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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만렙 아들-149화 (149/189)

< 오다 주웠다 >

여섯 살짜리 어린애 입에서 나온 애첩 소리에 집 안이 발칵 뒤집혔다.

거실에 있던 유종태와 태성그룹 경호원들까지 찾아와 숨죽이고 지켜봤다.

“하아아······.”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애첩은 무슨 얼어죽을, 그런 거 아니니까 잊어버려.”

“잊으면 안 되는 거야. 내겐 서방님이라곤 오직 오빠 한 사람뿐인······ 헉!”

예린이 어깨에 앉아 있던 주작이 날개를 쫙 펴면서 [삐약삐약!]거렸다.

예린이는 황급히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흐으응, 어떡해. 이런 거 막 함부로 말하고 다니면 안 된댔는데······.”

[삐약삐약!]

“못 들은 거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흐으응.”

“하아아······.”

골치가 아프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머니가 어색하게 웃었다.

“이왕 우리 정혁이를 서방님 삼을 거라면 애첩보다는 아내가 더 좋지 않을까?”

“기울어지는 저울이래요. 제가 품기엔 오빠가 너무 과분하대요.”

[삐약삐약!]

예린이 옆에서 주작이 부리를 쩍 벌리고 화르륵 화르륵 불꽃을 토했다.

예린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릇보다 많은 물은 흘러넘치기 마련이고, 힘없는 자의 손에 떨어진 보물은 재앙과도 같으니.”

“······.”

“천운으로 귀인을 만났으니 팔자가 잘 풀려서 재벌집 애첩 자리까지 노려볼 수 있게 된 거래요. 그것만으로도 제겐 넘치도록 과분한 행운이라고.”

나는 으드득 이를 갈았다.

“한 번만 더 애첩······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계속하면 나 진짜 화낼 거야.”

“그럼 나 또 저리 가 할 거야? 이 집에서 쫓겨나는 거야? 아, 안 되는데······.”

예린이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어쩔 줄 몰라 하자, 어머니가 재빨리 정신을 수습했다.

“아니, 예린아.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정혁이가 그랬니? 이 집에서 쫓아낸다고?”

“······.”

날 보는 어머니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설마 애첩 소리도 정혁이가 꺼낸 거니? 이노무시키가······!”

“아니에요. 그건 주작신께서 알려주신 거예요.”

“저기, 예린아. 어떤 못된 놈이 어린 네게 그런 헛소리를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헛소리가 아니에요. 저도 제 주제를 잘 알고 있어요.”

“응?”

“저는요, 부모님이 안 계세요. 고아예요. 어려서부터 외할머니께서 키워주셨어요.”

어머니는 당황하여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예린이는 손가락을 펼쳐 하나씩 꼽아가며 말했다.

“우리 집은 대대로 무당집이래요. 한마디로 오빠와 정략결혼을 맺을 만한 집안이 아니란 소리예요.”

“예린아, 나만 해도 평범한······.”

“무당집은요, 평범한 일반 가정집만도 못해요.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으니, 행여 제 치부가 새어나갈까 껄끄러워하거든요.”

“······.”

“저도 무당이에요. 액막이를 하고요, 남을 위해 치성을 드리고 복을 빌어주며 공덕 쌓는 일이에요. 복채, 그러니까 돈 받고 해요. 그래서 다들 얕잡아 봐요.”

“······.”

“무당은요, 제일 밑바닥, 그러니까 거지조차 내다보지 않는, 버림받은 영혼들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거든요. 사람들 하소연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직업이거든요.”

“······.”

“그래서 전 낮보다는 밤이, 양지보다는 음지가, 행복보다는 불행이 더 친숙해요.”

예린이는 힘없이 웃었다.

“하지만 정혁이 오빠는 앞으로 누구보다 밝고 높은 곳에 서서 유명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사람이잖아요.”

“예린아.”

“나라와 기업의 앞날을 논하고, 돈과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쥐고, 행보마다 사운과 국운이 요동칠 큰 인물이 될 텐데.”

“······.”

