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만렙 아들-172화 (172/189)

< 내가 노리는 것 >

대통령은 술잔을 잡았다.

“부가가치세. 허투루 꺼내지 않았다?”

쪼로록.

기다렸다는 듯이 청와대 경호실장이 고량주를 채웠다.

“자세히.”

“자세한 설명이라면 진즉 귀 따갑게 들으셨을 텐데요.”

나는 씩 웃었다.

“핵심을 보셔야죠.”

“옛날부터 민중들이 크게 반발할 때는 십중팔구 세금 때문이랬던가?”

“없던 세금이 뚝딱 생겼는데, 그걸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고작해야 간접세 10%.”

고작? 아닐 텐데.

그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안다면 그렇게 가볍게 말하진 못하지.

‘부가가치세 신설은 총선 참패와 유신 실패를 불러와 결국 부마항쟁과 본인의 죽음까지 초래한다.’

부마항쟁은 1979년 부산과 마산 등에서 일어난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이다.

경제적 불만과 정치적 불만이 극에 달해 일어난 민주항쟁으로, 유신정권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역시 대통령님은 세금을 안 무서워하시네요.”

대통령은 단번에 고량주를 털어 마셨다.

차갑고 예리한 눈은 내게 고정한 채였다.

“인제 보니 어린애의 실없는 소리였군.”

“허실을 꿰뚫어 보시지 못한다면 쓸데없이 더 말 보탤 생각은 없고요.”

톡. 톡. 톡. 톡.

대통령이 다시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깊은 생각에 잠길 때 나오는 버릇인 듯했다.

“부가가치세가 어떤 것인 줄 알긴 하고?”

“재화나 용역의 제공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가가치에 대하여 부과하는 세금이죠.”

“역시 실없는 소리.”

“눈에 보이지 않는 증세. 소비자에게 조세 부담을 떠넘겨 국고를 늘리려는 꼼수잖아요.”

소득세, 법인세 등 직접세와는 다르다.

간접세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은근슬쩍 세율을 제멋대로 높이기 딱 좋은 세목이네요?”

이번에는 실없는 소리란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거의 모든 품목에서, 동일세율로, 국가 전체에 걸쳐 징수한다는 면에서 간접세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군요.”

21세기 조세수첩에 따르면 국세 징수원 중 1위는 소득세, 2위 법인세, 3위가 부가가치세다.

VAT를 딱 10%만 징수함에도 이 정도 규모다.

“게다가 명목상으로는 역진세도, 누진세도 아니니 명분 회피에도 아주 유리하겠고요.”

대통령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는다.

모르고 추진하는 일은 아닐 터였다.

“꼬마야, 유럽에서는 VAT를 얼마나 매기는지 알고 있나?”

“19%요.”

내가 그런 것도 모를까.

“솔직히 20% 받고 싶은데, 심리적으로 적어 보이게 하려고 19% 매긴 거잖아요.”

눈에 보이는 꼼수였다.

흔히 마트에서 부리는 수작이기도 했다.

그만큼 잘 먹힌다는 소리고.

“유럽에선 19%나 받는데, 대한민국에서는 그 반인 10%밖에 안 받는다고, 막연히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왜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저렇게 마구잡이로 밀어붙였겠지.

“부가가치세는 방만한 국가예산 운영의 상징으로 비난받게 될 거예요.”

“그렇다고 국가를 운영하는 데 세금을 안 걷을 수도 없지.”

“하지만 그 책임은 대통령님께서 감수해야 할 거예요.”

나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아냈다.

“우리나라 최고 통수권자의 책임이란 게 그런 거잖아요.”

나는 깨끗하게 잘 닦은 손을 들었다.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첫째, 부가가치세 때문에 수출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 중인 대만 업체들보다 가격경쟁력이 하락할 거예요.”

없던 세금이 붙었기 때문에.

도입 초기에 극명하게 두드러진 문제점이었다.

“둘째, 일괄 납세하는 물세이기 때문에 서민층 지원이란 취지와 정반대가 될 거예요.”

세금의 역진성.

없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비율로 세금을 뜯어가게 된다는 소리였다.

서민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뜻이다.

“셋째, 안 그래도 요일쇼크 때문에 높았던 물가상승률이 더 높아질 거예요.”

국가 경제에 큰 파장으로 번질 터였다.

곧 두 번째 석유파동이 덮친다.

국민들의 분노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는 안 봐도 뻔했다.

“격렬한 조세 저항을 불러올 거예요.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해야지.”

대통령은 딱 소리가 나도록 술잔을 내려놓았다.

“이 모두가 이 나라를 위해서다.”

물론 그러시겠지.

권력자들 하는 말이 다 똑같지.

‘실상은 돈 들어갈 일은 많은데, 돈 나올 구멍은 없으니까 세금을 늘려 뜯어내려는 작정이면서.’

그게 가장 쉽고, 빠르고, 많이 얻는 방법이거든.

“외국에서 얻는 원조와 차관도 한계가 있어.”

그렇겠지.

