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할 수 없는 순간 >
철구 아저씨가 대국민 기자회견을 한 이후, 매일같이 신문과 방송은 크게 떠들어댔다.
<우광건설 김우석 사장이 우광화재 방화를 지시했다!>
<우광그룹 형제 싸움에 죄 없는 직원들만 죽어났다!>
<우광화학 사망 보험금, 달랑 10만 원! 대기업의 사회적 의무에 책임을 묻는다!>
대한민국의 모든 신문 기사가 우광을 향한 비난 일색이었다.
신문 1면을 비롯해, 정치면, 경제면, 사회면, 문화면, 국제면까지 원색적인 기사가 쏟아졌다.
우광화학의 유족들이 눈물 어린 인터뷰로 억울함을 호소했고, 대학교수들은 칼럼으로 통렬하게 일갈했다.
신문사만큼이나 방송국도 연일 우광을 집중 조명 했다.
-요즘 우광화학 방화에 관한 관심이 연일 뜨겁습니다. 전문가 세 분을 모시고 이에 관한 논평의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이곳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입니다. 우광화학 방화에 대한 과학수사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에 달려왔습니다!
-해당 공장에서 전혀 취급하지 않는 인화성 물질이 다량으로 발견된 이유를 취재했습니다!
신문과 방송에 힘입어 우광 노조들은 연일 시위를 벌였다.
“우광의 자리다툼에 방화가 웬 말이냐! 우광은 억울한 희생에 책임져라!”
“책임져라! 책임져라!”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나 몰라라가 웬 말이냐! 우광은 지금 즉시 사과하라!”
“사과하라! 사과하라!”
오늘도 어김없이 우광 노조의 시위에 야당 의원들이 가세했다.
이곳이 국회인지, 우광의 본사인지 헷갈릴 만큼 많은 숫자의 야당 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우광의 김 회장은 지금 즉시 해명하세요! 진짜 자리다툼 때문에 불 지른 게 맞습니까?”
“권력이 사람 목숨보다 더 중하단 말입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야당 의원만 가세한 게 아니라 여당 의원들까지 대거 모였다.
모든 신문과 언론이 우광 때려잡기를 시작한 마당이다.
우광을 향한 민심이 사납게 들끓을 때였다.
민심이 곧 권력인 국회의원들이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우광의 입장을 제대로 표명하세요! 진실을 밝히고 국민께 머리 숙여 사죄하십시오!”
“우광화학 방화는 물론이고 피해 수습이 겨우 이겁니까? 이게 우광의 최선입니까?”
“총수면 총수답게 책임지세요! 비겁한 침묵은 그만두세요!”
사람들도 모이기만 하면 한목소리로 우광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날리곤 했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이래서 문제야. 몸 바쳐 죽도록 일하다가 죽었는데, 사망 위로금이 고작 10만 원?”
“권력이 다 뭐라고 이렇게 사람까지 죽일 일인가?”
“우광 하는 거 보니까 정나미가 뚝 떨어져서 난 주식 전부 팔아버렸어!”
“저런 악덕 기업은 망해도 싸! 난 다음부터 우광 제품은 절대 안 쓰려고!”
우광의 악재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우광그룹 본사에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이 영장을 들이밀며 외쳤다.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지금부터 압수 수색을 시작하겠습니다.”
들고 온 박스에 닥치는 대로 우광의 장부와 서류를 마구 집어넣기 시작했다.
책상을 뒤지고, 캐비닛을 열어 쓸어 담는다.
검찰이 한바탕 휩쓸고 간 다음 날엔 또 다른 무리가 들이닥쳤다.
“국세청에서 나왔습니다. 세금 탈루 혐의가 확인되었습니다.”
기업에게 검찰보다 더 무서운 게 바로 국세청이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기업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그중에서도 정경유착으로 덩치를 키워온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우광이었다.
따르릉! 따르릉!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는다.
흡사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처럼 엉망진창이 된 회장실에서 장 실장이 신음을 흘리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검찰총장도, 국세청장도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김 회장은 말이 없었다.
“방송국장도, 신문사장도 전화를 받지 않기는 매한가지고요.”
김 회장은 뒷짐을 진 채 유리창 너머를 바라볼 뿐이었다.
오늘도 본사 앞에는 노조 조끼를 입고 피켓을 들고 있는 우광 노조가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여당은 물론이거니와 야당 소속 의원들도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청와대 경호실은 물론이고 비서실과······.”
따르릉!
회장실에서 울리는 전화였다.
장 실장은 급히 전화를 받았다.
안 그래도 창백하던 장 실장의 안색이 바로 시커멓게 죽었다.
달칵.
전화기를 내려놓는 손길은 비장하기 짝이 없었다.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청와대에서?”
