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4화 (44/538)

44. 챕터9. 보고받다 (3)

공작기업은 연오랑 마을에 있는 공장을 보다 크게 만든 것이다.

각 마을 혹은 관아에 있는 철장,목장등에게 기술을 배워서, 분업화한 가내수공업 공장이라고 할까?

여기서 일하는 사람만 이백명이 넘어가니 가내수공업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아마 한성 말고는 이렇게 많은 장인이 모여 있는 공장은 없을 걸?

“농기구는 특별한 변동 없이 꾸준히 팔리고 있습니다. 이번에 온 행상들도 싣고 다니기 편한 호미,삽,낫,갈퀴를 구매했습니다. 경기도의 행상 3명이 축산기업에서 말10필을 구매해, 대형농기구를 사갔습니다. 사천과 남해의 관아에선 쟁기 50개를 구매했습니다.”

“씁. 저희가 행장行狀을 발급받아서 직접 팔면, 훨씬 수익이 나올 텐데 말입니다.”

누군가 투덜거리자, 다들 소곤소곤 한마디씩 덧붙였다.

행상은 쉽게 말해 보부상의 전신쯤 보면 된다. 개개인이 물품을 싣고 내다 파는 원초적인 유통상인이다.

행상은 조선건국에 도움을 줬고, 태조는 임방이라는 조직을 만드는 걸 허락했다.

이들은 큰 고을의 관아에서 행장, 또는 노인路引이라는 허가증을 발급 받았는데, 이게 있어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여행 겸 영업허가증이라고 할까?

이는 상인을 억누르는 정책이기도 했고, 호구파악과 치안유지가 편하기 때문이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으면 조사하기도 편하니까.

원래 역사에서 이게 제대로 이뤄졌겠는가. 시간이 흘러 당연히 호적제도가 문란해지고, 유민이 넘쳐흘러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지금은? 애매모호하다. 태종은 강력하게 호패제도를 실시했지만, 온갖 반대와 현실적인 문제에 막혀서 얼마 못 가서 폐지했다.

그럼에도 만들어 놓은 게 있어서, 어중간하게 호적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아무튼 청년들이 짜증내는 이유? 이들은 행장을 받을 수가 없어서 직접 거래가 아니라 관아와 관아를 끼고 이중으로 거래하고 있었다.

아니면 그냥 멀리서 사람이 와서, 원산지에서 직접 사가지고 가는 형태랄까? 이건 아무리 봐도 유통이라고 보기 어렵다.

“확신할 수 없지만, 한성에 가게 되면 그 부분을 해결할 수도 있다. 아니면 많은 기업이 생겨서 목소리를 내면 조정에서도 생각이 바뀌겠지. 일단은 기다려라.”

“예.”

연오랑은 단칼에 녀석들의 불만을 잘라냈다.

누군 짜증이 안 나는 줄 아나. 다만 조정과 한바탕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때를 기다리는 거지.

그의 명성이 점점 퍼진 후에, 그가 달콤한 제안을 하면 충분히 고민할 거다. 호조의 주둥이에 돈을 쏟아 넣겠다는데, 반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소문을 들었는지, 함안과 경주에서 사람이 와서 풍구와 탈곡기 2호를 20개씩 사갔습니다.”

“오? 20개나? 행상이었나?”

“행상은 아니고, 이번 대마도 원정에 참가했던 무관의 집안들이라고 했습니다.”

“흐음...”

연오랑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대마도 원정 결과는 조선 전체를 흔들고 있고, 돌아가는 사정을 아는 이들은 연오랑의 이름 석자를 들어봤을 거다. 이제 특전대가 귀환했으니, 소문은 더욱 퍼질 것이고.

그의 이름을 알아보고, 고향인 하동을 알아보다보면, ‘여기가 조선 땅이 맞는 건가?’하겠지. 그리고는 시대를 뛰어넘는 발명품에 눈이 돌아가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다.

풍구는 곡물에 섞인 쭉정이나 겨를 날려 보내는 장치다.

특별할 게 있나. 선풍기를 원통 속에 넣은 형태랄까? 그냥 큼지막한 원통 안에 회전날개를 달아놓고 손과 발로 밟아서 돌린다.

동시에 위에 난 구멍으로 곡물을 조금씩 집어넣는다. 그러면 무거운 알갱이는 밑으로 떨어지고, 가벼운 쭉정이는 바람에 맞아 밖으로 날아간다.

몇 세기를 뛰어넘는 신문물이니, 당연히 농부들에게 찬사 받는 물건이다.

“새로 만든 달구지와 마차는 아직 하동과 광양에서만 쓰이는데, 이것도 곧 입소문이 날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지.”

거중기와 윈치도 만드는 판국에 달구지나 마차가 어려울까. 오히려 이쪽이 더 전문이다. 21세기 그가 맨날 만지고 놀던 게 경운기와 농기계니까.

재료의 한계로 구현할 수 없는 건 모조리 빼버리고, 그나마 핵심부품과 원리만 장착해도 지금보다 몇 배는 낫다.

“누군가 베낄 게 분명하니, 기업의 문양을 잊지 말고 꼭 찍어라.”

“옙!”

공작기업에서 만든 물건에는 낙관을 찍듯, 달군 인두로 나무를 지져 문양을 박아 넣었다.

21세기로 치면 기업로고 및 브랜드화 과정인데, 조선인도 이 작업이 어색하진 않았다.

이 시대에도 장인들은 자기가 만든 명품에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곤 하니까. 다만 모든 물건에 다 찍어대니, 그게 조금 아까웠을 뿐이다.

