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왕산 선녀보살 (1) >
“다녀왔습니다!”
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씩씩하게 인사했다.
반가운 대답이 들려왔다.
“아이고, 내 새끼 왔니?”
거실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달려오셨다.
머리에 검은 비닐봉투를 뒤집어쓴 채였다.
바닥에 펼쳐진 군용 담요와 화투판, 어색하게 웃는 옥분 할머니와 도우미 아줌마들을 보자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우리 할머니 광 파셨구만.’
할머니 자리에만 동전이 수북했다.
대부분 10원짜리 동전이었지만.
“할머니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
“전화를 안 받잖니.”
그러고 보니 종일 시끄럽게 전화가 울리길래 몰래 전화선 뽑아놨구나.
“내 새끼, 어디 다친 데는 없고?”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손길로 내 몸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에이, 제가 다치기는 왜 다쳐요?”
“시위대 맨 앞에서 얼쩡거린 거 신문과 방송으로 다 봤다!”
할머니가 부리나케 달려오신 까닭이었다.
“거기가 어디라고 겁도 없이 나갔어? 어른들도 시위하다 막 잡혀가고 죽고 다치고 그러는데.”
독재정권 시절 시위대 강제 진압은 유명하지.
과거에 나는 아직 어렸던 까닭에 직접 몸으로 겪어본 바는 없지만, 보고 들은 풍문은 제법 되었다.
“전 그냥 확성기 잡고 호소문이나 읽은 게 다인걸요.”
“운이 좋았지! 시위대에 끼여서 머리에 빨간 띠 두르면 어린애고 노인이고 가리지 않고 잡아간다는 거 모르니?”
할머니는 날 꽉 끌어안으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너무 어려서 뭘 잘 몰라서 그랬겠지. 하지만 다시는, 절대로, 그런 위험한 시위에는 끼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응?”
다른 가족들은 전화해서 내 얼굴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다고 웃으며 시시덕거리던데.
할머니는 울먹거리면서 내 얼굴을 쓸어내렸다.
“귀여운 내 새끼, 할미가 놀라서 숨 멎는 줄 알았다.”
“저 안 다쳤고, 무력 진압 없었고, 협상 결과까지 다 괜찮았어요. 신문 보셨으니까 아시잖아요.”
“그래서 엄청나게 운이 좋았다지 않니! 약속해라. 다시는 절대로 위험한 시위 따윈 절대로 안 한다고.”
글쎄.
필요하다면 나서야 할 것 같은데.
‘원래 수단과 방법에 제약을 많이 걸수록 인생은 답답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난처한 웃음만 지을 수밖에.
“약속 안 하면 할미 여기 거실 바닥에서 드러누워서 ‘애미야, 국이 짜다!’ 어깃장 놓을 거야.”
“조심할게요.”
“끝까지 약속은 안 하지.”
“우리 회사 앞에서 태성의 노조가 파업하는데, 평생 모른 척 내다보지 않을 수는 없잖아요.”
“······.”
“전 지키지도 못할 입바른 약속 따윈 취급하지 않거든요.”
“······하여간에 이런 것만 나를 쏙 빼닮아서는.”
“제가 할머니 닮아서 싫으세요?”
“······.”
할머니의 표정이 참으로 묘했다.
입술만 몇 번이나 달싹거리다니, 또다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이구, 나중에 경영 일선에 나서야 할 애를 닦달할 수도 없고.”
할머니는 혀를 찼다.
“그럼 태성은 제외. 남의 회사 노조 시위나 민주화 투쟁 같은 덴 절대로 기웃거리지도 않는다고 약속할 수 있지?”
“······.”
그 역시 필요하다면 끼어야 할 것 같은데.
멀쩡한 판도 개판으로 뒤집어 놓아야 주워 먹을 게 더 많아지는 법이거든.
‘하지만 굳이 위험을 자초할 생각은 없으니까. 가족들이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고.’
