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19화 (19/538)

19. 챕터5. 설파하다 (2)

“연씨 집안의 비기를 이렇게 막 전수해도 되는 건가?”

“나라에 보탬이 된다면 뭐가 아쉽겠습니까. 조선군이 강해지면 나쁠 게 없지 않겠습니까? 필요하다면 군軍 서기를 보내셔도 됩니다. 제가 완벽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거. 괜히 미안해지는구만 그래.”

최윤덕은 자기가 생각해도 민망한지 너털웃음을 흘렸다.

미안하면 돈이라도 주든가.

그래도 안 배우겠다는 말은 안 하고 있다.

‘호오? 이것 봐라?’

연오랑은 최윤덕의 반응에 뭔가 촉이 왔다.

이 양반들. 생각보다 관심이 너무 많다. 그냥 구경하고 시찰하러 온 게 아닌 느낌이다. 뭔가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연오랑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알아차린 걸까? 최윤덕은 괜히 화제를 돌려 다른 걸 물었다.

“그나저나 신기한 훈련이군. 정군도 이보다 못할 걸세. 특전대라 했나? 저들이 정녕 잡색군이 맞는가?”

“예.”

“허허.”

최윤덕은 자신의 상상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허탈한 웃음만 흘렸다.

대충 봐도 정군과 비교하기 힘들다. 비교하려면 갑사를 데려와야 하는데, 갑사는 이미 무관이다.

대충 21세기로 비유하면 병사가 장교급 실력을 가지고 있는 거다.

바톤터치. 이순몽 등장.

그는 괄괄한 목소리로 살짝 공격적으로 물었다.

“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대병을 이끄는 데 어울리는 훈련이 아닌 듯하네. 진법훈련은 따로 하지 않는 건가?”

“정확히 보셨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사졸의 훈련법이라기 보다는 보다 강력하고 특별한 정예병을 양성하기 위한 훈련법입니다.”

당연하지. 21세기의 특전사훈련법을 조선판으로 마개조 한 건데.

“지금 하는 건 단순히 체력과 군율, 체계, 군기를 익히기 위한 기초훈련일 뿐이고, 이후에는 단병기술과 기사騎射, 마상무술, 추적술, 독도술, 매복술, 생존술등을 따로 익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대군에 속해 움직이는 진법훈련을 해야겠지요.”

“허...?”

“이게 고작 기초훈련이라...”

둘은 지금껏 상상도 해보지 않은 말에, 그저 놀라움에 사로잡혔다.

그들이 지금껏 숱하게 봐온 병졸이라는 존재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

“너무 과한 거 아닌가? 내금위內禁衛도 그 정도는 못 될 걸세.”

“내금위가 약하다고 생각해 보신 적은 없으신 겁니까?”

연오랑은 최윤덕을 향해 도발적인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고작 그 정도 밖에 안 되는데, 뭔 왕을 지키는 호위냐.’ 라고 말하는 듯 했다.

하지만... 사실 내금위를 단순히 무력만 보고 뽑을 수는 없다. 왕을 최일선에서 보호하는 존재인데, 그 검열이 오죽하겠나.

정치적인 문제도 같이 엮여 있어서 보통은 공신자제나 믿을 만한 이들로 골라 뽑았다.

하지만 뭐가 어찌됐건, 조선 최강인 내금위를 연오랑은 가볍게 뭉개고 있다.

자신의 훈련법을 따르면 누구나 내금위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시지요. 내금위가 지금 보시는 훈련을 매일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닐 텐데요.”

당연히 아니지. 제대로 못 먹고 못 쉰 상태에서, 이걸 매일하면 뼛골 삭아 죽는다.

다만 이들은 그걸 모를 뿐이다.

“...”

“...”

잠시 어색한 눈싸움이 벌어졌지만, 오히려 눈을 피하고 한숨을 쉰 건 최윤덕이었다.

몰래 와서 몇 번 구경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때 최윤덕은 연오랑의 실력과 특전대가 구르는 걸 슬쩍 봤다. 그러니 연오랑의 말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만약 자네 뜻대로 한다면, 정병을 만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나?”

“일년동안 쉬지 않고 훈련한다면, 내금위는 뛰어 넘을 겁니다.”

“크흠... 지금처럼 하루 3끼. 아니 4끼씩 먹으면서 말인가?”

“예. 그리고. 보다 질 좋은 무구와 소모품을 지급해야 할 겁니다.”

“허허.”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최윤덕은 헛웃음을 지으며 속마음을 표현했다.

이때 지원군 등장. 조용히 있던 박홍신이 입을 열었다.

“음. 다 좋으나, 사졸들을 너무 과하게 대하는 건 아닌지...?”

허허. 이 양반. 살려줄려고 했더니 꼰대나 할법한 소리를 하고 있네?

“대가 없는 충성은 없는 법입니다.”

“...!”

“...!”