“각하께서 회장님을 부르신다고 합니다. 몹시 진노하셨다는군요.”
김 회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부른다는 데 가지 않을 수도 없다.
“각오 단단히 하고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장 실장의 목소리에는 체념과 걱정이 가득했다.
* *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벽에 크게 청와대 마크가 금색으로 찍혀 있고, 집무실 책상 위에는 국기가 걸려 있었다.
집무실 책상에 앉아서 보고서를 검토하던 대통령이 탁 소리가 나도록 서류를 덮었다.
“우광이 뇌물을 처먹인 고위 관료가 이렇게 많아?”
청와대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았다.
비서실장이 올린 결제 서류에는 태성에서 받은 뇌물 장부 명단이 포함되어 있었다.
“뒤에서 적당히 받아먹는 것까지는 탓할 생각 없다. 하지만 이건 정도가 지나쳐.”
노기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이놈들을 전부 쳐내면 대한민국 국정이 마비될 수준이라니. 나를 우습게 보지 않고서야.”
사실 태성이 바친 명단엔 그것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저기엔 회유할 생각이 없는,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의 정적들 명단으로 추려 올렸을 뿐이었다.
나머지 인간들은 이미 이것을 약점으로 회유와 포섭이 끝난 상태.
“각하, 어떻게 할까요?”
“털어. 민심이 향하는 곳이 곧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까닭에 정당성에 흠이 있는 정부였다.
대통령이 무서워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민심뿐이었다.
그런 민심이 우광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돌을 던지고 있는 상황.
“대선이 코앞이야. 올해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물론 총선까지 열린다.”
정치적으로 무척 중요한 해였다.
제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제10대 국회의원 총선이 예정되었다.
“여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야 할 때야. 이건 다른 어느 때보다 민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시기란 뜻이다.”
10월 유신 이후 대선뿐만 아니라 총선에 관한 법이 바뀌었다.
총 231명의 국회의원 중 154석은 지역구에서 중선거구제로 선출되었고, 77석은 유신정우회란 이름하에 간선제로 뽑혔다.
올해를 끝으로 6년 임기의 유신체제 1기가 마무리된다.
따라서 대통령으로선 여당의 압승을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광 노조의 시위가 연일 거세지고 있습니다. 경찰 인력을 파견하여 잠재워야 할까요?”
“놔둬.”
대통령은 웃었다.
“정부가 나서서 민심을 막으려 들면 쓰나.”
독재 타파와 노동인권을 부르짖으며 시위를 벌일 때는 강경 진압을 명했던 대통령이었다.
“우광 노조 시위에 야당이 인기를 얻는 건 경계해야겠지. 여당 의원들도 함께 투입하고, 인기몰이에 불을 지펴.”
노조 시위를 탄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여기 적혀 있는 놈들, 특히 야당 인사들은 중정으로 보내고.”
“예, 각하.”
청와대 비서실장이 숙청이란 뜻을 받들기 위해 물러났다.
대통령 집무실에는 대통령과 경호실장, 단둘만 남았다.
대통령은 입꼬리에 걸린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각하, 태성의 차 회장이 대선 자금을 바쳤습니다. 장충동으로 보내 놨는데 꽤 두둑합니다.”
“차 회장이 후원을 자처해? 해가 서쪽에서 뜰 노릇이로군.”
대통령의 미소가 더 진해졌다.
“죽을 때가 되면 안 하던 짓을 한다더니. 차 회장의 신변에 무슨 변고라도 있었나?”
“변고가 생길 뻔했지요. 우광의 회장실에서 이런 게 나왔습니다.”
청와대 경호실장이 슬쩍 집무실 책상 위로 서류 묶음을 올려놓았다.
검은색 서류 커버에 검찰 마크가 떡 하니 붙어 있었다.
“우광그룹 압수 수색에서 나온 물건을 토대로 작성한 검찰의 보고서입니다.”
“우광의 회장실에서 나온 물건 때문에 차 회장이 변고를 당할 뻔했다?”
“우광과 태성은 혼약을 전제로 태성화학을 공동 설립했잖습니까. 우광이 화학 공장 방화 때문에 난처해지자 태성을 물고 늘어지려 했나 봅니다.”
대통령은 서류를 휙휙 넘겨보았다.
“우광 회장이 증인과 증거를 날조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아랫사람을 매수하려 든 정황이 명확하더군요.”
“태성을 방패막이 세우려 했군.”
“태성이 재계 5위, 우광이 재계 9위입니다. 두 기업이 함께 쓰러지면 국가 경제가 넘어집니다. 각하께서 적당히 덮어주시길 바랐나 봅니다. 괘씸한 놈입니다.”
