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만렙 아들-166화 (166/189)

< 고작 입학식인데 (1) >

한남동 우리 집은 이른 아침부터 평소보다 조금 더 북적댔다.

별것 아닌 이유였다.

“입학식이 다 뭐라고 이 난리예요?”

“우리 도련님의 역사적인 첫 등교인데요!”

태성그룹 경호원들은 부산을 떨어댔다.

“이럴 수가! 정혁 도련님이 또 동동구리무를 들고 계셔! 뺏어!”

“돌반지 압수, 금목걸이 압수, 꽃무늬 셔츠 압수. 미아용 금팔찌는 차고 다니셔야죠!”

“어이, 신입. 다림질 똑바로 안 할래? 바짓단 각이 3도 정도 기울었는데? 다시.”

“운동화 안 됩니다! 오늘은 무조건 불광 낸 구두를 신어야죠!”

“꽃다발 체크하고! 꽃종이 챙겼지? 생일 폭죽은? 플래카드는?”

“유 팀장님 어디 계시냐? 즉석 사진기는 또 어디 박아두셨대냐?”

주방 쪽도 소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도련님 반 친구분들에게 돌릴 쿠키는 개별 포장 다 끝냈어요?”

“햄버거 수량이 안 맞는데요? 두 개가 비어요!”

“두유도 한 병 모자라요.”

“어떤 인간이 양심도 없이 몰래 먹고 튀었지? 어우, 이 인간 잡히기만 해 봐라!”

“제사상엔 가 봤어요? 가끔 도련님은 맛있는 거 보이면 제사상 위에 올려놓더라고요.”

저승사자가 혀를 찼다.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구만.]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드라마 보면 다 나와.]

저승사자는 고수레로 챙긴 두유병과 햄버거를 힐끔 보았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두유병에 빨대를 꽂고 쪽쪽 빨아 마셨다.

따끈하게 데운 두유가 제법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하지만 햄버거를 내려다보는 눈은 영 마뜩잖아 보였다.

[요즘 애들 주먹밥은 왜 이 모양이야? 밥알은 다 어디 도망갔어? 김치는 왜 안 넣고?]

‘그건 주먹밥이 아니라 햄버거란 거야.’

[코쟁이 놈들 주먹밥인가? 그럼 난 됐다.]

‘옥분 할머니표 햄버거는 차원이 다르다구? 일단 한번 잡숴 봐.’

[썩 내키지 않는데··· 쯧.]

갓 구운 빵에 신선한 양상추와 채 썬 양배추.

육즙 가득 쇠고기 패티와 잘 구운 양파와 베이컨.

얇게 저민 햄과 토마토를 끼운 후에 옥분 할머니표 특제 소스까지 끼얹으면 햄버거 완성.

저승사자는 햄버거를 크게 한 입 베어 먹더니만, 순간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무슨 놈의 코쟁이 주먹밥이······!]

‘맛있지?’

저승사자는 차마 아니라고 부정하진 못했다.

대신 허겁지겁 와구와구 햄버거를 먹어치웠다.

[이 집은 코쟁이 주먹밥도 좀 하는데?]

‘그럼, 누구 솜씨인데.’

옥분 할머니의 음식 솜씨는 구로동 판자촌에서도 첫손으로 꼽힐 만큼 유명했다.

아마 음식점을 냈다면 대박이 났을 거라나 뭐라나.

동서양 퓨전 음식까지 장르를 넘나들더라니까?

이런 게 바로 재능, 그 자체!

‘오늘 내 입학식이라고 옥분 할머니가 특별히 신경 썼다더라.’

[이 난리를 피울 만하군. 입학식이란 거, 아주 특별한 날인가 봐?]

특별하겠냐?

이 집 사람들만 유독 수선을 피우는 것뿐이라니까.

하지만 저승사자가 흐물흐물한 얼굴로 웃고 있었기 때문에 모른 척 뒷말을 삼켰다.

