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만렙 아들-186화 (186/189)

< 부산이 발칵 (1) >

한명호가 중정요원들을 이끌고 밀매왕 검거에 나섰다.

나는 여기서 세 번 놀랐다.

탕! 타타탕! 탕!

첫째, 총소리에 놀랐다.

총기 규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부산항 부둣가에서 이만한 총성이 울리다니!

‘마약 빼고 없는 것 없이 전부 다 취급한다는 밀매왕이 설마 총기 밀반입을 안 했겠냐마는······.’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본격적인 총질이 오갈 줄이야?

“간첩 새끼들 튀지 못하게 퇴로를 막아!”

“뱃길 봉쇄해! 찻길도 봉쇄하고!”

“최루탄, 수류탄, 화염병 가리지 말고 던져!”

“방패 제대로 들어! 몽둥이 제대로 들어!”

“칼 든 놈 잡아! 막아! 지원사격할 테니까 몸 사리지 말고 달려들어!”

“중화기 지원 요청도 넣겠습니다!”

둘째, 앞뒤 재지 않고 퍼붓는 공권력의 화력에 놀랐다.

‘역시 대재앙이 따로 없다니까.’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어찌 된 게 겪을 때마다 소름 돋는다.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온다.

최 소장은 입을 떡 벌렸다.

“이, 이러다 다 죽는 거 아닙니까?”

“어쩌면?”

“아니, 진짜로?”

그럼 이게 장난이겠냐?

내가 아는 한명호라면 총질할 때 하더라도 사람 목숨은 안 건드려도.

다른 중정요원들까지 그러리란 보장이 없다.

어쨌거나 한명호 혼자 총질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이런 미친······!”

연구실 속 화초 샌님 최 소장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치 없는 최 소장도 이쯤 되니까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어휴, 이거 정말 상상만 해도 아찔하군요. 만일 그때 도련님께서 창고 문을 따고 나가자 하지 않았다면······.”

“불에 타 죽나, 총 맞아 죽나, 중정에 끌려가 죽나. 역시나 삼도천행이었겠죠?”

유종태는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아까 경찰이 총출동했으니 이제 우리는 안전해졌다며 다행이라던 사람, 어디 갔나요?

“크흐흠!”

“역시 우리 도련님! 설마 이미 그때 지금의 이 상황을 다 예측하셨던 겁니까아아!”

“서, 설마······?”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렇게까지 화력을 퍼부을 줄은 몰랐다.

80년대, 90년대에 있었던 조폭들 구역싸움에 뛰어든 경찰 진압 작전 따위를 떠올렸을 뿐인데.

설마하니 대뜸 총질부터 하는 중정의 무장공비 박멸 작전을 보게 될 줄이야.

“도련님,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누가 뒤에서 불쑥 튀어나왔나 했더니.

밀매왕 검거에 나섰던 한명호였다.

“왜 벌써 돌아왔어요?”

격렬하게 저항하던 고등어 수산 사람들을 상대하고 왔다기엔 지나치게 멀끔한 행색이었다.

하지만 한명호에게서는 화약의 잔향이 짙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밀매왕 검거 끝냈습니다.”

이렇게 빨리?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물었다

“밀매왕만 잡은 건 아니겠죠?”

“물론 간부들까지 싹 다 잡아들였습니다.”

내가 놀란 세 번째 이유였다.

“사이렌 울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요?”

명색이 밀매왕의 본거지를 소탕하는 일인데, 이렇게 빨리 끝날 리가······.

“밀매왕 이하 중요 간부진들의 신상은 진즉에 파악해두고 있었습니다.”

오?

“언제고 제대로 털어주리라 작정하고 간을 보고 있었거든요.”

마약왕을 잡아낸 공을 강탈당한 이후, 한명호는 다음 타겟으로 밀매왕을 꼽았던 모양이었다.

한명호의 특기가 바로 목표물의 뒤를 탈탈 털어내기였거든.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원양어선 타고 튀었을 텐데요?”

“수류탄, 화염병, 최루탄 던졌습니다.”

