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0화 (20/538)

20. 챕터5. 설파하다 (3)

“사실 원래 훈련법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보다 난도를 낮춰 최소 3개월 이상은 해야 합니다.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난도를 높여 잠력까지 뽑아서 몰아붙이고 있는 중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애꿎은 목숨, 제 만용 때문에 잃어버리는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나 특전대나 목숨을 건 것이지요.”

“흠.”

“크음...”

둘은 연오랑의 솔직담백한 대답에 신음을 흘렸다.

아니. 그렇게 직설적으로 답하면, 물어본 자신들이 민망하잖아. 누가 보면 죽을 자리에 일부러 집어넣은 줄 알겠다.

“헛. 또 훈련만 3개월이군.”

칼 같은 대답에 이순몽은 혀를 찼고, 최윤덕은 다시금 물었다.

똑같은 질문을 살짝 바꿔본다.

“하면, 지금 체제하에서 정군의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어찌해야 하나? 왜구와 여진을 상대할 정도로 말일세.”

“아까 말씀드린 최정예병은 일년내내 훈련해야 하겠지만... 수준을 낮춰 3개월이면, 외적과 싸워서 적어도 도망치지 않을 수준은 될 겁니다. 하지만 이내 곧 잊어버리지 않겠습니까? 군기를 유지하려면 최소 한 달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훈련을 받아야 할 겁니다.”

“허...”

“그렇게나?”

모두는 다시금 또 입을 쩍 벌리고 만다.

조선의 군역은 농한기에 훈련하고, 아닐 땐 농사짓는 게 보통이다.

그러니 아무리 훈련을 잘해도, 1년 쿨타임 돌면 모두 리셋 되는 거지. 그것마저도 귀찮아서 잘 하지도 않고.

그런데 이 짓을 달마다 계속하라고? 조선을 말아먹을 일 있냐?

“...”

연오랑은 사정을 다 알면서도, ‘설마 그것도 못하냐?’라는 눈빛을 뿌렸다.

사실 그는 자기가 몇 마디 했다고 해서, 이들의 생각이 일순간에 확 바뀔 거라고 생각조차 안한다.

이미 조선에서 오래 살아서 양반의 생리를 안다. 기대도 안 한다.

그럼에도 미운털 박힐 걸 각오하고서 이런 말을 하는 이유? 나팔수로 써먹기 위해서다.

우리의 그레이트 킹갓 세종느님만 믿는다. 이거지. 세종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이들에게 대신하고 있는 거다.

세종은 15세기조선 아니, 15세기전세계를 통틀어도 홀로 우뚝 서있는 위대한 선각자요 현인賢人이다.

그러니 각성 좀 빨리 하라고, 엉덩이를 푹푹 찌르려는 거다.

‘세종 형. 이 연오랑이 이제부터 움직인다고. 조선을 말아먹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걸? 그리고... 한글 좀 제발 빨리 만들어줘. 한문 쓰기 귀찮아 뒤지겠어.’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운이 좋았다. 아닌가? 나쁜가?

21세기 그가 모드를 만들 때. 세종시기를 택한 건 단순한 이유였다.

세종의 능력치가 “군주캐릭터” 중에서 가장 좋으니까. 내정스텟,스킬이 만땅이라 이거지.

21세기 그는 게임을 즐기려고 한 게 아니고, 처음 만든 모드를 실험하려 했다.

당연히 테크트리 쭉쭉 올려서, 집어넣은 모드를 빨리빨리 체크해야지. 뭐 하러 쓸데없는 전투만 주구장창 하고 있나.

만약 전투를 즐기려 했으면 세종시기가 아니라 여말선초나 임진왜란시기를 선택했겠지.

하여 게임진행을 빠르게 하려고 내정능력치 좋은 “세종캐릭터”를 택했는데... 이게 현실이 될 줄이야?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조선 중,후기나 임진왜란시기에 태어났다? 아우... 십선비를 넘어서 이십선비는 될 텐데... 답도 없다.

반대로 만약 고려말이면? 그러면 정말 재밌었겠지. 조선의 소드마스터가 아니라 고려의 소드마스터로 활약하면서 말이다.

잠시간의 침묵이 지나가고, 이번엔 연오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큰 이야기는 그만 하고 직면한 현실로 돌아오자.

“한데 궁금해서 말입니다. 이번 원정길에 있어서 상왕전하와 전하의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

“응?”

화제를 바꿔서 일까? 다들 얼굴이 펴졌다가 구겨졌다.

단어는 알아듣겠는데 맥락을 잘 모르겠다.

“조정에서 바라는 게 어떤 것입니까? 대마도를 점령하는 게 우선입니까? 아니면 대마도주에게 항복을 받아 복속시키는 게 우선입니까? 아니면 대마도를 조선의 강역으로 만들려는 겁니까?”

