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만렙 아들-189화 (189/189)

< 중정부장 출동 (1) >

대통령이 신경을 곤두세운 반역(反逆)이라는 단어의 함의는 명확했다.

특정 권력 및 무력 집단이 국가를 정복할 목적으로 벌이는 물리적, 정치적 행위.

즉, 대통령은 왕년에 거행했던 군사 쿠데타를 떠올렸다.

“쿠데타 진행 상황은?”

“각하, 쿠데타는 없었습니다.”

“총기 8만 정에, 탱크 9대, 화약 및 폭탄류가 10톤이야!”

쾅!

대통령은 참지 못하고 집무실 책상을 내려쳤다.

“반역이 아니라면 그 많은 무기를 숨겨뒀을 리 없지!”

대통령은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었다.

“주동자가 누구야? 어떤 새끼가 감히······!”

쾅!

“북한이야, 미국이야? 그도 아니면 일본의 사주를 받았나?”

“각하.”

“육군이야, 해병대야, 민란이야? 똑바로 대답해!”

“고정하십시오.”

“내가 지금 고정하게 생겼어?”

“각하, 이미 진압 끝난 일입니다.”

중정부장은 차분하게 말했다.

“부산 및 경남, 해안가를 따라 숨겨놓은 불법 무기 창고를 전부 털었습니다.”

중정부장은 <창고 압수 물건 목록>이란 제목의 검은 서류철을 내밀었다.

“또한 현장을 덮쳐 중요 요인들을 체포했습니다. 간부급 인사들이었다고 합니다.”

“검경과 공조해서 관련자 전원 색출해!”

이미 하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중정부장은 순순히 “예.” 하고 대답했다.

“부산 경남 지역을 봉쇄해 차량과 선박도 통제하고!”

“예.”

“신문사와 방송국에도 공문 보내!”

“도주한 중요 요인들의 몽타주와 수배 전단지를 배포하여 신병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명분으로 며칠째 시장과 상업지구를 탈탈 털고 있다.

반공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공권력 동원의 명분이었다.

“대북 송금책은?”

“장부 입수하여 잡아들이고 있습니다.”

“밀항선은?”

“부산 경남지역 40여 개 항구 수색 중입니다.”

대통령의 눈이 가라앉았다.

“이번 사건에 개입한 공직자나 정치인은?”

“내란과 관련된 세력이라 추정되는 자에게 선처란 없습니다.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전부 잡아들여 본때를 보여주겠습니다.”

“······그래야지.”

털썩.

대통령은 집무실 의자에 앉아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짚었다.

잔뜩 구겨진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토씨 하나 빠뜨리지 말고 실시간으로 보고하도록.”

“물론입니다. 최우선 순위의 국가 안보 사항이 아니겠습니까.”

“부산에서 내란이라니······.”

딱. 딱. 딱. 딱.

대통령은 눈을 감은 채 손끝으로 집무실 책상을 두드렸다.

“총기 8만 정에 탱크 9대, 화약 및 폭탄 10톤이다. 몇이나 무장시킬 수 있을 것 같나?”

“각하.”

“지금 당장 총기를 쥐여주면 단번에 무장 단체로 돌변할 인력이 대한민국에 한가득이야.”

징집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은 제대한 후에도 예비군과 민방위군으로 전시 상황을 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전과 월남전까지 겪었으니, 실전 경험까지 많은 가용 병력이 수두룩했다.

“거기에 군부대까지 합류한다면?”

대통령과 중정부장은 군사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각하, 사전에 발각된 이상 놈들의 계획은 실패했고, 이제는 보복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을 뿐입니다.”

중정부장은 딱 잘라 말했다.

“이 일은 저와 중정을 믿고 맡겨주십시오. 철저하게 조사하여 뿌리를 뽑겠습니다.”

“자신 있나?”

“자신 있습니다.”

그제야 대통령이 한결 누그러진 눈으로 중정부장을 보았다.

“재국아.”

중정부장의 이름이었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좀처럼 부르지 않는 호칭이었다.

대통령과 중정부장은 같은 고향 선후배 사이였다.

“북한도, 군사 반란도. 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물론입니다.”

흔들림 없는 대답에 대통령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중정부장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각하,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 아닙니까. 이번 기회에 민심을 하나로 모으심이 어떻습니까?”

“민심을?”

“예로부터 많은 지도자들은 집단의 단결을 위해 외부의 적을 가리켰지요.”

가장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

그러니 종교, 사회, 정치의 지도자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도발, 무장공비의 준동.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로 적당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은 내팽개쳤던 신문을 힐끔 보았다.

