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
나는 뉴스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화학 공장 화재 사고, 현 시각 사망자 52명, 부상자 137명>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래서 더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놀란 나머지 바보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말았다.
과거 태성화학 화재 사고와 사망자와 부상자 수만 다르지, 큰 얼개가 너무도 비슷해서 그만 등줄기에 소름이 쭉 돋았으니까.
‘수호신,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잖아.’
[······.]
‘태성화학 화재 사고. 우리가 막았던 거 아니었어?’
저승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잖아. 사람들 머리 위에서 깜빡거리던 황천길 카운트다운이나 주황색 화살표도 전부 사라졌었고.’
[······.]
‘태성화학 공장에도 이상이 없었어. 심 사장에게 태성화학 인수 협상을 하면서 안전시설 점검을 빼놓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고 나왔는데.’
태성화학 화재 사고 23명 사망, 166명 부상이 우광화학 화재 사고 52명 사망, 137명 부상으로 바뀌었다.
‘막으려고 했지만, 결국 막을 수 없었던 일이었나.’
[거기까지야 네 소관이 아니지.]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는 게 조금 씁쓸했다.
난 정말 최선을 다했거든.
[어차피 넌 태성의 가족을 살리는 게 목표였지 않나?]
그건 그렇지만.
[네가 구하려던 태성의 가족이 죽었던가? 그도 아니면 네가 고의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가?]
그 역시 아니었지만.
[대왕께서 왜 네게 실시간으로 공덕을 정산하여 주셨는지 생각해 보아라.]
문득 저승사자가 전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는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인명을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 또한 공덕이다.
-너는 이번 일로 23명의 예정된 죽음과 166명의 예정된 고통을 구원하였지. 대왕께서는 이를 무척이나 흡족하게 여기신다.
-이승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저승에서는 무엇보다 인명의 귀함을 최고로 친다. 대왕께서 특혜라 할 수 있는 공덕의 실시간 정산을 강행하게 되신 까닭이다.
그래서 의아했다.
‘그렇게 따지면 난 아직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것을 공으로 인정받은 건가?’
[넌 ‘죽음과 고통이 예정된 자들’을 구했다. 그것 또한 공덕을 인정받는다. 저승에서도 겪어봤잖나.]
아, 그러고 보니 나는 죽음이 예정된 열다섯의 어린 영혼을 구한 공을 인정받아 전생에 지은 죄를 사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전생에 지은 죄’라는 게 터무니없는 누명으로 밝혀졌지만 말이다.
[저들의 죽음은 너와는 관계없다. 네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하늘도 알고, 땅도 안다.]
저승사자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아주 찰나에 스쳐 지나간 표정이라 나는 순간 뭔가 잘못 봤나 싶었을 정도였다.
[선의로 쌓는 공덕이 있다면 고의와 악의로 점철된 업보도 있는 법이지. 그 역시 각자의 몫이다.]
혼잣말에 가까운, 아주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로.
‘그게 무슨 소리야?’
[거기까진 천기누설이다.]
천기누설이라는데 뭐라 따지고 들 방법이 없네?
안 그래도 내 부탁을 들어준다고 동티를······ 아!
‘동티 말이야. 이번에 딱히 문책받지 않았다는 말이지?’
[그게 왜?]
앞으로 다시는 절대로 동티 낼 생각이 없단 말도 안 하고.
오호라, 감 잡았어!
‘동티를 써도 문제가 안 되나 보네?’
[······!]
‘하기야. 지신(地神)이나 귀신도 동티를 낸 죗값을 치렀다는 말이 없더라고.’
[······엇!]
저승사자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모른 척 딴청을 피우는 게 아닌가.
‘어이, 수호신.’
[난 모르는 일이다. 본 차사는 동티를 어떻게 내는지 생각나지 않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 태성화학, 아니, 우광화학 화재 사고 때문에 그래. 네가 좀 다녀와야 할 데가 생겼다.’
[아아아아, 에붸붸붸붸. 본 차사는 못 들었다. 앗! 연속극 할 시간이다!]
저승사자가 홱 돌아앉았다.
어느새 텔레비전 속 화면엔 뉴스 속보가 끝나고 다음 일일연속극을 위한 광고가 나왔다.
[쉿! 이러다 연속극 놓치겠다. 방해하지 마라. 지나간 연속극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얼씨구?
이번에도 딱히 부정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다음에도 필요하다면 또 동티를 내주겠단 뜻으로 들리는데.
