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챕터4. 모집하다 (2)
특전대가 군영을 헤집고 다니자 소란스러움이 밀려왔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연오랑은 전통마을 체험하는 사람 마냥 군영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며 구경했다.
으... 잠깐 가라앉았던 칼덕후의 본능이 또 뛰쳐나온다.
이건 어디서 났냐. 칼은 좀 쓰냐. 그 갑옷 정말로 쓸 만하냐. 등등. 그에게 지휘권을 준 장군들이 봤으면, 뒷목 잡힐 일을 골라서 하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잊지 않고 캐묻는다.
“거. 전라도 강진현에서 온 잡색군이 어디 있는지 아냐?”
“모르겠습죠. 나리.”
“너는?”
“저도 잘...”
이상한 옷을 입고 있긴 하지만, 딱 봐도 풍채 좋고 무기를 주렁주렁 매단 게 무관처럼 보이지 않나.
큰 칼을 품에 끼고 물어보는 꼴이, 대답을 안 하면 뽑아서 목을 칠 것 같은 위협을 느꼈다.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병사들은 그의 말에 순순히 답하기를 반복. 그렇게 캐묻고 다니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어째 알음알음 근처에 소문이 퍼졌는지, 웬 무관이 찾아와 군례를 올린다. 벌써 소식이 들어간 건지, 아니면 그냥 직감적으로 안 건지 모르겠다.
“...?”
“혹시... 전라도 강진현 출신을 찾고 계신지요?”
“오냐. 아냐?”
“예. 제가 그곳 출신입니다.”
무관은 재깍 답을 하고선 고개를 숙였다. 일이 쉽게 풀릴 거 같다. 무관이면 대충 동네사람들을 알 거 아닌가.
“오? 그래? 잡색군 총패가 누구지?”
“크흠. 접니다.”
“잘했네. 잘했어.”
뭘 잘했는지 모르지만 일단 칭찬부터 날린다.
생긴 건 무관이 더 나이 들어 보이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럼 혹시 자네 고을에 연전위. 아니지. 연소황이라는 사람이 살았나? 철을 기가 막히게 다룰 줄 아는 대장장이 일 텐데..?”
“음... 연소황은 모르겠으나 연전위는 압니다.”
무관은 안 그래도 강진현 잡색군을 왜 찾나 궁금했는데, 한방에 의문이 풀리자 오히려 놀란 눈을 했다.
지금은 15세기조선이다. 사람의 왕래가 그리 쉬운 시기가 아니니, 유명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옆 고을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생판 모르는 양반이 콕 집어서 찾아내니 놀랄 수밖에.
‘음? 연소황을 몰라? 뭐지?’
“연소황은 모르는데 연전위는 알아?”
“예. 그렇습니다만...?”
연오랑이 쌍수를 들고 만세를 외치자, 무관은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혹시 그 친구가 나만큼 크나?”
“음... 예. 덩치는 그 녀석이 조금 더...”
무관은 조심스럽게 그를 위아래로 살피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무관 자신보다 머리 하나 더 큰 연오랑 아닌가. 이 정도로 큰 사람은 드물기 마련. 기억 못하는 게 더 이상하다.
“잡색군에 속해서 여기 왔고?”
“예.”
“후...후... 침착하자. 침착해.”
혼잣말을 하며, 심호흡을 연거푸 이어가 심장을 진정시켰다. 아직 확실한 게 아니다. 눈으로 직접 봐야한다.
“일단 앞장서. 가면서 그 친구 사정을 들어보지.”
연오랑은 빨리 안 말하면 쳐버리겠다는 듯, 칼자루를 툭툭 때리며 무관을 압박했다.
“그. 그게 말입니다...”
빠르게 걸으면서 무관이 말하길.
연전위는 얼마 전에 황해도에서 강진으로 온 사람으로, 철 다루는 솜씨가 좋아 관노가 아니면서도 관의 의뢰를 받아 이것저것 물건을 만들었다고 한다.
천한 직종에 속했지만 함부로 대하지 못했는데, 일단 덩치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흉학하기 짝이 없는 도끼를 만든다고 나랏일마저 팽개쳤단다.
현감마저도, “저 자식. 실력이 좋아서 그냥 내버려뒀는데, 저거 사고치는 거 아냐? 말려야 되지 않아?”라고 고심했단다.
실제로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강진현에 왜구가 쳐들어왔을 때, 직접 만든 우악스러운 도끼로 왜구를 때려잡았다고 했다. 흡사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되는 것 마냥.
