡는 계열사마다 크게 키워내는 데다, 목숨 걸고 충성했던 태성의 일등공신이라지.’

태성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심원철은 태성건설 사장 차윤성이 계열 분리 후 대차게 말아먹은 태성건설을 헐값에 인수한다.

그는 회생절차를 밟던 태성건설을 10년 만에 대한민국 최고의 건설사로 키워냈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서 태성그룹 차기 총수였던 차기준이 심원철에게 태성증권을 맡긴다.

심원철은 훗날 태성증권과 태성생명, 태성카드를 묶어 만든 금융지주회사를 발족시켜서 3대 경영권 세습의 발판을 마련했다.

‘나도 마침 믿을 만한, 능력 있는 인재가 필요한 참이거든.’

나도 투자 회사의 바지사장을 찾고 있어서 말이다.

“회장님께 들었습니다. 태성화학을 우광에 넘기기로 하셨다죠?”

태성화학 사장은 말했다.

“이들은 진즉 성준 도련님의 힘이 되길 기다리던 이들입니다. 유능한 인재들입니다. 성준 도련님께서 거두어 주십시오.”

태성화학 사장은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태성화학 임원들도 허리를 굽혀 말했다.

“저희는 우광에 가서 영달을 꾀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태성건설 임원 자리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도련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

아버지도 자세를 바로 하고 고개를 숙였다.

“안 그래도 부탁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요 근래 태성건설 임원들이 한꺼번에 나가는 바람에 저 혼자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도련님.”

“굵직한 국책 공사를 여럿 따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저 혼자는 그 일 다 못 합니다.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정중한 부탁에 태성화학 임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태성화학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께서 거두어 주시겠다면 더 바랄 게 없지요. 자네들은 먼저 들어가 보게.”

“예, 알겠습니다.”

태성화학 임원들도 눈치껏 빠졌다.

그들이 저택의 대문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태성화학 사장은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충직하고 유능한 자들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받으십시오.”

“이게 뭡니까?”

“차명 주식입니다.”

태성화학 사장은 서류 봉투를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회장님께서 맡기셨고, 그동안 제가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만 주인께 돌려드릴까 합니다.”

“심 사장님?”

“이건 태성화학 비자금 장부입니다. 이건 태성화학 명의로 맡아두고 있었던 태성의 주식입니다. 이것저것 계열사별로 1% 정도. 자잘합니다.”

“심 사장님.”

“태성화학이 넘어간다고 이것까지 우광에 넘길 수는 없잖습니까. 받으십시오.”

태성화학 사장은 아버지의 손에 억지로 서류 뭉치를 쥐여 주었다.

“일주일 내로 나머지 주식과 비자금 장부도 깨끗하게 세탁해서 도련님 앞으로 돌려놓겠습니다.”

태성화학은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위해 준비해 둔 회사였다.

오래전부터 조금씩 태성의 주식을 넘겨서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어 놓았던 모양이다.

이제 우광에 태성화학이 넘어가게 생겼으니, 태성화학 사장은 태성의 주식과 쪼개놓은 비자금을 회수하여 돌려주려는 것이다.

“도련님, 그러면 이만 작별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작별 인사라니요? 태성건설에 오기로 얘기 다 끝난 거 아니었습니까?”

“저는 태성화학 사장직을 지냈던 사람입니다. 태성화학 임원들까지 우르르 끌고 태성건설로 넘어가면 모양새가 영 안 좋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건설사 사장 자리를 내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태성화학을 무사히 인계받을 때까지 태성화학 사장이 이끌어주길 바랐던 모양인데. 아버지가 태성건설 사장 자리를 맡으면서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게 된 것이로군.’

태성화학 사장의 거취가 붕 뜨게 되었단 소리였다.

아버지를 밀어내고 태성건설 사장 자리에 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장직을 지냈던 사람이 건설사의 일개 임원으로 들어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태성화학 임원들이 태성건설로 들어가는 것은 영전이 될 수 있어도 태성화학 사장이 건설사로 들어가는 건 누가 봐도 좌천이지.’

태성화학 사장도 그걸 알기에 작별 인사라는 말을 꺼낸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지요. 제가 가 봐야 도련님께 걸림돌밖에 더 되겠습니까?”

“심 사장님은 경험 많고 능력 있는 분이십니다. 저는 심 사장님의 경험과 능력이 필요합니다.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아닙니다. 도련님께선 이제 어엿한 태성건설의 새 수장이십니다.”

태성화학 사장은 빙그레 웃었다.