“······.”

할 말을 잃었다.

한명호, 나랑 어째 하는 짓이 너무 비슷한데?

“설마 휘발유통도 던졌어요?”

“물론입니다. 불이 크게 번지자 기겁하고 바다에 뛰어드는 놈한테······.”

“작살 쐈어요? 밧줄 달린 거? 그물 던지고?”

나라면 그렇게 잡았을 텐데.

밀매왕은 고등어 선단과 원양어선을 타고 바다를 제집 앞마당처럼 누비는 놈이다.

작정하고 바다에 뛰어들어 몸을 숨기면 절대 못 찾는다.

“좋은 총 놔두고 무식하게 왜 그런 걸 쏘겠습니까?”

역시 중정!

장비빨부터 죽이는구만.

“이 모두가 도련님께서 크게 힘을 써주신 덕분입니다.”

한명호는 씩 웃었다.

“쪽수로 미는 데는 장사 없잖습니까.”

한명호는 대뜸 접이식 낚시 의자를 펼쳤다.

척.

정중한 태도로 내게 자리를 권한다.

뜻밖이었다.

대뜸 호텔로 안내하겠다고 나섰을 때와는 태도가 180도 다르다.

“이제 잔당 토벌만 남은 상황일 텐데요?”

“날도 차고 시간도 늦었는데, 우리 뜨끈한 차나 한잔 마실까요?”

“중정 부산지부 국장님들과 선임 요원들이 들이닥칠 시간이 다 되어가나 보죠?”

“······대체 어떻게 이런 걸 찰떡같이 알아들으시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한명호가 희귀동물을 보는 눈으로 날 보았다.

익숙한 시선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음, 그럼 딱 한 시간 드릴게요.”

“한 시간이나······! 괜찮으시겠습니까?”

“상황 정리까지 끝내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왜애애앵!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다.

경찰차에 수갑을 채운 사람들을 꽉꽉 눌러채워 싣고 있었다.

“음? 이 사람들, 중정으로 끌고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쉽게도 물고문실 정원이 한정된 관계로.”

윗대가리들이라면 몰라도 똘마니들에겐 경찰서 유치장이 딱이긴 하지.

“고등어잡이 선박들을 나포하여 수색하고 있습니다. 바다에 뛰어들어 도주를 시도한 자들은 경찰과 해양경비대가 추적 중이고요.”

마음에 든다.

“창고는 일단 불부터 끈 후에 뒤져보겠습니다. 운이 나쁘면 증거물이 화재로 소실될지 모릅니다만······.”

한명호가 코끝을 긁적이다 씩 웃었다.

“뭐, 언제부터 중정이 증거 찾은 후에 움직였다고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자백 받아내면 됩니다.”

없는 죄도 자백 받아낸다는 중정이었다.

“열흘. 기한 내에 처리 끝내놓겠습니다. 인맥과 세력, 자금줄까지 전부 다 탈탈 먼지 나게 털어볼 테니······.”

“확실하게 권한 설정해달라 이거죠?”

“······대단하군요.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분은 처음입니다.”

피차일반이다.

나도 댁이랑 말이 이렇게까지 잘 통할 줄은 몰랐어.

“아이고, 태성에서 나오셨다고요?”

타다다닥.

“중정부장님께 얘기 들었습니다. 하하하, 제가 종종 서울에 찾아가 인사를 드려야 할······ 어?”

날 발견한 대머리 중년인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는 말없이 청와대 마크가 찍힌 초대장과 대통령의 종이 마패를 꺼냈다.

“어억!”

내용을 확인한 대머리 국장이 비명을 질렀다.

“부장님께서 거듭 신신당부하셨던 태성의······!”

“처음 뵙겠어요. 차정혁이라고 해요.”

“차정혁? 설마 태성그룹 차 회장님의 막냇손자분이십니까? 아버님께서 왜 지하철 2호선 공사를 추진하시고, 청와대 신년 오찬에 초대받으셨던······!”

“맞아요.”

왜애애앵!

