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챕터7. 포위하다 (4)
북쪽에서 시작된 산불은 끊임없이 나무를 집어삼키며 커져가고 있었다.
애초에 대마도가 요동으로 대약탈을 나간 이유가 뭔가. 기근이 심하게 돌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먹을 것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바싹 말랐다는 뜻이고, 산불은 마른 풀을 집어삼키며 계속해서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고 있었다.
불을 연오랑 스스로 냈는데, 그 해결책을 모를까.
그는 숙영지와 포위진 근처의 나무를 모조리 베어내 방화선을 구축했고, 숙영지 또한 강 바로 옆에 만들어 혹시 모를 참사에 대비했다.
솔직히 말하면, 산불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거다. 그 전에 아마도 태풍이 먼저와 비를 쏟아내지 않을까?
또 설령 산불이 밀려와도 걱정없다. 바닷바람은 끊임없이 내륙으로 밀고 들어와서, 불씨가 숙영지 쪽으로 날아올 일은 없었다.
반대로 바닷바람을 정통으로 맞고 있는 좌하 산성은 불길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죽을 맛일 거다.
북쪽에선 메케한 탄 연기가 계속 밀려오고, 동쪽에선 바닷바람이 밀려와 산성이 위치한 작은 산에 부딪친다. 그럼? 산성은 그 사이에 껴서 탄 연기만 죽도록 먹게 되는 거지.
게다가 이렇게 숙영지와 목책을 만들다 보니, 부가적인 효과도 있었다.
동쪽의 포구는 열려있지만 그 안쪽 좌하는 온통 무너진 잿더미다. 서쪽은 좌하산성이 막고 있고, 남쪽은 강이 막고 있다. 북쪽은 포위진을 만들면서 목책을 이어 놨다.
결론은? 설령 하현에서 왜구 지원군이 오더라도, 특전대는 수성을 위한 방어진지가 구축된 거다.
그렇게 목책이 모두 완성되자, 드디어 안부 인사를 할 시간이 됐다.
산성은 그리 높은 고도에 위치하지 않았다.
애초에 대마도의 산이 그리 높지도 않고.
공략하기 어려운 건, 높이가 아니라 지랄 맞은 구조에 있다.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지그재그 형태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었다.
적이 길을 따라 올라갈 때. 바로 위에서 공격하고, 또 그 윗길에서 공격하고, 또 그 윗길에서 공격할 수 있게 층층이 겹쳐 있다는 뜻. 흡사 삼중성벽을 산길로 대체한 모양새다.
다만 연오랑은 화살의 사정거리 밖에 목책과 진채를 만들었고, 조선군에게는 화포라는 무기가 있단 말씀.
“이게 화포라고?”
“예. 장군.”
“장군은 저기 있는 삼인방 아저씨들이 장군이고. 앞으로 특전대장이라 불러라.”
“... 예.”
연오랑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저 뒤쪽에서 느긋하게 오고 있는 삼인방을 가리켰다.
물론 화포를 담당하는 화약장은 기겁한 눈초리를 숨기지 않았다. 미친놈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이렇게 싸가지가 없을 줄이야?
이각, 박언충, 김효성을 연오랑은 삼인방이라 불렀는데, 이게 입에 착착 달라붙는지 병사들도 몰래몰래 삼인방이라 불러댔다.
딱히 틀린 말이 아닌 게, 이 양반들은 지금 전쟁터에 왔는지 놀러왔는지 모를 정도로 유유자적하게 돌아다녔다.
하는 일이라곤 연오랑에게 달라붙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일과 훈련하는 병사들을 구경하는 일. 특전대 무관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하루 일과다.
그들 뒤에선 부관쯤 되는 무관이 열심히 뭔가를 적고 있었고.
연오랑이 봤을 땐, 딱 검열관이나 감독관 느낌이 물씬 풍겼으니 기분 좋을 리가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배워보겠다고 자존심 굽히고 들어온 사람들인데, 잘 대해줘야지. 해서 그냥 내버려뒀다.
연오랑의 눈앞에 있는 화포는 21세기의 대포와는 완전히 다르다.
많이 양보해서 영화에서 봤던 구시대 대포하고도 많이 다르다.
이건... 그냥 커다란 원통 쇳덩이에 구멍이 뚫린 형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바퀴? 포가? 조준경?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냐. 그냥 땅을 비스듬히 파서 거기에 얹혀 놓고 쏘는 물건이다. 심지어 이거 운반할 때는 그냥 들고 다닌다.
‘하긴 15세기 초에 뭘 기대하겠냐만.’
사실 이 시대에 제대로 된 대포가 어디 있겠는가.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다.