착각인가?
따르릉!
“여보세요?”
-정혁이냐? 할애비다. 성준이 퇴근했으면 좀 바꿔봐라.
“아빠요?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요즘 아빠가 맡은 공사가 무척 많다면서요.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바쁘세요.”
아버지 얼굴 본 지 벌써 열흘이 넘었다.
지하철 2호선 공사에 본격적으로 들어갔고, 강남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도로 확장 공사가 한창이라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시거든.
같이 했던 마지막 식사가 새해 첫날 할아버지 댁에서 먹었던 떡국이라면 말 다 했지.
-그래? 알았다. 혹시나 네 아빠가 퇴근하거든······.
그때 현관문이 열리면서 아버지가 들어왔다.
매일 밤늦게 퇴근하셔서 무려 열흘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앗, 할아버지! 잠깐만요, 방금 아빠 오셨어요!”
나는 전화기를 귀에 댄 채 방긋 웃었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그래.”
“할아버지 전화예요. 받아보세요. 급하게 찾으세요.”
“그래?”
아버지는 성큼성큼 걸어와서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어른들 대화에 끼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아서 비켜드리려는데, 아버지가 한 팔로 날 안아 들고 씩 웃으셨다.
“으앗!”
엉겁결에 들어 올려진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버지의 목덜미를 두 팔로 꽉 끌어안았다.
묵직하고 고급스러운 향수 냄새와 더불어 아버지의 체향이 훅 끼쳤다.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내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으려니, 아버지가 빙그레 웃었다.
“뽀뽀.”
손끝으로 제 볼을 톡톡 치면서 입술만 달싹여서 건네는 인사였다.
귀와 턱에 전화기를 끼워 들고서.
아버지의 뺨에 가볍게 입술을 대자, 아버지는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착하다.”
전화기 너머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화학 공장 화재 사고 소식, 너도 들었지?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급히 찾았던 용건이었다.
-지금 당장 태성그룹 본사 회의실로 오너라. 전 계열사 사장 전원을 호출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예, 알겠습니다.”
-방금 퇴근한 사람에게 재촉하긴 미안하다만,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저 아직 저녁도 못 먹었습니다.”
-우광의 김 회장이 청와대 호출을 받고 달려나갔다더라. 현 사안이 그 정도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작게 한숨을 내쉰다.
피곤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이었다.
‘아버지, 그렇게 걱정할 것 없습니다. 아마 태성 입장에선 나쁜 소식이 아닐 테니까요.’
태성화학은 이미 우광에 넘어간 상태다.
아버지가 문책당할 일도, 이 화재 사고를 책임질 일도 없을 터였다.
‘어쩌면 일이 아주 쉬워질 수도 있겠는데? 청와대에서 우광의 김 회장을 불렀다며.’
과거 23명이 죽고, 166명이 다친 태성화학 화재 사고 때, 청와대는 극도로 노하여 태성그룹 총수인 할아버지를 불렀다.
‘과거 할아버지는 청와대의 압박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사재 30억 원을 출연하여 태성재단을 만들어야 했지. 거기에 총수 자리에서 물러나기까지.’
과거에 태성이 당했던 일을 현재 우광이 고스란히 겪게 되는 걸까.
‘만일 우광의 김 회장이 자숙하는 의미로 총수 자리에서 잠시 물러나고, 사재 30억 원을 출연하여 우광재단을 만들면 태성화학은 어떻게 되는 거지?’
과거엔 그 틈을 이용해 태성건설이 계열 분리 독립해서 나갔고, 태성화학은 우광에 흡수되었다.
50%나 되는 태성의 지분을 땡전 한 푼 안 들이고 날로 먹은 것이다.
그걸 결정한 건 태성건설 사장이자 그룹 총수의 동생이었던 차윤성이었고, 총수 자리에서 물러난 할아버지는 속수무책으로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 우광이 한 짓을 태성이라고 못 할까?
‘음, 왠지 남의 불행을 빌어서 기회를 얻게 된 것 같긴 한데.’
난 태성화학을 어떻게 되찾아 올까를 고민하면서 재인수 협상을 준비했었다.
뒷골목에서나 쓰는 시정잡배 같은 무리수 대신 오일쇼크란 시대적 상황을 이용할 작정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우광증권까지 꿰어서 덫을 놓았다. 그런데 웬걸?