우리 뒤에서 빡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김 국장, 마침 잘 만났군! 양 프로, 그럼 부탁 좀 하지.”

피투성이 얼굴에 깊은 칼자국 흉터가 선명한 남자.

그가 수갑을 찬 채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말이 안 되잖나. 우리더러 마약이라니? 무장공비 밀항이라니? 대북 송금책이라니?”

“김 국장님이라고 했던가요?”

김 국장이 대답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 쳤다.

“고등어 장수랑 친해질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요? 혹시 뒷돈?”

내가 흔들고 있는 건 청와대 마크가 찍힌 초대장과 대통령이 직접 적은 종이 마패!

“청와대는 고위관료들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뒷돈이라뇨? 절대로 아닙니다!”

김 국장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전 모르는 놈입니다!”

중정부장이 직접 전화로 지시한 일이었다.

엮이면 X 된다는 뜻이었다.

“김 국장?”

“뭐 하나? 저 새끼 당장 물고문실로 안 끌고 가고!”

* * *

밀매왕이 끌려온 다음 날.

부산은 발칵 뒤집어졌다.

부산시장과 몇 명의 고위 공무원들이 떼로 몰려와 중정 부산지부에 쳐들어왔다.

“김 국장 불러!”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자네, 말이 안 통하는 사람 아니었잖아?”

“바로 중정부장에게 전화 넣을까? 그 후환을 감당할 수 있겠어?”

“청와대에서 이 일을 알게 되면 중정부장도 옷 벗어야 할 거야!”

야당과 여당 의원들도 합세했다.

그 보좌관과 수행원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다짜고짜 왜 일을 이렇게 무식하게 들쑤시려고 들어?”

“고등어 파는 사람은 인권도 없나?”

“대선이 코앞이야. 대통령 각하께서 이런 소란을 좋아하실 리 없잖나!”

“총선도 코앞이야! 당신들은 지금 우리 여당을 겨냥해서 정치공작을 펼치고 있어!”

방송국과 언론사에서도 카메라와 취재진을 앞세워 밀고 들어왔다.

찰칵! 찰칵! 찰칵!

“부산 최대의 고등어 선단을 향해 발포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대한민국은 총기 규제국입니다! 해명하십시오!”

“경찰과 검찰을 총동원해서 민간 선박을 향해 수류탄과 화염병을 던졌다는 게 사실입니까?”

“과잉 진압 아닙니까? 증거도 없이 간첩으로 몰았다면서요?”

“중정의 횡포, 이대로 괜찮은가! 공익을 수호하는 언론인의 명예를 걸고 기사 내겠습니다!”

오후에는 경찰 간부 몇 명과 부산지검의 부장 검사 둘, 부산법원의 판사 다섯이 중정을 찾았다.

장 변호사를 위시한 부산지역 변호사 연합회도 함께였다.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려고 이 난리를 피우나?”

“중정에서 협조 공문이 온 건 사실이지만, 일을 이렇게까지 크게 키우면 우리 입장도 난처하지!”

“대낮부터 경찰을 풀어서 시민들이 이용하는 시장을 뒤지자니!”

“난 영장 발부 못 하네! 그리 알아!”

“마약? 살인? 창고에 드럼통 따윈 없던데? 중정의 정보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

“잔말 말고 고등어 수산 사람들 풀어. 지금 당장! 타협은 없어!”

중정에서는 문을 꽉 닫아걸었다.

콧대 높은 국장 및 간부들은 물론이거니와, 열심히 허리 숙여가며 변명해야 할 말단 요원들까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중정 부산 지부가 텅 비어 유령의 집이 된 것 같았다.

“중정 새끼들, 죄다 어디 내뺀 거야?”

“이 난리통에 코빼기 하나 비추지 않는다고?”

“대체 뭐 하느라?”

궁금한데 물어볼 사람이 없다!

밀매왕이 잡혀갔던 다음 날, 부산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갔다.

* * *

밀매왕이 중정 물고문실에 끌려간 지 사흘째 되던 날.

