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만렙 아들-168화 (168/189)

< 대통령과 짜장면 (1) >

찰칵! 찰칵찰칵! 찰칵!

사방에서 번쩍거리면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입학식 영상을 대충 담던 방송국 카메라맨도 신중하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저승사자는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거 관심이 엄청난데?]

저승사자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관중석을 슥 돌았다.

오랜만에 시야 공유가 아니라 청각 공유를 하면서.

정재계 유명 인사들이 작게 수군대고 있었다.

-원래 우광학교 입학생 선서는 고등부 수석이 맡지 않았던가요?

-듣자 하니 유일한 입학시험 전 과목 만점자라던데요?

-어머, 우광학교 입학시험은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잖아요. 지금까지 만점자는 없었지 않아요?

-개교 이래 최초래요. 그러니 국민학교 신입생인데도 입학생 대표가 된 거겠죠.

-태성가에 입적한 지 몇 달도 안 됐는데 수석이라니. 대단히 똑똑한 친구인가 봅니다.

저승사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너 입학시험 수석이었어?]

‘그러게. 나도 처음 듣는 소리라서?’

대통령 지시 사항으로 특별 취급 받았던 게 아니라?

우광의 김대식은 그런 말은 쏙 다 빼놓고 가문의 영광이니 뭐니 하고 지껄였다는 거지? 쓰읍!

-저기 태성의 막냇손자에게 중정부장님께서 큰 관심을 보이셨다면서?

-말도 마세요. 인왕산 선녀보살이 버선발로 달려가서 엎드렸다니까요.

-어머, 그때 무녀들이 전부 달려나와서 풍악 울리고 무명천 깔고, 극진하게 대접했다면서요?

-대통령께서도 따로 전차 시범 행사에 초대하셨더군요.

-지금껏 우광학교 입학식에 대통령이 참관하신 적도 없지 않아요? 설마 저 꼬마 때문에······.

-에이, 설마요. 아니겠죠. 고작해야 국민학생 때문에 귀한 걸음을 하실 리가요.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바쁘게 입을 놀려댔다.

귀 따가워 죽겠다.

-요즘 각하께서 태성그룹에게 각별한 관심과 특혜를 쏟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요.

-그러고 보니 청와대 신년 오찬에서도 태성그룹 막내아들에게 따로 초대장을 보냈다죠?

-태성한테만 보란 듯이 우광의 계열사를 뚝 떼어줬으니 말 다 한 거 아니겠습니까?

-송년의 밤에서 태성건설이 거둬들인 후원금이 전부 각하의 대선자금이었다는 소문이 돌던데요.

저승사자와 청각 공유를 껐다.

난 뒷담화는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영 피곤하기만 하더라고.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흐아암.’

하품이 터져나왔다.

‘거 말 참 더럽게 많네!’

관중석도, 구령대도.

‘그냥 입학을 축하합니다, 한마디면 될 것을. 쯧. 이러다 밤새겠네!’

옛날이나 지금이나 훈화 시간이란 건 언제나 따분하구만!

대통령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나는 전국의 학부형들에게 특별히 말씀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아동들의 교육문제인 것입니다.”

응, 아니야.

문제는 아동 교육 문제를 논하며 아동을 학대하고 있는 댁이야.

지금 학생들은 땡볕 아래 운동장에 서서 온몸을 비틀어가며 괴로워하고 있거든.

“······나는 우리의 아동교육에 관하여 정부나 학교나 학부형이 깊이 반성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우리의 학부형들은 아동을 공부에 너무 혹사하여, 아동들의 보건과 정서 면에 중대한 위협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어우, 지겨워!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정부의 노력도 교권의 확립 없이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는 것입니다. 제자가 스승을 우습게 여기는 교권 없는 학원에서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누가 나를 총입학생 대표로 뽑아 놨냐.

단상에 올라간 채 내려가지도 못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영광이야? 벌칙 수행이지!

“······배움의 전당에 배움이 없는 역설적 사태가 시정되지 않는 한,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 자꾸만 하품이 나올 수밖에.

‘흐아아암!’

나는 손으로 대충 입을 가린 채 늘어지게 하품했다.

그러다 문득 소름 끼치는 미래를 예견하고 말았다.

구령대에 차례로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서.

‘설마 대통령의 훈화 다음에 우광 회장의 훈화, 그다음은 재단 이사장의 훈화, 그다음엔 교장의 훈화까지! 이렇게 계속 끝도 없이 훈화 타령만 하는 건 아니겠지?’

여기 교장만 해도 몇 명인데!

