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작 짜장면 한 그릇에 >
국산 전차 성능 시험이라면 전국의 장성들을 전부 불러모은 국방부의 큰 행사였다.
차 회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여긴 일개 기업가가 낄 만한 자리가 아니잖습니까.”
태성그룹 총수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그런 초대장을 아들에게 선뜻 내어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태성도 방산 사업에 뛰어들었지.”
고작 그런 이유일 리 없었다.
이 나라에 방산 기업은 많다.
군수업체도 많다.
그런데 왜 굳이 태성에게만 국산 전차 성능 시험의 참관 초대장을 보내는가.
“각하.”
“왜 자네가 아니라 자네 아들이냐고?”
그룹 총수가 아닌 일개 건설회사 사장이 국산 전차 성능 시험에 참관할 이유가 있던가.
차라리 자동차와 중장비, 혹은 기계와 금속을 다루는 계열사 사장이면 또 모를까.
“왜 자네 큰아들이 아니라 막내아들이냐고?”
차성준이 맡고 있는 계열사는 건설, 창호, 시멘트, 목재 따위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의 물음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이거 왜 이러나. 선수끼리.”
“각하.”
“알 만한 사람이 의뭉스럽기는.”
대통령은 웃었다.
대통령의 손짓에 청와대 경호실장이 즉시 몸을 일으켰다.
쪼로록.
차 회장의 술잔에 고량주를 따르기 위해서.
“마셔.”
차 회장은 선뜻 술잔을 받아마실 수 없었다.
세운 공도 없는데, 느닷없는 하사주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대통령은 술 한 잔도 허투루 내리는 자가 아니었다.
“그 술 또한 자네 아들 덕이라 치지.”
대통령은 차성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차성준에게 보내는 눈빛은 상당히 뜨겁고 음험했다.
차 회장은 영문을 모르고 고개를 갸웃했다.
대통령 면전에서 아들에게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차 회장이 영문을 모르고 떨떠름하게 술잔을 받았다.
“김형원도 참 독한 놈이라니까.”
여기서 김형원은 또 왜 나오고?
오직 중정부장만 고개를 끄덕였다.
“5년 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전부 회수해 오겠습니다.”
“이번 일도 태성의 적극적인 협조를 바라지.”
대통령의 얼굴에 즐거움과 기대감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태성에 거는 기대가 커. 여러모로.”
“각하.”
“우광에서 떼어줬던 계열사를 분리 독립시켰고, 태성그룹 차기 총수 자리를 두고 경쟁을 붙이고 있다면서?”
대통령이 손짓했다.
“막내아들만 너무 불리한 형국이다 싶더니. 기우였어.”
“각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만.”
“오해는 무슨. 남자는 능력이지.”
아니, 진짜 무슨 말인지 아까부터 잘 못 알아듣겠습니다만!
하지만 이번엔 중정부장과 청와대 경호실장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중정부장이 은근슬쩍 말했다.
“젊은 친구가 능력이 대단하더군요.”
그 김형원을 순식간에 잡아오더라니까.
청와대 경호실장도 한마디 보탰다.
“타이밍 재는 눈치도 제법.”
그 전보가 없었다면 태성에 쳐들어가 따져 물었을 거다.
대통령이 정점을 찍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군.”
차 회장은 두 눈을 느리게 꿈뻑거렸다.
“······.”
그러니까 이게 다 무슨 소리냐······.
뭔가 성준이한테 하는 소리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그렇다고 높으신 분들 멱살을 붙들고 자세히 캐물을 수도 없고······.
차 회장은 고량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식도를 타고 뜨거운 불길이 화르륵 이는 듯했다.
“태성이 방산 사업에 뛰어들기로 한 것 또한 이 친구가 귀국하고 결정된 일이라지?”
톡. 톡. 톡. 톡.
대통령의 손끝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즐거운 기색이 역력했다.
“태성의 기술력이 국방 기술에서도 먹힐까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태성은 군수산업에 뛰어들지 않았지만, 웬만한 분야에서 탁월한 기술력을 자랑하여 유명해졌다.
