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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만렙 아들-131화 (131/189)

< 인력 충원 가즈아 >

심 사장은 헛웃음을 흘렸다.

“우광의 노조가 연일 격하게 시위한다고요? 사무실까지 점거하면서?”

“예.”

“허, 허허허. 이 새끼들이 돌았나.”

심 사장의 헛웃음은 그칠 줄 몰랐다.

“황당하군요. 이거야 원. 듣고도 믿기지가 않는군요. 지금 이 시국에 그런 일을 벌인다고요?”

심 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른 때도 아니고 인수 합병 직후입니다. 이 자식들이 몽땅 잘리고 싶어서 작정을 했나.”

동의한다.

“인수 합병이란 게 뭡니까? 기업이 다른 기업에 팔려서 넘어가는 겁니다. 그런 일은 보통 ‘쫄딱 망했을 때’ 벌어지곤 하죠.”

잘 굴러가는 사업체를 굳이 남에게 팔아넘길 필요가 있나.

“불필요한 사업을 쳐내는 김에 불필요한 인력까지 쳐내는 이유가 뭘 것 같습니까?

심 사장은 혀를 찼다.

“그 빈자리에 내 사람을 꽂아넣기 위해서죠.”

내 사람이 앉을 자리는 그냥 생기나?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면 구조조정이란 명분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수 합병 직후의 구조조정이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우광 노조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럴 때 윗선에 밉보이면 가차 없이 해고될 거란 걸.”

생계가 걸린 일이었으니까.

할아버지가 파혼을 결심하며 태성화학을 넘기기로 했을 때, 가장 마음 썼던 게 바로 이 부분이었다.

-우광이 구조조정을 하겠다며, 당장 팔아버리자며 날뛰는 것을 이 할애비가 막고 있어.

-2천 명의 일자리가, 그들의 가족까지 족히 8천 명의 입이 달렸다.

심 사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목줄은 이쪽이 쥐고 있습니다. 산 입에 거미줄 치고 싶지 않다면 눈치를 봐야 하는 쪽은······.”

“노조가 사무실을 점거하고, 공장과 사업장을 폐쇄하고, 신문과 방송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도 말입니까?”

“······.”

그게 현실이었다.

“심 사장님, 현재 우광화학은 붕 뜬 상태입니다.”

고작 석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태성화학은 격변을 거쳤다.

태성에서 우광으로, 우광에서 도로 태성으로.

그 과정에서 이동한 인력이 대체 몇 명이던가.

“고용승계를 단언했지만, 재인수 과정에서 ‘완전 고용승계’란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설사 그와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동될 수 있는 일입니다. 경영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심 사장은 소파에 등을 묻었다.

“약한 개가 짖는 겁니다. 행여 제 목소리가, 제 존재가 묻힐까 봐 필사적으로 발악하는가 본데, 이럴 때일수록 임원들과 관리자들이 나서서······.”

“우광화학 임원들과 관리직까지 시위에 합세했습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심 사장이 꼬았던 다리를 도로 풀어내 원상 복귀했다.

아버지를 향해 몸을 바싹 기울였다.

“우광화학 임원들과 관리직이 뭘 어떻게 해요?”

“노조의 시위에 방관, 아니, 동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망할 새끼들이······!”

심 사장은 표정을 굳혔다.

아버지 역시 딱딱한 표정이긴 마찬가지였다.

“임원들이 상황이 악화되도록 종용하고 있다는 겁니까?”

“경비원을 자진해산시켰더군요. 사무실이 점거될 동안 신고는 물론 일체의 저항조차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허어어?”

“단체 보이콧입니다.”

심 사장은 기가 막혔는지 헛웃음을 토했다.

“이 새끼들이 단체로 쥐약을 먹었나?”

“그들 딴에는 계산속이 있었을 겁니다.”

아버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시다시피 지금 제겐 가용할 임원급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태성건설을 숙청하면서 맡은 사장 자리였다.

게다가 아버지를 뒷받침하기로 약속했던 태성화학 임원들은 어떠했던가.

“태성화학 임원들은 좌천이 아닌 영전하여 돌아오기 위해 이미 중동 건설 현장으로 발령받아 떠난 지 오랩니다.”

“······그랬었죠.”

“태성건설 전(前) 임원들도 심 사장님 밑에 들어왔고요.”

“후우. 확실히 즉시 투입 가능한 유능한 임원들 씨가 말랐군요.”

심 사장도 미간을 팍 찌푸렸다.

“하지만 태성건설과 태성화학만 임원급 인력난에 시달릴 뿐, 태성그룹 전체로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예, 아마 그럴 겁니다.”

“회장님께 한번 말씀드려보시죠. 회장님이라면 그 꼴을 가만히 두고만 보실 리가······.”

“알아서 하라더군요.”

“······예?”

심 사장이 경악성을 토했다.

“회장님께서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예.”

“회사 일에 그리 진심이신 분이? 아니, 절대로 그런 결정을 내리실 분이 아니신데요?”

“아버지는 처음부터 손을 떼신다고 공언하셨습니다.”

“예?”

