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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18화 (18/538)

18. 챕터5. 설파하다 (1)

“일격필살. 일격필살.”

“안되면 일격필상.”

“너희도 잊지 마라. 사람 몸은 도끼날에 맞든, 식칼에 맞든, 장도에 맞든, 뭐에 맞든, 맞으면 무조건 잘리고 찢어진다. 그 어떤 예외도 없다. 상처를 크게 낸다고 해서, 사람이 두 번 죽냐?”

“...”

“어차피 제대로 한칼만 먹이면, 죽이진 못하더라도 전투불능으로 만들 수 있다. 또 전쟁터에서는 굳이 즉사시킬 필요가 없다는 거지. 내버려두면 알아서 죽으니까.”

“예.”

“자. 따라 해라. 하나. 둘. 셋. 넷.”

연오랑은 연전위에게 자신이 방금 시연한 칼리의 기본 기술을 가르쳤다.

21세기의 그는 직접 칼리를 익혔고, 그래서 그걸 생각하며 혼자 실실 웃으며 “연전위캐릭터”를 만들었다.

흡사 연전위캐릭터를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게 현실이 된 거니, 연오랑이 신이 날 수밖에.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아는 제자 아닌가. 그런 제자에게 훌륭한 선생이 붙으니 실력이 늘 수밖에 없다.

또한 몸의 균형을 다시 잡아주기 위해서 신기한 운동을 알려줬다.

뭐냐고? 인디언 클럽이다. 연오랑 양손수련법이라 명명했다.

인디언 클럽을 할 땐, 몽둥이 대신 일부러 칼을 들고 시켰다. 중량을 줄이려는 의도도 있고, 새 칼에 빨리 익숙해지라는 이유다.

인디언 클럽의 흐름과 칼리의 흐름이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그가 조합해서 만든 새로운 투로를 알려줬다.

녀석은 지금 너무 둔중하다. 커팅하듯 최대한 근육과 살을 빼내는 게 낫다. 하여 일부러 적당히 굶기고, 죽도록 굴렸다.

지금이 근육돼지라면 연오랑처럼 균형 잡힌 홀쭉이로 만들어 버릴 기세다.

나중 일이지만, 얼마나 빡세게 굴렸는지 하루하루 덩치가 줄어가는 게 보일 정도였다.

거기에 하나 더. 녀석은 본래 말을 탈 줄 알았는데, 편곤 다루는 법을 몰라 윤현에게 따로 배워야 했다. 그런데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익혀가니, 윤현은 또 다시 울상을 짓고 말았다.

윤현에게 괜히 미안해지지만 어쩔 수 없다. 전설장수잖아.

또 무관들이 인디언클럽을 신기해하자, 그가 제대로 된 수련법과 주의사항을 알려준 건 당연한 일이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출정 날은 점점 다가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특전대는 “배에 타라!”라는 말이 떨어지기 전까지 계속 산에서 굴렀다.

특히나 연오랑 보병군화2호 2백 켤레를 뿌린 후에, “주인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실력 순으로 이걸 빌려주겠다!” 라고 하니 다들 눈에 불을 켜고 굴렀다.

높으신 관리나 무관이 신을 법한 목화 아닌가.

오히려 그것보다 더 좋아 보이는 물건이라, 눈이 뒤집혔다. “준다.”가 아니라 “빌려준다.”는 건 까먹고서 말이다.

이러니 소문이 안날 수가 있나.

훈련을 시작한지 닷새쯤 지났을까? 드디어 사람이 찾아왔다.

아무리 무사안일이 몸에 박힌 조선무관이라고 해도, 이 난리통이면 한번쯤 찾아오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뭔 짓을 하나 궁금해서라도 구경 오겠다.

하여 ‘언제 올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야 왔다.

사실 그전에 슬쩍 몰래 보고 간 걸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른 척 해줬고.

저 멀리서 무관 몇이 오는 게 보이긴 하는데... 미안하지만 봐도 모르겠다. 첫날 회의실에 들린 이후로, 한 번도 간적이 없는데 어찌 아냐.

항상 들고 다니는 장도를 품에 끼고 기다리고 있자, 미친 듯이 편곤을 휘두르던 무관이 후다닥 달려와 일러왔다.

팔을 훤히 드러내고, 포대기에 구멍을 뚫어 뒤집어 쓴 것 같은 괴상한 옷.

21세기 브이넥반팔티셔츠를 입고 있건만, 무관은 이거 말고도 괴상한 꼴을 하도 많이 봐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뭐냐.”

“삼군 도절제사, 우군 절제사, 좌군 병마사 어른이 오십니다.”

“직급으로 말하면 내가 알아듣냐? 엉? 난 이종무 어른하고 유습 어른밖에 몰라. 이 자식아. 이름으로 말해. 뒤지기 싫으면.”

