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만렙 아들-133화 (133/189)

< 이거 정말 믿기지 않는군 >

중동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 도시 건설 현장.

“이거 정말 믿기지 않는군.”

한국에서 온 전보가 현장 사무실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태성건설 강준구 부사장->태성화학 강준구 사장 승진 발령. 즉시 귀국 요망.>

중동 공사현장으로 발령받은 지 이제 고작 두어 달.

새해 떡국 먹은 다음 날 바로 중동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왔었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승진이야?”

태성화학 부사장이었던 강준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전보용지를 만지작거렸다.

“내가 여기 와서 따낸 건설 계약은 고작 34건밖에 안 되는데?”

강준구 부사장은 마른세수를 했다.

“실적으로 치면 이 비서가 사장 자리에 앉아야지. 이건 아닌 것 같다. 뭔가 착오가 생긴 게 틀림없어.”

“착오라니요? 위에서 보기에 그럴 만했으니까 승진시키신 거겠죠.”

같이 중동 공사현장으로 발령받았던 전(前) 태성화학 송 전무가 엄지를 올리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회장님을 모르십니까? 영전을 축하드립니다, 태성화학 강 사.장.님.”

“회장님을 아니까 이런 소리를 하는 거지. 세운 공도 없는데 사장 자리라니? 어림도 없지.”

“그건 귀국하고 직접 따지시든가요.”

“태성화학 사장직이라면 당연히 심 사장님의 몫이지. 이거 아무래도 전보에 오타 나서 ‘부’ 자가 빠진 것 같은데. 내가 사장직에 오를 리가 없잖아?”

“그것도 귀국하고 직접 물어보시든가요.”

송 전무가 웃는 낯으로 강준구 부사장의 등을 떠밀었다.

“여기서 뭘 그렇게 넋 놓고 서 계십니까? 즉시 귀국 요망이라지 않습니까.”

“어어?”

“얼른 숙소로 돌아가서 짐 싸셔야죠. 부럽습니다.”

“부럽기는. 자네도 같이 가게 생겼는데.”

“예? 제가 왜요?”

“승진 전보가 나한테만 날아온 줄 알아?”

“어억! 그, 그럴 리가?”

“자, 받아.”

강준구 부사장은 송 전무에게 전보를 내밀었다.

<태성건설 송선필 전무->태성화학 송선필 부사장 승진 발령. 즉시 귀국 요망.>

“지, 진짜였습니까?”

“그럼 내가 거짓말을 했을까.”

“아니, 제가 뭘 했다고 승진이랍니까? 게다가 부사장? 부사자아아앙?”

“영전 축하합니다, 태성화학 송선필 부.사.장.님?”

“으어어어!”

송 전무는 기함했다.

“회장님이 미치시지 않고서야 제가 승진할 리가 없는데요? 저 여기 와서 따낸 공사 계약이라고 해봐야 27건밖에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것도 죄다 자잘한 공사 의뢰였다구요.”

“그러, 아니지. 국도 공사에 공관 설립 공사가 그리 자잘한 건 아닐······.”

“그렇게 따지면 대수로와 도시 개발을 따낸 이 비서야말로 영전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 말이.”

강준구 부사장은 손을 내저었다.

“됐고. 나가서 마 상무랑 조 이사 등등 임원들 다 불러와.”

“서, 설마······!”

“그래. 그놈들까지 단체로 승진 발령 났다. 당장 귀국하라신다.”

“아니, 그 자식들이 뭘 했다고 단체 승진이랍니까? 그놈들이 따온 계약 건수 다 합쳐봐야 100건도 안 될 텐데요?”

“그건 송 전무가 귀국해서 직접 따져묻든가.”

송 전무는 끙 소리를 내었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따낸 공사 계약은 어쩌고요?”

이 비서가 요즘 미친 듯이 계약을 따냈다.

그것도 중동의 왕실이 의뢰하는 굵직한 공사로만 골라서!

“이미 수주 따낸 계약만 해도 할당량 초과예요.”

“음, 그렇지.”

“중동 사막에서 최소 5년간은 단내 나게 굴러다녀야 공사 기한을 맞출 수 있을 정도라고요.”