<검경 총출동! 북한 무장공비 세력을 일망타진하다!>

<분노에 찬 시민들의 외침, ‘북한의 도발에 맞서 싸울 것!’>

<북한발 내란 음모를 낱낱이 파헤치다!>

부산 경남지역의 신문과 방송으로 떠들어댄 이야기였다.

“이참에 규모를 더 키워 대대적으로 나팔을 불면 미군도 잔뜩 쫄아서 경계 태세를 강화하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미국 정부에 악감정이 쌓이고 있는 참이었다.

대한민국은 휴전국가이고, 북한의 침략은 끊이질 않건만.

미국 정부는 노동 인권을 내세워 주한미군 철수를 강행했었다.

대통령이 이를 악물고 자력강생과 자주국방 강화를 부르짖게 된 이유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한동안 미국 정부도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들이밀기 어려워지겠군.”

“외부의 적이 날뛰고 있으니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도 당분간 잠잠해질 겁니다.”

“그동안 노동이니 인권이니 핑계 삼아 날뛰던 미국 정부의 지랄도 잠잠해지려나?”

“코라이 게이트가 닫혔으니 지금 미국은 내부 단속하기에도 바쁠 겁니다.”

코라이 게이트를 닫은 공 또한 중정부장이 세웠다.

그 사실을 상기하자, 중정부장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눈길이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중정부장은 덧붙였다.

“각하, 대대적인 언론 선전이라면 마침 이 일을 맡을 만한 적임자가 있잖습니까.”

“우광.”

대통령은 무릎을 탁 쳤다.

“우광에 연락 넣어. 나팔수 노릇이나 톡톡히 하라고 해.”

“그러라고 살려줬는데요. 밥값은 제대로 해야지요.”

그조차 제대로 못 해내면 봐줄 이유가 없다는 소리였다.

대통령은 한결 후련해진 표정으로 보고서를 탁 덮었다.

“중차대한 사안이다. 이번 일은 자네가 직접 내려가서 확실하게 처리해.”

“예, 알겠습니다.”

“지원이 필요하면 뭐든 요청하고.”

“예.”

“쿠데타와 관련된 놈들은······.”

가늘게 내리깐 대통령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전원 제거하도록.”

“예.”

“예외는 없다.”

드르륵.

대통령은 서랍을 열었다.

청와대 마크가 박혀 있는 황금색 명패를 꺼내 던졌다.

중정부장은 날아오는 황금색 명패를 탁 받아 들었다.

“이건······!”

“믿고 맡기지.”

대통령은 중정부장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신뢰와 염려가 담긴 손길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청와대 경호실장이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달리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중정부장은 크게 외쳤다.

“지금 즉시 출발하겠습니다!”

* * *

부산시장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따르릉!

-청와대 비서실에서 연락드립니다.

청와대에서 공문 대신 돌린 긴급 전화였다.

“예? 중정부장께서 직접 내려오신다고?”

중정에 적극 협조하란 청와대의 지시였다.

“내란 음모에 가담한 불순분자들을 색출해?”

전달 사항을 듣는 순간 바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대대적인 감사와 세무 조사까지······?”

들으면 들을수록 기함했다.

‘뒷돈을 받고 항구를 열어준 관련자들을 물색하겠다는 건 진짜 작심했다는 건데······.’

부산시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시장님께서는 이 일과 무관하신 거 맞지요?

-부디 내란 음모 세력에게 뒷돈을 받아먹고 눈감아 준 게 아니길 바랍니다.

-각하의 역정이 대단하십니다. 최대한 빠르게 사태를 수습하셔야 할 겁니다.

달칵.

전화를 내려놓은 부산시장은 다급하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내란 음모라니!

무장공비와 반란군 수괴라니!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는 징후를 포착했다니!

대통령 각하의 역정이 대단하다니!

중정부장을 직접 보내겠다니!

“고작해야 고등어 창고를 털었을 뿐이었는데?”

생각보다 스케일이 커져도 너무 커졌다!

부산시장은 앓는 소리와 함께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총기 8만 정에, 탱크 9대, 화약 및 폭탄 10톤?”

무슨 고등어 창고에서 그런 게 나와?

“환장하겠네!”

원래 공직 생활이 다 그런 법 아닌가.

적당히 내어주고, 적당히 눈감아 주는 대신 적당히 해먹고, 적당히 챙기는 것.

각종 이권을 적당히 내어주고 부산항에서 일어나는 일엔 적당히 눈을 감아주는 대가로 주머니 두둑하게 받아먹었을 뿐이었다.

향후 수도권으로 향할 제2의 정치인생을 위해서.

정치에는 많은 돈이 드니까.

“이 새끼들이, 죽으려면 혼자 죽든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많은 무기를 밀반입해서 이 사달을 만들어!”

안 그래도 마약왕 때문에 전임 시장이 옷 벗고 나갔는데.