순식간에 햄버거를 뚝딱 먹어치운 저승사자가 아쉬운 듯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 먹으면서 날 돌아보았다.

[코쟁이 주먹밥, 다음 기회에······.]

‘그럴 줄 알고 제사상에 미리 두 개 빼놨지.’

[우리 애가 역시 최고야!]

저승사자가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참고로 그건 치킨버거다. 닭고기 패티 잘 튀기셨더라.’

[아······! 소고기가 양반용이라면 닭고기는 머슴용이지.]

저승사자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어깨까지 축 늘어뜨리고서.

[닭요리는 영계백숙 미만 잡이거늘.]

‘치킨 먹어봤어? 안 먹어봤으면 말을 하지 마.’

[닭이 거기서 거기지. 아무리 기름칠해 봐야 닭고기가 소고기 되는 건 아니잖아.]

‘일단 잡숴 보고 말을 하셔.’

저승사자는 대차게 콧방귀를 뀌며 제사상 위에 올린 치킨버거를 덥석 베어 물었다.

[헉, 지금껏 이런 닭요리는 없었다······!]

저승사자가 울먹울먹한 눈으로 날 돌아봤다.

[크, 이게 바로 저세상 맛이란 건가? 맛있어······!]

그걸 네가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저승사자는 치킨버거를 소중히 들고서 방긋방긋 웃었다.

당장 먹방이라도 찍을 기세였다.

* * *

<우광장학재단 사립학교 총입학식>

학교 정문에 붙은 커다란 플래카드를 볼 때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는데.

그 플래카드 밑으로 줄줄이 들어가는 고급 세단 행렬을 보고 나니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창밖을 보면서 어머니가 작게 감탄했다.

“와아······. 이게 말로만 듣던 우광학교 입학식 대행진인가 봐요.”

무슨 대행진씩이나.

그냥 차가 더럽게 막히는 것뿐이구만.

그런데 일반적인 교통혼잡과는 뉘앙스가 조금 달랐다.

‘무슨 놈의 입학식에······.’

정문에서 전투 경찰이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신분증 확인이 있겠습니다.”

살벌하고 꼼꼼한 검문이었다.

“누가 보면 간첩 잡으러 오는 줄 알겠네요.”

“예, 종종 잡아내더라고요.”

“에이, 유 팀장님도 농담은······.”

“저기 빡대가리 빡중령님이 보이십니까?”

유종태가 손가락으로 정문 구석을 가리켰다.

철구 아저씨가 담배를 꼬나물고 검문검색을 지켜보고 있었다.

문득 철구 아저씨가 ‘입학식에서 보자!’던 말이 떠올랐다.

“정재계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겐 우광학교가 국제학교보다 인기가 더 높습니다. 남파 간첩이 들어와서 신분 세탁하고 사상 오염시키기엔 딱이잖습니까.”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운전하던 유종태는 휘파람을 불었다.

“내무부 장관 차, 산업부 차관 차, 서울시장 차, 중앙정보부 정보국장 차, 경찰청장 차도 보이는군요.”

우리도 줄줄이 들어가는 고급 세단 행렬에 끼어들었다.

“삼황그룹, 일성그룹, 청월그룹, 금조그룹, 현무그룹, 녹산그룹, 또······.”

이 많은 차가 다 저 학교 주차장에 들어가긴 할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래서 더 기가 찼다.

“아니, 고작해야 입학식일 뿐인데······.”

“정재계 인맥은 우광학교에서 나온단 말이 괜히 돌았겠습니까.”

사실 사학비리가 심각할 정도라서 그렇지, 이 시절 우광사립학교의 교육 수준은 최고로 쳐주었다.

덕분에 전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이곳으로 잔뜩 몰려들었고, 입학시험 허들도 상당히 높았다.

오죽하면 입시경쟁 과열로 과외 단속까지 정부가 고려했겠어.

저승사자가 휘파람을 불었다.

[청계산의 그놈이로군. 마중 나왔나 본데?]

‘음?’