지금까지야 아프리카보다 못사는 전쟁국이라고 원조를 뜯어냈지만.

미국과 관계가 틀어진 이상 더 받아낼 구멍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결국 외국에서 돈 뜯어내는 것보다 국민들에게 돈 뜯어내는 게 더 쉽다고 추진한 일이란 건 변치 않지.’

코라이 게이트의 타격이 크다.

안 그래도 노동인권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미국 행정부와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오죽하면 미군부대 철수 카드까지 꺼냈을까.

“대한민국은 자력강생할 것이다.”

대통령은 홀로서기를 꿈꾼다.

국방, 안보, 경제, 교육, 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그러려면 돈이 필요해.”

내 말을 귀담아들을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당연한 대응이고, 예상했던 바였다.

‘이미 쏜 화살이고, 기호지세이니 인제 와서 물리기 어렵겠지.’

나도 안다.

그럼에도 굳이 이 말을 꺼내는 이유라면 따로 있다.

‘나 또한 이 정권의 생명 연장에 기여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거든.’

나는 서로 죽일 듯이 바라보고 있는 중정부장과 청와대 경호실장을 슬쩍 바라보았다.

과거 견원지간이었던 이 둘.

권력욕으로 시작된 갈등이 극에 달해 술자리에서 총을 뽑았다.

‘안 그래도 부가가치세 때문에 둘 사이에 언쟁이 여러 번 격하게 오갔었다지?’

그런 둘의 싸움을 관망하며 은근히 부추기기까지 하는 대통령이 그 중심에 앉아 있었다.

바로 오늘 이 자리처럼.

“태성이 중동에서 벌어들일 10억 달러라면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태성의 돈이 탐난다는 노골적인 말이었다.

그러니 내가 나서기로 결심할 수밖에.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보탬이 되겠습니다. 그러니 태성에 종합제철소 사업권을 주세요.”

이대로라면 대통령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강탈해갈 테니까.

‘빼앗기기 전에 내가 먼저 얻어낸다.’

내가 원하는 건 지금 당장 떨어지는 제철소가 아니다.

바로 제철소 사업권이다.

‘태성이 제철소를 먹어도 좋고, 여차하면 다음 정권에 제철소 사업권을 팔아먹으면 그만이고.’

10억 달러의 총매출에서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태성에 떨어지는 돈은 약 1억 달러 정도.

‘눈먼 돈 1억 달러를 노리고 하이에나 떼가 달려들 테니까.’

우광이 무너질 때 달라붙던 인사들이 태성으로 눈을 돌릴 터였다.

그 맨 앞에는 대통령이 서 있을 것이다.

그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자력강생을 위하여.

‘일이 터진 후에 수습하는 것은 어렵다. 남들이 눈독 들이기 전에, 짐작하기 전에 먼저 선수 치는 게 유리하지.’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니까.

내가 오늘 데이트도 물리고 이 자리에 나온 이유였다.

대통령과 결판을 지으러.

‘사실 대통령에게 요구하려던 건 제철소 사업권이 아니었는데, 스케일이 훨씬 커져버렸네.’

태성을 지키려고 왔는데.

어쩌다 보니 운 좋게 더 큰 게 얻어걸렸다.

“정혁아, 그만해라.”

내 뜻을 모르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간다.

‘난 얻을 것만 얻고 물러날 생각이거든.’

이 정권과 함께 공생할 생각 따윈 없다.

할아버지나 아버지 등 뒤에 숨는 대신.

얻을 것만 확실하게 얻고 튀기로 결심한 이유였다.

“태성에 제철소 사업권을 주셔야 하는 이유는 세 가지예요.”

나는 다시 한번 손가락을 쫙 폈다.

“첫째, 곧 건설주 파동이 시작될 거예요.”

이미 우광건설이 무너진 후다.

“중동에서 시작된 대규모 건설 수주로 막대한 외화가 한국으로 흘러들어오고, 그로 인해 고도성장으로 복귀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겠죠.”

하지만 아니었다.

“호황에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두 자릿수대를 유지하고 있어요. 덕분에 부동산값이 폭등에 폭등을 거듭하고 있죠.”

강남 아파트 가격 폭등이 바로 대표적인 현상이었다.

지하철 제2호선 근방의 땅값이 미친 듯이 뛸 터였다.

“그러니 정부에서도 부동산 억제 정책을 준비하고 있었겠죠.”

8.8 부동산 규제조치.

건설사들이 무분별하게 아파트를 지어 팔지 못하도록 정부가 막고 있다.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는 취지에서였다.

“미분양 아파트를 떠안은 건설사가 줄도산하기 시작할 거예요.”

지하금융을 막겠다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8.3 사채동결조치를 시행했던 것처럼.

정부는 어느 날 갑자기 8.8 부동산 규제조치를 한다.

그 여파는 건설시장이 감당해야 했다.

오죽하면 대치동 천마아파트를 지었던 천마그룹이 파산 직전까지 몰렸을까.

“이러한 때 태성건설이 제철소 사업권을 따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톡. 톡. 톡.

