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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만렙 아들-169화 (169/189)

< 대통령과 짜장면 (2) >

빨간색과 금색으로 장식된, 무척 화려한 고급 중식당이었다.

가장 안쪽 제일 커다란 룸, 커다란 원탁에 둘러앉았다.

대통령의 좌우로 청와대 경호실장과 중정부장이,

내 좌우로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나란히 앉았다.

“차 회장의 막냇손자라지?”

“안녕하세요, 대통령님. 차정혁이에요.”

나는 두 손 모아 꾸벅 배꼽 인사 했다.

“이번 우광학교 입학시험의 유일한 만점자. 맞나?”

청와대 경호실장이 냉큼 대답했다.

“그렇다고 합니다, 각하.”

“훌륭한 인재로군.”

대통령의 물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열심히 공부해서 나라와 민족을 빛낼 동량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똑똑똑.

음식을 잔뜩 실은 서빙 카트가 돌돌돌 들어왔다.

대통령이 종업원에게 턱 끝으로 지시했다.

“짜장면은 이쪽으로.”

내 앞에 짜장면 그릇이 놓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화려한 중국 음식들이 속속 차려지기 시작했다.

“차 회장.”

“예, 각하.”

“깔끔하게 코라이 게이트를 닫았더군.”

대통령이 물수건을 툭 내던지며 말을 툭 내뱉었다.

“수완이 좋아.”

찬찬히 훑어보는 눈빛이 매섭다.

의심과 경계가 스치고 지나갔다.

“태성에 거는 기대가 커.”

“과찬이십니다.”

“과찬은 무슨. 중정부장 이 친구가 극찬을 하던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김형원을 단번에 낚아챘다며.”

대통령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덕분에 국제 망신을 면하게 됐군.”

뇌물 자금의 출처를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증인, 김형원을 잡았다.

지난 2년 동안 미국을 뜨겁게 달구던 코라이 게이트는 그렇게 흐지부지 묻히고 있었다.

“이 친구에게 재미난 것을 약속했다며? 5년이면 되겠어?”

김형원이 빼돌린 은닉 재산을 되찾아오는 타임 리미트였다.

중정부장과 합의된 일이었다.

“이 또한 기대해봐도 되려나?”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난 다른 건 바라지 않는다. 최선의 결과. 그것뿐이다.”

“물론입니다.”

대통령은 그제야 턱을 쓰다듬었다.

“이 공을 무엇으로 치하하면 좋을까?”

“공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겸손이 지나치군.”

대통령은 물잔을 잡았고, 청와대 경호실장은 즉시 물을 따랐다.

“흔치 않은 기회인데. 겸손 떨다 날려버리면 억울하지 않겠나?”

쪼로록.

“우광은 계열사가 난도질되는 것을 막아주십사 간청했다. 태성은?”

떠보듯이 넌지시 건네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선뜻 입을 열지 않고 말을 아꼈다.

“태성이 세운 공에 비하면 우광의 공은 공이라고도 하기 어렵지. 어려워하지 말고 말해 봐.”

흠칫.

나지막한 대통령의 웃음에서 위험한 신호가 울렸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쭉 끼쳤다.

“사업이라면 배짱 좋게 밀어붙이던 태성이 왜 안 어울리게 얌전을 떨어?”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한 낌새.

음험한 냄새였다.

“막냇손자를 내세워 우광의 본사를 쳐들어가 그 자리에서 강탈하듯이 우광의 계열사를 빼앗고, 우광재단까지 탈탈 털었다며.”

우광이 차일피일 미루며 계열사를 선뜻 내주지 않아서 강행한 일이었다.

“덕분에 골치 아프게 번지던 노동시위가 단번에 잠잠해졌지.”

“······예.”

“대선을 앞두고 짜증 나는 일까지 깔끔하게 정리해 줬는데, 내가 태성에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지. 안 그런가?”

“아닙니다. 당치도 않습니다.”

“어디 보자.”

대통령이 손끝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들겼다.

“지하철 3호선과 4호선 사업도 태성건설에 맡기면 되려나?”

지하철 2호선 공사는 5년을 예정한 1,800억짜리 국책사업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태성건설의 위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었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건설사로.

“태성도 제철소 사업권을 눈독 들였었나?”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1973년 포항철강이 완공되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의 3배에 달하는 1,205억 원을 쏟아부어서.

그렇게 포항철강은 세계 철강 역사에서 제철소를 가동한 첫해 흑자를 낸 유일한 기업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기업들이 정부에 제철소 사업권을 요청해도 묵살한 대통령이었다. 그런 대통령이 먼저 제철소 사업권을 입에 올려?’

수상하다.