“이 나라가 제대로 홀로 서려면 국방과 안보가 튼튼해야지.”
대한민국은 휴전국가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북은 시시때때로 공비와 간첩을 보내 테러를 자행하고 무력 도발하기 일쑤다.
미국과의 관계가 심히 틀어진 이후 미군부대 철수 카드에 대통령은 이를 갈았다.
-보다 강한 화력!
-보다 많은 화력!
-보다 압도적인 화력!
대통령이 이번 국산 전차 성능 시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 대한민국 국방부는 국산 전차 개발 계획을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었다.
“태성이 국산 무기 개발의 주축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초대장을 다시 한번 흔들었다.
“받아. 각하께서 허락하신 거다.”
“감사합니다.”
차성준은 공손하게 두 손을 내밀어서 청와대 경호실장이 건네는 초대장을 받았다.
“장성들과 이 나라 국방의 미래를 논하는 자리다. 영광으로 알아.”
“명심하겠습니다.”
고작 건설사를 맡은 차성준은 절대로 낄 수 없는 자리였다.
“그러고 보니 따로 초대장을 받는 것도 두 번째인가.”
내로라하는 재벌 총수들을 불러모아 한 해의 경제 방향을 논하는 청와대 신년 오찬.
총수뻘이 아닌 자에게 초대장을 따로 보낸 것만 해도 예외적인 일이었거늘.
“태성건설 차성준이라고 했었지?”
“절 어떻게······.”
“기억해 둔다고 했잖나.”
차성준은 문득 대통령과의 사석 술자리에서 청와대 경호실장에게 청와대 신년 오찬 초대장을 받던 때가 떠올랐다.
-이름이 뭐라고?
-태성건설의 차성준입니다.
-태성건설 차성준. 기억해 두지.
정말 그걸 기억할 줄은 몰랐다.
대통령의 최측근이란 자가 아직 서른도 채 안 된 애송이 건설사장의 이름 따위야 굳이 외울 필요는 없을 테니까.
대통령이 청와대 경호실장과 차성준을 유심히 바라봤다.
“태성건설의 차성준이라······.”
대통령은 청와대 경호실장이 따라주는 고량주를 단숨에 털어 마셨다.
“차성준 이름으로 한 장 더 보내.”
방금 초대장을 받았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차성준과 차 회장은 동시에 초대장을 바라봤다.
-차정혁 군에게
놀랍게도 초대장의 주인은 차성준이 아니었다.
차정혁이었다.
“어째서 우리 정혁이를 초대하신 겁니까?”
“고작 여덟 살밖에 안 된 어린애가 국방부 행사에 참관할 일이 뭐가 있다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차 회장은 입안이 바싹 말랐다.
‘설마 우리 정혁이가 태성의 익명 후원자이자, 우광 계열사의 주인인 줄 알아챈 건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대통령은 피식 웃었다.
“내 목에 꽃목걸이 걸어줘야지.”
······모르는구만!
이 시절 국내외 굵직한 행사에선 어린애가 국빈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는 식순이 필수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걸 액면가 그대로 믿지 않았다.
“태성의 간판스타라며. 이참에 제대로 띄워줄까 하는데.”
대통령이 은근한 눈으로 차성준을 바라봤다.
“우광연구소를 거저 가져갔으니 성과로 보답해야지.”
우광연구소에서 은밀하게 개발하던 것은 전차 기술이었다.
그제야 차 회장 부자는 손에 들린 초대장의 의미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 * *
예린이를 찾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고급 중식당 룸을 나서자마자 투명한 주작이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삐약거리고 있었으니까.
똑똑똑.
벌컥.
“많이 기다렸어?”
“아니야.”
“넌 맨날 아니야냐?”
“아니야.”
“오늘도 아니야 금지.”
“너무해!”
예린이는 토실토실한 뺨을 부풀렸다.
“오빠는 맨날 아니야 안 된대.”
“지금부터 응, 하면 되잖아. 이게 어려워?”
“아니ㅇ······ 응.”