송 전무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가 한꺼번에 다 빠지면 이 비서 혼자 절대 커버 못 합니다!”

“괜찮아. 우리 후임이란 놈들도 보낸다니까.”

“후임이요? 이만한 공사를 커버할 수 있는 임원들이라면 딱히 떠오르는 놈들이 없는데요.”

불신이 가득 담긴 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적!’, ‘승진!’, ‘영전!’, ‘금의환향!’을 외치며 중동에서 마구잡이로 한국식 영업을 뛰어다닌 결과.

최근 ‘중동의 오일머니를 이렇게까지 긁어가도 되려나?’ 싶을 만큼 많이도 따냈다.

요즘 중동에선 전 세계가 주목할 만한 건설붐이 일기 시작했다.

“태성건설 사정이야 뻔하잖습니까. 후임이랍시고 들어와 봤자 신입일 게 분명할 테고.”

송 전무는 고개를 저었다.

“건설에서 잔뼈 굵었던 우리에 비하면 쭉정이라 할······.”

“태성건설의 오정섭 전무가 내 뒤를 이어 총책임자 자리를 맡을 거라더군.”

“어헉! 오 전무가요?”

경악이 가득 담긴 눈이었다.

“태성건설 임원들 전체가 나태에 찌들어서 술 퍼마시며 굴러다닌다는 소리가······.”

“정신 차렸나 보지. 본인이 자원했다는데?”

“어헉! 그 오 전무가요? 그, 그럴 리가?”

“왜? 못 미더워서 그래?”

재빨리 정신을 수습한 송 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닙니다. 누가 칼 박은 로드롤러를 실력으로 깝니까? 인성으로 까면 또 몰라도.”

송 전무는 시원하게 웃었다.

“오 전무라면 터프하게 사막 밀어버리겠는데요? 최고의 인선,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입니다.”

“역시 그렇지?”

“하지만 오 전무 혼자서는 몸이 열 개라도 이거 다 완공 못 시키죠. 설마하니 태성건설의 다른 임원들까지 전부······.”

“아니, 대부분은 우광의 임원진들이던데?”

“······방금 제가 뭘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

송 전무는 아연실색했다.

“아니, 미치지 않고서야 우광의 임원들이 왜 우리 태성건설의 중동 공사를 맡는답니까?”

“그러니까.”

“말이 안 되는데요? 못 믿겠는데요?”

“그래서 내가 아까부터 계속 말했잖나. 믿기지 않는다고.”

강준구 부사장은 해당 전보를 송 전무에게 턱 쥐여주었다.

진짜로 전보에는 그러한 사실이 적혀 있었다.

“대체 한국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왜 나한테 그걸 따져물어? 태성이 어쩌다 이렇게 굴러가게 된 건지 내가 어떻게 아냐고.”

“좋습니다! 이건 제가 귀국해서 직접 따져묻겠습니다!”

* * *

태성그룹 본사 회장실.

“이거 정말 믿기지 않는군.”

차 회장은 김 비서가 제출한 보고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하루 만에 우광화학 임원진을 전원 숙청했다고?”

노조와 합세하여 어깃장을 놓던 우광의 임원진들이 전원 해고되었다.

“주주총회도 없이?”

“전원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더군요.”

“그놈들이 미쳤다고 순순히 사직 의사를 밝힐까. 노조까지 끌어들여서 사무실을 점거하던 놈들인데.”

차 회장은 헛웃음을 흘렸다.

“우광그룹 본사가 발칵 뒤집힐 만한 일도 딱히 없었지 않나?”

“그놈들이 우광그룹 본사로 돌아갔다고 생각하셨군요?”

“그게 아니라면 딱히 갈 데도 없지 않나? 그러니 저리 배짱을 부리는 것을.”

“그놈들 전부 중동 공사 현장으로 쫓겨났습니다.”

“뭐야?”

“듣자 하니 태성건설 이 비서가 굵직한 공사를 워낙 많이 따놔서 인력이 부족했다더군요.”

“그게 우광화학 임원들이랑 무슨 상관인데?”

