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7화 (37/538)

37. 챕터8. 돌아오다 (1)

“다 잘되지 않았나? 대마도는 자네가 바라는 대로 다 불태웠고, 요동에서 돌아온 왜구도 처리했고, 문제 될게 있나?”

“글쎄요...”

연오랑은 계속 얼빠진 표정을 지었고, 이각은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마도주 종정성이 죽은 지 벌써 한 달.

소금을 구하기 힘들어서, 대마도에서 직접 자염 비슷한 걸 만들어서 수급을 절였다.

좌하의 산성을 무너뜨렸으니, 다음 수순은 당연한 것 아닌가. 연오랑은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초토화 작전을 개시했다.

비가 오든, 비바람이 몰아치든, 거침없이 특전대를 몰아붙였고, 태풍 때문에 배를 띄우지도 못하고 있던 왜인들은 사로잡히거나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현 해안가를 빙 돌며 초토화 시키고, 내지로 숨어든 왜인들을 모조리 찾아내려는 듯, 무지막지하게 들쑤시고 다녔다.

왜인뿐일까? 대마도에 살던 짐승들은 들쥐 말곤 하나도 남김없이 사냥당했고, 하현을 휩쓸고 나선 다시 상현으로 올라가 타다 남은 산속을 헤맸다.

정말 지독하기 짝이 없는 인간사냥, 짐승사냥이다.

이미 대마도주를 때려잡을 때 연오랑이 지독한 놈이라는 걸 느꼈지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물어뜯으니 느낌이 또 색달랐다.

그렇게 내지를 들쑤시고 다니면서 사로잡은 왜인포로가 또 사천여명.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기선군이 왜선을 타고 고기를 잡았고, 사냥한 동물들은 죄다 포로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 후엔 두지포에 대기하고 있다가, 요동에서 돌아온 왜구마저 기습 후 몰살시켰다.

원래 역사보다 많은, 대략 오백정도 되는 왜구가 돌아왔는데... 뭔 차이가 있겠나. 다 죽었다.

태풍 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불장난을 시작. 하현과 타다 남은 상현도 모조리 불태웠다.

그리고 지금. 불타는 대마도를 뒤로하고서, 특전대는 위풍당당하게 전리품을 가득 싣고 되돌아가는 중이다. 저 불길이 언제 꺼질지는 그 누구도 모르리라.

상황이 이러니 문제될게 있나.

헌데 연오랑의 표정이 영 심상치 않았다.

이각은 이 미친놈이 ‘또 무슨 이상한 짓을 계획하나?’ 싶어서, 요주의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고.

“조정에선 어찌 처리할 것 같습니까?”

“왜인포로 말인가?”

“그놈들을 제가 왜 신경 씁니까. 알아서 하겠죠.”

연오랑은 ‘뭔 개똥같은 소리냐?’하는 눈으로 이각을 바라봤고, 이각은 ‘그럼 뭘 말하는 거냐?’라는 눈으로 반문했다.

“저 말입니다. 저.”

“흐음...”

“원정의 성과야 장군님들과 휘하 무관들에게 다 넘기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장계도 그렇게 올라갔고요. 다만 제가 종정성의 목을 댕강해버린 건 숨길수가 없는 노릇이니, 그대로 올리긴 했는데...”

“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의 공일지 몰라서 말입니다.”

“음?”

이각은 대체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몰라서 눈을 찌푸렸다.

당최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공을 세우면 좋은 거 아닌가? 게다가 이 원정의 목표인 대마도주를 잡았으니, 제일공신은 따 놓은 당상 아닌가.

“설마... 관직에 오르기 싫은 겐가?”

“예. 관직은 관심 없지만, 품계는 올려야죠. 하동부원군 작호를 이어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마 종정성 목을 땄는데, 조정에서 그 정도도 안 해주겠습니까...”

“...”

연오랑은 ‘당연한 걸 왜 물어봐?’하는 말투로 말하다가, 아차 싶어서 말을 흐렸다.

사서에 따르면 이각은 느지막하게 관직에 올라 낮은 벼슬을 하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직무를 충실히 다해, 마흔살이 넘어서야 외직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사서가 맞았다. 이각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었으니까.

다만... 사십이 넘어서야 겨우 외직을 시작한 인물 앞에서, 새파랗게 어린놈이 관직을 안준다고 떼쓰는 꼴 아닌가.

연오랑이 아차! 싶어서 눈치를 살피자, 오히려 이각이 묘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 미친놈이 염치가 있었어!?’하고 놀라는 눈초리다.

‘쓰벌.’

연오랑은 슬쩍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가, 에라이 모르겠다 싶어서 그냥 당당하게 나갔다.