떠보기가 분명하다.

“그도 아니면 간척 사업을 맡겨 볼까? 서해를 메워서 거대한 공업단지를 건설하는 일.”

“······!”

“방산 사업은 어떻지? 태성의 기술력이라면 정부가 뒤를 힘껏 밀어줄 의향도 있다만.”

“······!”

대통령이 입을 열 때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눈이 번쩍 뜨인다.

기쁨과 기대감이 넘실댄다.

그럴수록 대통령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는 줄도 모르고.

“태성의 꿈꾸는 미래는 여기 어디에 있지? 골라 봐. 없으면 건의하고.”

뭐든 말하면 들어줄 기세였다.

은근한 말투.

호의적인 몸짓.

하지만 눈빛은 어둡고 음험했다.

함정이었다.

‘결정권자의 눈에 든 것을 넘어 의심과 경계를 사고 말았군.’

그런데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서로를 바라보며 모종의 눈빛을 나눴다.

마른침이 아니라 군침을 삼킨다.

큰일 났다.

‘대통령이 포상을 내리는 줄 알고.’

할아버지는 공을 세운 만큼 두둑한 포상으로 갚을지 몰라도.

대통령은 공을 세우면 견제와 시험으로 찍어누르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각하, 태성은 그러니까······.”

“세금은 안 되나요?”

나는 일부러 모른 척 물었다.

“세금?”

“네, 세금이요. 할아버지께 배웠어요. 물건을 사고팔 때는 언제나 세금이 붙는다고.”

대통령의 음험한 눈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기민하게 살피느라 떨어질 줄 몰랐다.

“회사를 사고팔 때도 세금을 내야 한다죠?”

그러자 할아버지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번에 인수한 우광 계열사가 일곱이다. 그 지분에 관한 세금만 굳어도 남는 장사야.’

어디 그뿐인가?

‘석유 파동으로 똥값이 될 회사들을 마음껏 배 터지게 먹어도 되겠는데?’

안 그래도 억 소리가 나는 인수전이 될 터였다.

10년 농사가 석유파동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아버지와 태성은 석유파동 이후의 우광 계열사 인수전을 목표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나도 이번 기회에 유공을 집어삼킬 생각이라서.’

미국 걸프사가 가지고 있는 지분만 현재 2억 달러로 추산되는 공룡 기업!

그걸 통째로 먹으려면 세금이 어마어마하게 붙을 터였다.

“흠.”

순간 대통령의 눈이 가늘어졌다.

“꼬마야, 이 나라의 대기업 중에 세금을 무서워하는 기업은 없다.”

“태성은 성실 납세하잖아요. 게다가 해외에서 돈을 벌어오면 세금을 더 왕창 내야 한다면서요?”

이번엔 아버지가 아,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만수르 장인과 의기투합한 이 비서가 중동에서 건설 수주를 왕창 따내고 있다던데.’

안 그래도 지난 석유 파동 이후 중동 건설 붐이 들썩이고 있었다.

“꼬마야, 그깟 세금에 비하면 굵직한 국책사업이 훨씬······.”

“대통령님은 세금이 안 무서워요?”

그러면 안 될 텐데.

부가가치세 신설로 불만이 커진 결과 12월 총선에서 부가세 철폐를 내세운 야당에게 크게 참패한다.

덕분에 이 정권의 입지가 크게 약화되고, 이 여파는 2차 오일쇼크와 겹쳐서 부마항쟁, 대통령 저격으로 이어지거든.

“옛날부터 민중들이 크게 반발할 때는 십중팔구 세금 때문이랬어요.”

세금 우습게 보다간 큰코다칠 것이다.

“네가 지금 몇 살이라고 했었지?”

“여덟 살이요.”

“흠, 여덟 살이라.”

“왜요? 여덟 살짜리 어린애도 세금 무서운 줄은 알거든요?”

뱀처럼 차가운 대통령의 눈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훑어보다가 스르륵 움직였다.

나를 향해서였다.

“차 회장, 이번에 내가 내어준 우광의 계열사가 태성에 합병되는 대신 따로 계열 분리로 독립했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예, 손자 녀석에게도 지분을 좀 내어줬습니다. 덕분에 저 녀석이 요즘 세금 때문에 벌벌 떱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각하, 태성이 세금을 감면해 달라고 청하면 들어주시겠습니까?”

“굵직한 국책사업권을 경쟁 없이 거저먹을 기회는 흔치 않을 텐데. 후회하지 않겠나?”

“국책사업이라면 나라를 위한 대업이 아닙니까. 그런 거라면 언제든 뭐든 맡겨만 주십시오. 기꺼이 애국하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요긴하게 써먹었던 핑계를 다시 꺼내 들었다.

