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썩은 놈들 굴리는 게 내 전문! (1) >
“태성건설 임원들을요?”
심 사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녀석들을 염두에 두고 계셨습니까?”
“그자들이 왜 임원 자리에서 잘렸는지는 아시죠?”
할아버지가 바보도 아니고.
임원급 고급 인력을 저리 내친 것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자들은 횡령했고, 배임했고, 업무 태만했어요. 솔직히 주워다 쓸 생각도 없었는데요.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죠.”
나는 손끝으로 볼을 긁적였다.
“심 사장님이 과음과 과로로 돌연사하는 걸 보느니, 아쉬운 대로 그놈들이라도 갖다 써야지 어쩌겠어요.”
“도련님······.”
아니, 이게 뭐라고 그렇게 감격스러운 눈으로 날 보시나.
“도련님께서 절 그렇게까지 생각해주고 계실 줄은······.”
심 사장은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사실 태성건설 임원들은 그리 무능한 이들이 아닙니다.”
“알고 있어요.”
“예?”
“우리 아빠가 중동에서 따온 건설 수주금을 가지고 위아래로 신나게 돈 잔치를 벌이곤 했다죠? 그렇게 위아래로 돈을 펑펑 써댔는데 어떻게 태성건설이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었을까요?”
무능한 사장과 임원들 덕분에 주식은 똥값이 됐을지언정.
태성건설은 아직도 국내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건설사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간 태성건설 임원들이 무능함을 가장해 몸을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그게 아니고서야 말이 안 되잖아요.”
‘건설 기술 하면 태성이 으뜸!’이라는 수식어가 빛바래지도 않았다.
“말이 안 통하는 무능한 상사를 설득하면서 일을 벌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일을 안 벌이는 게 낫다. 회사 일을 대충대충 적당히 굴리기로 결심한 거죠.”
“도련님께서 속사정을 짐작하고 계셨을 줄은 몰랐습니다만······.”
회사 일엔 진심인 할아버지가 모든 것을 알면서도 적당히 눈감아 줄 수 있었던 이유였다.
“부족한 동생을 도와주길 바라며 회장님께서 직접 뽑은 이들이 꽤 됩니다. 그 실력은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심 사장은 한숨처럼 나지막하게 말했다.
“하지만 차윤성 사장이 직접 꽂아놓은 임원들은 아닙니다. 그 무능하고 파렴치한 놈들은 제 쪽에서 사양하겠습니다.”
“동감이에요. 나도 굳이 쓸모없는 기생충을 데려오느라 수고를 들이고 싶진 않거든요.”
하필 작은할아버지는 골라도 꼭 그런 놈들을 골라서 썼나 몰라.
하여간에 작은할아버지!
손대는 것마다 죄다 족족 말아먹었다더니!
“하지만 할아버지가 꽂아넣은 놈들도 속이 시커멓기는 마찬가지예요.”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놈들은 기껏 따낸 국내 건설 수주도 나 몰라라 내팽개치며 인력과 장비를 놀렸고.”
태성건설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아버지가 중동에서 돌아올 때까지 태성건설을 잘 건사해도 봐줄까 말까 한데.
놈들은 아버지의 밥그릇에 똥물을 끼얹었다.
“우광건설 사장에게 금고를 열어주는 것을 모른 척했어요.”
실제로 할아버지는 내가 잘라낸 우광건설 뇌물 장부의 세 페이지를 볼 때까지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듣자 하니 할아버지가 그놈들에게 거둬간 것은 뒤로 받아먹은 뇌물과 횡령한 돈뿐이라면서요?”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 회장님께서 해고하고 재산을 몰수하는 것으로 봐주셨다더군요.”
“할아버지에겐 태성건설 임원들과 쌓은 정과 의리와 추억이 있잖아요.”
그간 임원들의 노고와 고충을 익히 알고 있었고, 또한 쌓아온 신뢰가 있었기에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 줬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거든요.”
나랑 그놈들 사이에 쌓인 신뢰란 게 어디 있어?
악감정이라면 몰라도!
“곱게 용서해줄 생각은 없어요. 한번 곳간을 털어먹은 놈들은 틈만 나면 곳간을 기웃거리기 마련이거든요.”
“예. 저도 그게 마음에 걸립니다. 도련님께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더 열심히 뛰면 그만이니······.”
“남아도는 고급 인력을 굳이 안 써먹을 이유도 없잖아요. 내가 그깟 놈들을 무서워할 것 같아요?”
뒷골목에 굴러다니는 조폭들까지 거둬 알차게 써먹었던 나다!
하물며 태성건설 임원 따위야.
골수까지 발라먹고도 남지!
“태성건설 임원들 굴리는 건 내게 맡겨요.”
속 시커멓게 썩은 놈들 굴리는 거야 내 전문이지!
나는 방긋 웃었다.