우광화학 화재 사고 덕분에 그 시간이 대폭 줄어들게 생겼다.
‘다시 잡기 어려운 기회이긴 해. 딱히 내가 죄진 것도 없는데, 굳이 굴러온 행운을 마다할 필요는 없지 않나?’
마침 우리에겐 인수 합병에 관한 계약서까지 있거든.
‘이거 잘만 하면 태성화학을 되찾는 것뿐만이 아니라 우광증권은 물론 어음 150억까지 청구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들이 퍼즐처럼 머릿속에 착착 짜맞춰졌다.
그때 아버지가 까끌까끌 수염이 올라오는 뺨으로 내 뺨을 비볐다.
“오늘은 우리 정혁이 맛있는 거 사주려고 일찍 왔는데, 이거 어쩌지?”
아버지는 요즘 잠잘 시간도 부족할 만큼 바쁘게 일하느라 힘든 거 다 아는데.
“짜장면은 다음에 사줘야겠다.”
짜장면? 갑자기 그건 또 왜······ 아!
‘큰아버지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면서 짜장면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무심코 네, 하고 대답했었구나.’
그깟 짜장면이 다 뭐라고.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할아버지도 정말 너무하시네. 밥은 먹여가며 일을 시켜야 할 것 아냐!’
그렇게 아버지는 밥 한술 떠보지도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멸치 똥을 왜 땄는데!’
아버지 좋아하신다는 칼국수 끓여드리려고 그랬다.
‘어이, 수호신. 따라가 봐.’
태성이 왜 갑자기 저렇게 부산을 떠는지 궁금해졌다.
[아직 연속극 다 안 끝났······!]
‘이거 잘만 하면 굵직한 기업 몇 개를 날로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금방 다녀오지.]
저승사자가 연기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 * *
태성그룹 본사 회의실에서는 전 계열사 사장들이 모여서 긴급 사장단 회의가 열렸다.
다들 심각한 얼굴이었다.
회의실 가장 상석에는 할아버지가 앉았다.
“다들 들었지? 태성화학, 아니, 우광화학 공장에서 난 화재 사고로 우광의 김 회장이 청와대의 호출을 받아 불려 나갔다. 그래서 다들 모이라고 한 거다.”
큰아버지와 둘째 큰아버지는 물론 우리 아버지와 고모도 자리에 앉았다.
큰아버지가 물었다.
“왜 사고는 우광에서 났는데, 난리는 태성이 부리는 겁니까?”
“그걸 묻기 전에 이번 우광화학 화재 사고에 대한 뉴스 브리핑이나 읽고 말해.”
계열사 사장들도 테이블 위에 놓인 자료를 읽기에 여념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물었다.
“김 비서, 화학 공장 화재로 인한 피해는 얼마나 되지?”
“현재까지 사망 56명에 중경상 142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뉴스에서 속보로 방송됐던 것보다 사상자 수가 늘었다.
“우광화학 공장의 사고를 당한 인부들의 신원 확인에 어려움이 있다며?”
“우광 측 피해는 아직 정확하게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제6 공장에 화재가 커서 아마 인명은 물론 재산상 피해 또한 상당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재산상 피해는 얼마나 되지?”
“적게 잡아도 약 10억 원 이상입니다.”
할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공장 화재는 대체 왜 난 거야? 화재 원인이 뭐래?”
“글쎄요. 청와대의 발표에 따르면 안전사고라는 것 같습니다.”
이 역시 과거와 비슷했다.
태성그룹 보고서에도 특이사항 없이 한 줄 처리 된 일이었다.
<태성화학의 화재 사고로 23명이 죽고, 166명이 병원으로 호송됐다.>
하지만 태성화학 화재 사고는 태성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중대한 기점이 되고 말았다.
태성그룹 보고서에는 이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다.
<태성화학의 화재 사고 이후 태성은 차마 손쓸 새도 없이 도미노 무너지듯 걷잡을 수 없는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계열 분리 독립하여 떨어져 나간 태성화학과 태성건설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는 장남과 차남으로 나뉘어 분열을 시작했다.>
<그렇게 태성은 재계 서열 5위에서 5년 만에 재계 서열 198위까지 곤두박질치고 만다.>
<다들 이대로 공중분해 되지 않을까 우려했던 태성의 암흑기였다.>
왠지 이번엔 태성이 아니라 우광이 그 어두운 길을 걷게 된다는 게 좀 다를 것 같지만 말이다.
<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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