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성의 간판스타 >
다음 날, 예상했던 대로 전국 각지의 신문 1면은 우광의 기사로 일제히 도배되었다.
나는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가득 펼쳐놓고 혀를 찼다.
<두 달간 이어진 우광화재 노조, 드디어 협상에 성공하고 자진해산하다!>
<하루가 다르게 극으로 치달았던 첨예한 대립, 어떻게 극적으로 타결되었나?>
<여덟 살 어린이의 읍소문이 통했다! 진심 어린 호소문에 하나 된 우광의 노사 합의!>
신문사들은 ‘누가 누가 더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뽑나’를 경쟁하는 것 같았다.
‘신문 1면도 부족해서 정치면, 경제면, 사회면에 문화면까지 떡칠해 놨구만.’
그도 그럴 것이 태성이 불러들인 신문사와 방송국이 몇 개며, 우광이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이 몇 군데인가.
두 재벌그룹이 합심하여 여론몰이에 나섰으니, 언론도 눈치 보지 않고 전면으로 나선 모양이었다.
<심금을 울리는 호소에 우광화재 피해자와 유가족이 울고, 우광노조가 울고, 우광 본사와 회장마저 울었다!>
<우광의 김대식 회장, ‘순수한 동심에 마음이 움직여’, ‘우광재단이 파산하더라도 피해자와 유족의 보상금은 챙겨줄 것’!>
<지금껏 이런 보상은 없었다! 우광의 통 큰 보상에 청와대가 웃었다!>
<청와대에서 우광그룹 총수에게 전화를 걸어 크게 치하한 까닭은?>
첨부된 사진이나 제목도 죄다 큼직큼직하다.
그것참 여기저기 많이도 실렸다.
‘신문사마다 죄다 우광의 이름으로 도배된 건 그러려니 하는데, 왜 내 얼굴도 같이 대문짝만하게 실린 거냐고.’
난 시위대 맨 앞에서 머리에 ‘단결’이라 적힌 빨간 띠를 두르고 주먹 쥐고 외치고 있고.
그 밑에는 내 <우광화재 피해자를 위한 헌사>의 오려 붙인 사진과 그림, 코멘트가 잔뜩 실렸다.
<꼬마 도련님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우광이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마음 돌렸을까 싶어요.>
<고마워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이제 편히 눈 감으실 거예요.>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태성건설 사장님과 그 아드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우광화학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감사 인터뷰가 낯간지럽다.
<우광화재 보상 협상에 도움을 주신 태성화학 임원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태성은 한 가족! 저는 태성화학의 직원이 되고서야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태성에서 뼈를 묻을 생각이에요. 유능한 협상단 덕분에 외롭고 힘든 투쟁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게 전국 방방곡곡으로······.
엄청 쪽팔리고, 뭔가 부끄럽고, 약간은 어색한,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젠장.’
손발이 오글거린다.
가슴이 홧홧하다.
<다시는 우광화재와 같은 피해가 벌어지지 않도록 방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법 규정을 입법할 수 있도록 여당이 힘을 내겠습니다!>
<야당이 우광과 함께했습니다. 노동자의 인권에 앞장서는 야당, 밀어주십시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정치인들과,
<어제 있던 우광의 노사 협의는 신뢰와 이해를 기반으로 대화로써 양측의 입장 차를 좁혀 원만한 합의를 도출한, 대한민국 노동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대학교 교수들 또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칼럼을 기재하여 숟가락을 얹었다.
‘태성과 우광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성층권까지 띄워주는 아부 솜씨가 아주 예술 그 자체로구만?’
대학교수란 사람들이 하라는 연구는 안 하고 밥 먹고 칼럼만 썼나.
뒷돈을 대체 얼마나 받아 챙긴 건지.
칼럼만 읽으면 태성과 우광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인권 친화적 기업이라 자랑할 정도다.
“뭐, 태성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지만.”
