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챕터9. 보고받다 (2)
“어르신을 뵙습니다. 구서 양가家의 양호변이라 합니다.”
“구서 초가의 초성근입니다.”
“구서 석가의 석조명입니다.”
“구서라...”
연오랑은 소년들의 인사를 받고선 잠깐 생각에 잠겼다.
구서는 하동과 광양의 경계에 있는 고을이 아니라, 오히려 광양과 순천 경계에 위치한 고을이다. 따로 손을 뻗지도 않았는데, 거기까지 영향력이 확대됐네?
“가문 어른들이 별말 없었냐? 분명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어디 감히 천한 장사치가 되려 하냐?’며 난리를 피웠을 텐데?”
“... 그게.”
연오랑이 모두까기를 시전하자, 소년들은 금세 낯빛이 바뀌어 머뭇거렸다.
자기 가문을 까는 건지, 아니면 다른 마을의 양반집을 까는 건지 영 모르겠다. 나아가 뭐라고 답을 해야 옳은 답인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이런 자리에는 어른이 와야 하지 않나? 아무리 가문을 이어받을 자식이라도 이런 애들을 보내는 건 무례 아닌가.
이런 걱정이 맴도니, 소년들은 점점 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갔다.
“오해하지 말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르신들은 몸이 편찮으셔서 저희가 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 이렇게 계약서도 가지고 왔습니다.”
“...”
정신 차린 소년들은 냉큼 종이쪼가리를 꺼내 연오랑에게 건넸다.
“또한 어르신과 하동 가문을 어찌 천한 장사치라 하겠습니까. 어르신과 하동의 가문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똑똑히 봤는데, 그런 불측한 생각을 품은 이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암. 말만 늘어놓는 놈들하고 우린 다르지!”
“옳지! 기업가와 장사치를 어찌 같게 본단 말인가.”
석조명이라는 아이가 똘똘하게 답을 하자, 청년들 모두 상을 때리며 동조했다. 진짜 연오랑에게 세뇌라도 됐는지, 서슴없이 골수 유학자들을 욕하고 있다.
분위기가 달궈지자, 대답을 잘했다고 생각한 모양? 석조명은 재빨리 말을 이어갔다.
이거 어린 녀석이 꽤나 눈치가 있다.
“구서의 여섯집안이 자금을 모아 기업을 설립해 목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양계장엔 닭 이백마리를 일단 키울 예정이고, 말은 대략 사백필, 여유가 되면 지리산을 더 개간해서 소와 염소를 키워볼까 합니다.”
“편하게 해라. 우린 기업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방법에 대해서 도움을 줄 뿐. 선택과 책임은 너희가 지는 거다. 우린 너희 위에서 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 기업내규만 잘 지키면 된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축산기업에서 목자牧子와 수의獸醫를 지원할 건데, 그 일을 배울 사람은 준비했나?”
“예. 목자 30명과 수의 6명을 모았습니다.”
여섯 가문이라더니 딱딱 맞춰서 모았나 보다.
“다른 건 몰라도 수의가 되는 건 의원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니, 가볍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군. 평상시에는 의원을 개똥 취급하다가, 필요할 때면 애걸복걸 목을 맨단 말이지. 그런 꼴을 안 보려면 차라리 문중의 일원이 수의가 되는 게 낫다.”
“예에...”
안 그래도 가문 내에서 ‘어디 공부는 안하고 의원이 되냐!?’라며 반발하던 사람이 있던 터라, 소년들은 살짝 얼굴이 굳어졌다.
연오랑이 말은 저렇게 정중하게 했지만, 결국 가문의 사람 중에서 누군가 수의를 하라고 압박하는 거니까.
“또한 목장과 양계장의 위치를 수원과 가까이 하지 마라. 죄다 돌림병 걸려서 뒤지기 싫으면 말이다. 귀찮다고, 돈이 많이 든다는 핑계로 우리가 알려준 대로 하지 않으면!”
말을 하다가 말고, 연오랑은 뜬금없이 손날을 목에 댔다.
저게 뭔 뜻인지 모를 리가 있나. 소년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뒤지는 게 아니라, 니들이 다 뒤지는 거다. 알았냐?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너는 네가 먹을 물에 짐승 똥오줌을 버리고 싶냐?”
