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1화 (31/538)

31. 챕터7. 포위하다 (3)

과연 원정군 장군들 중에, 이곳에 남아 포위를 계속하고자 하는 이가 있을까? 이제 곧 태풍이 몰려오고, 요동으로 떠난 왜구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데?

‘이미 완벽하게 성공해서 꽃길을 걷는 일만 남았는데, 사서 고생하려는 놈은 없겠지. 나라도 그럴 것이다.’

‘여기서 삐끗하면 원정실패의 책임을 혼자 다 짊어져야 한다. 그런 배짱 좋은 놈이 있었으면, 진작 내가 알아봤을 거다.’

최윤덕과 이순몽은 동시에 이런 생각을 떠올렸고, 결국 해답은 연오랑 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연오랑이 이렇게 묵언으로 압박하는 거다.

“좌군소속 무관과 정군은 충분히 공을 세웠습니다. 다만 혹여나 우군과 중군의 무관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염려되는 군요.”

“...”

‘허허. 이 놈 보게.’

최윤덕은 천연덕스럽게 말을 하는 연오랑을 보며, 속으로 욕을 한바가지 내뱉었다.

결국 자기가 여기에 계속 남아 있을 테니까, 어차피 떠날 병력 중에서 공을 더 세우고 싶은 중,우군의 병졸을 충원해 달라는 뜻이다.

“되겠나?”

“안 될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순몽은 감당할 수 있겠냐고 돌려 말했고, 연오랑은 자신만만하게 답하는 동시에 뒤에서 조용히 시립하고 있던 무관들을 바라봤다.

‘이미 쟤들도 다 내 손안에서 움직이는데, 다른 무관이라고 다를 거 같아?’라고 돌려 말하고 있다.

“저보다 품계 낮은 하급무관 삼백여명과 정군과 잡색군 천여명, 기선군 오백여명만 지원해주시면 대마도를 말끔히 청소해 놓겠습니다.”

“...”

“태풍이 이제 곧 올 테고, 원정군은 포로를 감당하기에도 벅차지 않겠습니까? 좌하의 포로들까지 훈내곶에 도착하면 만 명이 훌쩍 넘을 텐데, 그들을 이곳에 계속 놔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또한 요동으로 떠났던 왜구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조선의 삼남지방도 경계해야 할 터... 본대는 퇴각하는 게 상책일 듯 합니다.”

“...”

누가 그걸 모르나? 다만 연오랑이 꾸민 일에 억지로 끌려 다니는 게 짜증날 뿐. 또 이게 잘못된 게 아니라는 점이 더 거슬린다.

아무리 성과가 좋아도 명령을 교묘하게 비틀어 재해석한 건, 윗사람들에게 찍히기 딱 좋은 처신이다. 군율과 명령체계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잖아?

“다만 그냥 퇴각할 수 없는 노릇이고, 아직 하현이 남지 않았습니까? 특전대와 새로 합류할 병사를 합치면 대략 이천팔백이 조금 넘을 테니, 대마도주를 처리하고 하현도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요동에서 돌아온 왜구도 같이 처리하는 게 좋겠군요. 그것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략 한 달 후쯤에 저희를 데리러 오시면 대마도는 깨끗해져 있을 겁니다.”

거침없다. 데리러 오라니? 마무리까지 자기가 해버리겠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깨끗하기는, 잿더미가 되어 있겠지.”

“...”

연오랑은 빈정거리는 이순몽을 보며, 그저 씽긋 미소를 보여줬다. 그러면서도 절대 부인하진 않는다. 그는 정말로 하현마저 불태워버릴 거니까.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분위기가 그에게 쏠릴 때, 힘차게 밀어붙여야 하는 법.

“아. 그리고 화포 몇 문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마도주나 소인이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아침, 저녁으로 안부인사는 나눠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이순몽은 건방지기 짝이 없는 말에 그저 호탕하게 웃어재꼈다. 시시때때로 화포를 쏴재끼겠다는 말 아닌가. 대마도주보고 이제 그만 집에서 나오라고 말이다.

“큭. 알겠네. 내 삼군 도체찰사 어른께 말씀드리지.”

“감사합니다. 군량도 넉넉하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두지포에 있는 전리품은 원정이 다 끝나면 처분하는 걸로 알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왜인포로나, 왜구의 목은 소인이 거두기엔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 알겠네. 걱정하지 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대감 어른.”

최윤덕 또한 피식 웃고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또 돌려 치고 있다. 자신이 조선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전리품을 잘 지키고 있으라고 말이다. 대신 상현을 불태운 공은 원정대 사령부가 알아서 챙기고.

