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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9화 (9/538)

9. 챕터3. 이동하다 (2)

그렇게 물을 찾으면 다시금 찾아온 고통시간.

“몸풀기운동 시작!”

요상한 말과 함께 이상한 몸동작으로 팔다리를 휘둘렀는데, 그러면 고통과 함께 쾌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몸을 다 풀고 나면, 이젠 옷을 죄다 벗고 입수. 역시나 사대부 체면이 어쩌고저쩌고 하던 이들도 있었지만, 묵직한 칼날을 보여주자 제일 먼저 옷 벗고 뛰어들었다.

지체 높은 신분인 연오랑마저도 고추를 덜렁거리며 물에 뛰어들었는데, 감히 누가 개겨?

신분의 차이와 빈부의 차이, 직업의 차이는 홀딱 벗은 몸뚱이처럼 점점 똑같아졌다.

그렇게 깔끔하게 씻고 나면 식사 시작.

그나마 식사만큼은 잘 먹어서 다행이다.

이 시대는 보통 두 끼를 먹는데, 이들은 꼬박꼬박 세 끼를 먹었다. 물론 먹은 만큼 하루 종일 굴려서,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팠지만.

어찌됐건, 노비나 천역 출신들은 오히려 집에서 먹을 때보다 더 잘 먹었다.

기본 베이스는 쌀.수수.조에 온갖 말린 야채를 넣고 삶고, 또 찐 다음에 경단처럼 만든 물건.

본래 조선의 전투식량은 가래떡, 미숫가루, 인절미 같은 물건인데, 이건 그가 이것저것 넣어 변형해서 만든 거다. 그걸 죽처럼 만든 후, 육포와 어포, 간장을 풀어 넣어 먹으면? 엄지척 개꿀맛이다.

다들 잘 먹는 걸 보면, 역시 개고생하면서 전투식량을 만든 보람이 있다.

그게 끝이 아니다. 말린 밤과 대추를 꿀에 섞어 굳힌 후식까지. 이건 온갖 신분이 다 섞인 잡색군 모두의 눈을 번쩍 뜨게 할 물건이다.

심지어 부잣집 서생마저도 그랬다. 오히려 이런 걸 먹어도 되나 의심스럽게 보는 이들이 더 많았다.

식사가 끝나면 다들 땅을 반쯤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 사후체험 비슷한 걸 경험하며 잠을 청했다.

훌륭한 군인, 아니 칼잡이가 되기 위한 기초는 먹을 것 가리지 않고, 잠자리 가리지 않고 잘 자는 것.

배고픔에 지친 이들은 생쌀도 퍼먹을 정도가 됐고, 기진맥진 한 이들은 머리를 땅에 붙이자마자 꿀잠 잘 정도가 됐다.

일평생 칼 한번 잡아보지 못한 관노부터, 붓만 잡아온 서생까지.

이들은 전부 칼잡이의 기본을 갖춰갔다.

산악행군도 익숙해지자 훈련이 추가 됐다.

숙영 준비를 하는 동안 훌쩍 떠났던 연오랑과 윤현은 매일 같이 사슴이나 노루, 삵, 고라니, 멧돼지, 심지어 표범까지 잡아왔다.

비록 반쯤 죽어서 기진맥진한 모습이긴 하다만, 표범을 생포하다니? 과연 조선 제일의 호랑이 사냥꾼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리곤? 그 흉악한 놈의 목을 꽁꽁 묶어 나무에 고정시켰다.

“...?”

“쏴. 죽여라.”

무식하고 잔혹한 말을 내뱉고선,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을 또 두들겨 팼다.

누구는 표범의 안광과 포효에 자지러지기도 했고, 누구는 차마 못 죽이겠다고 발광했지만... 단호한 칼집은 가리지 않고 뚝배기를 깼다.

활이야 취미생활로 쏴댔지만... 맹수를 잡아본 적이 언제요, 그것도 직접 도축해본 적이 있기나 하겠는가.

서생들과 양인들은 단검 하나 던져주고 가죽을 벗기라는 연오랑의 말에 거세게 반발했다.

웬 서생 하나가 “어찌 사대부가 이리도 천한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외치자. 푸욱. 연오랑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생의 머리통을 표범의 찢어진 뱃속에 쑤셔 넣어버렸다.

“아직도 하동에 이런 십선비 꼰대가 남아 있을 줄이야? 이 자식 어느 집안이야? 내가 향교를 안 나갔더니, 어느새 또 이런 놈이 생겼어?”

“사아... 살려...”

“으... 웨웩.”

“우웍...”

“또 까불 사람?”

살기가 팽팽 도는 말에 감히 누가 반문할까.

헛구역질을 참으면서, 다들 단검을 들고 맹렬하게 돌진. 먹물과 흙이 묻었던 손이 붉게 물들어 갔다.

