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9화 (39/538)

39. 챕터8. 돌아오다 (3)

“따로 빼놓은 포로들은 몇이나 됩니까?”

“중국인이 마흔다섯, 왜인이 사백오십정도 되네. 그런데 정말로 그놈들을 다 먹여 살릴 수 있나?”

연오랑이 은근히 묻는 말에, 박홍신 또한 목소리를 줄이고 조용히 되물었다. “혹시 문제가 되는 거 아냐?”라고 묻는 표정이다.

“걱정 마시죠. 미리미리 다 준비해뒀습니다.”

“하긴... 그랬겠지.”

연오랑이 이번 원정에 사비를 털어 넣은 게 얼마인가. 그걸 박홍신은 수도 없이 지켜봤으니, 이 또한 준비해놨을 거라고 확신했다.

박홍신은 니로군을 점령하자마자 연오랑에게 부탁을 받았다.

앞으로 왜인포로가 계속 밀려 올 텐데, 그 중에서 배를 다루거나 만드는 일을 하는 장인. 기타 철장,목장,광부등, 글을 읽을 줄 알고, 대마도에서 하급관료로 일을 했던 이들.

하여튼 뭐라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따로 모아달라고 부탁받았다.

해서 야금야금 빼돌렸는데, 워낙 포로가 많아서 티도 안 났다.

조정에선 오히려 빼돌린 걸 좋아하지 않을까? 자기들 할 일이 줄었으니까. 물론 알면 문제가 되겠지만, 모르면 그만이지 뭐.

“이들은 대마도에서 탈출해서 조선으로 흘러온 왜인들인데, 제가 가는 길에 거뒀다고 하겠습니다. 어차피 왜선도 그렇게 처리해야하니, 거기에 타고 있던 걸로 하면 되겠죠.”

“흠. 그건 그런데... 장인들을 모아서 뭐하려고 그러나?”

“배 만들어야죠.”

조선공을 데리고 뭘 하겠나. 당연히 배를 만들어야지.

연오랑은 당연한 질문을 하는 박홍신을 보며 오히려 의아하게 바라봤다.

“그러니까 배를 왜?”

“흐흐. 아주 큰 배를 만들어서 장사를 할 겁니다. 나중에 저한테 투자를 하시죠? 제가 배당금은 두둑하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장사?”

박홍신은 투자니 배당금이니 하는 말은 이해못했지만, 장사라는 말에 더욱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배로 장사를 한다는 건, 결국 중국과 왜와 장사를 하겠다는 건데, 그게 가능할지 의문이 드는 거다.

‘아니군. 지금은 가능할지도...’

박홍신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원래 역사에선, 사무역을 억제하고 조공이라는 형태로 공무역만 하는 조선이다. 물론 그 조공편에 따라가서 개인적으로 거래하는 사행무역을 하긴 했지만, 어찌됐건 공무역이 우선이다.

그런데 명이 없어졌네? 조공 또한 없어졌다. 공무역도 없어졌지. 조선은 분명 중국산 물품. 약재나 서적, 비단, 자기, 악기, 보석, 구리, 납, 소목, 후추 등을 필요로 하는데 말이다.

특히나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약재와 구리, 납이 문제 아닌가.

원래 역사에선 중국약재를 당재唐材라고 해서 최고품으로 쳐줬다. 이 시대의 중국은 21세기의 중국이 아니다. 첨단문물을 가진 선진국이니 만큼 중국산이 명품인 시대다.

그런데 여말선초 시절에 원나라가 망하면서 당재의 수입이 급감했다. 하여 고려에선 고려만의 약재와 의학을 발전시켰고 정종 때 향약제생집성방이 완성됐다.

그걸 더욱 분류, 첨가하여, 세종시기에 와서는 업그레이드판인 향약집성방이 완성된다.

하지만 지금은? 명이 망한지 십년이 훌쩍 넘었으니, 자의반, 타의반으로 향약집성방이 십여년 빠르게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구리와 납은 어떨까? 이건 어떻게 해결할 방법도 없다. 중국을 대신해서 왜와의 교역을 조금씩 늘리려고 했는데, 왜구가 또 문제 아닌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수입품도 마찬가지고.

현 상황이 이러하니 꽉 막힌 십선비들도 고민에 빠질 수밖에.

그래서 국경근처에선 은근슬쩍 무역이 진행됐고, 조정은 별수 없이 눈감아 주는 상황이다. 밀무역도, 사무역도, 공무역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형태랄까?

왜와의 무역 상황도 비슷한 처지다.

왜에서 수입하는 필수물품 중엔 구리, 유황, 염료, 향료가 있다.