그리고 대마도 원정정벌이 시작되자, 녀석은 머뭇거리지 않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쓰벌! 황해도에 있다가 강진으로 왔어? 그러니까 못 찾았지.’
연오랑은 놀람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며,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그가 대마도에 온 개인적인 목적이 있다고 했지? 그건 연전위를 만나기 위해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혹시 정말로 여기에 연전위가 있을까?’하고 찾아온 거다.
연전위가 대체 누구냐고? 바로 21세기의 그가 모드mod로 창작한 전설장수 중 한명이다.
21세기의 그는 미디블워 오리지널 스토리에 자신이 만든 스토리모드를 덧붙였다.
없던 시나리오를 추가하고, 원래 있던 이벤트를 수정해 내용을 변경, 추가했다.
최강의 전설장수 연오랑을 추가하고, 그를 받쳐 줄 전설장수도 추가했다.
21세기 그가 만든 모드는 나름 국뽕모드 아니냐. 당연히 한반도 역사에 이름 남긴 인물을 쓰려했는데... 무리였다.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장수들은 모두 실존인물의 이름을 쓰고 있다. 혹시나 이름이 겹치면 무슨 버그가 날지 몰랐다. 나중에 버그를 알아내도, 어디서 부터 수정해야할지 감도 안 잡힌다.
해서 “뭘 쓰지?”하고 고민했는데... 역사 지식이 짧은 그가 떠올릴 만한 이름이 얼마나 되겠냐.
전위.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지? 그는 삼국지 밖에 안 떠올랐다.
게임 미디블워에서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은 원래 존재하는 시나리오 이벤트다.
유저가 이종무의 원정군을 조종하는 것. 당연히 박실의 실책도 나오고, 유저는 박실의 부대를 조종해서 매복한 왜구를 막아야 한다.
하지만 모드를 통해 이 이벤트를 수정했다.
그는 이종무의 원정군에 연오랑의 부대를 끼워 넣었다. 반대로 연전위는 박실의 부대에 끼워 넣었고.
그래서 AI가 조종하는 박실의 부대가 매복에 걸리면! 연전위가 박실의 부대가 후퇴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홀로 왜구를 막게 된다.
이 때 유저가 조종하는 연오랑의 지원군이 등장.
이 미션의 성공조건은 첫 번째가 연전위의 생존. 두 번째가 박실의 안전한 퇴각이다.
이렇게 연전위를 구해주면, 연전위가 연오랑의 부대에 합류하도록 설계해 놨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흘러가게 놔둘 순 없고, 굳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지 않나?
연전위가 존재하는 걸 알았으면 미리 가서 포섭해야지, 뭐 하러 죽을 자리에 내버려둔단 말인가. 하여 이렇게 애타게 연전위를 찾고 있던 거다.
연오랑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무관을 끌고 나아갔다. 길도 모르면서 마구 끌고 가자, 무관은 마지못해 앞장섰다.
이윽고 도착한 곳. 지금껏 봐온 풍경과 별반 다를 건 없다.
몇몇은 대충 누워서 처자고 있고, 또 몇몇은 알아서 장비 점검을 하고 있고, 몇몇은 투호와 주사위 노름을 하며 내기를 걸고 있었다.
전형적인 중세군대의 모습.
이건 조선이고 중국이고 일본이고, 저 멀리 서양이고 다 똑같을 거다. 아마 21세기의 예비군도 풀어 놓으면 이러고 있을 걸?
하지만 역시 전설장수는 달라야지. 군계일학이 따로 없다.
저기 한쪽 구석. 남들이야 놀든 말든 혼자서 쌍도끼를 휘두르고 있는 거한이 보였다.
‘확실하군.’
다시금 확신한다. 조선군에 저런 우악스런 쌍도끼를 쓰는 인간이 어디 있냐.
저건 “게임캐릭터 연전위.”의 주무기가 쌍칼이라서 그런 거다. 지 딴에는 아마도 운명적인 끌림을 느꼈겠지. 다른 이유가 있던가.
“흠...”
열심히 하긴 하나 그의 매서운 눈을 피할 수 없다.
‘확실히 미숙해. 내가 없었다면 딱 15세기조선 무관 수준이겠군.’
다시금 이게 게임이 아니란 걸 확인한다.