“한 달 전, 태성화학을 제 아내에게 넘기면서 능력껏 뜯어먹고, 재주껏 끌어들여서, 한껏 키워보라고 하시더군요.”

“결국 회장님께선 나 몰라라 하신다는 거 아닙니까?”

“사냥은 밖에서 해야지 집구석에서 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덧붙이셨죠.”

심 사장은 입을 떡 벌렸다.

저 말은 즉, 자기 사람은 건들지 말란 엄포가 아니고 또 뭔가.

“어차피 내 사람을 꽂아넣기 위해 한 번은 숙청해야 했는데, 이렇게 우광이 빌미를 내어준다니 오히려 잘된 일이라더군요.”

“끄응.”

“사업에 걸린 돈과 사람과 이해관계라는 게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직접 경험해보고 깨달으라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임원급 인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 속사정을 눈치챈 우광의 임원과 노조가 배짱을 튕기면서 뻗대고 있다는 거군요.”

난처한 상황이었다.

심 사장이 주먹을 꽉 쥐었다.

“누가 뒤에서 부추긴 게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내부 정보를······.”

뻔한 일이었다.

그러니 심 사장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말을 삼키고 대신 한숨만 길게 내쉴 수밖에.

“회장님께서 무슨 까닭에 십 년 후 총수 자리를 두고 경영권 쟁탈전을 붙이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성준 도련님께는 매우 불리한 싸움이 되었습니다.”

심 사장은 작게 혀를 찼다.

“십여 년 동안 계열사를 맡아 세를 불렸던 다른 도련님들에 비해 성준 도련님은 본격적으로 계열사를 맡은 게 고작 두어 달밖에 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죠. 제가 자진하여 중동으로 나돌았잖습니까.”

아버지가 진중한 목소리로 청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 도와주십시오, 심 사장님.”

“······제가 뭘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태성화학을 다시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태성화학을요?”

심 사장은 깜짝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럴수록 아버지의 목소리는 더 간절해졌다.

“안 그래도 태성화학 임원진들이 차출되어 떠난 후라 공백이 큰데, 우광의 임원들이 날뛰고 있습니다. 거기에 노조까지.”

“으음.”

“이리 어지러운 상황에 두 갈래로 나뉜 세력을 통합하여 회사를 이끌어야 합니다. 노련한 경영진이 간절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였다.

“태성건설로 옮겼던 공장 사람들을 데려가야 한다고 하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도련님.”

“중동으로 떠났던 태성화학 임원진들에게도 전보를 보내 귀국을 장려하겠습니다.”

“중동에서 따낸 건설 공사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방치하실 셈입니까? 1억 달러짜리 대공사라면서요?”

심 사장은 곤란한 상황에 입술만 금붕어처럼 달싹거렸다.

선뜻 받아들이지도, 거절할 수도 없는 난처한 얼굴이었다.

* * *

저승사자와 시야 공유를 끊고, 고개를 홱 쳐들었다.

열심히 일하는 척 내 눈치를 살피던 사무실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푹 처박았다.

나한테 밉보인 대가로 일거리를 잔뜩 떠맡게 된 오정섭만 개의치 않고 욕설을 씨부렁대고 있을 뿐이었다.

짝!

나는 벌떡 일어나 손뼉을 부딪쳤다.

“제안을 하나 할까 해요.”

“뭡니까?”

“우리 오늘 단체로 외근 나갔다가 바로 퇴근하죠. 어때요?”

“······!”

사무실 식구들이 경악한 얼굴로 날 돌아보았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잘하면 조기 퇴근. 더 잘하면 단체 회식까지. 콜?”

“무, 무서운 소리 좀 작작 하십시오!”

어라?

내가 기대했던 반응이 아닌데?

“단체 외그으으은?”

“조기 퇴그으으은?”

“단체 회시이이이익?”

왜 다들 이를 악물고 그러시나.

“아니, 밖에서 뭘 얼마나 마구 부려먹으려고요.”

“과로사로 죽을 때 죽더라도 길바닥에서 죽긴 싫습니다.”

“이거 산재 처리 대신 객사 처리 되는 거 아닐까요?”

불신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이것 참. 싫으면 마세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눈치 빠른 경호원이자 내 수족을 자처하는 유종태가 은근슬쩍 물었다.

“갑자기 단체 외근이란 제안을 꺼내는 이유가 뭘까요?”

깡 좋은 오정섭이 버럭 외쳤다.

“혹시 보스의 명을 어겼을 때 받는 불이익 조치, 뭐 그런 겁니까? 또 청계산에 끌고 가려고?”

과외 선생님들은 어리둥절했다.

“부러운 것들!”

또다시 전(前) 태성그룹 임원들의 타령이 시작되었다.

“누구는 오밤중에 청계산에 끌려가서 맨땅에 생매장될 때, 누구는 곱게 집구석에서 과외 수업이나 받고 있었다며?”

“난 말대답 했다고 펜치로 이빨도 뽑혔어!”

“한겨울에 물싸대기를 맞아 봤어? 아직도 뼈가 시려!”

과외 선생들이 하얗게 질리거나 말거나.

전(前) 태성그룹 임원들은 그날을 떠올리며 부르르 떨었다.