표범사건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오히려 문제 아닌 문제가 된 건 귀엽고 아름다운 꽃사슴이었다.

죄 없는 미물인데 저걸 저렇게 고통스럽게 만들어야 하는가! “살려주세요.”라고 말하는 듯, 우수에 찬 큰 눈망울을 보며 다들 활을 들기 망설였다.

물론 연오랑에게 그런 게 통할 리가 있나.

“허. 거참. 아직도 뱃속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이 있나보네? 꽃사슴은 작으니까 뱃속이 아니라 항문에 쳐 넣어줄까?”

작은 거랑 항문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지만... 다들 그의 헛소리에 굴복했다. 뚝배기가 터지는 건 무서우니까.

“에잇!” “미안하다!”라고 외치며 화살을 날려 꽃사슴을 쓰러뜨렸고, 이내 우르르 달려들어 도축을 시작했다.

양반,양민,천민 할 것 없이 죄다 모여서 피칠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원시 야만인이 모여 있는 것 같다.

“크흠...”

“음...”

“크큭...”

지들이 봐도 지들 꼴이 웃긴 걸까? 서생들은 서로 시선을 피하며 피식 웃었고, 항상 천역이라고 놀림 받던 이들은 괜히 속이 후련해져서 활짝 웃었다.

그렇게 표범사건과 꽃사슴사건이 있은 후로, 활을 쏘는 일에 망설임이 없어졌다.

심지어 연오랑과 윤현의 지시에 맞춰 사냥도 함께 시작. 이게 지금 거제 합포로 가는 길인지, 아니면 사냥을 하러 다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산을 쏘다니며 질주했다.

한 때는 백면서생이었던 이가 이제는 귀여운 토끼의 뒷다리를 잡고 힘차게 땅에 내리쳐 두개골을 박살낸다.

단검으로 목을 한 바퀴 돌려 가죽을 잘라내고, 양손을 집어넣어 잡고서 허공에 힘차게 휘두른다.

푸학! 휘릭. 핏줄기와 함께 토끼 가죽과 근육이 한 번에 분리. 그리곤 쓱싹쓱싹 배를 갈라 내장을 집어 던지고, 캉캉. 뼈와 살을 분리해 고기를 따로 챙겼다. 쓱쓱. 날카롭게 간 단도로 이번엔 가죽의 지방층을 벗겨냈다.

서생은 벗겨낸 가죽이 만족스러운지, 피 묻은 단도를 쓱쓱 닦아내며 미소를 지었다.

하나둘씩 피맛을 아는 칼잡이로 변해간다.

피맛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새로운 훈련이 추가된다.

살짝 회색빛이 도는 나무껍질. 십여 미터를 훌쩍 넘기게 자란 키. 껍질은 약재로도 쓰이고, 한반도 여기저기에서 많이 자라는 나무.

청피목靑皮木이라고 불리는 물푸레나무다.

“이 나무 보이지? 길고 곧게 자란 나무만 골라서 추려라.”

“몇 개나...?”

“긴 거 이백 개. 짧은 거 백 개”

“헐...”

“예에...? 옙!”

“알겠습니다!”

단호하기 짝이 없는 말에, 다들 냉큼 대답하고 달려갔다.

이제 더 말 안 해도 안다. 안하면 뚝배기가 깨질 뿐이다. 쿵쾅쿵쾅 도끼질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사대부, 양인 할 것 없이 현청에서 제기나 가구를 만들던 관노에게 다가가 나무껍질을 벗기고 가공하는 법을 캐물었다.

이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물어보는 사대부나 대답하는 관노나 거리낌이 없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제시간에 못하면 또 죽도록 산을 타거나, 밥을 굶거나, 밤을 세며 번을 서야한다.

저 옆에서 퍼질러 자는 사냥개. 저 녀석보다 못한 신세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벌목이 끝나면, 다듬는 방법은 네가 알려줘라.”

“옙!”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윤현은 냉큼 달려가 도끼를 휘두르고, 다듬는 법을 알려줬다.

지금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창이다.

창은 탄성이 좋으면서도 단단해야하고, 그러면서도 가벼운 게 최고다.

물론 이 조건이 다 맞을 리가 없지. 탄성이 좋으면 단단하기 힘들고, 단단하면 무겁고, 가벼우면 부러지기 쉽다.

이 밸런스를 잘 조절해서 찾아야 하는데... 그가 생각하기에는 이 물푸레나무가 최고다. 고래부터 유럽에서는 창! 하면 물푸레나무였으니까.

한반도의 물푸레나무가 유럽의 종과 같진 않지만, 어찌됐건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건 확실.

21세기 그가 전국을 싸돌아다니면서, 나무 깎아서 창대도 만들고 목검도 만들고 다 해봤다.

