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챕터4. 모집하다 (1)
“후... 좋다. 하면 병사는 몇이 적당하겠느냐?”
‘아싸.’
연오랑은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서, 미리 생각해 놨다는 듯이 얼른 답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나, 출병하기 전에 그 질을 확인하기에 촉박한 바. 이백에서 삼백 사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음... 가능한가?”
이종무의 물음에 제장들은 또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기선군. 그러니까 수군 빼고도 병력이 만이 넘는다. 잡색군 삼백 정도는 빠져도, 병력을 운용하는 데 문제가 없을 거다.
임시지만 돈용부위로 임명됐으니, 하급무관을 이끄는데 품계의 문제도 없다.
불협화음 없이 제장들 모두가 인정하자, 이종무는 기특하다는 듯이 미소를 머금었다.
“좋다. 그리 하마. 혹시 도와줄 일이 있느냐?”
“미리 준비해 온 물건이 있어 대장간을 쓸까 합니다. 그리고 오면서 여진족을 보았습니다. 그들을 포함시켜도 되겠습니까?”
“음... 우 장군이 보기에 어떠시오?”
“여진인은 말도 잘 타지만 산도 잘 타니, 원하는 이가 있다면 합류해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다만 그 수가 스물을 넘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여진족을 책임지는 중군 절제사 우박 또한 허락했다.
“들었느냐.”
“예.”
‘암암. 잘 들었습니다.’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며, 기쁜 기색을 숨기고 경건하게 답했다.
“이번 일이 얼마나 특혜 받았는지는 네 스스로 잘 알 것이다. 선봉에 서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없던 일로 하고, 중군에 속해 봉행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종무는 웬 문서를 한 획에 죽죽 써 내리고서 건네줬다.
“가지고 가면 별장들이 병사를 내줄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
또 뭐 있냐? 라는 얼굴로 바라보자, 연오랑은 오해사지 않게 최대한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잡색군은 정병에 비해 그 질이 떨어지니, 별동대에 합류하는 일이 쉽지 않을 거라 사료되옵니다. 또한 소인이 공을 세운다 한들, 그게 어디 소인이 능력 때문이겠습니까? 장군님들 덕이 아니겠습니까? 나아가 약관도 넘지 못한 소인이 공을 세운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하여 청하오니, 장군님 곁에 있는 무관 중에서 소인을 보좌해줄 무관이 함께 하면 천군만마를 얻을 것 같습니다.”
“...”
“또한 잡색군은 신분이 천해 공을 세워도 인정받는 일이 지난할 것이니, 그 점을 헤아려 노획한 물품의 소유만이라도 허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크흠...”
“허허...”
날카로운 질문에 다들 헛기침을 하며 눈을 굴렸다.
조선뿐만 아니라 전근대, 아니 현대까지도 전리품 노획은 당연한 일이다.
알음알음 챙기는 건 계급을 막론하고 누구나 다 한다. 안 하면 오히려 바보지. 다만 그걸 명시하고 직시해서, 아예 대놓고 허락하는 건 굉장히 드문 경우다.
특히나 조선처럼 유학을 근본으로 삼는 곳에서는 군사령부가 이걸 대놓고 인정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그가 먼저 딜을 걸었다.
- 난 나이가 어려서 공을 세워도 어디 써먹지도 못해. 그러니까 니들이 키우고 싶은 애들 나한테 보내. 그럼 공을 몰아준다. 대신 나는 돈 좀 벌게. 우리 애들이 챙긴 건, 너희가 빼앗지 말고 우리 줘라.
연오랑이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고 부동자세를 유지하자, 장군들은 또 다시 열심히 눈빛을 교환하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모든 논의는 가정으로 이뤄지는 일이다. 성공하면 좋은 거고, 성공 못하면 그만인 일. 그러니 허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기곤 결국 승낙했다.
하지만 미쳤다고 이걸 문서로 남기겠냐. 나중에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그저 구두허락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하마.”
“감사합니다.”
“가 보거라.”
이종무와 유습. 그리고 몇몇 장군들은 미소를 띠며 그를 보냈고, 나머지 몇몇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괴상한 옷을 입고 다니고, 저런 맹랑한 소리를 내뱉는 녀석을 믿어도 되나 싶은 표정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누굴 보내는 게 좋을까 고민했다. 만약 연오랑이 진짜로 공이라도 세우면? 괜히 뻗대다가 자기 부하의 공이 날아갈 수도 있다.