“흠 많은 저는 도움은커녕 걸림돌만 될 거예요. 그럼 안 되는 거잖아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입을 떡 벌리고 예린이를 바라보았다.

여섯 살짜리 어린애가 할 만한 발언이 아니었다.

주작은 자랑스럽게 삐약거리고 있었지만, 어른들 눈에는 그런 건 보이지도 않을 테니까.

“그러니 어떻게 제가 감히 오빠의 아내 자리를 탐낼 수 있겠어요? 애첩도 과분하죠.”

“하아아······.”

예린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무녀복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평생 삼청동에 틀어박혀서 있는 듯 없는 듯 거슬리지 않게 조용히 살게요. 절대로 오빠한테 민폐 안 끼칠게요.”

“······.”

“오빠의 정실부인을 투기하고 싸우고 분란 일으키는 못된 첩년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각오 단단히 하고 있어요.”

“······.”

“그러니 부디 애첩도 안 된다며 꺼지란 소리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

“몸가짐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여 평생 오빠를 위해 치성드리고 공덕 쌓을 거예요. 그래도 안 될까요?”

어른들은 아연실색했다.

어머니, 아버지, 옥분 할머니와 도우미 아줌마들은 물론 유종태와 태성그룹 경호원들까지.

“하아아······.”

나는 그만 두 손으로 눈을 덮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유종태가 엄지를 들어 올렸다.

“역시 우리 도련님! 떡잎부터 남다르시다니까요!”

태성그룹 경호원들도 고장 난 차량용 인형처럼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와, 진짜 엄청나시네요! 이거 프로포즈 아닌가요?”

“나 여덟 살 때엔 여자애들이 가까이 오면 죽인다고 욕하던데!”

“벌써부터 애첩 자리를 노리는 여자가 나타날 줄이야!”

“사람 눈 다 똑같다니까요? 어린애 눈에도 우리 도련님이 멋져 보이는 거죠!”

아버지는 관자놀이를 긁었다.

“예린아, 네가 지금 몇 살이랬지?”

“하나, 둘······.”

“여섯 살이요.”

또 손가락을 꼽기에 내가 먼저 대답을 가로챘다.

“그래, 여섯 살. 아직 애첩 자리를 논하기엔 많이 어린 것 같구나.”

어머니도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셨다.

“그래, 예린아. 그리고 내가 겪어본 바로는 우리 집안이 막 그렇게 조건 배경 따져가면서 사람 가려 받고 그러는 집안 아니야.”

“어머님은 자식 덕으로 그 자리에 앉으신 거예요. 저와는 경우가 다르죠.”

“응?”

“오빠만큼 귀한 아들을 낳을 자신이 없거든요.”

“······.”

“그럼 복채는 애첩 자리 예약하는 것으로 받고, 어머님 아버님의 올해 신수를 봐드릴게요.”

얘가 은근슬쩍 쐐기를 박아버리네?

주작이 덩치를 키우며 불꽃을 강하게 일으켰다.

예린이가 눈을 반쯤 감고 손가락을 마디마디 꼽기 시작했다.

“어머님께서 지금 속 끓이고 있는 문제요. 며칠 내로 시원하게 해결될 거예요. 텅텅 비었던 중요한 자리는 어머님과 아버님께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로 꽉꽉 채우게 될 거예요.”

“어머!”

“멀리 따뜻한 곳에서 불려왔네요. 영광과 행운으로 축복받은 영전. 이보다 더 좋은 인연도 없을 거예요.”

“세상에······! 그렇게만 되면 좋지!”

어머니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보자······. 어머님은 곧 친정과의 인연을 다시 이을 수 있을 거예요.”

“어머!”

어머니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버지는 미심쩍은 표정이었으나, 어머니가 너무 집중하고 있는 터라 달리 별말은 하지 않았다.

“아버님께서 꽤 두들겨 맞으시겠네요. 그래도 눈 딱 감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아주세요. 그래야 꼬인 인연을 풀 수 있거든요.”

“꼬인 인연?”

심드렁하던 아버지가 멈칫했다.