“아직 경영이란 건 좀 낯설어서 재벌가 시스템에 따라 부하직원 곱게 다루는 덴 미숙할지 몰라도, 뒷골목 쓰레기들을 개같이 다루는 건 자신 있거든요.”
“어떻게 하시려고요?”
“인생은 원래 당근과 채찍! 세상사 기름칠이 안 통하면 매질이라도 처바를 수밖에요.”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개같이 굴려볼게요.”
“허······!”
“두고 보세요. 개처럼 굴리다 보면 개새끼도 제법 쓸만해진다니까요?”
뒷골목 깡패 새끼도, 악질 사채업자도, 냉혹한 조선족 청부업자도, 음흉한 사기꾼도, 답 없는 약쟁이는 물론 뒤통수 전문인 해결사까지.
수틀리면 잡아다가 정신 개조시켜가며 사정없이 굴려먹던 나다!
심 사장은 자꾸만 벌어지려는 입을 꾹 다물었다.
“태성건설 임원 정도 되는 고급 인력을 거둬들이면 일단 내 몫으로 인수한 계열사를 굴리고도 남겠죠?”
내 몫으로 확실하게 낙점받은 우광의 계열사는 우광화학, 우광증권, 우광건설이었다.
“역시 우리 도련님! 바로 그거죠! 그게 바로 경영의 핵심입니다!”
어라?
“세상에 어디 말 잘 듣고 똑똑한 사람만 산답니까? 온갖 종류의 인간군상을 적재적소에 꽂아 개처럼 굴려가며 알차게 뜯어먹는 것! 그게 바로 경영입니다!”
짝. 짝. 짝. 짝.
심 사장은 감복한 듯 박수를 쳤다.
“정혁 도련님껜 정말 탄복할 수밖에 없군요.”
짝. 짝. 짝. 짝.
“제가 오늘 첫 수업을 준비하면서 딱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수업 목표만 하나 이루면 성공이라며 들어왔습니다.”
음?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자신만의 철학과 신념이 있어야 하는 법!”
심 사장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아무리 낙하산으로 내려와도 실무의 밑바닥을 모르면 임원들에게 농락당하기 십상이거든요.”
임원들은 치열한 경쟁 끝에 그 자리까지 기어오른 사람들이다.
사내 정치에는 이골이 나 있는지라 애송이 하나 벗겨 먹는 건 일도 아닐 터.
“중심을 잡지 못하면 남들에게 휘둘리는 부평초 신세를 면치 못합니다. 임원들 손바닥 위에 올라 허수아비 바지사장이 되어서야 쓰겠습니까?”
심 사장은 뿌듯하게 웃었다.
“굳이 잡무와 실무를 배우라며 밑바닥 사원부터 올라오게 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심 사장은 내 어깨를 잡고, 눈을 마주쳤다.
“도련님께서 20명의 애송이 엘리트들을 임원으로 키우시겠다면서 이 자리를 마련했을 때, 저는 놀랐습니다. 경영의 핵심을 꿰뚫은 행보였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게 뭐라고 이리 흥분할 일인가?.
“도련님께서 태성건설 임원들을 거둬 쓰겠다는 말을 하셨을 때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배신한 수족을 다시 거둬 쓰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 내리기 어려운 배짱 좋은 결단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야······.”
“예, 배신한 놈들을 다룰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지금 제가 이리 흥분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심 사장은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쓰레기 같은 놈들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갖다 쓰는 게 아니라, 그놈들을 개같이 굴릴 작정을 하시고, 과감하고 냉혹하게 손쓸 계획을 세우셨잖습니까? 바로 그거죠!”
심 사장은 대놓고 감탄사를 터뜨렸다.
“역시 도련님! 리더의 품격을 타고나셨군요!”
이건 그냥 뒷골목에서 제가 즐겨 쓰는 수단을 썼을 뿐입니다만.
“도련님의 가슴에 그거 하나만 심어줄 수 있어도 성공한 수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크으!”
심 사장은 엄지와 검지로 콧등을 짚어가며 감격했다.
“이미 자기만의 확고한 신념을 정립했고, 그 뜻을 관철하기 위한 수완과 손속까지 이리 완벽하시다니!”
심 사장은 연거푸 크으, 크으거리며 몸을 떨었다.
“그래, 이거지! 이게 바로 태성의 미래다! 우리 정혁 도련님이, 대계를 위한 포석 그 자체지! 으하하하!”
아무래도 이거 안 되겠구만, 심 사장!
나는 동전 지갑에서 은단을 꺼내 와하하, 웃는 심 사장의 입속에 와르르 뿌려주었다.
그제야 심 사장이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낮술이 과하셨나 보네요. 적당히 좀 마셔요. 간 썩어요.”
“그게 아니라······ 크흠! 예, 자중하겠습니다.”
심 사장은 순식간에 은단을 삼켜버리고, 양복 안주머니에서 구취제거제를 꺼내 칙칙 뿌렸다.
“하여튼 저 심원철, 도련님의 행보를 기대하겠습니다.”