고증에 맞추겠다고 이것저것 해봤는데, 구하기 쉽고 편하게 쓰기에는 물푸레나무가 최고다.

그리고 이 세상에 태어난 후에 다시금 확인했는데, 역시나 물푸레나무가 으뜸이다. 당장 그가 들고 다니는 투창도 이걸로 만들었으니까.

“음... 호장 어른.”

어르신과 호장군을 섞은 요상한 별칭. 저렇게 부르는 건 현감 밑에서 이상한 물이 들은 향리뿐이다.

“...?”

“청피목으로 창을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그런데? 왜?”

“저는 저걸로 안 만들어봐서 말입니다.”

‘호오..?’

이거 봐라? 굴리다보니 이상한 쪽으로 진취적인 녀석이 튀어나왔다.

“군에서 일했었나?”

“예. 잠깐 일했습니다.”

군대에도 사무를 담당하는 하급관리가 있기 마련. 이 녀석은 그런 경험이 있어서 의아했나 보다.

“내가 써 본바, 청피목이 가장 나았다.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구하기가 쉽잖냐?”

“예...”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연오랑은 아예 세필과 종이를 가져오라고 하고선 입을 놀렸다.

“단순히 의견만 제시한다고 되겠냐? 주상전하께서 관심을 갖게 하려면 시험과 실증을 반복해서 기록을 남겨야지.”

“...”

연오랑은 그리 말을 하고선, 물푸레나무를 비롯해 온갖 나무를 다 잘라서 창을 만들고, 그 창의 강도와 탄력, 단단함, 무게 등을 체계적으로 표를 만들어서 정리하라고 했다.

“표란 말씀이시죠?”

“그래. 이렇게 하면 얼마나 보기 좋아? 안 그래? 이 정도는 되야, 상소를 올려도 “오. 이것보소? 참으로 일목요연하구나.” 하실 거 아냐.”

21세기의 신문물을 아낌없이 전수해준다.

“그렇겠죠?”

“의심하지마라.”

“옙.”

벌써 세종에게 상소를 올릴 생각에 빠졌는지, 향리의 입가가 절로 올라가 있다.

“나중에 돌아가서 한 건 해보라고. 알겠냐?”

“넵!”

냉큼 대답을 하고선, 다시 도끼를 들고 나무를 패기 시작했다.

창을 만드는 일이 끝나자, 다시금 훈련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조금 더 살벌하다. 대체 말에 실린 짐에는, 무슨 물건이 저렇게 많이 들어 있는 걸까? 도깨비 주머니마냥 이번에는 두꺼운 쇠사슬이 튀어나왔다.

쇠사슬로 목을 꽁꽁 묶어 멧돼지. 하지만 전과 다르게 사슬끈은 여유가 많아서, 멧돼지는 나무를 중심으로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날뛰고 있었다.

“잡아. 너흰 창으로만.”

“히익!”

“예...”

“한번만 설명한다.”

연오랑은 아직 속이 다 마르지도 않은 창을 들고 섰다.

마음 같아서는 훈련시키기 편한 파이크 방진을 가르쳐주고 싶은데, 이들이 싸울 전장은 나무가 빽빽한 대마도의 산지다.

거기에 맞추려면 장창도 기창만큼 길이를 줄여야 할 판이다.

가볍게 시연을 시작했다. 복잡하고 어렵지도 않다.

양손을 허리춤에 자연스럽게 내리고 창대를 잡는다. 그리곤? 그냥 비틀면서 찌르는 거다.

보법은 오로지 반보전진과 반보후진. 시간이 없으니 갑을창법이나 무예도보통지의 창법을 녀석들에게 가르칠 수 없다. 그냥 란나찰 응용버전 찌르기나 열심히 가르치는 수밖에.

“한손은 창파 끝을 잡는다. 다른 한손은 창신의 중단을 잡는다. 반보 나아가면서 창대를 민다. 허리는 곧게 펴고, 손은 하늘을 보는 느낌으로 찌른다. 적의 머리나 가슴을 노리고.”

“...”

생전처음 배우는 무술에 다들 괜히 긴장하여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날뛰는 멧돼지 따위는 이미 잊었나보다.

“이 상태에서 창을 회수하면서 오른발이 빠지면 다시 준비자세. 왼발이 빠질 때는 자연스럽게 창을 세워 중심선에 맞추고, 한보 뒤로 오른발이 빠지면서 다시 준비자세.”

구분동작을 부드럽게 이어가자, 창을 따라서 반원이 그려졌다.

“오...”

“와...”

날렵하게 반원을 그리는 모습이 꽤나 멋진 모양이다.

하긴. 그가 성질머리가 더러워서 그렇지, 보통사람보다 머리 하나 만큼 더 커서 몸을 쓰면 멋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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