“아... 아닙니다.”
“닭똥은 모아서 퇴비로 쓰면 좋고, 우마의 똥은 잘 말리면 장작 대신 써먹을 수 있다. 그것도 힘들면 그냥 퇴비로 쓰면 되고. 이미 우리가 다 검증했으니까 토 달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괜히 나중에 우리 탓 하지 말고. 알았냐? 너희 집안 어른들께도 똑똑히 전해라.”
“알겠습니다. 어르신.”
까닥까닥. 연오랑이 다시금 손을 흔들자, 소년들은 한숨을 조용히 내쉬고 자리에 앉았다. 이 자리가 그만큼 부담되기 때문이리라.
왜구학살자를 넘어 왜구도살자라 불리는 연오랑이다.
그가 대마도에서 벌인 미친짓은 온 고을에 파다하게 소문났으니 겁먹을 수밖에. 아니다. 그걸 떠나서 지금 이 자리에 온 건, 가문의 미래를 건 도박이다.
경험이 일천한 어린 소년들의 가슴이 벌렁벌렁한 게 당연한 거다.
“사복시 목장의 상황은?”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긴 한데, 저희 쪽이 훨씬 낫습니다. 마릿수도 그렇고 목자들 대우도 그렇고, 말 상태도 그렇습니다.”
청년은 ‘그깟 놈들이 상대나 되겠습니까?’ 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21세기도 그렇지만, 공무원과 민간사업가가 싸우면 경쟁이 되겠냐.
사복시는 조정의 관청으로 우마를 키우고 관리하는 곳이다.
중앙조정에선 사복시 휘하의 관영목장을 전국에 뒀는데, 그 중 하나가 하동 근처에 있었다.
관영목장은 대부분 책임자 한 명과 관노들로 굴러가는데, 조정에서 ‘말 제대로 안 키우면 뒤진다.’ ‘아니 왜 말이 굶어 죽냐. 네가 책임져라.’ ‘말 상태가 왜이래? 더 좋은 거 없어?’ 라고 박박 굴려댔다.
15세기와 21세기 지리산의 영역은 전혀 다르다.
21세기야 산중턱까지 차가 드나들고 사람이 살지만, 지금은 계곡이나 협곡까지 파고들지도 못하고 산언저리에만 겨우 마을이 있는 수준이다.
지리산뿐만 아니라, 조선팔도의 모든 산과 산맥의 개발현황이 다 이런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헌데 연오랑이 수년 동안 온갖 맹수를 때려잡자, 아무리 맛집이라고 소문난 지리산이라도 이쪽으론 내려오지 않았다.
큰 맹수는 어림도 없고, 있어봐야 삵, 여우 정도나 남아 있으려나?
그러니 축산기업은 걱정 없이 산을 파고들어 목장을 건설하고, 마개조된 21세기식 선진 관리,경영법을 배웠다.
이러니 노비를 이용해서 땅이나 붙여먹고 사는 평범한 양반 가문하고는 격차가 확 벌어질 수밖에.
연오랑은 하동과 광양, 구례 인근 가문을 점점 기업으로 변모시켰고, 이는 필연적으로 다른 지역의 양반집안을 흔들었다.
양반체면도 다 버리고, 천한 장사치가 됐다고 놀려댔는데... 어라? 이거 장난이 아닌 거다. 그냥 물건이나 떼어다가 파는 장사치가 아니라, 뭔가 이상한 걸 만들어 내는 이상한 집안이 됐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나이 지극히 먹은 어른들이야 버티겠지만, 젊은 녀석들이 가만히 있을까?
“아니. 쟤들보다 우리가 못한 게 뭔데? 왜 꼰대 소리를 듣고, 시대에 덜떨어진 놈이라고 욕먹어야 되는데? 어차피 촌구석에 박혀서 관직에 오르지도 못할 바엔, 차라리 돈이라도 버는 게 낫지 않아?” 라는 생각을 품게 된 거다.
그 결과. 저 멀리 떨어진 구서마을에서, 사람을 보내 배우러 오게 된 것이다.
