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 오찬 (2) >
난데없는 돌발행동에 좌중이 싸늘하게 얼었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취재하러 온 기자들을 향해 버럭 외쳤다.
“카메라 꺼! 녹음기도 꺼! 허튼수작 부리는 새끼는 중정에 끌고가겠다!”
“꺼, 껐습니다!”
“기사 함부로 쓰면 어떻게 될지는 알 테고. 내 말을 새겨듣는 게 좋을 거야.”
“무, 물론입니다! 기사 안 썼습니다! 사진 안 찍었어요!”
“부르기 전까지 물러가 있어! 당장 안 꺼져?”
“갑니다! 바로 나가겠습니다!”
화기애애한 장면을 보도하려 했던 기자들이 겁을 잔뜩 집어먹고 우르르 나갔다.
쾅!
만찬회장 문이 닫히자마자, 우광의 김대식은 엎드린 채 큰 소리로 외쳤다.
“각하, 우광을 살려주십시오!”
그를 내려다보는 대통령의 눈초리는 싸늘했다.
좌중에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 속에도 김대식만 처절하게 외쳤다.
“우광은 재계 서열 9위인 대기업입니다. 이대로 우광이 무너진다면 대한민국 경제가 휘청일 겁니다.”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각하의 개가 되겠습니다!”
백기 투항이었다.
“짖으라면 짖을 것이고, 물라면 물 것입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김대식은 고개를 들어 대통령과 눈을 마주쳤다.
“짖을까요?”
“하······?”
“월월! 멍멍멍!”
무거운 침묵 속에서 경악한 숨소리가 간간이 섞여 나왔다.
재벌그룹 총수들은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우광의 김대식을 내려다보았다.
군 수뇌부들은 경멸 어린 눈초리를, 행정부 고위 관료들은 비웃음을 나지막하게 흘렸다.
“각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뭐든 해내겠습니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김대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훌륭한 지도자, 발전하는 선진국가를 선전하고 싶으십니까? 우광에게 맡겨주십시오! 누구보다 화려하게 여론을 포장하겠습니다!”
여론전은 우광의 주특기였다.
“수출 실적이 필요하십니까? 그 역시 우광이 두 팔 걷어붙여 따르겠습니다! 각하께서 원하신다면 우광은 내수는 포기하고 오직 수출만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대통령은 눈에 보이는 실적과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중시했다.
정당성이 부족한 군부 쿠데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독재정권은 손가락질받기 일쑤였다.
“자주국방을 달성하고 싶으십니까? 보다 강한 화력이 필요하십니까? 그럼 우광은 방산전문 기업으로 탈바꿈하겠습니다!”
우광의 김대식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차갑고 모멸적인 눈초리들을 마주했다.
그런데도 그는 웃었다.
“대선자금, 정치자금 조달처로 우광을 이용해주십시오. 누구보다 뒤탈 없이 깨끗하게 돈세탁할 수 있습니다!”
군 수뇌부와 행정 고위 관료들은 어색한 헛기침을 흘렸다.
우광건설에서 받아먹은 뇌물로 인해 어제 혼쭐이 난 터였다.
그걸 대놓고 어필할 정도로 뻔뻔할 줄은 몰랐기에, 그들은 김대식을 보며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싸늘하게 김대식을 내려다보던 대통령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거 재밌군.”
대통령이 가볍게 턱짓하자, 청와대 경호실장이 눈치껏 앞으로 나서면서 버럭 외쳤다.
“각하 앞에서 뭣들 하는 짓이야? 여기가 시장통 길바닥이야? 구경났어? 모두 자리에 앉아!”
대통령은 저벅저벅 걸어가 원탁의 가장 상석에 앉았다.
청와대 경호실장이 보란 듯이 대통령의 오른편에 앉았고, 청와대 비서실장은 왼편에 앉았다.
그 옆엔 중정부장이, 또 그 옆엔 육군보안사령관이 자리했다.
“식사하지.”
오찬에 초대된 재벌그룹 총수들은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명패가 적힌 이름에 따라 지정된 자리였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군 수뇌부와 행정 고위 관료들의 자리는 없었다.
그들은 원탁 주변을 빙 둘러싸듯 섰다.
“크흠, 각하. 아무래도 자리가 모자란 듯하여······.”
“그럴 리가.”
대통령은 서 있는 자들을 본 체도 하지 않았다.
“지은 죄가 있으니 착석을 허락받지 못했을 뿐이다.”
재벌그룹 총수들은 저려오는 뒷목을 주물렀다.
사방에서 묵직한 눈초리가 빙 둘러가며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자리에 앉아 밥을 먹어야 한다니.
“우광 명패, 치워.”
우광의 김대식 또한 자리에 앉는 것을 제지받았다.