“우광화학 임원들이 JH투자회사에 투신했다고 합니다.”

“뭐야?”

“어제 오정섭이 그놈들을 인솔하여 사우디행 비행기를 타고 날랐답니다.”

“······.”

차 회장은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떡 벌렸다.

김 비서는 은테 안경테를 추켜 올렸다.

“간밤에 오정섭과 JH투자회사 소속 직원들이 우광의 노조 간부와 임원들을 납치하듯 청계산으로 끌고 갔다고 합니다. 인력 충원의 일환으로.”

“뭐야?”

“사돈에 사촌까지 뒤를 탈탈 털어서 치부책을 만들었다던가? 여튼 생매장을 시켜놨다더군요.”

“아니, 인력 충원이라며?”

“우광의 임원들이 고용계약서에 서명 날인 마쳤다는 보고입니다.”

“······.”

김 비서는 JH투자회사 심 사장에게서 직접 받아온 명단을 내밀었다.

“금이빨 하나 뽑지 않고 싱겁게 끝났다고 유종태가 툴툴댔습니다. 우광은 역시 깡다구가 부실하다는군요.”

김 비서는 빙그레 웃었다.

“정혁 도련님의 수완이 참으로 대단하지요? 이렇게 골치 아팠던 태성화학 문제를 깔끔하게 한 방에 해결해 버리시는군요.”

“임원들이야 잘라내면 그만이지. 진짜 문제는 우광 노조의 시위야.”

우광화학 화재사고가 있은 후, 벌써 두 달이나 노조가 시위하고 있던 터였다.

신문에서 떠들고, 대학생이 벽보를 붙이는 것도 모자라, 한국노총까지 합세하여 거세게 반발하던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아까 정혁 도련님께서 노조를 이끌고 우광그룹 본사에 쳐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아니, 뭐라고?”

차 회장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고 실장, 지금 당장 차 대기시켜!”

차 회장이 외투만 낚아채서 달려나갔다.

김 비서는 흩어진 서류를 정리하고, 미용 티슈의 각을 잡고, 굴러다니는 의자를 제자리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언제나처럼 회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김 비서, 경호원들 부르고 경찰과 중정에도 전화 돌려!”

“예.”

언제나처럼 김 비서의 곁으로 태성그룹 비서들이 따라붙었고, 김 비서는 품에서 휴대용 빗과 먼지떨이를 꺼냈다.

차 회장은 역시나 미친 듯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 * *

“이거 정말 믿기지 않는군.”

우광그룹 차기 총수 자리에 오른 김대식은 보던 결재서류를 내팽개치며 헛웃음을 흘렸다.

밖에서 시끄럽게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우광은 피해자들에게 보상하라!”

“보상하라! 보상하라!”

“우광은 언론통제를 멈추고 사과하라!”

“사과하라! 사과하라!”

한동안 잠잠하던 우광 노조들의 시위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오랜만에 우광화학이 아닌 우광그룹 본사 앞에서.

“저 새끼들이 미쳤나? 왜 또 여기에 몰려와서 지랄이야?”

“회장님.”

“우광화학에서 과격 시위를 이어가기로 말 다 끝났던 거 아니었냐고.”

“그것이······.”

“내가 왜 우광의 임원들을 거기에 두었는데! 우광의 노조 간부들을 왜 구워삶았는데!”

김대식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저기 있는 양복쟁이들은 또 뭐야? 왜 남의 노조 시위에 끼어들었대?”

“여당 의원들과 야당 의원들이 합세한 것으로 압니다.”

“그러고 보니 대선과 총선이 올해였지.”

김대식은 코웃음을 쳤다.

“우광의 이미지를 망가뜨려 제 이미지를 포장하려고 작정했군.”

속이 빤히 보이는 수작이었다.

바로 저런 정치인들의 여론몰이에 당해 아버지가 우광그룹 총수직에서 물러나셨다.

“몰래 접선해. 이런 식으로 굴면 우광은 정치자금 후원 못 해준다고 경고해.”

“예.”

“그래도 뻗대면 통보해. 각하께 이 일을 고하겠노라고. 막무가내로 일을 벌였으면 중정으로 끌려가는 것도 각오하라고 해.”