꽤나 도발적인 말에 셋 모두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오랑은 계속 입을 놀렸다. 쭉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들 또한 뭔가 해보려는 눈치 같다.

그러니까 관직조차 임시직인, 까마득하게 어린 녀석에게 이것저것 계속 캐묻지.

어쩌면 우리의 그레이트 킹갓 세종느님하고 벌써부터 뭔가 연결고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리 생각하며 겁 없이 덤벼들었다.

자. 한방 먹어봐라. 니들 머릿속을 살벌하게 흔들어주마.

'과연 어디까지 봐줄까나? 시험해 볼까?'

“소인 배움이 짧아 학문에 빗대어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하나 상리에 비춰 생각해 볼 때. 무슨 수로 백성들이 이 힘든 훈련을 하게 만드실 겁니까? 그저 마소 부리듯 부리실 생각이십니까? 그게 효과가 없다는 걸 저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수도 없이 군졸을 부려본 장군들이 모를 리가 있나.

양반출신이건 양민출신이건, 군졸은 그저 억지로 끌려나와 시간만 때우다 가는 이들이다. 목숨이 걸리면 그때서야 죽기 살기로 움직이고.

“후... 네 뜻은 알겠으나, 조심해야 할 것이다. 무서운 말이다. 전조前朝가 어찌 망했는지 모르느냐?”

잠시 고민하던 최윤덕은 자못 훈계하듯 꾸짖었다.

나름 머리가 돌아가는 이답게, 연오랑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체제. “나라에서 대가를 충분히 주는 전문무관을 양성하라.”라는 속뜻을 알아차린 거다.

그래서 그 답변으로, 고려가 무신정권 때문에 망했다는 걸 다시금 강조한 거고.

원래 역사에서도 이랬다.

고려가 멸망한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조선은 그중 하나가 무신정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이성계와 이방원 모두 칼로 집권했고.

그래서 무관이 권력을 잡는 걸 극도로 두려워할 수밖에. 일반 군병과 전문무관은 느낌이 다르다.

하지만 연오랑은 다시금 돌멩이를 던져 파문을 일으켰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그러니 군을 전하와 조정대신이 움직여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허나 그 실무에 있어서는 무관이 담당하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지금껏 왜구와 여진야인이 침범했을 때 수령이 제대로 된 대응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습니까. 군 인사人事는 문관이 하더라도 책임자와 실무자는 무관이 담당하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

“무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무관은 나라를 지키는 일만 하면 족할 뿐. 어째서 수령이 되어 행정을 담당하고 판서를 담당합니까? 무관은 군 운영에 필요한 전투, 보급, 군행정만 하면 족하지 않겠습니까?”

보다 더 깊은 의문과 제안을 던진다.

단순히 정예군을 육성하고 유지하는 문제를 넘어서서, 군 조직체계에 관한 문제를 건드린다.

지금처럼 문무관이 혼재되어 임명되는 행태를 꼬집었다.

물론 이들이 이걸 모를까? 안다.

하지만 이걸 하려면 결국엔 군권을 힘에 얻은 누군가가 등장한다. 일이 잘못 풀리면 결국 군벌이 만들어지고, 그게 반란군으로 이어지면?

원래 역사에서도 이 문제는 끊임없이 조선의 발목을 잡는다. 아니다. 조선이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가 다 마찬가지다.

하여 한놈에게 몰아서 열심히 군력을 키우면, 온 사방에서 태클이 들어와 흔들어댄다. 그 대단했던 이순신장군도 똑같은 일을 겪었잖아?

이건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과 체제의 문제다. 애초에 누구 한사람에게 막강한 군력을 몰아주는 것자체가 비상식적인 일이지.

그렇다고 상비군 비스무리하게 키운 군대를 왕이 쥐고 흔들어? 조정신료들이 그 꼴을 잘도 가만 놔두겠다.

이러니 상비군과 군제개혁은 쉽게 건드릴 수가 없는 문제다.

연오랑은 그걸 언급했다.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발작할까? 아니면 고민할까?

자. 프로듀서 세종의 아이돌그룹아. 너와 세종의 연결고리가 이어져 있느냐? 대답해봐라.

“자네... 너무 나갔군.”

“송구합니다.”

“쯧. 됐네.”

슬쩍 노려보는 이순몽을 보며, 연오랑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몰래 미소를 숨겼다.

‘역시 이 자식들... 나름 조선의 앞날에 대해서 고민이 많구만.’

꼰대 십선비라면 벌써 “아니. 이놈이! 어디서 그런 망령된 말을!”이러면서 역정을 냈을 거다. 하지만 별말 안한다? 자기들도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던 거지.

왜냐고? 원래 역사하고 지금 상황이 너무 달라져서다.

운석핵꿀밤 사건 이후로, 조선을 둘러싼 정세가 너무나도 혼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조선 내부적으로도 이런저런 이유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고.