밀매왕은 수갑과 족쇄를 차고 쇠사슬로 의자에 묶인 채 내내 방치되었다.

밀매왕은 그 사흘 내내 종일 목이 터져라 성질껏 소리치고, 닥치는 대로 걷어찼다.

“김 국장 불러와! 네놈들이랑은 할 말 없으니까! 김 국장 불러오라고!”

지하 물고문실엔 신입 요원 한 명 얼씬거리지 않았다.

하지만 옆방은 사정이 달랐다.

-으아아악! 사, 살려주십시오······!

-장부······! 장부가 있습니다······! 어디······? 우리 집 지하실 금고에······!

소름 끼치는 비명이었다.

사람이 다 죽어갈 때나 외치는 소리도 간간이 섞여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밀매왕은 더욱 크게 외쳤다.

“정신 똑바로 차려, 이 새끼들아! 조금만 더 버티면 이 개 같은 곳에서도 안녕이야!”

밀매왕은 믿고 있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내가 뿌려둔 돈이 얼만데! 어?”

밀수품을 바가지 듬뿍 얹어 파는 이유가 뭔데.

죽어라 쌍끌이 어선으로 고등어를 잡아가며 판 돈까지 얹었다.

거기에 먼바다에 나가 참치 잡아 파는 돈까지 몽땅 쏟아붓지 않았던가.

“우리가 죽으면 부산 바닥이 완전히 뒤집히게 될 거다! 우리 절대로 안 죽어! 버텨!”

이상한 낌새가 풍기거든 이걸 들고 달려가라고 말해둔 게 여럿이다.

몇 놈은 잡혀도 그 많은 놈을 한꺼번에?

절대로 다는 못 잡아낸다.

“부산시청이 뒤집히고, 부산지역 국회의원들이 검찰에 끌려가!”

그뿐만이 아니다.

“검찰청에도, 경찰청에도, 언론과 방송국에도! 서로가 물어뜯으며 칼 들이댈 떡밥 잔뜩 뿌려뒀다! 그러니 뒤는 걱정할 것 없고!”

밀매왕은 이를 악물고 외쳤다.

“대통령도 섣불리 손대지 못할 규모다! 한꺼번에 이 많은 놈들을 다 쳐냈다가는 부산 바닥이 마비될 테니까!”

그럴 때마다 옆방에서는 더욱 소리 높인 비명이 터지곤 했다.

-마, 맞습니다······! 그 열쇠,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월남전에서 빼돌린 총기··· 약 5만 정······!

-크어억······! 아닙, 예, 8만 정, 마, 맞습니니다!“

밀매왕은 입술을 짓씹었다.

“야 이 새끼들아! 뒈지려면 곱게 혼자 뒈지든가!”

-으어어억! 제, 제발··· 가족들은 건들지 말······ 차명 계좌······? 있습니다.

쾅!

밀매왕은 참지 못하고 철문을 발로 걷어찼다.

물고문실이 흔들리나 싶을 정도로 강한 발길질이었다.

하지만 철문은 끄떡없었고, 옆방의 비명 소리도 그치질 않았다.

“정신 차려, 이 새끼들아! 죽어도 혼자 죽어! 네놈들이 여기서 불면 남은 가족들은 손가락만 빠는 거야!”

밀매왕은 눈을 질끈 감았다.

뒷덜미가 섬칫했다.

온몸에 소름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젠장······!”

이래선 안 되는 일이었다.

“난 죽어도 절대로 혼자 죽지 않아! 어차피 죽을 거라면 같이 죽자고!”

물귀신이 얼마나 무서운지 똑똑히 보여주지!

대마불사(大馬不死).

그게 밀매왕이 오랫동안 이곳 부산 바닥에서 버텨온 비결이었다.

* * *

중정에 끌려온 지 일주일째.

이상한 일이었다.

밀매왕은 도무지 지금 이 상황이 실감 나지 않았다.

“왜 날 여기까지 끌고 와놓고 손끝 하나 대지 않지?”

< 부산이 발칵 (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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