덕분에 우리 어머니와 옥분 할머니는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신문을 스크랩한답시고 바빴다.
“이거 어때요? 정혁이가 단결 구호 외칠 때 찍은 건가 봐요. 야무져 보이죠?”
“박력 있네. 그건 액자에 넣어 걸어야겠네. 정혁이 엄마, 이건 어때?”
“어머, 미간 팍 구긴 거 봐. 쪼끄만 게 성질머리 있어 보이는 게 너무 귀엽잖아. 이것도 액자에 넣을까요?”
“거 당연한 소리를! 얼른 오려. 못은 내가 박을게.”
따르릉!
“여보세요?”
-정혁아, 큰아빠다. 너 선동 엄청 잘하더라? 하하핫, 이참에 정치해볼 생각은 없고? 원한다면 큰아빠가 정치자금 다 대주마! 하하핫!
따르릉!
-신문 봤다. 우리 조카님은 간도 참 크게 시위대 맨 앞에 섰네? 그러다가 진압봉에 두들겨 맞으면 엄청 아플 텐데. 대체 너희 부모는······.
“둘째 큰아버지, 지난번에 한우정 앞에서 본 그 예쁜 누나 말이에요. 신혁이 형한테 누군지 물어봐도 돼요?
-우리 조카님은 입학 선물로 뭐 받고 싶은 거 없을까? 게임기 사 줄까? 지난번에 보니까 만화책을 잘 읽는 것 같던데, 세트로 보내줘?
따르릉!
-정혁아, 고모가 말했지? 패션에는 깔맞춤이 중요하다고. 머리에 빨간 띠 두를 땐 곰돌이 코트는 입지 말아야지! 백화점으로 와. 고모가 시위용 전투복 쫙 빼줄 테니까.
기가 다 빨린다.
따르릉!
나는 참다못해 전화선을 뽑아버렸다.
거실엔 사진과 기사를 마구잡이로 오린, ‘신문이었던 쓰레기’가 잔뜩이었다.
유종태가 신문을 치우며 혀를 찼다.
“우와, 우광 김대식 회장은 진짜 양심도 없군요.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유종태는 신문을 구겨 가차 없이 쓰레기통으로 처박으며 말했다.
“사진 오려, 그림 그려, 멘트 적어, 병원비까지 지원해. 고생은 도련님이 다 하셨는데, 생색은 우광이 다 내잖습니까.”
“냅둬요. 대신 전 이거 받아왔잖아요.”
나는 계열사 인수 계약서를 가리키며 뿌듯하게 웃었다.
“그깟 것 몇 개 던져주고 중공업 계열사를 여섯 개나 뜯어왔으니 남는 장사죠.”
“덕분에 사무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겠군요.”
“그래서 인력 충원해줬잖아요. 우광의 일곱 개 계열사에서 유능하다고 소문난 과장급 이상 실무진들도 잔뜩.”
“도련님, 회사에 안 가봐도 되겠습니까?”
“굵직한 일은 심 사장님과 태성건설 전(前) 임원들이 맡았으니, 인력 충원을 잔뜩 한 만큼 나머지 잡무야 이젠 자기들끼리 알아서 굴릴 때도 됐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이제 내일모레 입학하잖아요.”
교실에서 업무를 보긴 하겠지만, 예전처럼 내가 전부 떠맡을 생각은 없다.
‘내가 왜 조기 교육과 인재양성을 부르짖었는데. 이만큼 굴렸으면 제법 쓸만해질 때도 됐지.’
유종태는 활짝 웃었다.
“그럼요. 학생은 공부를, 회사원은 일을 해야 하는 겁니다. ”
유종태치고 상당히 비열하고 음흉한 웃음이었다.
“넘버투라면 계열사 여섯 개 정도는 거뜬히 맡을 수 있다잖아요. 본인이 그렇게 원하는데 뭐 어쩝니까. X 빠지게 굴러야죠.”
“넘버투에 미련 없나 봐요?”