원래 역사에서 왜관을 둔 이유는 대마도의 유화적 포용정책이자, 조선에 필요한 물품을 수입하기 위해서다. 또한 일본-조선-명으로 이어지는 중계무역을 통해 알음알음 수익을 얻었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역시나 문제가 터졌다.

명이 망하니 조선은 일본산産 대체수입품과 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일본 또한 조선산 수입품이 늘어나고.

대마도는 이걸 빌미로 원래 역사보다 더욱더 조선-일본 사이를 오가며 간을 봤고, 태종은 이게 무척이나 언짢았다. 원정의 이유엔 이것도 있었던 것.

또한 명이 없어진 후 중계무역의 효과가 급감했다.

결국 왜관의 존치이유는 조선에 필요한 물품을 수입하기 위한 창구의 역할만 남았다.

그런데 이젠 단일창구 역할을 하던 대마도가 없네? 어떻게 수입해야 할까? 왜국본토에 직접 가서 해야할까? 아니면 왜국본토에서 왜인을 왜관으로 끌어와야 할까?

이 또한 연오랑이 집어던진 폭탄 중 하나로, 조정에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는 문제다.

“사무역을 하겠다는 건가?”

박홍신은 차마 밀무역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돌려 물었다.

“예. 제가 공을 꽤 세웠지 않습니까? 장사를 하겠다고 하면 겉으론 욕을 해도, 속으론 쌍수를 들고 반기지 않겠습니까?”

“흐음...”

조정에 필요한 물건을 구해다 주는 건 둘째 치고, 이걸 핑계로 연오랑에게 관직을 내리지 않고 한성에서 멀리 보내버릴 지도 모른다.

피에 물든 미친놈을 도성에 놔두기엔 너무 찝찝하니까.

‘설마...!’

박홍신은 갑자기 든 생각에 소름이 확 치솟았다.

이제야 연오랑이 왜 쓸데없이 대마도 원정에 뛰어들었는지 알아차렸다.

‘이놈! 처음부터 원정군을 이용했구나. 공을 세우는 게 목적이 아니었어. 정말로 대마도를 작살내는 게 목표였어!’

불연 듯 떠오른 의심은 이내 곧 확신으로 바뀌었다.

연오랑이 왜구를 싫어해서 원정군에 합류했을까? 아니다. 그는 왜구를 털어서 전리품을 얻고, 자금을 충당하려 했다.

왜인포로를 그대로 데려가서 조선소를 세우고 선원을 키울 생각이다. 거기에, 앞으로 무역상이 될 연오랑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대마도를 박살냈다.

마지막. 연오랑은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면 조정이 껄끄러워할 거라고 예상했고, 그런 심리를 역으로 이용해서 가려운 곳을 긁어줄 효자손이 되려고 한다.

‘이걸 처음부터 다 예상했다고?’

이백여명의 왜구와 대마도주를 한자리에서 베어죽이고, 시건방지게 “한칼~한칼~” 노래를 부르고 다니던 이유가 따로 있었다.

그저 실력을 자랑하려고 이런 잔악무도한 짓을 한 게 아니다.

‘자기가 장사하려고 대마도를 폭사시키는 미친놈일 줄이야!’

연오랑의 행동을 하나부터 열까지 지켜보지 않았으면, 박홍신도 그의 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다. 그만큼 치밀하고 살벌하다.

“자네...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지.”

“흐흐. 역시 투자에 관심을 보이시는 겁니까? 일단 지켜보시지요. 하나하나 만들어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박홍신은 오해 아닌 오해를 하고서, 동상이몽을 꿈꾸며 음흉한 대화를 마무리 했다.

*****

“드디어 왔구나! 오래도 걸렸다. 그치?”

“예. 어르신.”

“옙.”

연오랑은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하동고을을 바라봤다.

왜선 수백척을 이끌고 광양에서 한바탕 난리 아닌 난리를 피우고,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 고향으로 가는 길.

연오랑과 윤현은 반가움에 즐거워했고, 연전위는 아버지의 고향이자 말로만 듣던 하동을 보며 신기해했다.

잡색군? 이들이야 말로 얼굴에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

다행히 한명도 죽지 않았고, 전리품 또한 두둑하게 챙기지 않았나. 아무리 못해도, 짐승가죽 여러개와 대마도 저택에서 고급의자나 탁자 하나쯤은 챙겼다. 그저 기쁠 수밖에.

미리 사람을 보내놔서 일까? 하동인근 고을에서 사람들이 전부 몰려와 포구에서 그들을 마중하고 있다.

“가자! 거제에서 못한 개선식을 여기서 해야지.”

“옙!”

“흐흐!”