나는 할머니가 내민 새끼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슬쩍 걸었다.
“약속할게요.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최대한 몸 사릴게요.”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였다.
“어이구우우우! 이 미련한 똥고집은 성준이 판박이라니까.”
“제가 아빠 닮은 게 싫으세요?”
“크흠, 그럴 리가 없잖니. ······약속한 거다.”
“네에.”
할머니는 마지못해 내가 건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고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었다.
나는 웃었지만 할머니는 입술을 삐죽삐죽 내밀었다.
“이 할미가 끝까지 억지 부리면 어떡하려고?”
미련을 못 버리신 모양이구만!
“바닥에 드러누워서 울음 떼 부릴 거예요.”
“······.”
“눈가가 짓무를 때까지, 종일 목청껏 울어재끼려고요. ‘할머니 미워!’ 하면서요.”
“······할미 아직 억지 안 부렸다.”
할머니가 눈동자를 또로록 굴렸다.
“그럼 할미가 네 어미를 시집살이시킨다고 협박한다면?”
“굶을 거예요.”
“뭐?”
“방에 들어가서 방문 걸어 잠그고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한 달이고 단식투쟁할래요.”
나는 동전 지갑에서 고이 말아뒀던 빨간 띠를 꺼냈다.
원래 투쟁하면 빨간 띠거든.
혹시나 또 쓸데가 있을까 싶어서 슬쩍 챙겨뒀지.
“이 할미 아직 며느리 시집살이 안 시켰다.”
할머니는 머리에 쓰고 있던 검은 비닐봉투까지 홱 벗어 던지며 외쳤다.
“우리 정혁이 점심은?”
“시간이 몇 시인데요. 당연히 먹었죠.”
“그럼 까까나 먹을래?”
할머니는 프라더 가방을 뒤졌다.
설탕 묻힌 꽈배기와 인절미 콩떡이었다.
아니, 이거 완전히 내 취향이잖아?
“잘 먹겠습니다!”
“성준이가 좋아하는 걸로 준비해 봤는데, 혹시 입에는 맞으려나 몰라.”
할머니가 프라더 가방에서 뭔가 또 주섬주섬 꺼냈다.
“미숫가루 좋아하니?”
“없어서 못 먹죠.”
“검은콩도 슬쩍 섞어봤다. 이거 남자한테 좋은데, 참 좋은데, 뭐라 설명할 수가 없네?”
“왜 설명을 못 하긴 못 해요?”
“······.”
“모발 건강에 좋잖아요. 모근까지 튼튼하게. 탈모 예방. 아니에요?”
“······.”
역시 몸에 좋은 건 어릴 때부터 미리미리 챙겨먹어야 하는 법.
이게 바로 미래를 위한 투자지!
“할머니 최고.”
나는 엄지를 들어주었다.
* * *
“진심이세요?”
나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아니, 상견례도 하기 전에 혼삿날부터 받아놓겠다고요?”
“이왕 살림 합칠 거 동거보다는 결혼이 좋고, 이왕 하는 결혼이라면 날은 빨리 잡으면 잡을수록 좋은 거 아니니?”
그렇긴 한데.
“원래 일은 저지르고 보는 거야. 휘말리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든 결판이 나는 법이니까.”
동의하는 바이긴 한데.
“남의 눈치 보면서 재고 따지고 뭉그적거리느니, 일단 사고 치고 수습하는 게 더 나아.”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외가 쪽에서 알면 많이 당황하실 것 같은데요?”
“그거야 그쪽이 감당할 몫이고.”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소리라서 뭐라 반박할 말이 없네?
이쯤 되니 어떻게 나랑 이리 생각이 비슷할까 신기할 정도다.
“싫으면 말라고 그래. 이판사판이다 이거야!”
“아니, 어떻게든 설득해보겠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예요?”