연오랑은 건방지게 손가락 세 개를 차례차례 펴며 물었다.

그가 주요지휘관도 아닌데 이걸 알 리가 있나.

물론 21세기의 기억으로 대충 알고 있지만, 지금은 역사가 바뀌었으니 확실히 알고 싶어졌다.

“음?”

“흐음...?”

연오랑이 이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던 걸까? 다시 봤다는 눈빛을 뿌리는 게 아닌가.

이 양반들이 진짜... 21세기 특전사 칼잡이를 무시하고 있다.

“선택에 따라서 뭐가 달라지는 게 있나?”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떠보긴 어디서 떠보고 있냐.’

그는 최윤덕의 은근한 물음에, 속으로 피식 웃어주고선 답했다.

방금 전에 마구 깎인 평판, 이번에는 올릴 생각이다.

“대마도주의 항복을 받아내려면 그저 한 번에 몰아쳐 요지를 점령하고 기다리면 될 일. 대마도는 험지라, 진을 치고 기다리면 식량이 부족해서 항복하는 이가 부지기수일 겁니다.”

“...”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계속해 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흠. 그럴 듯 하군.”

이번엔 박홍신도 적극적으로 끼어든다.

방금 전의 어려운 문제에는 관심이 없어보였는데, 지금 말하는 건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 양반아. 살려는 드린다니까.’

“대마도를 점령하려면 일군을 몰아쳐 교두보를 확보한 후. 쉬지 않고 계속 몰아쳐야 할 것입니다. 대마도는 사람 살 곳이 적어 요지가 몇 개 안되는 바. 그 요지마다 병력이 흩어져 있지 않겠습니까? 삼군을 나눠 일거에 몰아치면, 적병은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아 어렵지 않게 점령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후 시간을 들여 잔당을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흐음.”

“음...”

“과연...”

다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조선강역으로 만들기를 원한다면, 점령 후에 항복한 왜인을 모조리 조선으로 이주시키고 수군영을 건설해 지켜야 할 것입니다. 대마도주의 항복만으로는 결코 대마도를 조선의 강역으로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

물론 그도 안다. 이건 불가능이라는 거.

조선이 미쳤다고 대마도를 가지겠냐?

거지 떼들 몰려온다고 조정대신들이 난리를 피울 거고, 저 먼 섬에 수군영 짓는데 돈이 든다고 또 난리를 피울 거다.

손해만 나는 저 거지같은 섬을 차지해야할, 뭔가 이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 이득을 찾을 수 있을까?

“뭐가 됐든 가장 좋은 방법은 대마도주를 빠르게 처치하는 것입니다.”

연오랑은 그리 결론을 내리며 입을 다물었다.

최윤덕과 박홍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름 동의를 표했는데, 이순몽은 삐딱하게 바라본다.

“대마도주를 처리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휘하의 정예무사들과 왜구의 호위를 받고 있을 게 분명. 게다가 초전에 패배하면 우리 군을 피해 도주하지 않겠나?”

“어차피 저에게는 한칼입니다. 한칼.”

“하!”

오만방자한 말에, 이순몽은 비웃듯 소리쳤다.

사실 이순몽은 특전대에 집어넣은 무관을 통해서, 그들이 뭔 훈련을 하고 연오랑이 어떤 인물인지 야금야금 보고를 받았다.

해서 제 눈으로 확인하려고 이렇게 직접 찾아온 것이고.

그런데 아무리 이치에 맞는 말을 한다고 해도, 이리도 오만할 줄이야? 이거야말로 천둥벌거숭이가 따로 없지 않나.

게다가 이순몽도 나이를 먹긴 했지만, 어디 가서 칼질로 꿇린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 인물이다. 그가 때려잡은 왜구와 야인이 몇인가.

그래서일까? 그는 매우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눈으로 연오랑을 바라봤다.

아까 들었던 무례하고, 건방지고, 과격한 의견에 대한, 분풀이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렇게 자신 있는 건가? 내 직접 확인을 한번 해보고 싶다만...?”

이순몽은 같잖다는 듯 히죽 웃었고, 최윤덕은 눈을 살짝 치켜떴다. 그러면서도 아무 말도 안하는 걸 보아, 연오랑을 또 시험하는 모양이다.

멀리서 힐끔 본 것과 코앞에서 직접 보는 건 또 다르니까.

‘하. 이 양반이 진짜. 한방이라니까. 그러네.’

연오랑은 목젖까지 치솟은 짜증을 애써 억눌렀다.

“미욱한 실력에, 영감 어른의 눈을 더럽히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무관이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나. 한칼이라 하지 않았나? 그 한칼이 대체 뭔지 궁금해서 그러네.”