“간뎅이가 부었나?”
대통령의 미간이 구겨졌다.
“내 눈과 귀를 가리려 들었던 것도 모자라, 국가 경제를 인질로 삼아 날 협박하려 들어?”
똑똑똑.
“각하, 우광그룹 김우광 회장이 도착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대통령은 차갑게 대답했다.
“들여보내.”
이미 대통령의 안색은 붉으락푸르락한 상태였다.
* * *
그날 밤 이번에도 일일연속극을 중간에 끊고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우광 본사 대강당에서 열린 우광그룹 총수 김우광 회장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이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광화학 방화에 관해, 저 김우광은 우광그룹을 대표해 고개 숙여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기다렸다는 듯이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우광화학의 피해자와 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다시 한번 깊이 사죄드립니다.”
우광의 계열사 사장과 임원들이 우렁차게 외쳤다.
“죄송합니다!”
“사죄드립니다!”
김우광 회장은 작게 떨리는 손으로 미리 작성했던 사과문을 붙들었다.
손만큼이나 목소리가 잘게 떨리며 마이크를 타고 흘렀다.
“우리 우광은 방화에 가담한 우광 계열사 사장들을 해임하고, 검찰과 중정의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을 약속드리며, 아울러 피해를 통감하는바 10억을 출연하여 우광재단을 설립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텔레비전에 커다란 글씨로 자막이 떠올랐다.
<우광의 약속: 우광재단 설립 및 방화범 해임>
우광의 계열사 사장과 임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우광은 책임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법 앞에 공정한 심판을 받겠습니다!”
“국민들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마저 사과문을 읽어 내려가는 우광 김 회장의 목소리는 침통하기 그지없었다.
“우광화학을 사랑하는 모든 고객과 국민 여러분의 불안감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저 김우광은 결단을 내리고자 합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총수직에서 물러나 자숙하겠습니다.”
텔레비전 자막이 즉시 교체되었다.
<김우광 회장 총수직 사퇴 결정>
“저 김우광이 앞장서서 사고 수습을 책임지겠습니다.”
우광 계열사 사장과 임원들 또한 침통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책임지겠습니다!”
“우광의 잘못입니다!”
우광의 김 회장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 숙였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이번 우광화학 화재 사고로 피해를 보신 모든 분과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렇게 우광의 김 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직후 경찰이 투입되어 우광 노조는 진압되었고, 방송국 카메라는 여당 의원들에게 집중되었다.
여당 의원들이 기뻐하며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대고 마이크에 입술을 붙여가며 크게 외쳤다.
“정의는 승리한다! 여당과 국민들이 승리했습니다!”
“악덕 기업인 우광이 무너졌습니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민심이 곧 천심입니다!”
“우리가 해냈습니다! 대기업의 횡포를 막고 정의를 바로 세운, 기념비적인 순간입니다!”
방송국 카메라 어느 곳에도 며칠 동안 목 터져라 외쳐댄 우광 노조들의 모습은 클로즈업되지 않았다.
붉은 띠를 둘러쓰고 같이 외쳤던 야당 의원들도 잡히지 않았다.
경찰이 우광 노조들을 해산시킬 때, 몇 명의 야당 의원들이 끌려가는 것도 나오지 않았다.
방송국 카메라와 신문사 카메라에 잡힌 것은 오직 승리와 정의를 부르짖는 여당 의원들뿐이었다.
달칵.
할아버지는 텔레비전을 껐다.
태성그룹 본사 회장실은 텔레비전 소리가 사라지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그 침묵을 대신한 건 따르릉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였다.
-차 회장, 이만하면 내 진심이 눈에 보이려나?
청와대 경호실장이었다.
-각하께서 신년 오찬을 기다리고 있다는군. 아마 기대해도 좋을 거야.
“감사합니다, 실장님.”
-지금처럼만 해. 각하께서 크게 기꺼워하셨다. 태성이 이번 총선 승리에 한몫 보태면 더 좋고.
할아버지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정혁아, 할애비는 아무래도 계열사 임원 회의를 긴급 소집해야 할 것 같구나.”
할아버지는 나를 무릎 위에서 내려놓았다.
나는 호로록 마시던 쌍화차를 내려놓았다.
“이제 그만 이 할애비를 찾아온 용건을 말해줬으면 한다만.”
나는 동전 지갑을 열어 곱게 접힌 종이를 몇 장 꺼냈다.
전부 황금빛이 휘황찬란하게 터져 나오는 종이였다.
“할아버지, 혹시 이게 뭔지 알아보시겠어요?”
태성을 돕는 배후에게 보냈던 감사 편지였다.
“······!”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격하게 흔들렸다.
< 피할 수 없는 순간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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