그는 그래도 자신을 먼저 알아봐준 두 장군의 얼굴은 기억하고 있다. 이거면 됐지. 뭐.

예의 따위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도 없지만... 이미 무자비한 갈굼과 굴림, 섬뜩한 칼솜씨, 패도霸道 그 자체인 카리스마로 무관들을 휘어잡았다.

무관은 이미 연오랑에 푹 빠져서, 나쁜 물이 잔뜩 배었단 말씀. 아니나 다를까 그는 슬쩍 곁눈질로 살피곤 냉큼 답했다.

“최윤덕, 이순몽, 박홍신 어른입니다.”

이놈도 이제 슬슬 예의범절을 잊어버리고 있다.

“오냐. 근데 보니까, 너 자꾸 어깨에 힘주더라?”

잠깐이지만 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지.

지적을 당하자 무관은 자세를 바로 했다.

역시 굴린 보람이 있다. 말을 탄 상태에서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편곤을 옆구리에 붙이고 마상차렷자세를 취했다.

“마상편곤은 왜구 뚝배기를 깨기 위해서 본인이 친히 만든 무기다. 알지?”

“예.”

무관들은 모두 세뇌가 되어, 이제 앞으로 마상편곤을 연오랑 뚝배기 학살자라 부르게 될 것이다.

“내가 뭐라고 했냐. 어깨와 허리를 팍팍 돌리는 거 아니라고 했지? 힘으로 휘두르는 게 아니라고. 중요한 건 뭐다?”

“박자와 흐름, 속도입니다.”

“그렇지. 말의 속도에 마상편곤을 더하는 거지. 왼손은 거들뿐. 몰라? 네 힘으로 치는 게 아니라 말의 속도로 치는 거다. 흐름을 타라고 흐름을. 안면에 맞으면 네가 세게 치든, 약하게 치든 뚝배기는 깨져. 더 세게 치고 싶으면 차라리 더 빨리 달려. 알겠냐?”

“알겠습니다!”

“가볍게, 가볍게 휘둘러라. 이렇게.”

그는 어느 틈에 장도를 빼서 풀잎 자르듯, 샥샥 옆으로 쳐댔다. 은빛물결이 파도치듯 흘러갔다.

무관은 그 모습을 잠시 넋을 잃고 바라봤다.

연오랑이 반쯤 정신 나간 미친놈인 건 익히 알지만, 그럼에도 저 칼솜씨 하나만큼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다.

“가봐.”

“넵!”

높으신 분들이 점점 다가오자, 무관은 얼른 자리를 비켜줬다.

‘흐음. 역시 이름값을 한다. 이거지?’

그는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는 이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21세기 역사시간에 잠깐씩 배우지 않던가. 세종의 4군6진 개척. 그때 활약했던 양반 중에 최윤덕, 이순몽이 있다.

이 원정을 계기로 세종라인을 타고 앞으로도 쑥쑥 큰다 이거지.

사서에 따르면 최윤덕은 원칙주의자 모범생 타입? 신중하고 탄탄한 전술을 좋아했다.

이순몽은 최윤덕과 정반대. 21세기로 말하면 나쁜 남자 스타일? 여자, 술 좋아하고 사고치고. 뭐 그런 거 있잖냐.

다만 전세와 맥을 읽는 능력이 탁월해서, 빈틈이 보이면 사정없이 몰아치는 돌격전술에 능했다.

어찌됐건 둘 다 세종의 아이돌로 훗날 에이스가 된다.

박홍신은 조금 무게감이 떨어진다. 21세기에는 아마 아는 사람도 몇 없을 걸?

사서에는 물길에 능하고, 수전에 능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마도 정벌에 참가했는데, 박실이 패배할 때 죽었다고만 알려져 있다.

아마 연오랑이 선봉을 맡게 될 특전대를 태워 주지 않을까? 그래서 보러 온 거고 말이다.

이벤트모드를 만들면서 공부한 보람이 있다. 어찌됐건 중,좌,우군에서 한 사람씩 왔다. 꼭 짜고 온 것처럼 보이네?

‘박홍신이라. 그래도 날 보러왔으니... 기특하니까 살려는 드릴께.’

박홍신이 들었으면 싸대기를 후렸을 생각을 하며, 연오랑은 실실 웃었다.

허나 말은 건방지지만 뜻은 올바르다. 그는 박실의 삽질을 아예 막아버릴 생각이니까. 그러니 박홍신도 죽을 일은 없을지 않을까? 아마도...?

“오셨습니까.”