“이게 천자총통이냐?”
“예?”
연오랑이 가장 커 보이는 화포를 가리키자, 화약장은 ‘뭔 소리냐?’는 듯이 되물었다. 천자총통이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기 때문.
“아니야?”
오히려 연오랑이 더 놀라서 되물었다.
“예. 이건 대장군포이라 부르고, 옆에 작은 화포는 이장군포, 삼장군포, 저기 있는 건 완구라 부릅니다. 나리.”
“흐음...?”
‘뭐여. 시부래. 내가 잘 못 알고 있는 건가?’
연오랑은 눈을 찌푸리며 연신 머리를 굴렸다.
그는 칼덕후다. 당연히 대칭점에 있는 총덕후나 밀덕후가 아니다. 화약무기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솔직히 관심도 없다.
물론 기본적인 구조와 원리는 안다. 21세기에 특전사로 구르면서 온갖 총기류를 다 만져봤는데 모를 리가.
다만 덕후처럼 화약과 화약무기의 수치화된 스펙, 구조, 역사, 제작방법, 이런 걸 달달 외우고 다니진 않았다.
남자라면 칼이지, 치사하게 뭔 총인가.
그럼에도 아는 척했던 이유는 게임 미디블워에서 “조선”을 플레이할 때 맨날 쓰던 대포가 천,지,현,황으로 분류되는 대포였고, 21세기에 이것저것 주워들은 정보가 있기 때문.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아직 천,지,현,황 화포가 나오기 전인가 보다.
‘하긴. 세종이나 문종이나 둘 다 화력덕후였잖아? 그때 새로 만든 건가?’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건 거지같은 초창기 화포다. 대충 봐도 오늘도 조선의 발전에 많은 이바지를 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럼 쏴봐. 구경 좀 하자.”
“예. 나리.”
“특전대장이라고.”
“예. 특전대장님.”
연오랑이 한소리하자, 화약장은 궁시렁궁시렁 투덜거리면서 병사들에게 방포 준비를 시켰다.
“크흠.”
“이번엔 또 뭘 하려고 저러나...?”
연오랑이 화포에 관심을 보이자, 삼인방은 어느새 다가와서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봤다.
함께 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삼인방은 연오랑이 미친놈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파격, 패도, 안하무인, 유아독존. 그 단어를 하나로 묶어 사람형태로 빚으면 그게 바로 연오랑이다.
이놈은 예의범절보다 칼이 우선인 무식한 독재자다. 관습과 시대상식을 깡그리 밟아버리고, 자신만의 기준을 앞세운다.
양반이고 양민이고 천민이고 할 것 없이, 죄다 굴리고 두들겨 패고 휘두르는 악질종자가 따로 없다.
문제는 그렇게 나온 결과가 범상치 않고 심상치 않다는 거다.
지켜보는 삼인방은 ‘이게 과연 맞는 건가?’ 싶은데, 또 막상 결과를 보면 ‘맞는 건 맞는 것 같은데...’ 하고 찜찜함이 가득했다.
특히나 다른 것도 아니고 나라의 존망을 책임지는 군사에 관한 일 아닌가. 과정보다 결과가 살짝 중요시 되는 터라, 이런 찜찜함은 도무지 가시질 않았다.
해서 내린 결론은 연오랑이 똑똑한 미친놈이라는 것이고, 이 똑똑한 미친놈이 이번엔 화포에 뭔 짓을 할지 궁금해서 이렇게 달려왔다.
장전은 연오랑이 아는 것과 엇비슷했다.
포를 청소하고, 점화선을 꽂을 곳을 청소하고, 안쪽에 화약을 집어넣고, 철추로 꾹꾹 눌러 담고, 그 위에 큼지막한 화살을 장착했다.
문제는 이 짓을, 화포를 수직으로 세워놓고서 하고 있다는 거다. 병사들이 달라붙어서 손수 힘으로 하고 있다. 어느 세월에 저걸 다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멋진 건 하나 있다.
“크으으! 이게 바로 조선의 하푼미사일이라는 거군.”
포구에 쾅쾅 박아 넣는 거대한 나무화살. 대장군전을 보며 연오랑이 요상한 말을 하자, 근처에 있던 모든 사람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게 한두번인가.
이젠 삼인방과 그 일당들조차 익숙해졌다.
방포준비가 끝나자 화포는 다시 땅에 파묻혔고, 병사들은 화포 포신에 묶어 놓은 밧줄을 당겨 고정시켰다.
치이익. 점화선은 불꽃을 내며 타들어갔고, 쾅! 굉음과 함께 대장군전이 날아가 좌하산성의 목책 한 곳에 틀어박혔다.