내 입으로 이런 말을 꺼내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선택지 운운하는 발언은 늘 나한테 던져지는 질문이었는데 말이야.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혼전임신했다고 애를 내쫓······ 이건 못 들은 걸로 해. 결혼 전에 애도 낳았겠다, 호적도 정리했겠다, 내 식구 내 며느리로 받아들이기로 말 다 끝냈겠다, 우리 쪽은 문제없잖니.”
물론 문제가 되는 쪽은 내 외가 쪽이긴 한데.
“여차하면 납치하면 돼.”
“누구를요?”
“누군 누구야. 당연히 네 엄마지.”
“······.”
“내가 사돈어른들을 납치해서 뭐에 쓰게? 보쌈해다가 며느리 삼을 것도 아닌데.”
할머니는 악당같이 웃고 있었다.
“꼬우면 덤비라고 해. 내가 다 이겨.”
저런 무대뽀 똥배짱까지 나랑 비슷할 줄은 몰랐는데?
‘이유 없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타입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물어보기로 했다.
“갑자기 이렇게 서두르시는 진짜 이유가 뭐예요?”
“인왕산 선녀보살 예약이 1년이나 꽉 찼대.”
미신을 믿지 않는 나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유였다.
그까짓 게 뭐라고.
기가 찼다.
“지난번에 여기 왔을 때, 이분이 사돈댁인 줄 착각했거든. 둘이 신나서 결혼시키자 합의 본 즉시 바로 예약 걸어놨지. 혼삿날 잡으려고.”
상견례도 건너뛰고 혼삿날부터 받겠다는 몰상식한 짓이 조금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옥분 할머니와 상견례 끝낸 줄 아셨구나.’
하지만 이건 급해도 너무 급하다.
나는 손을 내저었다.
“지금이라도 차근차근 진행하면 되겠네요. 외가에 연락해서 미리 찾아뵙고, 가족끼리 상견례 끝내고, 그다음에 양가가 함께 혼삿날을 잡아요.”
“예약이 1시간 후야.”
“······.”
그래서 이렇게 무작정 쳐들어왔다고?
“올해 대선과 총선이 동시에 열리잖니. 정치인들 외에도 자금줄 대는 재계 사람들도 다들 예약하느라 난리 났대.”
“······.”
“1년 기다려서 혼삿날 잡아야 한다고 결혼식을 미루고 싶진 않아서.”
결혼 날 받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이렇게까지 목을 매나 몰라.
점집이나 철학관은 널리고 널렸건만.
이거 대놓고 혀를 찰 수도 없고.
한심하단 눈으로 보고 있으려니, 할머니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솔직히 말하면 사돈댁이랑 같이 날 잡을까 하다가 일부러 나 혼자 가기로 결심한 거긴 해.”
“굳이 그러시는 이유가 뭔데요?”
“예전에 인왕산 선녀보살이 경고한 적이 있거든.”
할머니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우광의 딸이랑 억지로 결혼시키려 들면 네 아빠가 단명을 면치 못할 거라고. 결혼식 올려보지도 못할 거라고.”
과거 우리 아버지는 비행기 추락사로 단명 예정이긴 했다만.
그래서 아버지는 결혼식도 못 올리고 돌아가셨다만.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것처럼 선무당이 사람 잡았나. 겁준 다음 굿해야 한다며 돈 뜯어내려는 수작질을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저절로 내 눈이 가늘어질 수밖에.
“혹시나 해서 그때 인왕산 선녀보살에게 네 엄마 사주팔자를 슬쩍 들이밀며 물어봤단 말이야. 이 애는 성준이 짝으로 어떠냐고. 그랬더니 더 불길한 소리를 하더라.”
“불길한 소리요?”
“네 엄마 명이 더 짧대. 결혼 말이 나오기도 전에 집 나와 떠돌다 죽을 팔자라고.”
과거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더 일찍 연탄가스 중독으로 세상을 떠나셨다만.