“개가 사람과 겸상을 하려 들면 쓰나.”
“······옳으신 말씀입니다.”
우광의 김대식은 제 몫으로 놓인 음식을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개가 언제부터 수저질을 했겠습니까? 이대로 감사히 먹겠습니다.”
우광의 김대식은 그릇에 코를 박고 와구와구 음식을 먹었다.
밥알이 튀고, 국물이 튀었다.
순식간에 입가는 물론 옷도 더러워졌다.
사람이 바닥에 엎드려 개처럼 먹는 모습을 직관한 재벌그룹 총수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비릿한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와장창! 데구르르.
청와대 경호실장은 김대식의 쟁반을 발로 찼다.
놋쇠 그릇은 멀쩡했으나, 그 안에 든 밥과 반찬은 엎질러졌다.
“왜? 못 먹겠어? 개가 언제부터 음식을 가려먹었지?”
“······맞는 말씀입니다.”
우광의 김대식은 웃으며 엎드려 핥아 먹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무심한 눈길로 그런 김대식을 내려다봤다.
“아까부터 개가 말이 많군.”
“월월!”
김대식은 먹는 것도 그만두고 무릎 꿇고 바닥에 앉았다.
대통령은 기함한 그룹 총수들을 돌아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식사 안 할 건가?”
“하, 하고 있습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청와대 오찬 모임.
말 그대로 점심을 함께하며 가볍게 얘기를 나눠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모임이었다.
하지만 재벌그룹 총수들은 밥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뒤에서는 군 수뇌부와 행정 고위 관료들이 빙 둘러서서 차렷 자세로 지켜보고 있지, 바닥에서는 우광의 김대식이 개처럼 먹고 있지.
대통령은 싸늘한 표정으로 냅킨을 집어 던지기까지.
“개판이로군.”
누구도 감히 대통령 앞에서 동의를 표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던 참이었다.
* * *
오찬이 끝날 때까지 우광의 김대식은 바닥에서 일어나는 것은 물론 발언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자청했던 일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조만간 제2차 석유파동이 터지지 않을까 우려되어 보고드렸습니다. 이상입니다.”
가장 마지막에 발언을 허가받은 사람은 말석에 앉은 태성건설 차성준이었다.
석유파동의 발생 가능성에 관한 언질.
그것이 바로 일개 젊은 건설사장이 청와대 오찬에 초대된 이유였다.
“발생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가져왔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제가 직접 중동에 다녀오며 보고 듣고 겪은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피부로 와닿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말입니다.”
“한마디로 직감이라 이건가?”
“예.”
태성건설 차성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믿고 안 믿고는 각하께 달렸습니다. 저는 느낀 대로 고했을 뿐입니다.”
대통령이 오찬에 초대된 재벌그룹 총수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영 못 믿는 눈치로군.”
재벌그룹 총수들은 마뜩잖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크흠, 각하. 저희도 일 년에 해외를 여러 번 나가는 처지라 보고 듣는 게 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조차 또 다른 석유파동을 걱정하지 않는 상황입니다만.”
“젊은 친구이니 저러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정저지와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정저지와(井底之蛙).
우물 안의 개구리란 뜻이다.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이 전부라 생각한다는 좁은 식견을 이른다.
“뭐, 만약 진짜로 석유파동이 터진다면 국가 경제가 크게 휘청일 것은 자명한 일이나.”
“괜한 우려로 위축되어 몸을 사릴 때가 아니라 보다 공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때가 아닐까 합니다.”
“맞습니다. 안 그래도 지난 석유파동 때 받은 타격을 인제야 겨우 수습하나 할 때인데.”
“여기서 주춤하면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커나가기 어려울 겁니다.”
6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은 최빈국에 속했다.
정부 주도의 산업화와 공업화에 힘입어 겨우 개도국에 진입한 상태다.
“참고만 해. 나중에 우는소리 하지 말고.”
“예, 각하.”
여전히 믿지 않는 투였다.
대통령은 턱을 쓸었다.
“같은 시대 같은 상황을 태성만 다르게 보고 있다라.”
“크흠!”
“두고 보면 알겠지. 누구의 말이 맞았는지는.”
재벌 총수들이 입을 열기 전에, 대통령은 만찬회장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인물에게 눈길을 던졌다.
“우광을 어찌 처분할까.”
“살려만 주십시오!”
“우광은 내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체면을 구겼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지었으니 배상은 감수하겠습니다!”
우광의 김대식은 필사적이었다.
자존심은 물론 체면까지 집어 던진 지 오래였다.
“각하와 조국을 위해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충성을 다 바쳐 애국하겠습니다!”
“수출, 방산, 자금조달, 여론 조작.”
우광이 어필한 내용이었다.