쪽문 근처에서 발 동동 구르면서 손을 바르작거리는 중년의 교사였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되실 분 말이다.

유종태도 그 남자를 알아봤는지 씩 웃었다.

“오늘 입학식과 관련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어떤 걸 먼저 들어보시겠습니까?”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입학식에 나쁜 소식이랄 것도 있나요?”

“도련님의 담임 선생님께서 상당히 유명하신 분입니다. 우광사립학교 최고의 폭군이라는데,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아버지가 흠칫했다.

“폭군 티라노?”

“예, 맞습니다. 바로 그분입니다.”

“흠, 정혁이가 올해는 고생깨나 하겠는데?”

어머니가 아버지를 돌아봤다.

“아는 분이세요?”

“나 이 학교 나왔잖아. 우리 때도 악명이 자자했지.”

“무서운 분인가요?”

“재단 이사장 아들이야. 덕분에 학교를 꽉 잡은 실세 중의 실세고.”

아버지는 팔짱을 낀 채 표정을 굳혔다.

“어린애라고 봐주는 것도 없어. 교사나 학부모한테도 얄짤 없지. 내 친구는 따귀를 잘못 맞아서 고막이 나갔고, 항의한 놈은 퇴학 처분을 받았다니까?”

“세상에······!”

“어쩌겠어. 자식의 미래가 인질로 잡혔는데. 적당히 촌지 쥐여주고 눈치껏 굽혀 들어갈 수밖에.”

유종태가 백미러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분이 6년 동안 정혁 도련님의 담임으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미 청계산에서 얘기 끝난 일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퍽 놀라셨는지, 급격하게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금이라도 바로 차 돌려서 다른 학교를 알아봐야 하나?”

그때였다.

폭군 티라노가 우리를 알아보고 전력질주로 튀어나왔다.

나는 수동 레버를 돌려 자동차 창문을 열었다.

“흐음, 그럼 학부모님께선 잠시 내려주실까요? 저기서 저와 대화를 조금······.”

어쭈, 눈깔 굴러가는 것 좀 보게?

청계산에서 면담했을 때랑 생각이 많이 달라지셨나 본데?

나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안 그래도 선생님과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물건이 있어요. 유 팀장님.”

“예.”

눈치 빠른 유종태가 바로 차에서 내렸다.

탕!

유종태는 트렁크에서 손수레를 꺼냈다.

손수레 위에 묵직한 서류 박스를 차곡차곡 쌓는다.

유종태가 인심 썼다는 듯이 맨 위에 음식 박스를 척 얹었다.

“이 쿠키와 두유는 반 친구들에게 나눠주세요. 이건 교무실 선생님들 몫으로 준비해 봤어요.”

햄버거 봉투마다 흰 봉투가 하나씩 꽂혀 있었다.

겉면에 선생님들의 이름이 적힌 봉투였다.

사학비리의 최강자답게 흰 봉투를 보자마자 폭군 티라노의 눈이 번들거렸다.

“흠흠, 뭘 이런 걸 다.”

유종태가 폭군 티라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그거 청계산에서 보여드렸던 선생님의 비리 목록입니다.”

“······!”

“샘플로 몇 개씩 랜덤으로 뽑아서 봉투에 집어넣었죠. 다른 선생님들도 돌려 보면서 재밌게 씹고 뜯고 맛보시라고.”

“······.”

“교무실이 아주 화기애애해질 것 같죠?”

“······.”

“말씀만 하세요. 중정에는 특별히 원형 그대로의 비리장부로 제가 직접 챙겨 보내죠.”

폭군 티라노가 곱게 눈을 깔았다.

그제야 유종태는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유종태, 매일 얼굴도장 찍을 예정입니다. 아시죠?”

“아이고, 그럼요!”

“아직도 학부모 면담이 필요하실까요?”

“아직 입학식도 안 했는데, 학부모 면담이 웬 말입니까? 그저 귀한 학생을 맡겨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나 하려고 했읍죠.”