“둘은 하늘이 맺어준 천생연분이라 만일 자식을 보면 천하에 둘도 없을 대단한 아들을 얻게 될 거라는데, 부모자식 간의 연은 박복하기 그지없어 죽어서야 다시 맺어질 운명이라······.”
흠칫했다.
“안타깝게도 그 아이는 평생 우리 태성가와는 인연이 닿지 않는대. 그러니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길이 없을 거라고······.”
문득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둘 다 결혼 올리기도 전에 죽는다는데, 내가 자꾸 걱정이 되잖아. 혹시 결혼식을 올리면 크게 탈 나는 건 아닌가 하고.”
나도 모르게 목에서 앓는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런 소리를 하는 무당이 있다고?’
우리 가족을 두고 하는 소리라고는 죄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악담뿐이었는데.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
‘이 정도면 허튼소리가 아닌데?’
나는 곰곰이 과거를 되짚어 보았다.
평생 미신이라고는 믿어본 적이 없기에.
그래서 이런 쪽엔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주변에서 꺅꺅대며 용하다는 소리가 흘러나와도 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넘긴 적이 대부분이었다.
‘인왕산 선녀보살이라. 그러고 보니 왠지 내가 아는 이름이랑 비슷한 것도 같고.’
기억 속의 예쁘장한 얼굴을 떠올리자마자, 나도 모르게 꽉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나랑 결혼해.
그녀는 나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지하금융계의 다섯 거물 중 한 명이었다.
‘걔는 조선 독립부터 한국전쟁과 군사 쿠데타로 인한 정권 교체까지 전부 맞춘 것으로 유명했다던 무당집 출신이라고 했던가?’
대한민국 정재계의 유명인사들은 그 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곤 했다.
용하다는 소문이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
일본과 중국에서도 고위 관료들이 점을 보러 몰래 입국해 찾아올 정도였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고개를 저어 애써 상념을 털어냈다.
나는 미신도, 무당도, 점쟁이도 딱 질색인 사람이다.
할머니는 내 눈치를 슬쩍 보았다.
“혹시나 인왕산 선녀보살이 언급했던 불길한 때가 아직 안 돼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응, 그건 이미 지난 것 같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간신히 죽음에서 비켜가셨거든요.
이걸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그런데 이게 웬일?
불안한 마음이 불쑥 치솟았다.
‘정말 죽음을 확실하게 비켜간 게 맞나? 죽을 운명이란 게 보통 일이 아닌데, 그렇게 쉽게 벗어날 수 있긴 해?’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만일 부모님께 또 다른 형태의 죽음이 예정되었다면······ 어떡해야 하지?’
딱.
손가락을 튕겼다.
‘이봐, 수호신.’
[본 처사는 인간의 운명에 관해 말해줄 수 없다.]
언제 내 등 뒤에 왔던 건지 모르겠다.
저승사자는 고개를 저었다.
[천기누설이다.]
알지. 천기누설.
하지만 한번 고개를 쳐든 불안한 마음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나 또한 한 치 앞을 모르는 사람이니까.
‘무당한테 물어보는 건 괜찮지?’
[······.]
저승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 된다고 딱 잘라 반대하지도 않았다.
“이왕 결혼시킬 거라면 세상에서 가장 길한 날에 맺어주면 좀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또······.”
할머니는 나를 슬쩍 보더니 눈 딱 감고 말했다.
“정혁이 네가 태성가와 인연이 닿지 않는다는 말은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 태성가에서 쫓겨날 거란 얘기가 맞는지, 그걸 막을 방도는 없는지, 뭐 그런 걸 물어보고 싶어서······.”
뭘 이렇게 혓바닥 길게 놀리며 뜸을 들이시나.
나였다면 단번에 본론부터 꺼냈을 텐데.
바로 이렇게.
“할머니, 저랑 같이 가요.”
“응?”
“인왕산 선녀보살인가 뭔가 하는 무당집이 어딘데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운동화부터 구겨 신었다.
< 인왕산 선녀보살 (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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