쓸모 있는 개가 될 테니 살려만 달라.
자존심 대신 생존을 택하겠다.
이것이 다음 대 우광의 뜻이었다.
“나쁘지 않군.”
대통령이 흥미를 보이자, 대통령 옆에 앉은 4명의 실세들은 물론 원탁을 빙 둘러서 있던 수뇌부들은 몸을 굳혔다.
“뇌물을 받아먹었으면 돈값을 해야지. 거들 말은 없고?”
뼈 있는 말이었다.
우광건설 뇌물 장부 때문에 곤욕을 치른 자들은 움찔했다.
“네놈들도 같이 무릎 꿇고 외쳐야 할 것 아닌가? 그럴 생각으로 받아먹은 돈 아니었나?”
“잘못했습니다, 각하!”
“우광을 살려달라고 내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늘어질 줄 알았더니?”
“각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추잡한 일을 벌이지 않을 겁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각하!”
대통령이 슬쩍 태성그룹 차 회장을 바라보았다.
“태성은 화학을 포기하고 우광에게 넘겼다던데.”
“예, 혼사가 파투 나서 동업을 접기로 합의 봤습니다.”
“그 말은 태성은 방산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뜻이겠지?”
“아닙니다. 국가 덕분에 여기까지 클 수 있었으니, 당연히 조국과 각하께 애국으로 보답하겠단 뜻입니다.”
“음?”
뜻밖의 말에 대통령이 멈칫했다.
“뻣뻣하기가 철심 같던 양반이 안 하던 소리를 하는군.”
“태성은 뻣뻣할지언정 각하의 뜻을 외면한 적도 없습니다. 그간 태성이 기술개발에 목숨 건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대통령이 대놓고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차 회장을 바라보았다.
“각하께서 군사력 강화에 힘쓰시고자 하시는데, 당연히 태성도 한 손 보태야지요. 따르겠습니다.”
기꺼운 눈빛에 입꼬리가 작게 올라가 있었다.
안 그래도 태성에서 먼저 대선자금을 두둑하게 상납했단 보고를 받은 적 있다.
청와대 경호실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그편을 들었지.
태성이 답지 않게 군다며 드물게 칭찬을 했더랬다.
“올해부터 전차와 장갑차, 군용 차량의 부품을 생산하겠습니다.”
차 회장은 힘주어 말했다.
“우광조선을 인수하겠습니다. 그럼 군함과 미사일, 어뢰와 통신장비 또한 태성이 맡을 수 있습니다.”
현무그룹의 오 회장이 질세라 재빨리 입을 열었다.
“우광화학은 우리 현무가 인수하겠습니다. 총, 포, 폭탄과 미사일은 현무가 최고지 않습니까.”
“저희 삼황은 우광정유를 인수했으면 합니다. 전투기와 폭격기 등의 항공유를 삼황이 생산하겠습니다.”
삼황그룹까지 가세하자, 금조, 천마, 일성, 록산, 산국까지 달려들었다.
말 그대로 우광을 뜯어먹기 위한 진흙탕에 뛰어든 것이다.
대통령은 기업 총수들의 실랑이에 미간을 찌푸렸다.
“각하, 태성이 적극적으로 방산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내왔으니 힘을 보태 주시지요.”
청와대 경호실장은 거리낌 없이 입을 열었다.
“태성 하면 기술력 아닙니까. 태성이 적극적으로 방위물자를 생산하게 된다면 부국강병에 큰 보탬이 될 겁니다. 아주 바람직한 결정입니다.”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합세했다.
“태성은 일본 도요토와 기술 협약을 맺은 터라 중장비와 자동차도 제법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에 조선기술까지 업그레이드한다면 군함과 해군탐사선도 지금보다 월등하게 개량할 수 있을 겁니다.”
가만히 있던 육군보안사령관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태성의 기술력으로 보급하는 군병기라. 그거 기대되는군요.”
중정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나쁘지 않습니다.”
은근하게 단 두 마디를 보탰을 뿐이었다.
최측근들 중에 반대하는 의견이 없자, 대통령은 차 회장을 다시 돌아보았다.
“태성에 기대를 거는 이가 이리 많을 줄이야.”
대통령의 입꼬리가 조금 전보다 훨씬 위로 올라갔다.
만찬회장에서 대통령이 미소 비슷한 표정을 지은 건 단 두 번.
둘 다 태성과 관련된 것뿐이었다.
“조용.”
대통령이 손을 들었다.
욕심껏 우광의 인수를 떠들던 인사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차 회장 제외. 다들 나가 있도록.”
차 회장과 독대하겠단 소리였다.
우광의 김대식 역시 바지를 털며 일어나자, 대통령이 개를 부리듯 손짓했다.
“앉아.”
< 청와대 오찬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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