“내가 조폭이랑 맞짱 떠서 강제철거도 강행했던 사람인데!”

“나 굴삭기 면허 있거든? 판잣집은 부숴봤어도 묫자리에 파묻힐 줄은 몰랐지!”

“손모가지 썰릴 뻔한 것도 모자라서 손발톱 생으로 뽑히게 생겼다니까?”

과외 선생들의 안색이 시커멓게 죽어가거나 말거나.

전(前) 태성그룹 임원들이 더욱 신나서 주둥이를 털려고 하자, 나는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자꾸 내 말 끊을래요? 짜증 나는데 오늘 우리 일 끝나고 밤 12시 청계산에 단체 집합할까요?”

유종태가 서랍을 드르륵 열어서 펜치를 꺼내 들었다.

“혀, 뽑을까요?”

“외근 나가 주둥이는 누가 털라고요? 태성병원 응급실에서 단체 집합할 순 없잖아요.”

“이빨, 뽑을까요?”

“금은방에 금이빨 팔아봤자 돈도 얼마 안 되더라고요. 어차피 버릴 이빨, 그냥 생니로 뽑죠.”

그제야 다들 입을 다물었다.

나는 사무실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인력 충원하러 가죠.”

“······!”

사무실 식구들이 동시에 날 돌아보았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갑자기요?”

“진짜로요?”

“어디로요?”

“태성화학으로요.”

나는 씩 웃었다.

“행여 잘리지나 않을까 일자리 걱정에 화학 공장 사람들이 우광의 이름으로 시위를 벌이고 있다네요?”

태성건설 전 임원들은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우광의 노조라면 우리랑 상관없는······.”

“참고로 우광 노조가 깽판 치고 있는 태성화학은 우리 엄마 회사랍니다?”

심드렁하던 태성건설 전 임원들은 바로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았다.

“말썽부리는 우광의 임원들은 단체 숙청할 예정이고요.”

“우광의 임원 숙청에 왜 우리가······.”

“이렇게 또 후임이 들어오게 생겼네요?”

“······!”

‘후임’이란 소리에 전 태성건설 임원들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행동을 멈췄다.

“제가 숙청당한 임원들을 어떻게 주워다 어떻게 쓰는지, 다들 직접 겪어보셨을 테죠?”

“······!”

“그놈들이 떨어져나가면 태성화학에도 빈자리가 많이 나오겠네요?”

“······!”

내 말뜻을 알아들은 전(前) 태성건설 임원들이 눈을 부릅떴다.

“은퇴할 때까지 술 접대나 하러 다닐래요? 간 썩고, 뇌 녹는 소리는 안 들리세요?”

“크흑!”

“대리부터 부장급까지 일 떠맡느라, 아부 소리 듣긴커녕 영업으로 까여 사장한테 까여 숨만 쉬어도 매일 까여.”

“크흐흑!”

“부하직원들 거느리고 다니면서 주말마다 아부 받으며 내기 골프 치러 다니던 시절이 그립지도 않나 봐요?”

“그립습니다!”

부릅뜬 눈에는 노골적인 탐욕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깡패랑 맞짱 떠서 강제철거했다는 사람들이 노조랑 맞짱 떠서 후임 삼을 깡은 없으신가 봐요?”

“그럴 리가요! 보스, 제가 해보겠습니다!”

깡다구 좋기로는 제일이라는 오정섭이 손을 들고 크게 외쳤다.

“단체 외근 가겠습니다! 귀찮은 노조 똥파리들, 당장 때려잡겠습니다!”

“······!”

그제야 사무실 식구들은 내가 말하는 ‘단체 외근’이라는 뜻을 확실히 깨달았다.

“태성화학 임원 자리, 하나 꿰어차서 이참에 조기 퇴근 하고 싶습니다!”

그제야 ‘조기 퇴근’이라는 단어의 뜻까지 제대로 인지하게 된 모양이었다.

“저도 자신 있습니다!”

“전 굴착기 잘 굴립니다! 펜치랑 망치도 잘 씁니다!”

“이빨 터는 게 주특깁니다! 확성기는 제게 맡겨주십시오!”

태성건설 임원들이 뒷골목 건달패처럼 눈을 빛냈다.

임원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며 외치자, 과외 선생들도 눈치를 보며 손을 들었다.

“혹시 저희도 단체 외근, 조기 퇴근이 가능할까요?”

“물론이죠.”

“우리도 후임 받습니까?”

“당연하죠.”

과외 선생들까지 뒷골목 납치범처럼 눈을 빛냈다.

“인력 충원하러 가즈아!”

“노조를 때려잡고, 후임을 잡아옵시다!”

깡다구 좋은 오종섭은 성질머리만큼이나 행동력도 빨랐다.

즉시 사장실로 달려가서 발로 문을 뻥 찼다.

“사장님!”

심각한 표정으로 태성화학 문제를 논의하던 심 사장과 아버지가 벙찐 표정으로 돌아봤다.

“뭡니까?”

“태성화학 문제는 저희들에게 맡겨주십시오!”

< 인력 충원 가즈아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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