“그럴 리가요. 심 사장님께서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게 있을 뿐입니다.”
“착각?”
“도련님께서 학교에 다닐 때도, 회사에 나갈 때도, 늘 곁에서 충심으로 도련님을 지킬 사람은 바로 저 유종태뿐입니다!”
유종태는 가슴을 쫙 폈다.
“철구 아저씨한테는 연락해 봤어요?”
“예, 우광화학 화재 사건이 대충 마무리되면서 제법 한가해진 모양입니다. 도련님 입학식에 꽃다발 들고 찾아오겠다던데요?”
유종태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작게 속삭였다.
“선생님이나 학교 친구, 혹은 동네 형아들이 괴롭히면 자기한테 꼭 말하랍니다. 간첩이 학교에 튀어나오지 말란 법 있냐면서, 깔끔하게 때려잡겠다던데요?”
하여간에 뭐만 하면 간첩 타령!
내가 코찔찔이들한테 맞고 다닐 군번이냐고.
왠지 철구 아저씨의 순박한 웃음이 들리는 듯해서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유 팀장님, 혹시 중앙정보부장님의 연락처 아세요?”
“예?”
아니, 왜 그렇게 잔뜩 쫄았어?
당장 꽁지 빠지게 도망가고 싶어 하는, 뭐 마려운 개 같은 표정이랄까?
“서, 설마 저더러 중정부장을 청계산에 잡아 오라는······.”
“에이, 설마 제가 유 팀장님에게 그런 걸 시키겠어요?”
“그, 그럼······.”
“철구 아저씨한테 시킬 건데요.”
“······역시 넘버원은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자리인가.”
쓴웃음이었다.
“넘버원쯤 되려면 목숨 두어 개 가지고는 모자라겠습니다. 중정부장을··· 대한민국 서열 4위를 쥐도 새도 모르게 끌고 가서 청계천에 파묻어 목을 딸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대체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 거냐고.
내가 중정부장을 청계산에 파묻어서 뭐 하게?
연락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코라이 게이트 때문에 최근 청와대가 중정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면서요?”
이 사건의 여파로 당시 7대 중정부장이었던 신지수가 해임되고, 현(現) 중정부장이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그래서 8대 중정부장이 임명과 동시에 보인 첫 행보가 미국 청문회에서 증언을 한 4대 중정부장 김형원을 귀국시키는 거였다.
“철구 아저씨가 해결해주겠다고 나선다면 중정부장님이 몹시 기뻐하며 전폭적인 지원과 도움을 약속할 것 같지 않아요?”
* * *
청와대 집무실.
대통령은 집무실 책상 위에 펼쳤던 신문을 접으면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두 달이나 시끄럽게 굴던 우광화학 화재 사고를 깔끔하게 해결했군. 제법이야.”
“우광이 필사적으로 여론몰이를 했나 보더군요. 이미지 포장을 제법 잘 해내는 게, 나팔수 노릇도 잘 해낼 것 같습니다.”
“잘못 짚었다. 우광이 아니라 태성이다.”
태성?
중정부장의 눈이 슬쩍 가늘어졌다.
안 그래도 청와대는 들끓는 노조 시위로 영 골치가 아프던 참이었다.
“여덟 살짜리 꼬맹이가 시위대 맨 앞에 피켓을 들고 행진하면서 협상단 대표로 호소문을 읽고 대표자 협상에 참여했다. 이거 누가 쓴 각본이야?”
“······아마도 태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치머리 안 굴러가는 차 회장의 솜씨라기엔 너무 노련하고 세련됐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러니 제법이랄 수밖에.
“맹랑한 놈.”
대통령은 턱을 쓸었다.
“태성의 브레인. 겁도 없이 무력시위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살벌한 투쟁 한복판에 여덟 살짜리 어린애를 집어넣었다.”
“바로 전화 넣습니까?”
“이깟 일에 전화는 무슨. 결과만 봐.”