“이번 지하철 공사도 훌륭하게 따냈지 않습니까. 거기에 지하철 노선을 연장하면서 강남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공사까지 얻어내셨지요. 이미 훌륭하게 자립하셨습니다.”

태성화학 사장은 다시 한번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도련님께서 태성건설을 더 크게 키우실 거라 믿습니다.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심 사장님, 이 문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결정하는 게 어떻습니까? 심 사장님 같은 인재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때였다.

“성준아, 거기서 뭐 하고 있냐? 이만 들어가 봐야지. 아버지 기다리신다.”

큰아버지가 데리러 나왔다.

태성화학 사장은 아버지를 미소로 배웅했다.

“먼저 들어가 보십시오 저는 담배 한 대 피우고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회장님께도 정식으로 새해 인사 올리고, 확실하게 작별을 전해야 하니 말입니다.”

아버지는 마른세수를 했다.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버지의 말도 들어보고 난 후에.”

“예.”

우리는 큰아버지의 뒤를 따라서 저택으로 들어갔다.

* * *

정원을 가로지르면서 큰아버지가 말했다.

“태성화학 심 사장의 거취가 걱정인 거냐? 그럼 내가 데려가면 되겠네.”

“형님께서요?”

“어. 요즘 태성자동차에 일손 부족한 거 알지? 사업을 확장하려고. 중장비만 따로 취급하는 계열사를 하나 더 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큰아버지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나야 심 사장처럼 능력 있는 사람이 도와준다면 두 팔 벌려 격하게 환영해야지. 웰컴! 땡큐!”

큰아버지도 태성화학 사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까운 인재를 큰아버지에게 빼앗길 수는 없지.’

태성화학 심원철 사장을 눈독 들이고 있는 건 큰아버지뿐만이 아니다.

나 역시도 심원철 사장이 탐나기는 마찬가지였다.

‘내 투자 회사를 심원철이 맡아주면 좋을 것 같은데.’

태성증권을 맡아 크게 키웠던 심원철이라면 내 투자회사 역시 제대로 키워줄 것 같단 말이지.

‘과거 심원철은 태성화학이 독립해서 떨어져 나갈 때 차기준의 밑으로 들어갔었다. 후견하던 아버지를 비행기 추락사로 잃고, 태성화학이란 거취마저 붕 떠버렸으니까.’

심원철의 합류는 차기준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되었다.

당시 차남인 차기준이 맡고 있던 계열사는 태성유통.

차기준은 중공업 관련 계열사를 희망했지만 번번이 무산되던 처지였다.

‘오일쇼크 때문에 휘청거리는 태성자동차를 차기준이 맡게 되자, 심원철이 독일과 기술제휴를 성사시키고, 새봄자동차를 헐값에 인수하면서 태성자동차는 기사회생했다.’

차기준은 드디어 태성의 핵심 계열사라는 자동차와 중공업을 손에 넣었고, 태성그룹은 반으로 나뉘어 분열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있다. 하지만 심원철은 거취가 붕 뜨고 말았으니, 이번에도 차남으로 말을 갈아타려나?’

설마 이번엔 심원철 영입 전쟁이 벌어지는 거 아니겠지?

그렇다면 나도 이렇게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인재 영입에 나중이 어딨어? 먼저 채가는 사람이 임자지.’

나도 친다, 선수!

나도 뛰어든다, 인재 쟁탈전!

“아빠, 먼저 들어가실래요?”

“음?”

“네, 여기 잔디밭이 엄청 넓고요, 멋진 나무도 아주 많고요, 반짝반짝한 전등도 아주 많아요.”

“흠. 정원 구경은 아빠가 나중에······.”

아버지가 조금 곤란해하던 때였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김 비서가 현관 앞에서 우리를 마중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다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김 비서님,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도와주세요!”

“도와···, 그럼 가실까요?”

김 비서가 흔쾌히 내게 손을 내밀자, 그제야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 비서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 비서와 함께 있으니까 으레 따라오는 잔소리가 없어서 좋구만!

식사 시간에 늦으면 안 된다, 길 잃지 않게 조심해라, 낯선 사람들에게 공손하게 굴어야 한다, 이것저것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 등등.

어린애에게 할 법한 주의와 당부가 어김없이 뒤따르는 게 영 귀찮았거든.

* * *

“도련님, 그쪽은 정원이 아니라 주차장입니다만?”

찾았다!

여전히 주차장 구석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있는 태성화학 심원철 사장!

“김 비서님, 태성화학 심원철 사장님 말이에요. 할아버지가 따로 계열사에 내정해 놓은 자리가 있어요?”

“아직입니다.”

그러니까 보류 상태라는 거군?

