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숟가락 얹기 (2) >
김대식은 일그러진 표정을 감추기 위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우광을 토사구팽하는 겁니까?”
“토사구팽이라면 적극적인 협조 요청이 들어오진 않았겠죠. 청와대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판국입니다.”
우광의 적극적인 협조.
그게 중정부장이 앞서 요구한 조건이었다.
“우광은 이미 각하께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짖으라면 짖을 것이고, 물라면 물······!”
“그것까지야 제가 모르는 일이지요.”
“우광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대통령 각하께서도 인정하신 바였고요. 그런데 어째서 우광이 아니라 태성을······!”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합니까? 최선의 결과를 내는 게 더 중요한 겁니다.”
심 사장은 김 비서가 전한 쪽지를 곱게 접어 양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남은 얘기는 중정부장님과 마저 하시고.”
“우광이 후원하고 있는 로비스트 명단을 내놓겠습니다!”
김대식이 갖고 있던 비장의 한 수였다.
하지만 이걸 어쩌나.
“로비스트 명단이라면 혹시 이런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심 사장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팔랑팔랑 흔들어 보였다.
내가 미리 작성해서 넘겼던 물건이었다.
코라이 게이트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비참하게 죽었던 로비스트들의 이름.
“제임스 오, 다니엘 리, 제인 송, 엘리제 킴, 토마스 최, 베로니카 신······.”
“그걸 어떻게······!”
우광이 필사적으로 숨겼던 이름들이었다.
우광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로비스트들을 모조리 쓸어 담아 코라이 게이트에 투입시켰다.
주한미군의 철수를 막고, 미국을 향한 공산권 접근을 억제하며, 한국 내 인권문제 제기를 방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미리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우린 우광의 협조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
“태성의 호의였습니다. 그걸 거절하신 건 김 회장님이십니다.”
심 사장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 내놓겠습니다!”
우광의 김대식이 심 사장의 다리에 와락 매달렸다.
“그러니 우광도 밥숟가락 하나만 올리게 해주십시오!”
김대식은 비장하게 외쳤다.
“태성이 타고 있는 그 배에 우리 우광도 같이 태워주십시오!”
모든 공작엔 돈이 든다.
“코라이 게이트에 얼마나 많은 자금이 투입된 줄 아십니까? 태성이나 삼황, 일성, 금조, 현무, 청월보다도 우광의 출혈이 훨씬 컸습니다!”
코라이 게이트처럼 국가 단위로 벌이는 공작이라면 로비에 들어가는 돈의 단위부터가 달라진다.
그 모든 자금을 국고를 털어서 진행하지는 않았을 터.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히고, 미국 하원이 들고 일어나서 코라이 게이트를 들쑤시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걸 덮는 데엔 더 많은 돈이 들어갈 테죠!”
응, 아니야.
‘정석대로라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사건을 덮고, 중요 증인을 빼돌리고, 관련된 실세들을 매수하겠지만, 이번만은 문제가 다르지.’
철구 아저씨가 코라이 게이트의 핵심 인사인 김형원 전(前) 중정부장의 소재를 파악했거든.
‘숨어 있던 김형원만 잡아오면 코라이 게이트는 그대로 끝날 거다. 연루된 미국의 정재계 인사들이 앞다투어 제 치부를 덮기 위해 달려들 테니까.’
어차피 김형원의 증언에서 시작된 일이다.
‘확실한 증거가 나왔으면 청와대가 이렇게 오랫동안 발뺌 못 했지.’
여태 나온 증거는 죄다 미국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뇌물을 잔뜩 받았다는 것뿐이다.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함.
그런 이유로 중정부장은 자금의 출처를 증언할 김형원의 입을 막고 싶어 한다.
과거에도 그런 식으로 김형원이 파리에서 증발되면서 코라이 게이트는 흐지부지 묻혔다.
‘난 사실 처음부터 우광에게서 돈 뜯어낼 생각 따윈 없었단 말이지.’
뜯어내 봤자 푼돈!
내가 우광의 현금 사정을 모를까.
하지만 그걸 모르는 김대식은 죽는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코라이 게이트를 덮는 데 들어갈 천문학적인 자금 부담을 생각하면 눈앞이 까마득했을 테니까.
“우광철강의 숨겨진 속사정을 알고 계신다면 재게 서열 9위였던 우광이 왜 현금 부족에 시달렸는지도 아실 거 아닙니까.”
코라이 게이트를 덮을 공작금을 대느라 허리가 휘었거든.
우광화학 화재가 터졌어도 대통령이 우광의 김 회장을 한번 눈감아줬던 까닭이었다.