서로 얼굴이 보일 거리가 되자, 연오랑은 냉큼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조선시대 관직은 이름도 길고, 품계도 복잡해서 외우기가 지랄맞다. 그래서 그냥 말을 안했다. 대충 알아듣겠지.

“자네...”

“쯧쯧.”

사서에 나온 성격이 맞는 모양? 꼬락서니를 보고 혀를 차기 무섭게, 직설적인 이순몽이 한소리 했다.

“사대부가 옷차림새가 그게 뭔가. 공신 자제로서 모범을 보여야지.”

“연오랑 하계군복이라 합니다. 나라를 지키는 무관은 항상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옷은 소매가 없어 움직임에 거리낌이 없고, 고름이 없어 빠르게 입을 수 있고, 격한 움직임에도 옷이 벗겨지지 않고, 품이 좁아 장애물에 걸리지 않아, 매우 유용합니다.”

21세기의 반팔티셔츠는 없다. 이제부터 연오랑 하계군복이다.

그가 한 점 망설임 없이 조목조목 집어가니, 이순몽은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 며칠 되지 않았지만, 연오랑이 미친놈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으니까.

공자왈 맹자왈 해봐야, 죽은 공자, 맹자의 뚝배기도 깨버릴 놈이다.

다들 대충 넘어가고 훈련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열심히 하는 군.”

“거. 신기하긴 하군.”

최윤덕과 이순몽이 각자 감상을 늘어놨다. 둘의 계급이 높아서 일까? 박홍신은 그냥 눈인사만 받아주고 얌전히 있었다.

나름 무관 생활을 오래했지만, 이런 훈련방식은 처음 봤을 게 분명. 그래서 그런지, 이것저것 쉬지 않고 물어봤다.

왜 쟤들은 옷을 벗고 있지? 땀이 너무 나니 알아서 벗었습니다.

양반도 같이 저러고 있군? 양반도 칼 맞으면 뒤집니다. 뒤지기 싫으면 굴러야죠.

저 이상한 몸동작은 뭔가? 연오랑 몸풀기운동입니다.

21세기 한국군의 도수체조는 없다. 이제부터 연오랑 몸풀기운동이다.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가 땅에 엎드리는 저건 뭔가? 연오랑 체력단련법입니다.

서킷트레이닝도 없다. 이제부터는 연오랑 체력단련법이다.

이 훈련장은 참으로 신기하군? 연오랑 산악유격훈련장입니다.

저 처음 보는 무기는 뭐지? 왜구 뚝배기 학살자 연오랑 마상편곤입니다.

저 덩치 큰 친구는 특이한 칼을 쓰는 군? 연오랑 쌍검법입니다.

미안하다 필리핀. 고유무술인 칼리는 조선에서 연오랑 쌍검법으로 알려지게 될 거다.

무관이 특이한 신발을 신고 있군? 연오랑 기병군화입니다.

웨스턴부츠도 이제 없다. 앞으로 연오랑 기병군화라 불러다오.

가져온 기병군화는 윤현과 연전위, 무관들이 챙겼다.

둘은 그냥 준거고, 무관에게는 할부로 팔았다. 한번 신어보더니 자기도 달라고 떼를 쓰니 별수 있나.

위로 말린 앞코는 등자에 발을 쉽게 넣을 수 있게 도와주고, 굽 높은 뒤꿈치의 홈은 등자에 딱 걸쳐서 고정해주고, 박차를 이용하면 조종이 쉬워진다. 자신들이 쓰던 목화 따위와 비교하면 섭섭하지.

이 좋은 걸 안 쓸 리가 있나. 다만 비싼 물건이라, 나중에 전리품으로 갚기로 했다.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저렇게 계속 훈련하면 지치지 않나? 배불리 먹이면 됩니다. 저흰 3끼를 먹고 새벽에 야식 먹고 잡니다.

“허?”

“헙!”

무지하게 처먹는다는 말에, 셋은 물론이고, 뒤에서 같이 온 무관들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무 잘 먹이는 것도 있고, 자신들이 알기론 군량을 그렇게 많이 받아가지 않았으니까.

연오랑은 “원정을 반드시 성공해야 하니, 제 돈으로 먹이고 있습니다. 왜구에게서 돌려받을 생각입니다.” 라고 미리 답했다.

‘왜구를 뜯어먹으려 하다니... 지독한 놈.’ ‘사재를 털 정도로 조정에 충성하는 건가?’ ‘굳이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나? 대체 왜?’ ‘조상이 왜구와 원수라도 졌나? 내가 알기로는 아닐 텐데?’

그의 대답에, 다들 온갖 잡념이 동시에 맴돌았다.

“한데... 전부 연오랑이군? 자네 이름 아닌가.”

최윤덕이 히죽 웃으며 묻자, 연오랑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하는 게 맞다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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