우광유치원 원장, 우광국민학교 교장, 우광중학교 교장, 우광고등학교 교장까지!

나는 그만 부르르 몸서리치고 말았다.

안 되겠다.

‘어이, 수호신.’

나는 손가락을 부딪쳤다.

딱.

저승사자가 연기처럼 스르륵 나타났다.

[흐아암!]

저승사자도 대뜸 하품부터 쏟았다.

[거참 말 더럽게 많네!]

버럭 외치는 성질머리는 추가 옵션이었다.

‘그래, 바로 그것 때문에 널 불렀다.’

[음?]

저승사자가 고개를 갸웃대었다.

[뭘 어떻게 도와주랴?]

‘동티 좀 내자.’

[뭐?]

저승사자는 황당하단 눈으로 날 돌아봤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동티를 내라고?]

‘그 외에 달리 저 주둥이를 틀어막을 방법은 있고?’

[······.]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심한 건 바라지도 않아. 주둥이만 닫자. 어때?’

[······난 모르는 일이다.]

‘웃기고 있네! 너 새해 첫날 아라비아해에 처박히는 비행기 추락사를 막아보겠다고 이 비서랑 만수르 장인한테 동티 낸 거, 내가 다 알거든?’

[······기, 기억이 안 나는데?]

‘새대가리냐?’

유치부 신입생 쪽 허공에서 뱅글뱅글 돌던 주작.

크고 투명한 날개를 쫙 펴며 부리를 쩍 벌렸다.

[삐약삐약!]

[눈치가 없으면 닥치고 있어라, 새대가리.]

[삐······압.]

저승사자의 흉흉한 눈빛에 주작은 합죽이처럼 부리를 꽉 닫았다.

의기양양하게 쫙 폈던 날개도, 불꽃을 사방으로 튕겨내던 깃털도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주작의 입을 닥치게 한 것처럼 대통령의 입도 닥치게 해줄래?’

[······본 차사는 인세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 자식은 입만 열면 똑같은 소리야. 인세의 일 아니면 천기누설이래.’

저승사자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홱 돌렸다.

그 고집스러운 얼굴을 보며 나는 혀를 찼다.

‘햄버거 괜히 챙겨줬어.’

[······.]

‘밥값도 못하는 놈, 뭐가 이쁘다고 두 개나 줬나 몰라.’

[······.]

‘됐어, 꺼져. 가서 드라마나 보든가.’

[지금 드라마 안 한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드라마 재방송할 시간이란 거 뻔히 아는데.’

[진짜다. 모든 채널에서 여기 입학식 행사가 나오고 있더라.]

‘······.’

[지겨워서 하품하는데 네가 불렀잖아.]

어쩐지!

얘가 나타나자마자 하품부터 쏟아내더라니!

나는 황당해져서 힐끔 돌아보았다.

찰칵! 찰칵! 찰칵!

각종 언론사에서 불려온 카메라맨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팡팡 터뜨리며 열심히 찍고 있었다.

우광 김대식 회장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설마······.’

중정 요원까지 동원된 검문검색, 지나치게 화려해 보이는 플래카드, 요란하게 불러 모은 신문사와 방송국 사람들, 생방송도 아닌데 준비된 방송국 마이크까지.

짚이는 바가 있었다.

‘대통령이 입학식에 참관할 걸 염두에 두고 더 요란하게 준비했다 이거로군.’

아까 김대식 회장이 씩 웃으며 했던 말과 일맥상통했다.

-대통령께서 친히 포상하시겠다는데, 달려나오지 않을 수가 있나.

-우리 한배 탄 사이끼리 나란히 각하께 눈도장 찍어 보자.

우광의 김대식 회장은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대통령의 뒷모습을 힐끔대고 있었다.

언제 살점 커다랗게 붙은 뼈다귀를 던져주나, 하는 표정이었다.

‘김형원을 잡아오면서 코라이 게이트가 흐지부지 묻혔지. 포상이라······.’

뭘까?

우광의 김대식이 저렇게 몸이 달아서 오두방정을 떠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저승사자가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쪽 발을 탁탁 털었다.

[지긋지긋한 일장연설! 이거 끝나긴 하냐? 어휴, 저놈도 우리 대왕님만큼이나 잔소리가 많아.]

저승사자는 팔짱을 낀 채 대통령을 노려보았다.

[설마 저놈들이 다 연설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거냐? 지금 하는 놈도 아직 여러 장 남았더만!]

‘아마도.’

[안 돼애애애!]

저승사자가 커다란 도포 소매를 접어 올렸다.