김대식이 매달리자, 심 사장은 몹시 부담스러워하며 다리를 털었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싫다며? 뻔뻔해도 유분수라며?”
“쪽지 못 봤습니까? 능력이 안 되면 돈이라도 대라면서요!”
김대식은 필사적으로 심 사장 바짓가랑이에 달라붙어서 좀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코라이 게이트에 밥숟가락 얹게 해주는 것으로 감지덕지하라면서요? 그게 우광그룹 지주회사 지분 7%를 내놓은 값이라면서요!”
김대식은 심 사장의 얼굴에 내던졌던 쪽지를 주워 들었다.
잔뜩 구겨진 쪽지를 심 사장에게 들이밀었다.
“그래서 얼마면 됩니까!”
“그럴 돈은 있고?”
“사채라도 써야죠!”
세무조사가 한 번 뜨면 뜯겨야 할 징수액이 까마득.
압수수색이 한 번 닥치면 고꾸라질 주가에 또 아득해질 터였다.
“태성화학을 인수할 돈도 없어서 어음으로 결제한 우광이? 안 그래도 밀려드는 어음은 어떻게 처리하시려고?”
“세금 추징과 주가 폭락을 생각하면 울며 사채라도 쓰는 게 더 쌉니다! 아니, 솔직히 내가 안 내놓으면 억지로 계열사라도 뜯어가서 엿 바꿔 먹을 거잖습니까!”
김대식은 입술을 깨물었다.
김대식이 내민 쪽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살려주십시오.”
“좋습니다.”
심 사장은 흔쾌히 김대식이 내밀었던 쪽지를 받아 들었다.
그러더니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김대식은 깜짝 놀랐다.
“지, 지금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증거 인멸하는 중입니다만?”
“예?”
“이런 걸 세상에 남겨 봐야 좋을 거 없잖습니까. 우광의 약점이 될 뿐입니다.”
김대식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으로 심 사장을 돌아봤다.
“심 사장님, 이러면 태성은 윗선의 문책을 피할 수 없을······.”
“그건 태성이 책임지겠습니다.”
심 사장은 손을 내저었다.
“우리가 우광의 사정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돈은 됐습니다.”
“각하께선 코라이 게이트를 닫길 바라십니다. 그를 위해서라면 누군가는 돈을······.”
“그건 태성이 책임진다지 않습니까.”
“······!”
김대식의 표정이 참으로 볼만해졌다.
“왜 태성이··· 왜 우리 우광을 대신해서······ 그 많은 돈을······.”
“세 번째 말하는 것 같군요. 태성의 호의였다니까요.”
“······!”
처음 ‘태성의 호의’란 소리를 들었을 때 지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김대식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 뜻을 곱씹었다.
“청와대의 뜻, 토사구팽, 세무조사, 압수 수색, 물고문실, 전기의자, 우광의 적극적인 협조, 한배, 밥숟가락, 태성의 호의.”
이 많은 단어는 한 단어로 대체될 수 있었다.
-외통수.
김대식은 담담한 목소리로 정중하게 말했다.
“각하의 뜻에 따라야지요.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왈왈왈!”
“잘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됩니까? 로비스트 명단은 필요 없을 테니······.”
“미국 내 유통망을 열어주십시오.”
“······!”
심 사장은 씩 웃었다.
“도망간 전(前) 중정부장 김형원을 잡고, 미국 정부의 손에서 로비스트들을 빼돌리려면 은밀한 루트가 필요하잖습니까.”
김대식은 대답이 없었다.
“싫으면 빠지시든가. 이번에도 안 말립니다.”
심 사장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우린 우광의 협조가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이번 일의 공은 전부 태성이 먹는 것으로 얘기 끝냅시다.”
“잠깐!”
우광의 김대식은 두 손을 들었다.
백기 투항이었다.
“미국 내 유통망, 열어드리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심 사장은 산뜻하게 웃으며 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이건 또 뭡니까?”
“아시잖습니까. 윗분들은 말보다는 문서를 믿으신다는 거. 거기 맨 아래에 서명 날인이나 하시죠.”
김대식은 기가 질린 듯이 중얼거렸다.
“누가 이번 기수 브레인이 되었는지 몰라도······ 번번이 그 수완에 휘말려 속수무책이 되는군요.”
기시감이 드는 표정이었다.
지난번에 우광 계열사에서도 김대식은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태풍에 휘말리는 걸 피할 수 없다면, 든든한 배를 얻어타고 출항하는 게 최선입니다. 이왕 얹기로 한 숟가락, 눈 딱 감고 전력으로 서포트하는 수밖에요.”
김대식은 떨리는 손으로 심 사장이 건네는 만년필을 바로 쥐었다.