조선은 신분제 사회에, 난이도가 굉장히 높은 과거시험으로 관리를 뽑지 않나.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나이가 제각각인 게 짜증난다.

당장 특전대에 속한 무관들만 봐도 그렇다. 죄다 같은 계급인데 나이가 천차만별이다. 어린 녀석은 갓 스물이 넘은 놈도 있고, 많으면 사십이 넘은 이도 있다.

이러다보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도 애매하고, 함께 굴리기 시작하면 나이 어린 녀석들이 두각을 나타날 수밖에 없다. 어리면 일단 머리도 말랑말랑하고 체력도 좋으니까.

장유유서? 그거 다 개똥같은 소리다. 품계와 신분 앞에서 나이 먹었다고 설치다간 두들겨 맞는다. 나이의 고하는 상대와 수준이 엇비슷할 때나 써먹는 거다.

‘내가 괜히 다짜고짜 두들겨 패면서 일괄적으로 시킨 게 아니라니까.’

괜히 이각에게 미안해서, 연오랑은 그렇게 대상없는 핑계를 날렸다.

“괜찮네. 자네 실력이야 내가 익히 보지 않았나.”

“예. 뭐... 하여튼! 한성의 조정에서 일하는 건 영 별로란 말이죠. 아직 이립도 되지 않았는데, 뭔 시기질투를 당하려고요. 게다가 제가 학문이 부족한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십선비들하고 같이 있으면 제가 속이 터져 죽든가, 아니면 그놈들 뚝배기가 터지든가 둘 중 하납니다.”

“허허...”

십선비가 뭔 진 모르겠다만, 한두번 들은 단어가 아닌지라 대충 때려 맞췄다. 아마도 사대부나 양반을 말하는 뜻이리라.

이 건방진 녀석에게 한소리 해주고 싶지만, 먹혀들 리가 만무하니... 그냥 고개만 절래절래 흔들고 말았다.

무려 한 달이나 지났지만, 이각의 머릿속엔 혈인이 된 연오랑의 모습이 화인처럼 박혀 있다. 이 미친놈을 자극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음... 아마 품계는 올려도, 실직實職을 주긴 힘들지 않을까 싶네만?”

“그렇죠?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그냥 지방으로 빼줬으면 한데 말이죠.”

연오랑은 연신 신음만 흘리며, 계속 머리를 굴렸다.

조선은 관리가 적다고 하지 않았나.

관리가 적다는 건 직접 녹봉으로 주고, 조정에서 일하는 관리가 적다는 뜻이다. 실직은 실제로 일하는 관직을 뜻하는 말.

문제는 조선은 관리에게 돈을 안 쓰려고 하지 않나.

그렇다보니 그냥 이름뿐인 관직을 주거나, 아니면 돌려먹는 관직을 주곤 했다.

이름뿐인 관직인 영직影職. 그림자 관직이라고 해서, 관직은 관직인데 실제 업무가 없어서 정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관직이 있다.

굳이 억지로 비교하자면 땡땡마을 번영회 회장? 이런 느낌? 있으나 없으나 차이도 없는데, 있으면 뭔가 좋아 보이는? 이런 관직을 주기도 했다.

영직도 실직도 아닌데, 뭔가 있는 자격증 비슷한 것도 있다. 바로 생원과 진사다.

소과小科인 진사시, 생원시를 합격하고 나서 성균관에 입학. 거기서 공부하다가 대과大科에 응시 후 합격. 그래서 관직 진출. 이게 일반적인 붓쟁이의 인생성공루트다. 그 외에 이런저런 잡다한 시험이 있지만, 메인은 소과와 대과지.

그런데 과거시험은 더럽게 어렵고 몇 명 뽑지도 않는다. 소과가 200명, 대과는 33명이 끝이다. 21세기 한국 수능시험과 비교하면 대충 상위 0.01%정도 되어야 정식관리가 되는 거지. 정신 나간 경쟁률 아니냐?

허나 과거에 합격해야 양반지위가 보존 되는 터라, 조선팔도 모든 양반들이 그거 하나만 보고 공부한다. 근데 관직이 적어서 관리를 안 뽑아? 그럼 공부를 왜 해?

하여 실직은 아니어도 지위는 유지시켜주는 자격증 비스무리한 걸 날려댔다. 성균관에 입학 안 해도, 대과에도 응시하지 않아도, 양반지위가 유지되는 자격증. 생원이니 진사니 하는 것들이 이런 거지.

조선을 지탱하는 엘리트 집단인 양반을 다독이는 수단 중에 하나라고 할까? 뭐... 이거 때문에 결국 조선이 개판되지만 그건 나중이야기다.