‘아오. 빡세다. 시부래. 그냥 나 혼자서도 다 썰어버릴 수 있는데 말이지. 아니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벌어야지!’
연오랑은 속으로 그리 투덜거리며 발을 놀렸다.
정신없이 후다닥 나오다 보니, 선물로 줄 생각이었던 호피,표범피도 가지고 나왔다.
다 잘 풀렸는데, 뭔 상관이냐. 밖으로 나와 잡색군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
그들은 이미 자리를 배정 받고, 능숙하게 숙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시 산에서 열심히 굴린 보람이 있다.
“부대차렷!”
“차렷!”
윤현의 한마디에 재깍 오와열을 맞춰 서자, 오히려 근처에서 보고 있던 군졸들이 신기한 듯 바라봤다.
저게 뭔 짓인가 싶을 거다. 저 놈들은 지금 21세기의 첨단문물의 맛을 보고 있는 걸 알까?
“쉬어.”
“쉬어.”
다시금 이어진 복명복창. 녀석들은 자세를 풀고 그를 바라봤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다.”
“...?”
“본관은 앞으로 별동대를 운용. 산을 타넘으며 왜구를 최일선에서 처단하는 임무를 맡았다. 하여 너희들에게 선택권을 준다. 함께 할 사람은 오른쪽으로, 빠질 사람은 왼쪽으로 가라. 목숨이 걸린 선택이다. 결코 쉽게 생각하지 마라.”
“...”
항상 시시껄렁했던 모습과 다른 진중한 모습.
연오랑의 저런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터라 잠시 혼란이 일었다. 저렇게 진지하게 말하는 걸 보면, 정말로 목숨을 걸어야 할 테니까.
“한데 호장 나리.”
“뭔데?”
“빠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모두가 묻고 싶었던 걸까? 시선이 한 곳으로 몰린다.
“빠지면 너흰 원래 속하게 되는 부대로 갈 거다. 다만 말하고 싶은 건, 우린 전쟁터로 간다는 거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서 반드시 살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건 하늘만 아는 일이지. 반대로 나와 함께 하면 죽을 가능성은 높아지겠지만, 대신 얻는 것도 많을 거다.”
“...”
뒷말은 굳이 안 해도 안다. 얻는 거? 공훈을 세워 신분을 높이거나 혹은 관직에 오르는 것, 또는 막대한 전리품.
다들 서로 눈치를 보며 어쩔지 고민했고, 연오랑은 부담주지 않게 아예 멀리 떨어져 기다렸다.
이윽고 정리가 완료.
어째 연오랑이 빡세게 굴리는 동안 다들 교감이 있었던 모양? 오면서 자신들이 받은 훈련이 범상치 않은 걸 느끼고, 힘든 일에 뛰어들 거라는 의심을 하고 있었나 보다.
해서 빠지겠다고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거 우리 동네가 줄초상이 안 나려면 고생 좀 해야겠는데?”
무시무시한 농담을 내뱉자, 다들 순식간에 얼굴빛이 썩어 들어갔다. 딴 생각 하지 못하게 바로바로 할 일을 일러준다.
“지금부터 본관을 특전대장이라 칭한다. 알겠나?”
“옙! 특전대장님!”
얘들은 특전대장이 뭔 뜻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우렁차게 대답했다.
“지금부터 우리 별동대. 일명 특전대는 신병을 모집한다. 정군 말고 잡색군에서만 뽑는다. 자. 기본 조건이다! 왜구 놈들에게 뼈 속 깊이 원한이 있는 자다! 설사 내가 죽더라도 왜구를 한 놈이라도 더 죽이겠다는 각오가 된 사람을 찾아라.”
번외지만, 특전대 이름을 짓느라 머리가 깨질 뻔했다. 조선의 유학자가 어디 보통 사람인가. 트집 잡기의 대가다.
조선을 붙이면 “감히 어디서 나라 이름을 함부로 붙이냐!” 할거고. 지명을 따서 하동을 붙이면 “저. 저놈 사사로이 병사를 모집하니 역도입니다!” 라고 할 거다.
용이나 호랑이 같은 짐승을 붙이면 “용은 군주만 쓸 수 있는데 어디서 감히!” “호랑이는 산군이라 불리는 짐승의 왕인데 감히!” 이럴 거다.
숫자를 붙이자니 “수는 여러 개 있기 마련이니, 필시 사조직이 한둘이 아닐 것. 역도다!” 할 거다.