“우광은 각하께 충성을 다 바칠 것이라고 전해주십시오. 멍멍! 왈왈왈!”
개소리를 짖어대면서 김대식은 서명을 끝냈다.
우광이 공들여 닦아놓은 미국 내 유통망을 넘긴 것이다.
“······태성이 호의를 베푸는 진짜 이유가 뭡니까?”
“처음부터 말했잖습니까. 우광의 적극적인 협조를 바란다고.”
“적극적인 협조랄 게 또 있습니까?”
“첫째, 태성에 넘긴 우광 계열사 임원들을 포기할 것.”
김대식은 심 사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광은 임원들을 간자로 활용하여 태성의 기술을 빼돌릴 생각이잖습니까. 그건 포기하시죠.”
심 사장은 김대식이 서명 날인한 종이를 잘 접어 품에 넣었다.
“둘째, 빼돌렸던 우광연구소 기술 및 연구 기록들을 온전하게 내어줄 것.”
지금껏 우광연구소를 제대로 굴리지 못하던 이유였다.
태성화학을 넘길 때 심 사장이 장난질을 쳤던 것처럼 우광 또한 연구소 개발 및 연구 기록을 일부러 훼손했다.
“셋째, 몰래 뒤로 개발했던 방산 기술 및 전문연구원들을 넘겨줄 것. 어떻습니까?”
우광도 방산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우광연구소의 기술연구원들을 차출해 뒤로 빼돌렸다.
김대식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누가 이번 기수 브레인이 되었는지 몰라도······ 진짜 진저리 치게 지독한 놈인 것만큼은 확실하군요.”
김대식은 이번에도 두 손을 들었다.
심 사장은 빙그레 웃었다.
“대신 우광이 태성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준다면 태성도 이를 모른 척하진 않을 겁니다.”
“모른 척하지 않는다면······.”
“우광철강도 우광연구소의 철강 및 신소재 기술 덕을 보게 해드리겠습니다.”
심 사장이 손을 내밀었다.
“태성의 방산 사업에 우광도 밥숟가락 얹을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설마 이것도 그분의 솜씨입니까? 태성의 익명 후원자이자 각하의······.”
“물론입니다.”
“하!”
김대식은 심 사장의 손을 잡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또 속수무책으로 홀랑 넘어갔군. 진짜 대단한 수완가라니까.”
나지막한 감탄이 깃든 혼잣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심 사장의 품에서 나온 또 다른 종이 때문에 파스스 부서지고 말았다.
심 사장은 상큼하게 웃으며 만년필을 도로 쥐여 주었다.
“아까 말했듯이 말보다는 문서를 믿으신다는 거 아시죠? 거기 맨 아래에 서명 날인이나 하십시오.”
김대식은 기가 질린 듯이 중얼거렸다.
“지독한 놈! 이 자식은 대체 어디까지 철두철미한 거야?”
* * *
나는 저승사자와 시야 공유를 껐다.
‘끝내주는 황금빛!’
김대식이 서명한 종이는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두 장 모두 다!
‘우광이 닦아놓은 미국 내 유통망을 날로 먹게 됐네?’
그뿐만이 아니다.
‘이제 드디어 방산 사업이 제대로 굴러가게 생겼다!’
내가 일부러 우광의 김대식과 담판 지으려던 진짜 이유였다.
‘우광이 왜 그동안 적자를 감수하면서 연구소를 공들여 키웠겠어?’
우광연구소가 똥빛이 돌았던 이유는 확실했다.
지금껏 들어간 돈에 비해 내놓은 기술 수준이 대단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우광연구소는 우광재단의 우수한 인재들이 들어가 조만간 대단한 성과를 내기 시작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다.
두 번째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우광연구소의 기술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석유파동에는 연비 절약을 위한 고효율의 기술집약적 산업이 각광받기 마련이니까.’
제2차 오일쇼크 때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이 도미노처럼 망가진 이유.
그건 바로 비싼 석윳값 때문이었다.
그때 살아남은 자동차 기업은 미리 연비 기술 개발에 목을 맸던 독일과 일본 자동차 회사, 그리고 자본력이 대단했던 미국의 일부 자동차 기업뿐이었다.
‘그 난리 속에서 우광자동차와 중장비가 살아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지.’
김대식 회장이 빼돌린 우광의 연구원과 기술을 이대로 놓치기엔 너무 아깝다.
‘지금껏 우광이 오랫동안 투자해왔던 우광의 돈과 기술, 시간 및 인재들이다. 이걸 온전하게, 고스란히 받아와야지.’
태성의 방산 사업은, 내 기반은 거기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 밥숟가락 얹기 (2)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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