“잘했어. 착해.”
“······!”
예린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돌아봤다.
인형처럼 크고 예쁜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치, 칭찬받았다아······.”
이까짓 게 뭐라고.
그렇게 감격할 것까진 없는데.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서 의자에 털석 앉았다.
“짜장면 먹을 거지?”
“응!”
“착해.”
나는 예린이의 작은 머리통을 슥슥 쓰다듬었다.
가늘고 보드라운 머릿결이 손가락 끝에서 흘러내렸다.
“또··· 칭찬해준 거야?”
“그럼. 얌전히 잘 기다렸고, 식당도 잘 찾아왔고, 아니야도 안 했잖아.”
“······.”
예린이가 날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나는 씩 웃었다.
“배고프지? 얼른 주문하자.”
“내가 아까 했어!”
똑똑똑.
메뉴판을 들기도 전에 문이 열리더니 서빙 카트가 돌돌돌 들어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짜장면 두 그릇과 탕수육 한 그릇.
황당했다.
“여기 주문하자마자 즉석에서 만드니까 음식 내오는 시간이 꽤 걸린다던데?”
내가 아까 그렇게 안내받았거든.
실제로 주문하고 20분은 우습게 기다렸고.
예린이는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으쓱하면서 말했다.
“나 이런 거 잘해.”
이런 거?
뭐 어떤 거?
“신점.”
여기서 갑자기 신점이 왜 나와?
“오빠 올 시간 딱 맞췄지? 우후훗!”
“······.”
신점이라는 거 이렇게 막 쓸데없이 허투루 봐도 돼?
무당은 대가 없이 미래 훔쳐보면 안 된다며?
이러다 천벌 받는 거 아냐?
“참, 혹시 오빠 배불러?”
“아닌데?”
“아까 봤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맛있는 게 이마안큼, 엄청 많이, 잔뜩 있었어!”
예린이가 손가락으로 커다란 원탁을 가로지르며 말했다.
[삐약삐약!]
병아리만 한 크기로 변해 예린이 어깨에 앉은 주작이 날개를 쫙 펴면서 울었다.
“정말로 안 먹었어?”
“응.”
“왜?”
“왜긴 왜야. 같이 짜장면 먹기로 약속했잖아.”
“정말? 나랑 같이 먹으려고 꾹 참았어?”
예린이는 활짝 웃었다.
“오빠도 착해······.”
그래 봤자 짜장면.
이렇게 활짝 웃을 일인가.
“어땠어? 무서운 아저씨한테 점수 단단히 따고 왔어?”
아, 대통령.
“아마 점수 못 땄을 텐데.”
내가 사정 봐주지 않고 몰아붙였거든.
공격이 최고의 방어인지라.
정신없이 후드려 패서 얼을 쏙 빼놓고 싸게 후려쳐서 뜯어올 게 있었던지라.
그랬는데도 점수를 후하게 주면 인성에 문제 있는 거고.
“폭탄선언 해서?”
“폭탄선언까지는 안 한 것 같은데. 뭐, 막말은 했지.”
“그냥 막말이 아닌데. 엄청 크게 터뜨렸다는데?”
예린이 어깨에 앉아 있는 병아리만 한 주작이 시끄럽게 빽빽댔다.
“거의 천기누설 수준이었다며?”
[삐약삐약!]
“운명의 도화선까지 건드렸어?”
예린이가 눈을 좁혔다.
“몰락의 시발점. 폭탄의 기폭점.”
“아, 세금?”
예린이가 숨을 죽였다.
“흉사(凶事)를 길사(吉事)로 변하게 만들려고?”
흉사는 모르겠고, 길사라면 알 것 같다.
“얻을 것도 있고, 붙일 것도 있어서.”
“얻을 거?”
“세금 감면, 제철소 사업권, 종이 마패.”
나는 동전 지갑을 팡팡 쳤다.
대통령에게 받아낸 약속이 여기 들었다.
“그래서 뭘 붙였는데?”
“싸움.”