폭군 티라노는 빠르게 손바닥을 비비면서 비굴한 웃음을 지었다.

“입학식까지 시간이 남는데 저도 두 팔 걷고 함께 서류 날라드릴까요?”

“눈치가 빠르시군요.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이 봉투, 정말 교무실로 보내실 겁니까?”

“그거야 선생님 하기에 달린 일 아니겠습니까?”

폭군 티라노는 내 앞에서 차렷 자세로 섰다.

“도련님, 분부하신 대로 우리 반 교실에 캐비닛과 전화 설치 끝냈습니다.”

폭군 티라노는 주머니를 뒤져 곱게 접힌 쪽지를 내밀었다.

“여기 번호 적어놨습니다. 직통번호니까 아무에게나 가르쳐주시면 안 됩니다.”

헛기침과 함께 작게 당부했다.

“어린 친구들이 전화 쓰겠다고 떼를 써도 절대로 빌려주시면 안 됩니다. 학부모 항의 들어오면 귀찮아져서요.”

“······.”

“장난 전화 금지. 요 정도는 협조해주시겠죠?”

지극히 교사다운 당부였던지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아연실색해서 중얼거렸다.

“아니, 지금 장난 전화가 문제인 겁니까? 교실에 학생이 개인 전화를 직통으로 개설하겠다는데······.”

“참고로 국민학교 1학년은 오전수업밖에 없습니다.”

폭군 티라노는 눈치를 보며 슬쩍 웃었다.

“하교 시 전화코드는 뽑고 가실 거죠?”

어머니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혁아, 이게 다 무슨 상황이니?”

“······담임 선생님과의 개별 면담?”

“······.”

뭐? 왜? 뭐?

담임 선생님과의 개별 면담 맞지!

물론 아직 입학식 전이고, 정문 안에도 못 들어갔지만!

청계산에서 따로 단체 면담은 끝낸 지도 오래지만!

“참고로 우리 반은 1학년 1반, 번호는 6년간 무조건 1번입니다. 외우기 쉬우시라고.”

유종태는 흰 봉투를 몽땅 거둬들이고, 대신 만 원권이 들어있는 봉투를 폭군 티라노에게 내밀었다.

“이건 서비스.”

유종태는 한쪽 눈을 찡긋하고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폭군 티라노는 손수레 손잡이를 넘겨받아 들고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도련님의 학교생활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돌돌돌돌.

폭군 티라노가 손수레를 끌면서 쪽문으로 사라졌다.

유종태는 상쾌한 얼굴로 콧노래를 부르면서 고급 세단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부르릉.

당연한 듯이 질문이 쏟아졌다.

“정혁아, 저 선생님은 왜 너한테 존댓말을 하시니?”

“서류 상자는 또 뭐고? 업무라니?”

“직통 전화는 또 뭐고?”

“6년간 1반 1번? 우광학교는 원래 이름 가나다순으로 번호 매기지 않았던가?”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그건 담임 선생님 마음이겠죠?”

되도 않는 개소리였다.

나는 모른 척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는 턱을 쓰다듬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리 있어.”

“선배, 미쳤어요? 진짜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응. 폭군 티라노잖아.”

“······?”

“폭군 티라노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순 제멋대로거든.”

아버지는 납득한 표정으로 뒷좌석에 등을 묻었다.

“역시 사람 쉽게 바뀌지 않아. 저 선생님은 아직도 여전하시네.”

“······.”

“우광도 참 한결같군. 어째 내가 다닐 때랑 이렇게 똑같냐. 사학비리의 온상이라더니.”

이렇게 넘어간다고?

눈치 빠른 경호원이자 내 수족을 자처하며 요즘 경호팀장보다 비서의 교육에 힘쓰고 있는 유종태가 냉큼 화제를 돌렸다.

“참, 좋은 소식은 안 궁금하십니까?”

“맞다! 궁금해요. 뭔데요?”

“총입학생 선서를 바로 우리 정혁 도련님께서 대표로 하게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 고작 입학식인데 (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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