전리품을 연오랑과 특전대에게 넘겨주기로 원정을 오기 전에 모든 장군들이 약조했다.

문제는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것. 듣자하니 나포한 왜선만 이백척이 훌쩍 넘고, 그 중 반이 온갖 잡동사니로 꽉 차있다고 했다.

헌데 그걸 다 연오랑이 소화할 수 있을까? 분명 사방에서 빼먹으려고 난리를 피울게 분명.

하지만... 그건 연오랑의 것인 동시에 특전대원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공을 넘겨주는 대신 전리품을 받는 건데, 전리품을 빼앗긴다? 그럼 공도 다시 돌려받아야겠지?

연오랑이 삐딱하게 마음먹고 “사실 이거 다 내가 했어요!”라고 말하면, 상황이 지저분해지고 모두가 피곤해진다.

하는 것도 없이, 딴지만 걸던 조정대신들만 신날 것이고.

‘허허. 어디서 이런 맹랑한 녀석이 튀어나왔을꼬.’

최윤덕인 히죽 웃는 연오랑을 보며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건방지게 협박이자 부탁을 늘어놓지만... 어쩌겠는가.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절대 실패할 수 없게 확실히 밀어줘야지.

게다가 이미 보지 않았나? 연오랑과 함께 한 무관들은 하나같이 눈에서 살기와 정광이 뿜어 나오고 있다.

특전대 소속 무관이야 거제도에서 함께 굴렀으니 그렇다 쳐도, 좌군소속 무관은 합류한지 고작 10일이다.

대체 10일 동안 무슨 일을 겪으면 사람이 저렇게 변하는지 궁금할 따름.

그런데 이번엔 우군과 중군소속 무관들이 함께 하면? 그것도 태풍 시기가 끝날 때까지, 거의 한 달여간을 대마도를 초토화 시키면서 함께 돌아다닌다면?

해산될 정군은 그렇다 쳐도 무관들의 실전경험은 엄청나게 축적될 게 분명하다.

최윤덕은 일전에 연오랑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고, 지금이 바로 정예무관을 육성할 기회 아닌 기회라 여겼다.

“그럼 믿고 맡기지.”

“예. 저도 믿겠습니다. 대감 어른.”

연오랑은 아낌없이 허리를 꾸벅 굽혀가며 감사를 표했다.

그가 상황이 이렇게 되게끔 억지를 부린 건 사실이고, 최윤덕을 비롯한 장군들이 노하지 않고 잘 받아준 것 또한 사실이니까.

‘역시 세종의 아이돌그룹 멤버라 이건가? 아니면 자기 목이 달려서 그런 걸까?’

그는 속마음을 숨기며 히죽 웃음을 지었다.

원정대는 결국 철수를 결심했고, 결심하자마자 곧장 움직였다. 포로만 만오천명에 가깝다. 이들을 먹여 살리는 것도 일이다.

그래도 원정군은 기쁘고 즐겁다.

이렇게나 많은 주민을 끌고 가면, 다시는 재기할 수 없다. 정말로 대마도가 작살난 거다. 원정목표를 100%를 넘어서 200, 300% 달성한 거나 다름없다.

오히려 “이렇게 많은 포로를 조선땅에 끌고 가는 게 과연 맞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하지만 몇몇 무관들은 발칙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론 쌤통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과연 조정대신들이 이 폭탄을 떠안고 무슨 말을 할까? 조선 건국 이래로 대승도 이런 대승이 또 없는데, 포로를 많이 잡아왔다고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미리미리 조정에 연락해 후속조치에 대해 명을 받았으면 어떻게든 됐을 텐데... 연오랑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붓을 노렸다가는, 나중에 괜히 트집잡힐 가능성이 있다. 해서 일단 죄다 끌고 가서 승전을 알리는 수밖에 없다.

더 큰 이유는 연오랑이 넘겨 준 공을 누가 어떻게 챙길지 교통정리를 해야지.

미리미리 입을 맞춰야 후환이 없는데, 사실관계도 모르면서 조정에 서신을 보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서신을 안보내는 게 낫지.

연오랑에게는 약속대로 병력을 몰아줬다.

우,중군의 무관들은 연오랑이 보낸 백여개의 수급을 보며 눈이 돌아갔다. 그냥 왜구도 아니고, 조선으로 치면 무관급만 백여개다.

자고로 욕심이 없으면 관인이 아닌 법. 하여 지원군을 뽑는 건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다만 연오랑만 남겨두는 건 문제의 소지가 있다.

아직 정식품계도 받지 않은 녀석을 분견대의 사령관으로 남겨 둔다? 실력을 직접 확인한 원정군 사령부야 믿고 맡기지만, 저 먼 곳에 있는 조정대신들이 이걸 이해해줄 리가 없다.