이번엔 내가 옷 벗게 생겼다.

아니, 옷만 벗으면 다행이게?

“이건 재수 없이 잘못 걸렸다가는 바로 모가지 뎅강이야!”

은어 말고 진짜 모가지.

가뜩이나 내란과 군사 쿠데타, 반란이란 단어에 민감한 대통령인데.

“이런 시발, 까딱하면 나까지 X 되는 거 아냐?”

벌써부터 뒤통수가 싸했다.

부산시장이란 직책이 무색하게도.

최근 열흘 동안 받은 협박만 총 세 번이나 된다.

첫 번째, 장 변호사의 협박.

-뒷돈을 받아먹었으면 돈값을 해야지요.

-지금 당장 밀매왕을 꺼내지 못하면 이 시장님의 입장이 퍽 곤란해질 겁니다.

-자료를 받았으니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실 텐데요?

-당신 자료는 어떻게 사용될 것 같습니까?

그래서 다음 날 중정에 찾아가 지랄을 떨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오후, 한명호라는 중정 요원이 찾아와서 또 한 번의 협박을 받았다.

-공직자가 뒷돈이나 처먹은 것도 모자라 공무 수행을 방해하면 되겠습니까?

-한패로 엮여서 물고문실에 끌려가고 싶으십니까?

-명심하십시오. 이건 간첩 사건입니다. 아니면 고위 공직자의 뇌물비리 사건으로 처리합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하셨으면 앞으로 행동 노선 똑바로 잡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다음 날 기자회견을 자처해가며 간첩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런데 오늘, 청와대에서 한 번 더 섬뜩한 경고를 해왔다.

내란 음모와 반란군이란 단어로 엮여서.

“빌어먹을······!”

사방이 지뢰밭이었다.

따르릉!

안 그래도 심란한데 전화벨은 줄기차게도 울려댔다.

절대 끊지 않겠다는 집요하고도 다급한 의지가 전해졌다.

부산시장은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당분간 내 앞으로 전화 연결시키지 말고 전부 끊······!”

-청와대에서 온 전화 받으셨습니까?

신원도 밝히지 않고, 말허리를 중간에 뚝 자르며 대뜸 들어오는 무례한 질문!

왠지 익숙한 목소리였다.

“혹시 박 지검장인가?”

-예, 접니다!

부산지검장이었다.

성질 급한 부산지검장이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빠져나갈 길은 찾으셨습니까?

“······내가 묻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야. 방법 없겠나?”

-중정부장을 포섭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되겠어?”

그게 쉬우면 내가 여기서 머리채나 쥐어뜯고 있겠냐?

부산시장은 짜증처럼 버럭 외쳤다.

“각하께서 주목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건수를 잡아 실적을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되었을 텐데, 회유가 될 것 같나? 상대는 중정부장이야!”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자!

“그런 남자가 뭐가 아쉬워서? 차라리 우리를 제물로 바쳐 각하의 총애를 사려 들겠지.”

-그럼 손놓고 처분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자는 소립니까?

부산지검장의 목소리도 날 선 듯 뾰족했다.

뒤통수가 섬뜩하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밀매왕이 마지막 발악을 할 때 뿌려놓은 자료, 받으셨습니까?

“······지금 날 떠보는 건가?”

-떠보다니요? 저한테 이 시장님 자료가 배달 왔다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겁니다만.

“끄으으응!”

부산시장은 다시 한번 머리를 쥐어뜯었다.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한숨으로 판단컨대, 부산지검장의 사정도 썩 여의치는 않아 보였다.

-모입시다. 다 같이 머리 맞대서 대책을 강구해 봅시다.

“안 그래도 내란 음모라는 소리에 기함한 상황이야! 이 판국에 비밀리에 모였다가 걸리면? 무슨 누명을 어떻게 뒤집어쓰게 될 줄 알고?”

-적어도 합의하에 서로가 가진 자료를 폐기할 수는 있겠지요.

“끄으으응!”

달칵.

부산시장이 숯불 위에서 구워지는 오징어처럼 온몸을 비틀며 괴로워하고 있었을 때였다.

똑똑똑.

“뭐야?”

“중정에서 한명호 요원이라는 분이 오셨습니다.”

한명호?

뇌물 장부 운운하면서 협박했던 그놈?

이때다 하고 또 무슨 협박을 하려고!

“꺼지라고 해!”

“살길을 터주겠다고 전하라 했습니다만. 예, 그럼 바로 쫒아내겠······.”

“들어오라고 해!”

쫓아낼 때 쫓아내더라도 일단 살길이란 게 뭔지는 들어나 보자!

스르륵.

연기처럼 투명한 검은 형체가 부산시장의 등 뒤에서 솟아올랐다.

< 중정부장 출동 (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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