김대식은 볼을 씰룩거렸다.

“각하께서 우광을 왜 살려주셨는지 알면서 살살 긁고 있어! 여론몰이와 방송 조작은 각하께서 우광에게 맡기신 임무란 걸 똑똑히 알려줘!”

“회장님, 하지만 정치인들은 언론 앞에서 껌뻑 죽습니다.”

“각하의 뜻이라고 하는데도 감히?”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인기로 힘과 권력을 얻습니다. 방송에 얼굴 비출 기회를 쉽게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다 쇼잖습니까.”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방송에 모습을 자주, 강렬하게 내비치는 것이다.

대통령이 총선까지 책임져주는 건 아니었으니, 정치인들은 눈치껏 스스로를 포장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대통령 역시 그 정도는 적당히 눈감아 줄 터였다.

“취재진이 흩어지지 않는 한 쉬이 물러서지 않을 거란 뜻입니다.”

“그럼 취재진부터 해산시키면 되겠네.”

“취재진들 역시 특종에 목맨 자들이 아닙니까. 이미 경고했는데도 들은 척도 않습니다.”

“결국 무능하단 소리로군. 각하께 실망을 안겨드릴 셈인가?”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사과할 시간에 일 수습할 생각이나 해야지. 언제까지 거기서 뭘 멀뚱멀뚱하게 서 있을 셈이야?”

쾅!

김대식은 책상을 내려치며 으르렁거렸다.

“당장 신문사와 방송국에 전화부터 돌려야 할 것 아냐!”

울컥했다.

“이런 지시까지 내가 일일이 내려야겠어? 각하께서 우광을 왜 살려뒀을 것 같아?”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각하께서 우광에게 바라는 건 언론통제와 여론몰이야! 우광이 나팔수 노릇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데, 무슨 쓸모를 어떻게 증명하겠어!”

대통령은 우광이 정부와 대통령의 이미지 쇄신에 앞장서길 바랐다.

“우광의 일로 더는 시끄럽게 시선 끌지 않겠다고 개처럼 엎드려 빌었다! 그 치욕을 네놈이 알아?”

“죄송합니다. 사실 이미 신문사와 방송국에 전화를 돌리긴 했습니다만······.”

“그걸 무시했다? 저 새끼들이 뭘 믿고 저리 막무가내로 몰려왔을까?”

“태성이 먼저 손을 쓴 것 같습니다.”

“태성?”

김대식의 표정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저기 시위대 맨 앞줄에 서 있는 꼬맹이가 보이십니까?”

“노조 시위에 웬 꼬맹이? 미치지 않고서야······.”

김대식은 재빨리 유리창 쪽으로 달려갔다.

“······진짜로군.”

창문을 벌컥 열자, 확성기를 타고 어린애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마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졌다.

“내일이면 우광화학 화재 사망자의 49재가 열립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광은 제대로 된 보상은커녕 사과조차 없습니다! 이러려고 우광재단을 만들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마침 확성기를 든 채 고개를 들었던 꼬마와 우광의 김대식이 눈을 마주했다.

김대식은 혀를 찼다.

“가지가지 하는군. 시위에 동정표 계산까지 넣었다? 꼬맹이를 앞세운다고 내가 눈이나 깜짝할 줄 알아?”

꼬마는 씩 웃었다.

“우광그룹의 새로운 회장님께 묻겠습니다. 이것이 우광의 최선입니까?”

꼬마는 손을 들었다.

“노조의 대리인으로서 사측과의 협상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잠깐.

김대식은 고개를 홱 돌려 비서를 돌아봤다.

“방금 내가 뭘 잘못 들은 것 같은데?”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다음 발언이었다.

“우광이 계속 이렇게 대화를 거부한다면 방송을 통해 전 국민에게 고할 수밖에 없군요.”

벌컥!

회장실 문이 열리고 비서실 직원이 다급하게 외쳤다.

“저 꼬마가 들고 있는 게 우광건설 뇌물 장부라고 합니다!”

김대식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지금 당장 회의실 준비해!”

< 이거 정말 믿기지 않는군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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