원래 역사대로. 아주 좋은 기회를 잡았고 태종의 강한 의지가 없었다면, 이 원정도 불가능했을 거다.

“정병을 키우는 이야기를 다시 해보지. 아까 말한 방도 외에 다른 방도는 없겠나?”

“예. 없습니다.”

있겠냐? 있었으면 그가 이미 다 알아서 했다.

너무나도 단호한 대답이라서 그럴까? 모두는 다시금 합죽이가 되어 입을 다물었다.

“사졸을 동원하는 건 그렇다 쳐도, 무슨 수로 이 많은 무구와 장비와 보수, 군량을 감당하실 겁니까? 토지가 있고 노비가 있는 사족이야 버텨낼 수 있다지만, 일반 백성은 재산의 절반 이상을 털어내야 가능 할 겁니다. 백성과 지방사족이 이를 쉽게 용납하겠습니까?”

미쳤다고 허락할까. 나라에서 군대 키우겠다고 세금을 왕창 물리겠다고 하면, 당장 난리법석을 피우며 지부상소를 하겠다고 뛰쳐나올 거다.

“끄음.”

“후...”

또 다시 아픈 곳을 찌르자, 다들 할 말이 없어졌다.

조선이 거지인 걸 누가 모르나?

전국토의 농장화를 꿈꾸며 농본을 중시하는 조선이고, 작은정부 비스무리한 걸 추구하는 조선이다.

나라가 모든 걸 꽉 쥐고 흔들기보다는, 반란과 반역만 일어나지 않게 잡고서 나머진 느슨하게 풀어준 형태.

세금 걷는 대신 몸으로 대충 때운다.

봉급 아끼려고 관리의 숫자를 안 늘리고, 한사람이 온갖 겸직을 다하는 게 조선 아닌가.

아무리 청렴결백한 관리라도, 일에 치여 뒤지거나 아니면 “에라이 답도 안 나오는 거, 나도 모르겠다!”하고 대충 넘어가는 게 실태다.

한데 나라에서 세금을 적게 걷으면 뭐하나.

지방사족과 중간관리가 빼먹어서, 결과적으론 백성입장에선 매 한가지인데 말이다.

다만 아전, 향리 같은 중간관리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라에서 돈을 안 주는데 뭘 먹고 사나.

몰랐지? 얘들 무보수로 일하는 중이다. 중간에서 콩고물이라도 뜯어야 그걸 봉급삼아서 먹고 살지. 물론 악용하는 놈이 있어서 문제가 커지지만.

지방사족도 사정은 비슷하다.

농업생산량이라는 게 드라마틱하게 상승하고 하락하는 게 아니지 않나.

매년 거기서 거기의 수익이 나올 뿐인데... 유산을 상속받을 자식들은 계속 늘어나고, 나라에 뭔 일만 있다하면 ‘양반 집안이 거참 아무것도 안 하는구만?’이러면서 눈치 줘서 돈이 세나간다.

자연재해라도 덮치면 집안이 휘청거린다.

자기 집안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뭔가 자꾸 바뀌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재산을 불리기 위해 뭔가 새로운 시도을 한다? 그건 시도가 아니라 도박이다.

자신의 모든 걸 걸고서 도박할 배짱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그러니 항상 제자리 걸음이다.

결국 계속 돌고 도는 문제다. 나라를 쥐고 흔드는 건 결국 돈.

조세체계를 건들지 않고서는 연오랑이 말한 걸 꿈도 꿀 수 없다. 그게 아니면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든가.

이런 재정적인 문제에, 조선의 기조인 성리학적인 기풍까지 더해지면... 아우. 변화와 개혁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모두는 연오랑이 돌려 말한 말의 속뜻을 이해하고서,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뭐라고 한소리 해주고 싶긴 한데... 하는 꼬락서니를 봐선 유학의 도리를 들먹여봐야 씨도 안 먹힐 걸 안다. 할 말이 없다.

“...”

“흐음...”

“크음.”

조용히 있던 박홍신마저도 신음을 흘리고선, 잠시 침묵이 자리했다.

처음에는 전문무관, 다음은 군조직체제의 문제, 그 다음은 조세문제.

정병을 키우려면 나라의 근본을 바꿔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쉽게 입이 떨어질 리가 있나.

괜히 벌집을 잘 못 건드려서, 한방 맞은 기분이다.

한참을 그리 고민하다가... 다시 이순몽 타임.

한소리 들어서 기분이 언짢은지, 꼬투리 잡듯 쏘아낸다.

“흐음... 자네 말을 잘 들었네. 그건 그렇고. 훈련을 시작한지 고작 닷새밖에 지나지 않았나? 이제 곧 출정인데, 당장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군? 아. 물론 훈련이 쓸모없다는 말은 아닐세.”

“맞는 말씀이십니다.”

“...?”

그가 순순히 답하자, ‘그럼 이 짓거리를 왜 하고 있냐?’하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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