또 꼬투리를 잡아 물고 늘어질 게 분명.

하여 좌군의 이각. 중군의 박언충, 우군의 김효성을 붙여줬다.

요동에서 돌아올 왜구를 처리해야 하는데, 최고지휘관이 여기 머물 수는 없잖아? 장군급 고위무관을 바지사장으로 올려놨다.

물론 공을 넘겨받겠지만... 까마득하게 어린, 그것도 정식관직도 받지 못한 어린애의 명령을 듣고 싶은 장군은 없지.

그런데 이런 바지사장인 걸 뻔히 알고서 분견대에 왔다? 이들은 이유가 뭐가 됐건 연오랑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자존심을 굽힐 정도로.

나이를 지극하게 먹은 박언충. 그는 연오랑과 나름 인연이 있는 박홍신의 형이니 인정.

그런데 이각과 김효성이라?

‘핵심멤버는 아니지만 어찌됐건 세종의 아이돌그룹 아냐? 4군6진 개척할 때 봤던 거 같은데...?’

연오랑은 처음 만난 장군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기억을 연신 더듬었다.

이각과 김효성을 기억하는 건, 미디블워의 오리지날 스토리에 4군6진 개척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

그가 수도 없이 플레이한 “장수캐릭터.” 아닌가.

게다가 이각이라니? 삼국지에서 항상 동탁과 세트로 등장하는 게, 이각과 곽사 아닌가. 동명이인을 잊어먹는 건 쉽지 않지.

어찌됐건 21세기에 모니터 속에서 가지고 놀던 장수를 현실에서 만나게 되니... 뭔가 기분이 묘할 따름이다.

물론 게임은 게임이고 현실은 현실.

지금 보니 그냥... 다들 나이 먹은 동네 아저씨들이다.

그래도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하니 예의를 차렸고, 그들 또한 연오랑에게 예의 아닌 예의를 차렸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전과를 세웠는데, 나이가 어리다고 헐뜯을 정도로 머저리는 아닌 모양이다.

연오랑은 그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어, 연신 웃는 낯으로 대했다. 물론 밑의 무관들에게는 야차가 따로 없었지만.

원정대 본대가 떠나건 말건, 특전대의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우,중군에서 뽑힌 병사들은 특전대에 합류했다. 특전대와 합류병을 반반씩 쑤셔 넣어 소대를 만들고, 특전대원은 조교와 선생이 되어 합류병을 굴리기 시작했다.

무관들도 마찬가지. 원래 특전대 소속 무관이 주도하고, 좌군출신 무관이 양념을 치며 조교 아닌 조교가 되어 굴렸다.

아니다. 더욱 살벌하게 굴린다. 어차피 병졸들이 지금 할 일은 땅파고 집짓는 일 밖에 더 있나?

무관은 소대장이 되어야 하니, 작업에서 열외하고 그저 곡소리가 나도록 구르기 시작했다.

3군에서 온 바지사장들은 그 모습을 매의 눈으로 살피며,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빴다.

역시나 실무는 연오랑에게 맡기려는 게 분명하다.

“대체 무슨 수를 썼기에 특전대가 이런 정신 나간 전과를 올릴 수 있지?”라며 그 방법을 알아내는 게 주목적이었나 보다.

아까울 거 있나. 나중에 쑥쑥 클 사람들이니, 연오랑은 아낌없이 자신의 지식을 퍼줬다.

그렇게 하루, 하루 지나갈수록 좌하의 산성을 둘러싼 포위진은 점점 견고해져갔다.

깊게 파인 참호에는 마구 잘라낸 나무창이 박히기 시작했고, 참호 뒤론 목책이 하나둘씩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젠 산성에서 나오기도 힘들 거다.

목책과 참호가 없는 공간은 오로지 산성입구에서 숙영지로 이어지는 넓은 길 뿐.

병졸들은 이 길을 지들끼리 생사교라 불렀다.

생사로라고 부를 것이지, 왜 하필 다리일까? 뭐. 자기들 마음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생사교만 빼고 목책이 완성되어가니... 왜구들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해야 될 순간이 점점 다가오는 걸 감지했다.

항복을 청하는 혹은 대화를 청하는 사신이 오곤 했지만, 연오랑이 그걸 봐줄 리가 있나.

이 자식들이 시간을 끄려는 걸 뻔히 아는 터라, 그냥 대놓고 목을 쳐서 머리통을 길옆에 박아 넣었다.

굶어 죽든 아니면 싸우다 죽든. 양자택일 하라는 선명한 표시다. 아. 하나 더 있다. 불에 타죽든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