게임이었다면 이미 스텟을 만땅 찍고, 전설장수다운 능력치를 보여줬어야 한다. 하지만 배경설정이 녹아든 현실은 다르다.
녀석은 칼질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옛 기억을 더듬으며 혼자서 연습한 티가 역력했다.
저대로 계속 크면? 물론 용장 소리는 듣겠지. 타고난 신체조건이 있으니까.
다만 15세기의 많은 무관들처럼, 그저 자신만의 경험을 축척해 싸우는 칼잡이가 될 거다.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은 묘하고 놀란 눈을 하고 바라봤다. 물론 그것도 잠시. 옆에 있는 총패를 보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녀석의 생각이 뻔히 읽힌다.
자신 만큼 키가 큰 사람은 처음 봤을 거고, 요상한 호피장옷을 보며 놀랐을 테고, 마지막으로 정련된 무기를 보며 당황했을 거다.
“녀석. 얼른 오거라.”
“예. 총패나리.”
“이 녀석이 연전위입니다. 나리.”
총패는 지 자식이라도 되는 양 자랑하듯 말했고, 연오랑은 속을 숨기지 않고 환하게 웃었다.
“네 아버지가 연소황 맞냐? 연오진 장군 밑에서 있었고, 경상도 하동현의 연씨 가문에서 철 다루는 방법을 배웠을 텐데?”
“어... 설마!?”
녀석은 그의 정체를 알아차린 걸까? 당황해서 예의도 잊어버리고 그저 입만 벙긋거렸다.
“하하! 드디어 찾았구나!”
연오랑은 땀에 쩐 연전위를 거칠게 껴안고 소리쳤다.
‘진짜다. 진짜야. 드디어 찾았다. 내 새끼!’
녀석은 연오랑이 자신을 알아준 게 기쁘기라도 한 걸까?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비록 주변에 있던 다른 이들은 ‘대낮에 저게 뭔 짓거리야?’ 하고 바라봤지만.
얼른 그늘가로 자리를 옮겨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녀석이 그를 아는 이유는 단순하다. 21세기 그가 모드를 만들 때, 이렇게 설정해놔서 그렇다.
연소황은 연오랑의 아버지 연오진의 부하였고, 칼질과 철 다루는 기술을 배웠다. 그러다 어느 처자와 눈이 맞아 결혼했고, 연전위를 낳고나서 부인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연오진은 고생하지 말라고, 망설임 없이 거금을 주며 떠나보냈고.
연소황 입장에선 은인도 이런 은인이 없는 법.
애초에 연소황이 연씨가 된 까닭이 뭔가. 연오진이 연씨를 하사해줘서 그렇다. 이 시대에는 정말 엄청난 은혜를 베푼 거지.
하여 틈만 나면 연소황은 연전위에게 이런저런 썰을 풀었다. 자기가 예전에 북변에서 근무했을 때 이야기, 하동현에서 있었던 이야기 등등.
그리고 마지막엔 항상. 연씨 가문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공경하고 은혜를 갚으라고 신신당부했다.
이게 연전위의 배경설정 마지막이다. 애초에 유대감이 생성되게 만들어졌단 말씀.
생각할수록 천만다행이다.
만약 이런 설정 없이 딸랑 전설장수 캐릭터만 만들어서 놨으면, 포섭하는 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디블워 유저들은 살펴보지도 않는 인물설정. 그 쓸데없는 디테일을 살린다고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는가.
그 보상을 이렇게 받는다.
연씨 케릭터들이 줄줄이 늘어서는 게 멋있어서 연씨로 통일하고 배경설정을 덧붙인 게, 그야말로 신의 한수가 됐다.
하여튼. 지금껏 말로만 듣던 그 연씨를 만났으니 녀석이 놀랄 수밖에.
“그런데 어째서 황해도에서 강진까지 오게 된 거냐?”
“그게...”
연전위는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는 게 서글픈지, 표정이 일그러져서 조근조근 이야기를 풀었다.
본래 연전위는 연소황과 함께 황해도 해주에서 잘 살고 있었는데, 왜구의 공격을 받아 자기만 살아남았다고 했다.
복수심에 불타던 연전위는 이름 모를 승려에게 무술을 배우면서 떠돌게 되었다고 했다. 그게 고작 일년 남짓.
둘은 이리저리 떠돌며 탁발생활을 하다가 강진에 도착했는데, 승려는 화척과 싸우다가 입은 부상으로 결국 죽었고, 연전위만 남아 강진에 정착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