이순몽은 자세를 잡고 칼집을 툭툭치며 계속 도발했다.

게다가 다들 기대하는 모양? 어째 자리를 벌려주는 게 아닌가.

“아닙니다. 제가 어찌 영감께...”

“어허. 우리 모두 무관 아닌가. 고작 겨룸을 하는 데 지위고하를 따지겠나? 또 누가 자네를 책망하고 사심을 가지겠나? 나 이순몽. 그리 조잔한 사람이 아닐세.”

“맞네. 나도 동의하지.”

“영감 어른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모두가 보고 싶다는 듯 동의했다.

“어찌 제가 감히 영감 어른께... 불경한 일입니다.”

“어허. 이거 자신도 없는 데, 말만 늘어놓은 건가?”

그가 자꾸 빼는데도, 이순몽은 계속 이죽거렸다.

‘후. 삼세번 끝났다. 이 자식아.’

세 번 참았다. 이제 더 이상 안 참아도 된다. 이 같잖은 꼬락서니를 보며, 연오랑은 드디어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아나. 세종의 아이돌그룹 멤버라서 좋게 봐주려고 했는데, 이 자식이 진짜.’

21세기에도 막 살던 그가 와일드한 15세기조선으로 왔다. 그 성깔이 오죽하겠냐? 답답한 유학자들의 꼬락서니를 보고 폭발한 게 한두번이냐?

이 시대에 합리와 상식으로 여겨지는 거의 모든 것들이, 21세기 사람인 그에게는 불합리와 비상식적으로 다가왔다.

억지로 꾹꾹 눌러참고 살지 않았으면 조선팔도가 피바다가 됐을 거다. 당연히 안 그래도 까칠한 성질은 날이 갈수록 더 까칠해졌지.

입 밖으로 속마음을 내뱉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 정도다.

연오랑은 말없이 스산한 눈빛을 뿌리며, 이순몽으로 부터 거리를 벌렸다.

'뒤지고 싶다고? 그래. 뒤지게 해주마. 오줌 찔끔 지려봐라. 앞으로 잠을 못자게 만들어주마.'

뚜벅뚜벅. 몇 발자국 물러난 연오랑.

“한칼 거리입니다.”

그는 뒤로 돌아서 이순몽을 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릴 때. 번쩍! 땅에서 번개가 치솟았다가 다시 떨어졌다.

쉬이익! 찰나의 찰나를 쪼개고서, 이순몽의 오른쪽 어깨에 연오랑의 칼끝이 올라와있는 게 아닌가?

이순몽의 칼은 칼집에서 겨우 얼굴만 내밀고 있는 상태였고.

“...!”

“...!”

공격당한 이순몽은 물론이거니와, 곁에 있던 모두가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대체 언제 공격했는지 눈으로 쫓아가지도 못했다.

그들 눈에는 “한칼 거리입니다.”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이순몽의 어깨에 칼날이 올라가 있는 걸로 보였다.

연오랑의 움직임을 아예 따라가지도 못한 거다.

21세기의 초고속카메라로 봤다면 이랬을 거다.

한 걸음에 이순몽 코앞까지 돌격. 동시에 빛살처럼 뽑힌 칼날은 이순몽의 목을 향해 사선으로 날아가다가, 갑자기 그의 왼쪽 어깨에서 치솟았고, 머리를 지나쳐 오른쪽 어깨로 떨어진 것이다.

눈으로 따라가지도 못한 순간에 이순몽은 두 번 죽었다.

모두는 말도 못하고 금붕어마냥 벙긋거렸고, 연오랑은 스산한 눈빛 속에 짜증을 애써 숨기며 입을 열었다.

“한칼입니다. 한칼.”

아까 하고 똑같은 말이지만, 다들 가슴이 서늘해졌다. 한칼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다.

‘시부래. 조선의 소드마스터를 대체 뭐로 아는 거야? 건방진 놈들이. 아아... 근데 쟤들 악감정을 품는 건 아니겠지?’

연오랑은 짜증과 후회가 같이 치솟았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장군들이 떠난 이후로 훈련은 더욱더 매끄럽게 진행됐다.

높으신 분과 연오랑이 대화하는 걸 꽤나 봤다. 뭔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뭔 짓을 하는지 봤단 말씀.

느닷없이 칼을 뽑아 절제사 어른한테 휘두르는 걸 봤는데, 어느 누가 심기를 거스르려 할까?

미친놈인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로 미친놈인 건 몰랐다.

그렇게 특전대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유일하게 유유자적 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우투머.

녀석은 연오랑에게 여진어를 알려줄 때를 제외하면, 그냥 시간만 죽이며 노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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