잡색을 붙이자니 “잡색군 모두를 사병화 했으니 역도다!” 할 거고, 대마도를 붙이자니 “좌,우,중군 주장이 엄연히 있는데, 어찌 군율을 흔드는 가. 역도다!” 할거다.
에라이 시부래. 그냥 안하고 만다. 그래서 그냥 특전대가 됐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
연오랑은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었다. 저 말은 이들 또한 목숨을 제대로 걸고 싸워야 한다는 뜻 아닌가.
놀라거나 말거나 연오랑은 말을 이어간다.
“또한 반드시 산을 잘 타야한다. 지금껏 너희가 해왔던 훈련을 생업으로 삼는 이들을 모집해라. 신분과 나이는 상관없다. 알지? 다만 어릴수록 좋다.”
“옙!”
“걱정 마시죠. 호장 나리.”
특히나 사대부출신 서생들을 보며 말했지만, 녀석들은 굶주린 늑대처럼 비릿하게 웃으며 답했다.
어이쿠야. 쟤들 잘 못 키웠다고, 부모들에게 욕먹는 게 아닐지 모르겠다.
“힘이 좋고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찾아라. 멀리 쏘는 것보다 속사를 할 줄 아는 게 더 중요하다. 사냥꾼 출신은 특히 우대한다.”
“옙!”
“방패나 창, 칼을 다룰 수 있는 이를 찾아라. 아마 얼마 없겠지만, 제대로 된 갑옷과 제대로 된 무기를 가진 이를 추리면 찾을 수 있을 거다. 특히나 칼을 쓰는 자라면 환도보다 장도나 대도를 든 이가 우선이다.”
“옙!”
“잊지 마라. 두 가지 기본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함께 갈수 없다.”
“넵!”
“끝으로, 배를 몰 수 있는 사람을 구해라. 이건 부수적이니까, 못 찾겠으면 힘들게 구할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그냥 끌고 오면 쉽지 않을 터, 확실하게 알려줘라. 우리가 얻은 건 우리가 가질 수 있다. 더 말 안 해도 뭔 말인지 알겠지?”
“...!?”
녀석들은 진짜냐고 묻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전리품은 원래 위에서 싹 걷어간 다음에, 조금씩 내려오거나 다 뺏긴다고. 하지만 연오랑은 그 전에 자신들이 먼저 챙길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거 벌써부터 슬쩍슬쩍 눈이 돌아가는 놈들이 보인다.
심지어 “대체 저 미친놈들이 뭐하는 건가?” 하고 구경하던 이들마저 웅성거리면서 눈이 돌아간다.
“인원은 총 삼백을 채울 거다. 제대로 데려오는 사람에겐 특식을 내주마.”
“오. 특식!”
에라이. 단순한 놈들. 진짜 훈련병이 다 됐다. 맛있는 것 준다니까, 초코파이를 본 훈련병마냥 눈이 돌아갔다.
“그럼 출발! 날이 새기 전에 전부 채워야 한다!”
“내가 먼저다!”
“가즈아!”
녀석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너는 저기서 구경하고 있는 병졸들 데리고 가서, 대장간에 가서 창하고 투창을 만들어라.”
어려울 거 같지만 하나도 안 어렵다. 이미 창촉등을 하동에서 미리 만들어서 가져왔으니까.
“제가 막 부려도 될까요?”
“너는 누가 봐도 무관처럼 보여. 인마. 지금부터 넌 특전부대장이다. 누가 뭐라고 하면 내 이름 대라.”
“옙!”
어지간한 무관보다 더 완벽하게 완전무장한 주제에, 뭔 앓는 소리인가.
“창 만드는 거 끝나면 기다렸다가, 무관이 오면 솜씨 좀 확인해봐.”
“흐흐. 그래도 될까요?”
근묵자흑이라고... 연오랑과 몇년 뒹굴고 살더니, 윤현도 물이 잘못 들었다. 어째 정식무관하고 한판 붙으라는데, 두려움은커녕 즐거워하고 있다.
“에휴... 너무 심하게는 하지 말고. 다치면 안 된다.”
“설마 제가 다치겠습니까?”
“너 말고 다른 무관. 색갸.”
연오랑은 윤현에게 딱밤을 먹이고선 휘적휘적 나아갔다.
큰일은 이제 다 끝났고, 개인적인 목적을 처리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