* * *
나는 특별히 심 사장님을 현관까지 배웅했다.
다른 과외 선생에게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물론 받아내고 싶은 게 있어서였다.
“심 사장님, 뭐 잊은 거 없어요?”
“잊은 거라뇨?”
“아까 수업 시간에 꺼냈던 자료요. 도로 거둬가셨잖아요.”
“아······!”
심 사장은 초장부터 내 기를 꺾기 위해 일부러 투자회사의 실무를 가져왔다.
심 사장은 쑥스러워하면서 코끝을 긁적거렸다.
“인제 보니 도련님께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조잡한 잡무일 뿐입니다만.”
“주세요. 요즘 심 사장님이 공들이는 투자 건이 뭔지 궁금해졌거든요.”
나는 손을 내밀었다.
심 사장은 내 자그만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몇 번이나 망설였다.
그러더니 눈을 질끈 감고 서류 가방을 열어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별건 아닙니다. 그때 정유회사 인수에 관해 말씀하셨기에, 우광정유를······ 크흠!”
그러니까 우광정유를 내 손에 쥐여주기 위해 이렇게 매일 간을 혹사시켜가며 술 접대를 했단 말이지?
“그때 분명히 내 목표는 대한석유공사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요.”
“크흠, 혹시나 대한석유공사는 물 건너가도 우광정유라면 어떻게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흐음.”
“솔직히 우광정유까지 합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정유회사를 얻게 되지 않을까요? 흠흠!”
아니지.
태성에 정유회사가 있다면 유공을 순순히 내어줄 리 있나.
정부는 어떻게든 기업에 석유에 대한 부담을 나눠서 떠넘길 생각뿐일 텐데.
이걸 대놓고 말할 수도 없고!
‘어?’
아니, 근데 이건 또 뭐야?
‘우광정유는 분명 똥빛이었는데, 여긴 왜 중간에 황금빛이 나는 서류가 끼워져 있지?’
내가 아까 잘못 봤던 게 아니었다.
나는 홀린 듯이 서류를 뒤적거렸다.
<석유파동이 발생하는 경우를 상정한 우광정유 인수 계획안>.
황금빛이 번쩍거리는 서류의 정체였다.
머릿속에 번개처럼 번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 유공부터 인수한 다음에 우광정유를 인수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나는 심 사장이 직접 작성한 계획안을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늦은 밤 나는 유종태를 찾아갔다.
과외 선생들에게 늦은 시간까지 시달렸는지, 유종태는 퍽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련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태성건설에서 잘린 임원들을 거두려고 해요.”
“예?”
유종태는 두 눈을 껌벅거렸다.
“음, 아무래도 그 개새끼들과의 첫 면담은 청계산에서 시작하는 게 낫겠죠?”
“청계산이요?”
“우리 집 지하실도 쓸만하긴 한데요. 방음과 뒤처리에 신경 쓰기 귀찮아서요.”
“······.”
늘어져 있던 유종태는 즉시 자세를 바로 했다.
“태성건설에서 잘린 임원들의 뒷조사 좀 부탁해요. 이미 할아버지가 한 번 턴 뒤니까 훨씬 쉬울 거예요.”
“비자금 내역을 조사해 오란 말씀이시죠?”
“그 정도로는 부족해요. 지저분한 사생활까지 모조리 캐와요.”
나는 씩 웃었다.
“밧줄이랑 야구방망이, 삽 몇 자루 넉넉하게 준비하고 청계산 으슥한 곳 좀 알아보시고요.”
“예? 그걸로 대체 뭘 어쩌시려고요?”
“사람 묻을 구덩이 몇 개 미리 파놓으면 더 좋고요.”
“구덩이를······?”
“개수는······ 태성건설 임원들 머릿수만큼이면 돼요. 목만 내놓고 파묻을 거니까 깊이.”
유종태는 입을 떡 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몇 가지 당부를 덧붙였다.
“아, 손도끼도 날을 잘 갈아서 준비하시고요.”
“손도끼는 뭐에 쓰시려고요?”
“고작 만년필로 사인하고, 술 접대나 하며 돌아다니는 데엔 손가락 몇 개 없어져도 문제없잖아요?”
“······마취제나 수면제를 따로 준비해 놓을까요?”
“아니죠.”
나는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재갈이나 준비해요. 이왕이면 최고급으로.”
유종태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입안에 처넣을 솜뭉치까지 확실하게 준비해 놓겠습니다.”
“명심하세요. 뒷조사로 캔 행적이 더러우면 더러울수록 뒤처리가 깔끔해진다는 것을요.”
“물론입니다. 피 볼 일 없도록 더러운 치부로 골라 탈탈 털어오겠습니다. 가족은 물론 사돈에 팔촌까지 죄다 탈탈탈!”
유종태는 허리를 굽히더니 바람처럼 달려나갔다.
< 썩은 놈들 굴리는 게 내 전문! (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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