게다가 체아직이라고, 돌려 먹는 관직도 있다. 아직 법제화 되지 않았지만 있긴 있다. 일반적으로는 a라는 관직이 있으면 A라는 사람이 쭉 담당하는 게 맞겠지? 하지만 아니다.

관직은 적고, 관직을 하려는 사람은 많다보니 a라는 관직을 A,B,C라는 사람이 3,4달씩 돌아가면서 맡는다. 효율성의 문제는 말할 필요도 없고,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A,B라는 사람만 일을 하고 나름 지체 높은 C라는 사람은 일도 안하면서 녹봉만 챙겨가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 조선에도 월급루팡이 있는 거다.

또 잡직雜職이라고 해서, 문무관원이 밑에 위치한 직위가 있다. 하급군인, 궁에서 일하는 장인, 청소,화원,요리 등등을 담당하는 각종 사역인들도 직위가 있어야겠지? 이들을 잡직으로 분류했다. 21세기로 굳이 비유하면 비정규직, 계약직. 이런 느낌?

거기에 조선은 퇴직하면 “이제 넌 야인이다. 일반 양반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취급을 받는 게 아니다.

실직이 아닐 뿐이지 품계와 산관직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여차하면 언제든 현역으로 뛸 수 있는 거다.

이러니 조선은 말만 관료가 적고 조직이 작다고 하지, 실제로는 은근히 거대하다.

“그럴 걸세. 지금쯤 장계가 올라갔을 테니... 다만 한성에서 일하는 건 힘들지 않을까 싶네만?”

“그건 다행이네요.”

“...”

이각은 연오랑이 자신의 뜻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싶어서,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리며 살폈다.

연오랑이 수백명의 왜구 속에 뛰어들어 직접, 손수, 때려잡은 왜구가 무려 203명이다. 세는 건 어렵지도 않았다. 갑옷이나 몸이 박살난 시체를 찾으면 되니까.

믿겨지는가? 혼자서 그 짧은 시간에 203명을 때려죽였다.

일반 백성들은 “오우야! 소년장군! 엄청나다!”하고 환호하겠지. 자기일 아니고 남일이잖아? 연오랑과 엮일 일도 없으니, 그냥 씹고, 뜯고 맛보면 그만이지.

하지만 조정에서 이 소식을 접하면 무슨 생각이 먼저 들까? 처음에는 안 믿길 거고, 그 다음에는 꺼림칙할 거다.

여차하면 자기 목을 따버리는 건, 여반장도 아닐 테니까.

태조 시절에도 수많은 명장이 있었지만, 연오랑과는 조금 궤가 다르다.

수천명의 병사를 지휘해 수만명을 때려잡으면, “과연 신묘한 병력운용이군! 하늘이 내린 전략가다!”하고 감탄하지만, 혼자서 일일이 집요하게 쫓아다니면서 칼로 썰어버린다?

그 대상이 왜구라고 해도 “어... 음?” 이런 애매한 반응이 나오기 마련. 아무리 그래도 너무 규격 외, 상식 밖 아니냐?

조선의 붓쟁이들 입장에선, 환호와 감탄보다는 부담감이 먼저 밀려 올 수밖에.

연오랑을 과연 왕이 있는 한성에 두려고 할까?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연오랑이 회까닥해서 칼 들고 설치면 뭔 수로 막을 건데?

괜히 입방정 떨어서, 끔찍한 상황을 감내하고 싶진 않을 거다. 이건 충성의 문제가 아니라, 불안하고 껄끄러워서 멀리할 거다.

그런데 어째 연오랑은 그걸 바라고 있는 것 같다.

‘허허... 정말 알 수 없는 아이로세.’

이각의 머릿속은 정말 어지러웠다.

이 녀석이 파격 그 자체인 건 익히 알지만, 보면 볼수록 뭔 생각을 하는 건지 따라잡을 수가 없다.

“흠... 계획대로 잘 됐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끄응...”

연오랑이 또 무슨 이상한 짓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한지라, 이각은 그 불똥이 자기에게 튀지 않기만을 바랐다.

저 멀리 검은 연기가 풀풀 피어나오는 대마도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연오랑은 범인의 생각으론 가늠할 수 없는 짓만 저지르니까.

이각과 이야기를 나눈 후엔, 곧이어 박언충, 김효성과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다.

삼인방 일당은 바지사장인 동시에 연오랑의 감시자 겸, 훈련법을 훔쳐 배우는 목적이 있지 않았나. 당연히 연오랑에 대한 인물평가도 함께 하고 있었다.

연오랑도 이걸 알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꽤나 거칠게 어필했고, 지금은 그 마무리 단계다.

자신이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식으로 보상을 받는 게 좋은지를 은연중에 알려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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