대통령을 향해 저승사자가 성큼성큼 걸어갈 때였다.

대통령이 좌중을 슥 둘러보더니 몇 장 남은 연설문을 단번에 접었다.

“인재가 곧 국력인 것입니다. 난 대한민국을 떠받들 우광학교의 우수한 인재들의 무궁한 영광과 발전, 그리고 눈부신 미래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상입니다.”

[······.]

저승사자는 허망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췄다.

대통령은 미련 없이 구령대에서 내려갔다.

[이 자식, 촉이 더럽게 좋잖아?]

대통령의 안색이 변하는 모습을 한 번쯤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짝짝짝짝!

커다란 박수와 환호 속에 대통령은 힘차게 손을 흔들며 퇴장했다.

우광의 김대식 회장이 다음 차례로 마이크를 잡았다.

“흠흠!”

스스슥.

저승사자는 우광의 김대식 회장부터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까지 모조리 스치고 지나갔다.

김대식 회장의 안색은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하고 말았다.

차례를 기다리던 다른 사람들은 허겁지겁 줄지어 도망간 후였다.

“춘삼월의 시작과 함께 우리··· 윽······ 우광은 여러분의 입학을 환영합니다. 입학식 이상 끝! 해산!”

“······?”

그렇게 길고 긴 식순으로 예정되었던 입학식은 허무하리만치 빠르게 끝났다.

나는 손바닥을 탁탁 털었다.

“우후훗!”

입학식이 빨리 끝나자 아이들은 좋다고 환호성을 울렸다.

다들 먹고 싶은 간식을 외치며 웃고 떠들었다.

조회 시간을 질색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에헤헤, 역시 서방님이 최고!”

주작을 어깨에 얹고서 예린이가 날 향해 엄지를 척 들었다.

액막이 고통에서 해방된 덕분에 얘도 우광유치원에 다닐 수 있게 됐거든.

“정혁이 오빠! 이거 선물!”

예린이가 수줍어하며 분홍색 한지로 곱게 접은 쪽지를 내밀었다.

<今日運勢: 爆彈宣言 凶變吉 進擊>

나는 인상을 썼다.

“오늘의 운세? 폭탄선언으로 흉함이 길함으로 변하니까 쭉 밀고 들어가라고?”

“응!”

“이걸 왜 힘들게 한자로 썼어? 혹시 천기누설 때문이야?”

“아니, 나 아직 한글은 몰라서.”

“······.”

여섯 살이면 한글 정도는 알 나이가 된 거 아닌가?

“한자는 이렇게 또박또박 잘 쓰는데?”

“사주 볼 때나 불경 베껴 쓸 때 한글 쓰지 않잖아. 헤헤헤.”

“······.”

예린이가 방긋 웃었다.

“이따 나랑 같이 짜장면 먹자. 그러니까 이것저것 아무거나 막 집어 먹지 마?”

이거 설마 데이트 신청인가?

그럼 하지 뭐. 데이트.

“무서운 아저씨한테 점수 단단히 따고 와.”

뭔 소리야?

내가 무서운 아저씨한테 점수 딸 일이 뭐가 있다고.

“그럼 기다릴게.”

예린이는 해맑은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 * *

“정혁 도련님.”

누가 날 부르기에 뒤를 돌아봤더니.

김 비서가 조금 곤란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각하께서 점심 식사에 초대하셨습니다.”

황당했다.

아니, 밥 먹다 체할 일 있어?

“내가 대통령이랑 겸상할 군번이에요?”

“위에서 까라면 까야죠. 이거라도 미리 챙겨두세요.”

김 비서가 내게 어린이용 소화제를 내밀었다.

“짜장면 좋아하시죠? 가까운 중식당으로 예약해 놨습니다. 가시죠.”

“어린애라고 다 짜장면을 좋아할 거란 생각은 편견이에요.”

“그래서 짜장면 싫어하십니까?”

“아뇨. 전 짜장면 좋아해요.”

뭐? 왜? 뭐!

내가 언제 짜장면이 싫댔나?

대통령이랑 같이 먹는 게 싫댔지!

‘아······! 얘는 이걸 알고서 그런 말을 했던 건가?’

문득 예린이의 말이 떠올랐다.

-무서운 아저씨한테 점수 단단히 따고 와. 그럼 기다릴게.

나는 피식 웃었다.

“잘됐네요. 안 그래도 대통령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요.”

“이번에도 역시 폭탄선언입니까?”

“싸움은 원래 선빵이거든요.”

난 일방통보 당하는 건 딱 질색이라서.

< 대통령과 짜장면 (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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