“무력시위는 벌어지지 않았고, 경찰은 강경진압하지 않았고, 꼬마는 무사했고, 두 달간 골치 아팠던 노사 문제는 해결됐습니다.”
“내가 바라던 바를 완벽하게 충족시켰지.”
대통령은 손을 내저었다.
“흠잡을 생각 없다. 지금처럼만 하라고 해.”
“그 꼬마 말입니다. 태성그룹의 막냇손자라고 합니다.”
“배짱 좋은 놈이군. 위험할지도 모를 시위대 맨 앞줄에 태성의 핏줄을 앞세워? 확실히 보통내기가 아닌 모양이야.”
대통령은 물끄러미 신문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꼬마, 낯설지가 않은데. 어디서 봤더라?”
“최근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온 적이 있습니다. 워낙 아역배우처럼 귀엽게 생겼으니, 인상 깊을 만도 합니다.”
“신문에? 왜지?”
“태성의 꼬마 도련님이 세뱃돈을 털어서 환우 돕기 행사를 열어 병원비를 책임졌다더군요. 이후 태성그룹 이미지가 부쩍 좋아졌습니다.”
“대중들은 3B에 약하지.”
미녀(Beauty), 아기(Baby), 동물(Beast).
이를 고려해 광고를 만들면 주목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태성의 브레인, 똑똑한 놈이야. 태성병원에 이어 우광화재 보상에 앞장선 정의롭고 따뜻한 기업! 어린애를 앞세워 이미지를 구축하려나 보군.”
“방산에 뛰어들면 필연적으로 잔인하고 폭력적인 이미지가 따라붙기 마련입니다만.”
“그러니 방산을 돌리되 태성의 이름이 아닌, 따로 투자회사를 우회해 굴리려는 속셈이겠지.”
“JH투자회사 말씀이군요. 그러고 보니 JH투자회사가 어제 우광 계열사 여섯 개의 인수 협상까지 끝냈다고 보고받았습니다.”
“우광이 그걸 순순히 내줬다고?”
대통령은 집무실 책상을 손끝으로 두들겼다.
“태성이 내 앞에서 아쉬운 소리를 먼저 꺼내지 않는 이상 모른 척할 생각이었다만.”
“죄송합니다. 둘이 치고받으며 오랫동안 사생결단을 벌이게 둘 작정이었습니다만, 이렇게 간단히 마무리해버릴 거라곤 저 역시 예상치 못했습니다.”
싸움이 길어져야 떨어지는 콩고물이 많았을 텐데.
하지만 대통령은 부하들의 콩고물 따위엔 관심 없었다.
“고작 30분 만에 협상을 끝냈다고 하더군요.”
“30분 만에?”
“두 그룹 대표끼리 비밀 회담을 열었다 합니다. JH가 우광의 계열사 여섯을 강탈해가는 동시에 우광의 노조 문제까지 깔끔하게 끝냈습니다.”
“우광이 완벽하게 농락당했군.”
대통령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상을 하나 내릴까.”
“상이요?”
톡. 톡. 톡.
대통령이 즐거운 듯 손끝으로 집무실 책상을 두드렸다.
“대내외적으로 대한민국의 국방력을 과시하는 행사 같은 거 잡힌 바 없나?”
“공업기지 전차공장에서 국산 고성능 전차 M48A3와 M48A5의 성능시험을 참관하는 일정이 있습니다.”
“JH도 불러.”
중정부장의 눈이 아주 잠깐이나마 크게 떠졌다가 본래대로 돌아왔다.
“각하, JH는 이제야 막 방산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을 뿐, 제대로 굴러가는 방산회사가 아닙······.”
“그딴 건 관심 없다. 대신 이 꼬맹이는 반드시 데리고 참석하라고 전해.”
대통령은 웃고 있었다.
“태성의 간판스타라며. 보기 좋게 밀어줘야지.”
< 태성의 간판스타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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