“올해는 대선과 총선이 겹친 해잖습니까. 행여 잡음이 생길 만한 일은 만들지 말아야겠지요.”

“정경유착이란 꼬투리를 잡아오면 귀찮아지긴 하지.”

대통령은 그제야 입꼬리를 올렸다.

“차 회장이 정치 욕심 없는 건 알고 있었는데, 사업 욕심까지 없을 줄은 몰랐군.”

“사업 욕심도 때를 봐가면서 해야 하지요. 지금은 몸을 사릴 때인 줄로 압니다.”

“훌륭하다.”

톡. 톡. 톡.

대통령은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좋다.”

대통령은 웃었다.

“5년이면 되겠나?‘

3년, 아니, 1년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5년씩이나?

이야, 땡잡았다!

나는 입꼬리가 귀에 걸리지 않도록 표정을 관리했다.

‘돈 굳었다!’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가!

대통령은 알까?

방금 결정으로 태성과 내가 얼마나 큰 이득을 보게 되었는지.

‘석유 파동 이후까지 생각해 보면 이건 우광의 알짜 계열사 두어 개 인수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나는 씩 웃었다.

대통령은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자네도 동의하나?”

“아버지의 뜻이 곧 태성의 뜻입니다. 감사합니다, 각하.”

“생각보다 통이 작아. 자네라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아 크게 한몫 뜯어낼 줄 알았는데.”

통이 작기는.

아버지도 엄청나게 세금 감면 혜택을 볼 텐데?

“지하철 공사로 만족하면 쓰나.”

“태성건설은 요새 중동에서 따낸 건설 수주 물량을 소화하기에도 벅찹니다.”

“계약 물량이 어느 정도나 되기에?”

“한 10억 달러 정도 될 겁니다.”

“······대한민국 정부 예산의 절반이나 된다고?”

21세기로 치면 250조가 넘는 매출 규모!

조 단위 세금 감면이 이익으로 떨어지게 생겼다는 소리였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청와대 경호실장과 중정부장도 입을 떡 벌렸다.

“엄청나군.”

청와대 경호실장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일개 건설사가 따낼 수 있는 계약물량이긴 한가?”

“운이 좋았습니다.”

“쥬베일 산업항 근처의 도시 건설이 1억 달러 규모라며. 그새 10억 달러 규모로 커졌나?”

“대수로 건설과 석유 기지, 공군 항공로 및 해군 병참기지 건설권을 따냈습니다.”

“······!”

중정부장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대통령을 돌아보았다.

“각하, 대수로 건설이라면 몰라도 석유 기지와 공군 항공로, 해군 병참기지는 일개 민간 기업이 딸 수 없는 건설 사업입니다.”

“국방과 관련된 극비 사업을······ 하하하!”

대통령은 크게 웃었다.

“그래, 이게 바로 국위선양이지! 하하하!”

대통령이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세금 감면! 까짓것 해줘야지! 외자를 유치하고, 달러를 벌어들이고, 외국 국방의 기밀을 입수할 수 있는 공을 세웠는데!”

대통령이 몹시 만족한 듯 탁자를 두드리며 웃었다.

“지하철 공사로 떼돈을 번 줄 알았더니, 진짜 떼돈은 중동 건설로 벌게 생겼군.”

“사냥은 집 안이 아니라 집 밖에서 해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국내시장에서 파이 갈라먹는 것보다 해외시장을 개척해 달러를 벌어들이겠다?”

대통령의 웃음이 길어졌다.

“태성이 이 나라를 위해 큰일을 도맡아 해주는군. 그래, 애로사항은 없고?”

“중동으로 보낼 인부를 모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비자 발급이나 해외 은행 서비스나 여러모로 걸림돌이 많습니다.”

“외자를 벌어들이는 일인데, 정부가 그 정도 걸림돌은 치워줘야지.”

대통령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외교부에 연락 넣어. 인부들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라고. 절차 간단히.”

“예, 각하.”

“해외 송금도 철저히 관리하고.”

“예, 각하.”

“세금도 똑바로 처리해. 앞으로 5년 동안 태성은 건들지 말라고 전해.”

“예, 각하.”

청와대 경호실장이 슬쩍 입을 열었다.

“태성이 각하의 체면을 세운 공은 적지 않습니다. 고작 세금 감면으로 끝내실 참입니까?”

“본인들이 그러길 바란다잖나.”

“그러지 말고 통 크게 하나 내어주십시오.”

청와대 경호실장은 대통령의 잔에 고량주를 쪼로록 따랐다.

“유공 어떠십니까?”

< 대통령과 짜장면 (2)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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