“사복시 목장 꼴을 봐라. 밥버러지인 노비를 부리니까 저 꼴이 나는 거다. 우리.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질 수많은 기업은 노비가 아닌 사원으로 운영돼야 옳다.”
“어르신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사원이 훨씬 낫죠.”
“그렇습니다. 돈을 주고 부리는 게, 훨씬 더 싸게 먹히는 거죠.”
15세기조선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을 내뱉고 있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이미 몇 년간 기업을 경영하면서 살펴본 결과.
의욕도 없는 노비보단 차라리 뭐라도 하려고 하는 양민, 천민을 돈 주고 부리는 게 훨씬 효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원래 역사에서 조선 중,후기쯤 되면 잉여인력이 너무 늘어나서 노비 값이 엄청 하락하고,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자발적으로 양민이 노비가 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사찰과 지방호족들을 쥐어짜서 사노비를 왕창 풀어 양민이나 관노로 만들었다.
그 후 태종은 시시때때로 지방세력을 쥐어 패면서 꾸준히 사노비를 해방시켰다.
시절이 이렇다보니, 양반을 제외하곤 노비, 양민, 천민이 죄다 뒤섞여서 법적계급의 구분이 흐릿하고 뒤숭숭한 상태랄까?
거기에 중앙에서 항상 눈치를 주는 터라, 섣불리 노비를 늘릴 수도 없다. 노비에 칼을 쥐어주면 그게 곧 사병이 되는 거니까.
노비가 못된 마음을 먹고 “주인 집안이 역모를 꾸미고 있소!”라고 구라를 치면?
조정에선 “옳다구나! 잘됐다.”라면서 사정없이 두들겨 패고 뜯어냈다. 사실이 밝혀져도 “미안하게 됐는데, 이제 와서 별수 없잖아? 전하께서 하신 일인데, 따지고 들면 곤란하지 않아? 대충 넘어가자고.”라고 발뺌했다.
이러니 지금 당장은 노비값이나 노비의 대우가 과할 수밖에.
나아가 마음가짐에서 노비와 사원은 비교조차 불가고, 이는 곧 생산량으로 이어진다고 연오랑은 주장했다. 그리고 결과로 보여줬지.
물론 이 주장은 조선의 뻔한 양반집안. 내일도 오늘과 똑같기를 바라며, 노비와 소작농을 이용해 경작해서 먹고 사는 집안이면 씨알도 안 먹힐 주장이다.
하지만 한정된 수익만 나오는 농토에서 벗어나, 더 많은 수익을 얻고자하는 이들에겐 노비보다 사원이 더 알맞았다.
물론 이 과정이 결코 쉽진 않았다.
처음에는 다들 노비와 사원의 차이점에 대해서 이해조차 못했으니까. 하지만 일단 돈맛을 보기 시작하면 달라지기 마련이지.
게다가 아무리 노비근성이라는 게 있어도, 누군가에게 부림당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은 시절이 허수상해서, 어제는 양반, 지방호족이었다가 오늘은 양민,노비가 되고, 어제는 양민,노비였다가 갑자기 양반, 지방지주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저 현실적으로 봤을 때. 양민이 된다고 한들, 먹고 살길도 집도 없으니까, 거지로 사느니 노비로 사는 걸 택하는 거지.
이런 이들에게 저이자로 집과 직장을 제공하면, 누가 노비로 살겠냐.
이렇게 한번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면, 주변의 다른 노비들도 다들 분위기에 휩쓸려서 사원이 돼서 양민이 되길 바라는 거다.
이 작업을 무려 10년 동안 차곡차곡 이어왔으니, 연오랑이 얼마나 고심하고 고생했는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어쩌면 이곳이 조정의 시선에서 한참 벗어난 촌구석이라서 가능했을지도 모르고.
“사복시 목장은 항상 유심히 살펴라. 조정에선 관리도 엉망인 관영목장을 운영하느니, 차라리 우리에게 맡기자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흐흐. 목장 입지가 좋긴 하잖냐? 꿀땅은 우리가 먹어야지.”
“헤헤. 옙!”
바톤터치. 청년이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자, 다른 청년이 재깍 일어나 보고서를 내밀었다.
“공작工作기업에서 보고 드립니다.”
“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