포구에 배가 닿자마자, 잡색군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땅에 발을 디뎠고, 하동 전체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미 대승리를 하고 돌아간다고 알리지 않았나. 소 한마리를 잡아서, 아주 그냥 제대로 잔치판을 벌려놓고 주인공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주인공이 드디어 등장했으니 난리가 날 수밖에.

쿵쿵! 의기양양하게 발 맞춰서, 잔칫상을 향해 돌격!

이게 정말 하동의 잡색군이란 말인가!? 전에 보지 못했던 강병의 일사불란한 모습에, 주민들은 연신 박수치며 환호했다.

물론... 저기 한쪽에선 자식이 상놈이 된 걸 보고 주저앉은 양반네들이 보였다. 짐승 가죽을 뒤집어쓰고 흉흉한 왜도를 차고 있는 꼴을 보고 난리가 났지만... 뭐 알아서 하겠지.

연오랑은 잔뜩 흥분한 잡색군을 먼저 보내고서, 포구 한쪽에서 조용히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세상의 주인공이라 자부하는 그가 이러고 있는 이유? 더 급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어르신? 어디 다치신 곳은...?”

어디서 나타났을까? 중년 사내들이 냉큼 달려와선 연오랑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다쳐? 내가?”

“아. 예...”

“흐흐. 아무렴, 왜구 따위가 어르신 털끝하나 건드릴 수나 있겠습니까.”

연오랑의 시건방진 말에 금세 풀이 죽었지만, 다들 이내 곧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그래. 이게 연오랑의 본모습 아닌가. 하나도 변한 게 없어보여서, 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불안감이 사라졌다.

“옷은 가져왔지?”

“예.”

“저기 강가 한쪽에 가서 깨끗하게 씻기고, 가져온 옷을 입혀라. 그래도 잔칫날인데 고기는 먹어야지.”

“옙!”

다들 지게에 뭔가를 잔뜩 싣고 왔는데, 알고 보니 그게 옷인 모양이다.

마을 청년들은 하나가 되어, 왜선에 타고 있던 왜인들을 조용히 하선시켰다. 그리곤 곧장 강 저편으로 데려가서 씻겼고.

연오랑이 항상 “청결.청결.”을 노래 부르고 다니니, 그게 정확히 뭔 뜻인지는 몰라도 다들 익숙해졌으니까.

“항도전, 왕민.”

“예. 어르신.”

연오랑의 부름에 수염을 가지런히 기른 두 사람이 냉큼 고개를 숙였다. 상투를 틀긴 했는데, 옷은 연오랑이 자주 입는 옷. 티셔츠 위에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다.

이들은 귀화한 일본인과 중국인인데, 한때는 왜구였다가 사로잡혀서 연오랑의 부하가 된 인물이다.

그때 연오랑 나이가 열셋이었나? 아무튼 소년도 아닌 애새끼한테 잡혀서 죽도록 처맞고 충성을 맹세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처지가 나쁜 건 절대 아니다.

전 세계 공통적으로, 이 시대는 배타적이기 마련이다.

동네만 넘어가도 모르는 사람 천지인데, 낯선 사람을 배척하고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물론 이곳 하동은 연오랑이 워낙 어릴 때부터 헤집고 다녀서 조금 다르다.

자연스럽게 그의 구역, 속되게 말해서 나와바리로 만들어놔서 개방적이고 자유롭지, 다른 곳은 말도 못한다.

이렇게 된 이유? 21세기에서 온 오만한 연오랑의 눈에 15세기 사람이 성에 차겠는가? 죄다 거기서 거기인 놈들이, 서로 잘난 척 하는 꼴을 두고 볼 리가 없다.

하여 귀화한 이들 입장에선 연오랑이야 말로 꽤나 괜찮은 주인이고, 믿고 따를 만한 사람인거다.

“교과서는 다 만들어놨지?”

“예. 어르신. 말씀하신대로 100부씩 만들었습니다.”

연오랑이 왜어와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게 언제 적이냐. 10년 가까이 됐다. 그는 21세기의 기억을 바탕으로 일본어, 중국어, 몽골어 교재를 만들었고, 그걸 교과서라 부르게 했다.

물론 말이 교과서지. 그냥 “천千단어, 2천단어 암기장.”과 “필수 생활회화 100문장! 200문장!”이런 수준이다.

아무튼 교과서가 뭔 뜻인지는 모르지만, 항왜들은 열심히 연오랑의 말상대를 해주면서 반대로 자기들도 배웠고.

그렇게 몇 년 동안 꾸준히 개량하고 보완하자, 이들은 이제 칼잡이가 아니라 붓쟁이가 됐다.

멀쑥하게 생긴 꼴이, 어딜 봐서 전직 왜구처럼 보일까. 외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자 역관으로 변모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