“완전히 돌아섰던 인연을 다시 풀어내는 일이에요. 쉽지 않을 거예요.”

“각오하고 있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오빠를 앞세워서 굽히고 들어가면 돼요. 잘난 아들 뒀다가 뭐에 쓰겠어요. 이럴 때 덕 보세요.”

“그럴 수야 없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울 생각 없다.”

예린이는 가타부타 덧붙이지 않고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손을 들어 허공에 방위를 짚어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땅보다 숨겨둔 땅이 더 많아요. 부산을 비롯한 남쪽에 잔뜩. 일본엔 더 많군요. 금싸라기 땅으로만 골라서 어마어마하게 많이도 가지고 계시네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건 다 정혁이 오빠의 몫이 될 거예요.”

“아냐, 그럴 리 없어.”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집이 농사를 지어서 땅이 조금 있긴 하지만 그게 다야. 게다가 난 동생도 있어서······.”

“친정아버님께 물어보면 알게 될 거예요.”

예린이는 빙그레 웃었다.

“오빠에게 큰 힘이 될 기반이니까 잊으면 안 돼요.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지 마시고요.”

아버지가 뭔가 입을 열려고 하자, 예린이는 완전히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돌렸다.

“아버님, 정혁이 오빠 동생은 여자애였으면 하시죠?”

“······!”

“제가 오늘부터 백일치성 올릴게요. 그럼 머지않아 찾아오게 될 거예요.”

“뭐?”

아버지는 떡 벌어지려는 입을 애써 다물었다.

구겨졌던 미간은 반듯하게 펴졌고, 심드렁했던 표정은 순식간에 지워졌다.

아버지는 식탁에 몸을 바짝 붙이며 귀를 쫑긋 세웠다.

“머지않다면··· 언제쯤?”

“어디 보자. 백일치성 끝내고 돌아오는 가장 길한 달이라면······.”

예린이는 신중하게 손가락 마디를 꼽았다.

“추석 즈음에 아마 좋은 소식을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오!”

아버지가 활짝 웃으면서 크게 반색했다.

아버지가 급히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꺼냈다.

아예 지갑째로 예린이 손에 쥐여줬다.

“복채. 부족하면 더 말하고. 치성? 그것도 필요하면 얼마든지 청구하고.”

“아니에요. 저는 오빠 애첩 자리만 허락해주시면 충분해요.”

“애첩 자리 가지고 되겠어? 예린아, 꿈은 크게 가져라.”

“그래서 야망 있게 애첩 자리를 노리는 건데요? 한철짜리 정부나 하룻밤 상대가 되고 싶진 않거든요.”

“······.”

묘하게 현실적인 야망이었다.

유종태가 엄지를 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이 정도면 천생연분인데요? 이게 여섯 살짜리 어린애가 할 법한 말이냐고요.”

응, 그거 아니야.

지금 주작이 예린이 입을 통해서 나불대는 거야.

유종태는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역시 우리 도련님 짝입니다! 싹수부터 남다르다니까요?”

옥분 할머니가 나지막하게 탄식했다.

“여덟 살짜리 정혁이한테도 여자가 붙는데, 대체 우리 철구는 언제······ 에라이!”

“잠깐만요.”

예린이가 감았던 눈을 반쯤 뜨면서 옥분 할머니를 돌아봤다.

“아드님께 횡액이 닥쳤네요.”

“나? 우리 아들? 철구?”

옥분 할머니가 들고 있던 국자로 자신을 가리켰다.

예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변사체로 발견되고 싶지 않으면 당장 이 집 처마 밑으로 들어와 들이치는 소나기를 피해야 해요.”

“벼, 변사체라니?”

“고래 싸움에 끼어서 새우 등 터지게 됐거든요.”

고래 싸움이라는 소리에 짚이는 바가 있었다.

‘우광 노조 시위가 잠잠해지고, 우광을 향한 비난이 수그러들었으니, 슬슬 움직일 때로군.’

철구 아저씨는 우광건설 뇌물 장부 때문에 원한을 샀다.