“오호!”
그래도 위력은 굉장하다. 목책을 그냥 박살내고, 그 안쪽으로 쑥 들어가서 왜구들이 난리가 났으니까.
하지만 감탄과 동시에 쌍욕도 같이 나왔다.
“지랄 났네. 지랄 났어.”
연오랑은 화포의 반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우당탕탕! 죄다 나뒹굴고 있는 병사를 보며 사정없이 혀를 찼다.
“설마 이거 한번 쏠 때마다 이 지랄을 해야 되는 거냐? 대단하다. 대단해. 전조前朝때는 대체 이걸로 어떻게 왜구랑 싸운 거야? 안 죽은 게 용하다. 용해.”
“...”
화약장은 ‘아니. 이거 원래 이런 건데, 나보고 어쩌라고?’ 하는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삼인방은 예의와 격식 따윈 찾아볼 수 없는 비아냥에 혀를 마구 찼다.
매번 들어도 영 익숙해지질 않는다. 어떻게 양반 중에도 양반. 2대에 걸친 공신가문에서 어쩌다가 이런 개종자가 나왔는지 믿을 수가 없다.
“다른 거 쏴봐.”
“예. 특전대장님.”
화포는 크기만 다를 뿐, 다 똑같지 않나. 장전방식은 동일했다.
“근데, 왜 안쪽보다 입구가 더 넓은 거냐?”
“철령전鐵翎箭의 크기가 달라서 말입니다.”
“흐음...”
연오랑은 화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포는 화약이 들어가는 부분이 좁고, 입구로 갈수록 커졌다. 흡사 나팔처럼 말이다. 물론 그렇게 엄청나게 넓어지진 않고.
철령전은 나무화살을 통칭하는 용어. 대장군전과 같은 나무화살은 규격이 일정치 않고, 또 여러 종류의 철령전을 발사하기 위해서 이런 형식이 되었다고 했다.
‘근데 이거. 이래도 되나?’
그걸 보며 연오랑이 드는 생각은 당연히 바보짓 같다는 거다.
저렇게 되면 폭발압력이 떨어져서, 파괴력과 사정거리가 줄어들 것 아닌가.
게다가 하는 짓을 보니 뭔가 빠진 것 같다. 뭐가 빠졌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장 중요한 게 빠지지 않았나!
“격목이나 토격은 없어?”
“...예?”
“...음?”
화약장과 삼인방 일행은 ‘그건 또 뭔데?’하는 눈으로 연오랑을 바라봤고, 반대로 연오랑은 ‘아니 그걸 몰라?’하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삼인방 뒤에서 열심히 손을 놀리던 우투머는 당연히 뭔 소린지 몰랐고.
“정말 몰라?”
“크음... 예.”
연오랑이 ‘아니 세상에! 바보도 아니고 그걸 왜 몰라?’ 하는 눈빛을 숨기지 않고 되묻자, 화약장은 힐끔 시선을 피하며 은근슬쩍 삼인방을 바라봤다.
‘저 양반들도 모르는 데, 왜 나만 가지고 그래?’하는 눈빛이다.
그 시선을 따라 연오랑은 삼인방 일행을 바라봤고, 다들 슬쩍 눈을 피했다. 자기들도 모른다고 몸으로 말하고 있다.
‘허? 정말 아무도 몰라?’
연오랑은 정말 깜짝 놀랐다.
칼덕후인 그가 이걸 아는 이유는 단순했다.
21세기의 게임 미디블워에서는 대포부대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모든 병종은 테크트리를 올리면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대포부대의 업그레이드 중에서 사거리증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격목과 토격이다.
해서 ‘대체 이게 뭔데? 사거리를 늘려주지?’하는 의문을 품었고,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 그 해답을 찾았다. 그래서 당연히 써먹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것도 모르고 있네?
‘허. 거참. 세종 형이 이것도 했어?’
역시 우리의 그레이트 킹갓 세종느님이시다.
발사 시연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다른 화포도 쏴봤지만 다 똑같을 따름. 철환이나 돌탄은 아예 발사조차 못하는데 더 봐야 의미도 없다.
그나마 완구는 쓸 만해 보인다.
꼭 큼지막한 밥그릇처럼 생긴 물건으로 원시형태의 박격포와 유사하다. 압도적인 곡사 능력을 가진 물건이라 용도는 확실.
물론 21세기의 박격포는 보병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대포라고 보면 되지만, 지금의 화포나 완구는 더럽게 무겁고, 또 한편으론 거의 비슷해서 대포와 박격포로 구분하긴 어려웠다.
그냥 공성용 화포쯤으로 보면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