대통령은 흥미롭다는 눈으로 연신 손끝을 두드렸다.

“태성건설이 폭락장으로 접어든 건설주를 끌어올릴 것 같지 않으세요?”

“주식시장 예측은 전문가도 하기 어렵다.”

대통령은 코웃음을 쳤다.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

별로 와닿지 않겠지.

그래서 나는 두 번째 손가락을 꼽았다.

“둘째, 대한민국엔 종합제철소가 더 필요해요. 중화학 공업 국가로 더 성장하길 바란다면 필수라고 봐야죠.”

포항철강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는 대통령도 동의하는 바였다.

단지, 몇 가지 이유로 현 정권에서는 그 요청을 묵살했고, 결국 다음 정권에서 결정된다.

“태성건설에 떨어진 여유자금 1억 달러. 이왕이면 종합제철소 건립에 쓰는 게 낫지 않겠어요?”

나는 씩 웃었다.

“외국에서 얻는 원조와 차관도 한계가 있다면서요.”

아까 대통령의 한 말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포항철강도 지을 돈이 없어서 일본 배상금을 끌어다 쓴 판국에, 태성의 1억 달러를 가릴 때인가.

대통령은 더욱 깊어진 눈으로 생각에 잠겼다.

“셋째, 지금이 바로 일관제철소를 지을 적기에요. 놓치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설비를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다.

포항철강의 보고로 대통령도 이에 대해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70년대 들어서 선진국에선 추가적인 제철소 건설이 거의 추진되지 않고 있어요. 또한 다른 개발도상국에서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할 여력이 없고요.”

지금 선진국은 대한민국에 눈을 돌리고 있었다.

포항철강의 성공 때문이었다.

“선진국 기업들의 복잡한 경쟁관계를 이용하면 우수한 설비를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죠.”

철강 산업은 대규모 장치에 의존하는 산업이며, 철강 기술은 설비에 체화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설비의 특성이 기술활동의 성격을 규정하는 만큼 생산 설비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300만 톤 규모의 제철소 건설에 들어가는 자본금이 막대하고, 한번 설치된 설비는 대략 20년 정도 사용할 정도로 자본 회수 기간이 길다.

어떤 설비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철강 산업의 수익성과 기술 활동, 성공여부까지 달린 셈이다.

“종합제철소 준비와 건설에만 족히 5년은 걸릴 거예요.”

포항철강의 경우엔 그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제철소 부지의 기초 토목 공사, 용수로와 냉각수 처리 시설 공사, 부두와 항만 공사에 간척 공사까지 들어가야 하니까요.”

나는 씩 웃었다.

“이로 인해 파생될 한국 경제의 긍정적인 효과를 따져 보세요. 놓치기엔 아깝지 않아요?”

톡톡 두드리던 대통령의 손끝이 멈췄다.

말없이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를 차례로 바라본다.

대통령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확실히 허튼소리나 실없는 소리를 내뱉는 꼬맹이는 아니로군.”

지금 그딴 게 중요해?

나는 쐐기를 박았다.

“만일 제철소 사업권을 얻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태성은 이 돈을 다른 데 투자하겠죠?”

목돈을 썩힐 수야 없지.

돈은 굴려야지.

사업을 굴리기 위해서.

대통령은 눈빛을 번뜩였다.

“어디에 쓸 생각이지?”

“아마도 유공?”

대통령은 중정부장과 청와대 경호실장을 흘깃 바라보았다.

둘은 잔뜩 긴장한 눈으로 대통령만 보고 있었다.

대통령은 만족한 듯 희미하게 떠오른 웃음기를 지워냈다.

‘솔직히 지금으로선 유공을 인수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지만, 압박용 카드로는 이만한 게 없어서.’

나는 일부러 어깨를 으쓱했다.

“중공업의 두 축이라면 역시 정유와 철강 아니겠어요? 보시다시피 태성은 정유와 철강 중 어느 것도 없답니다.”

대통령이 고량주를 단번에 들이켠 후 탁 소리가 나도록 술잔을 내려놓았다.

“고려해야 할 사안이 한둘이 아니다. 당장 부지 선정만 해도······.”

“광양에 지을까 해요.”

나는 씩 웃었다.

“울진은 너무 북쪽에 있어 안보에 위협이 되고, 아산만은 수심이 너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크죠. 하지만 광양만은 달라요.”

“······!”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 경호실장과 중정부장,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게다가 영호남의 균형 발전이란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지 않겠어요?”

“허······!”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다면 전라도 지지율이 치솟을 것 같지 않아요?”

“······!”

두 손으로 꽃받침을 만들어 턱을 괴며 나는 방긋 웃었다.

“대통령님, 아직도 결정을 내리기 어려우세요?”

“제철소, 자신 있나?”

대통령이 결단을 내렸다.

할아버지가 격양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물론입니다.”

아버지 또한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맡겨만 주십시오.”

아니지, 그게 아니야.

대통령이 저렇게 시원시원하게 승낙했다면 더 뜯어먹어야지.

< 내가 노리는 것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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