그로 인해 감찰국 국장과 선임 요원들이 잘렸고, 중정부장의 뇌물 비리도 드러나게 됐다.

옥분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애는 어디 가서 쥐어터지고 다닐 애가 아닌데······.”

“직장에서 얽힌 악연과 원한이에요. 이미 한번 작정하고 쏘아 올린 독화살, 세 번째도 운 좋게 피할 수 있을까요?”

세 번째란 말에 옥분 할머니가 기함했다.

“세 번째라니?”

“아드님께선 귀인 덕에 운 좋게 두 번이나 목숨을 구한 줄 아세요.”

“서빙고 물고문실에 끌려가서 까딱하면 죽을 뻔한 걸 정혁이가 구해주긴 했는데······.”

“한 번 더. 이 집에서 죽을 고비를 한 번 더 넘겼어요.”

이번 대답은 유종태가 가로챘다.

“맞습니다. 야밤에 웬 놈들이 담벼락을 넘어왔는데, 총을 두 자루나 들고 왔더라고요. 마침 도련님의 요청으로 경비가 강화돼서 화를 면했었죠.”

“우리 철구한테 그런 일이!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오빠 도움 없이는 이번 죽을 운을 피하긴 어려울 거예요. 감당 못 할 윗선이 직접 움직였거든요.”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중정부장과 우광 회장이 작심하고 나섰나 보군.’

예린이가 나를 돌아봤다.

“오빠, 죽을 사람 한번 살려주는 셈 치고 바다 건너 멀리 보내서 오빠 일을 맡겨 보는 건 어때요?”

아니, 어떻게 알았지?

‘코라이 게이트. 그걸 맡아 해결할 적임자로 철구 아저씨를 꼽고 있었는데.’

안 그래도 심 사장님을 통해 우광 김대식 회장에게 쪽지를 보낼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철구 아저씨 앞으로 실적도 만들어 줄 겸.

“오빠와 함께하면 대운을 불러올 만한 사람이에요. 생각보다 능력도 출중하고, 인덕도 따르네요.”

맞는 말이다.

이미 난 철구 아저씨가 갖고 있던 우광건설 뇌물 장부 덕을 톡톡히 봤다.

“멀리서 지원사격 제대로 해주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오빠한테 보답할 인연이에요.”

“내가 여기서 이럴 게 아니지! 아이고, 철구야!”

옥분 할머니는 전화기가 있는 거실로 달려갔다.

어느새 도우미 아줌마와 태성그룹 경호원들은 저마다 복채를 손에 쥐고 길게 줄을 섰다.

“거 밀지 좀 맙시다!”

“어이, 신입. 하늘 같은 선배한테 양보 없냐?”

“점 보는 데 선후배가 어딨습니까? 얄짤없습니다!”

벌컥.

그때 현관문이 열리면서 곰처럼 커다란 덩치가 쑥 들어왔다.

“어이, 태성그룹 경호원들아. 문단속이 왜 이따구냐? 대문이랑 현관문이 활짝 열렸던데?”

철구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철구 아저씨 머리 위에는 [3일]이라는 저승행 카운트다운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강 여사, 퇴근 시간 훌쩍 넘으셨어. 오랜만에 아들이랑 같이 데이트나 할까?”

“아이고, 철구야! 너 마침 잘 왔다!”

“웬일이야? 우리 강 여사가 날 이렇게 반겨줄 줄은 미처 몰랐네? 참!”

철구 아저씨는 순박하게 웃으며 검은 비닐봉지를 쑥 내밀었다.

“너 이런 거 좋아하지? 오다 주웠다.”

은단과 뻥튀기였다.

예린이는 방긋 웃었다.

“그럼 할머니 복채는 이걸로 퉁칠게요.”

갓 신장개업한 무당치고 복채 회수까지 아주 확실했다.

바람직한 자세였다.

예린이는 철구 아저씨에게서 가로챈 은단과 뻥튀기를 나한테 쑥 내밀었다.

“오다 주웠어. 헤헤헤.”

< 오다 주웠다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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