중정부장과 청와대 경호실장의 신경전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헉, 이건 그냥 싸움이 아니잖아?”
예린이가 입을 떡 벌렸다.
예린이 어깨에 앉은 병아리만 한 주작이 시끄럽게 삐약삐약거렸다.
예린이는 이마를 짚었다.
“나라가 발칵 뒤집힐 만큼 큰 싸움이야.”
“아마도.”
나는 잘 비벼낸 짜장면을 호로록 먹었다.
이 집 짜장면 잘하네!
춘장은 잘 볶아졌고, 면은 꼬들꼬들했으며, 야채는 아삭아삭하게 살아있고, 돼지고기엔 양념이 짙게 배인 데다, 불향까지 완벽했다.
과연 엄청 비싼 최고급 중식당!
‘어쩔 수 없었지. 내가 한쪽 저울에 추를 얹어버려서.’
코라이 게이트.
과거와 달리 김형원을 일찍 잡아들였거든.
덕분에 중정부장은 최우선 순위의 임무를 달성하고 공을 세웠다.
‘난 이 정권의 생명연장에 기여할 생각 따윈 없거든. 그러니 균형을 맞춰 줘야지.’
대통령과 나 사이엔 빚이 없다.
그러니 사정을 보아줄 까닭도 없다.
‘청와대 경호실장과 중정부장의 갈등은 더 깊고 첨예해져야 한다. 적당히 손잡고 권력을 나눠먹는 동맹이 되어선 곤란하니까.’
예린이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래 봤자 식당 의자가 높아서 허공에서 바동대는 수준이었지만.
“어떡해,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역사는 흘러가는 대로 둬야지.
그것까진 내 몫이 아니거든.
“짜장면 먹으러 왔으면 짜장면을 먹어야지.”
나는 짜장면을 휘휘 저어 돌돌 말았다.
“면 다 불겠다.”
“아니야.”
“계속 그렇게 고사 지내려고?”
“아니야.”
“아니야 금지랬지.”
“너무ㅎ······ 음?”
나는 돌돌 말았던 짜장면을 예린이 입에 쏙 넣어주었다.
예린이는 볼을 부풀리려다가 엉겁결에 짜장면을 받아먹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있어······.”
이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감격한 표정을 지을 일인가.
뭐, 보기 좋으니까 됐지.
나는 짜장면을 다시 한번 돌돌 감아서 예린이 입에 넣었다.
“착해. 냠냠 꼭꼭이야.”
“에헤헤.”
예린이가 활짝 웃는다.
“짜장면······, 좋은 거구나.”
“좋아?”
“응! 좋아! 엄청엄청 좋아!”
역시. 취향에 맞을 줄 알았다.
나랑 만났던 스물둘, 아니, 스무 살이던 너도 짜장면을 좋아했었어.
그래서 고마웠다.
가난했던 시절, 내 주머니는 늘 초라하고 볼품없었거든.
그래도 가끔 짜장면 정도는 사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다음에 더 맛있는 거 사줄게.”
나는 동전 지갑을 팡팡 쳤다.
“나 돈 많아.”
동전 지갑만 털어도 여기 식당 메뉴판에 있는 거 전부 다 시켜도 거뜬할걸?
남자의 품위와 자존심은 지갑에서 나온다는데.
난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근데 난 이거면 된 것 같아.”
“고작 짜장면 가지고 되겠어?”
“응. 처음이야······.”
뭐, 여섯 살짜리 어린애라면 짜장면을 처음 먹어볼 수도 있지.
말을 잃었던 그녀처럼 예린이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여기가 따뜻해지는 거······.”
한 번도 그녀의 입으로 듣지 못했던 말.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늘 궁금했던 말.
그 말을 삼십 년 만에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나 지금 행복한 것 같아······.”
예린이는 웃었다.
내 기억 속 그녀와 똑같이.
고작 짜장면 한 그릇에 사르르 녹을 것처럼 웃는 여자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따라 웃고 말았다.
고작 짜장면 한 그릇에.
< 고작 짜장면 한 그릇에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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