아버지의 사람을 빼앗아서 다른 자식에게 내어주실 생각은 없다는 소리고.

“심 사장님은 믿을 만한 분이죠?”

“물론입니다. 중정에 끌려가서도 죽으면 죽었지, 태성의 기밀을 불 일은 없을 겁니다.”

“능력 있는 분이겠고요?”

“그렇습니다. 회장님과 함께 태성화학을 7년 만에 300억짜리 회사로 키웠다면 설명이 되겠습니까?”

“내가 능력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거 잘 알죠?”

“······!”

나는 김 비서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럼 협조 부탁드려요.”

내가 아까 도와달란 말을 한 이유였다.

김 비서는 그 자체가 보증 수표나 다름없으니까.

나는 태성화학 심 사장에게 쪼로로 달려가서 두 손 모아 꾸벅 배꼽 인사 했다.

“안녕하세요, 심 사장님. 저는 차정혁이라고 해요.”

“차정혁이라면······. 아, 성준 도련님의······.”

“네, 태성화학 때문에 거취가 붕 떠서 곤란하신 것 같아서요.”

나는 에둘러서 간 볼 생각 따윈 없었다.

“심 사장님이 혹할 만한 제안을 하나 가져 왔어요.”

나는 새끼손가락을 들었다.

“대신 비밀이에요.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도. 어때요?”

태성화학 심 사장은 빙그레 웃었다.

그는 어린아이 장난에 어울려 주겠다는 듯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양심과 도리에 어긋나는 비밀 제안이라면 받지 않겠습니다.”

“이건 아빠를 배신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큰아빠로 말을 갈아탄 것도 아니고, 할아버지나 태성을 저버리는 것도 아니에요.”

나는 동전 지갑에서 곱게 접힌 각서를 꺼내 내밀었다.

할아버지의 각서였다.

“이, 이건 회장님의······!”

내가 원하는 회사를 100% 지분으로 인수할 수 있도록 할아버지가 전력으로 뒷받침해주겠다는 각서였다.

단, 태성의 계열사는 넘보지 말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보셨으니 알겠지만, 제가 조만간 회사를 하나 인수하려고 해요.”

“혹시 어떤 회사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대한석유공사요.”

“······!”

태성화학 심 사장은 입을 떡 벌렸다.

“허, 대한석유공사의 지분 100%를······ 말이 쉽지,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허!”

너무 기가 차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반박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김 비서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돕고 있는 일입니다.”

“진심으로? 김 비서, 이게 가능하리라고 보십니까?”

“물론입니다.”

태성화학 심 사장의 표정이 변했다.

나는 몰라도 김 비서는 믿을 수 있기 때문이겠지.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할아버지의 각서를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다.

“우광과 달리 우리 태성엔 정유회사가 없어요. 태성도 정유 회사 하나쯤 장만할 때가 됐잖아요?”

“······!”

“정유회사는 초기 사업 자금이 워낙 어마어마하게 드는 종목이라서 새로 설립하는 것보다 인수하는 게 훨씬 싸게 먹혀요.”

이거 오일쇼크가 터지면 유공이 헐값에 나온다고 할 수도 없고.

차라리 야망과 돈의 논리로 설득하는 게 더 쉽고 빠르고 간단하다.

태성화학 심 사장은 야망도 있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남자거든.

“분명히 기회는 와요. 미리 준비하는 사람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뿐이죠. 그래서 난 투자회사를 세워서 그때를 대비하려고 해요.”

나는 동전 지갑에서 잘 접은 투자 약정서를 꺼냈다.

거물은행과 체결한 투자 약정이 적혀 있는 서류였다.

태성화학 심 사장의 목소리도 약정서를 들고 있는 손처럼 파르르 떨렸다.

“은행권까지 끌여들여서 유공 인수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내가 거물은행에 투자하고, 거물은행이 우리 투자회사에 투자하는 거죠.”

“현재 거물은행과 투자를 계약한 금액이······초기 투자금만 15억? 거기다 투자금을 차차 늘리겠다고요?”

“지하철역이 들어갈 땅 약 10만3천 평을 사들일 예정이에요. 거물은행과의 공동투자죠.”

나는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지하철 공사가 곧 시작돼요. 제법 짭짤한 목돈을 만질 수 있을 것 같죠? 그럼 깨끗하게 돈세탁 끝난 돈이 투자회사에 돌아와요. 몇 년 내에 수십 배로 불어서.”

태성화학 심 사장과 김 비서가 뜨억한 표정으로 동시에 날 돌아보았다.

< 탐나는 인재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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