헌데 불에 그을려 검게 변한 문양은 생각보다 엄청 고급스럽네? 이렇게 잘 나올 줄은 연오랑도 예상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인두를 만드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냐. 화려하기 짝이 없는 장신구를 찍어내는 연오랑의 공장. 그곳에서도 특상품으로 취급하는 장신구에 쇳덩이를 붙여 인두로 만들었다.

이걸 베낄 정도의 기술력이면, 그냥 장신구를 만들어 팔아먹지 인두로 써먹진 않을 거다.

척. 가볍게 손을 내젓자, 다음 선수 입장.

“농산기업에서 보고 드립니다.”

“오냐.”

“지리산을 개간하며 차밭을 하나 더 늘렸습니다. 수확량은 예년과 다를 바 없고, 내년부터 양이 늘어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보성과 곡성에서 사람을 보낸다고 알려왔습니다.”

“오. 그래?”

연오랑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 시대는 차문화가 쇠퇴했다고 하지 않았나. 하동의 차밭 또한 연오랑의 손길이 닿지 않았으면, 전부 뒤집어엎고 흔한 밭이 되었을 거다.

그는 여기에 종자개량, 분업과 모듈화를 접목시켜, 보다 빠르고 정량화 된 교육,생산,포장방식을 만들었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작업을 21세기식으로 마개조해서 효율성을 높인 것이다.

농산기업은 이렇게 얻은 차를 야금야금 선물의 형식으로 팔아넘겼다. 대놓고 팔기에는 조정의 눈치가 보이니까.

조선이 건국된 지 벌써 삼십년이지만, 바꿔 말하면 이제 고작 삼십년이다. 문화라는 게 그렇게 쉽게 없어지겠냐?

냉정하게 말해서, 먹고 싶은데 못 먹는 거다. 눈치 보지 않고 쉽게 구할 수만 있으면 얼마든지 먹는다.

그리하여 고작 몇년사이에 고려 때보다 더 크게 차밭을 일구게 됐으니, 차밭으로 유명한 보성과 곡성에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좋은 일이다. 우리의 선진재배기술과 선진관리기술을 배우면 보성과 곡성에서도 좋은 성과를 얻을 거다.”

“옙!”

“음. 우리가 왜 경쟁자가 될 보성과 곡성을 도와주는지, 의문과 불만이 있는 사람이 있을 거다.”

“아닙니다. 어르신.”

“어찌 감히!”

연오랑의 말에 다들 화들짝 놀라서 서로를 살폈다. “누가 감히 그런 발칙한 생각을 했나?”하고 찾는 눈빛이다.

“다들 속으로만 생각했겠지, 너희 집안 어른들 중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거고. 하지만 우리의 경쟁자는 다른 고을이나 마을이 아니라 중국과 왜국이다. 백성들은 비싼 차보단 시원한 물, 숭늉, 흔히 구할 수 있는 대용차를 더 좋아하니, 양반 집안이나 돼야 차를 마실 거다. 그럼 이 좁은 조선팔도에서 차를 팔아봐야 얼마나 팔겠냐?”

“...”

“옳은 말씀입니다.”

“결국 우리가 성장하려면 외국에 파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러려면 덩치를 키워야 마땅한 일. 고작 한줌도 안 되는 하동의 차로, 중국과 왜국, 특히나 요동의 차시장을 장악할 수 있겠냐?”

“...”

“음...”

“그러니 안주하지 말고 분발해라. 보성과 곡성에 차기업이 만들어지고 성공하면, 조선팔도 곳곳에 각 지역의 특색에 맞는 차가 재배되고 개발될 거다. 우리는 우리만의 기술을 가르치는 동시에 그들만의 기술을 흡수해 보다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고작 코앞에 있는 이득만 보다가, 먼 곳에 있는 더 큰 이득을 놓치지 마라. 하동을 필두로 해서 조선의 차가! 조선팔도의 수십배나 되는 요동과 중국, 왜국의 차시장을 점령할 거다!”

“옙!”

“내가 반드시 외국과의 교역을 허락받을 테니, 걱정 말고 진행해라.”

“알겠습니다!”

모두는 하나같이 큰소리로 답을 했고, 다음 청년이 재깍 일어나 보고서를 내밀었다.

“건설기업에서 보고 드립니다. 동산마을의 저수지가 드디어 완성됐습니다. 내년부턴 동산,학리,적량마을도 이앙법을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 저수지가 완성됐어? 설마 내가 고작 몇 달 없었는데, 그 사이에 다친 사람이 나온 건 아니겠지?”

“흐흐. 그럴 리가 있겠습니다. 다들 이제 둑과 다리 만드는 일은 이골이 났습니다.”

“좋아. 좋아.”

연오랑은 다시금 박수를 쳤다. 역시나 착착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앙법은 고려 때 이미 들어와서 알음알음 시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직파법에 비해 모내기법이 압도적인 수확량과 노동력 감소 효과가 있으니까.

김매기라고 하지? 잡초를 제거하는 작업 말이다. 이게 농사일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모내기법은 이게 쉬웠다.

느긋하게 논에 나가서, 줄에 어긋나게 삐죽삐죽 튀어나온 잡초를 꾹꾹 밟아서 수장시키면 끝이니까.

만약 직파법이라면 하나하나 벼이삭인지 잡초인지 구분해서 뽑아내야 하는데, 하루 종일 해도 티도 안 난다.

이렇게 좋고 편한데, 쉽게 전파되지 않은 까닭은 물 때문.

한반도의 강수량은 여름에만 집중되고, 봄가을에는 건기와 비슷하지 않나. 만약 가뭄이나 홍수가 나면 그해 농사는 그냥 날아가는 거다.

하여 반드시 사시사철 안정적인 수량 확보가 필수였는데, 이를 위해선 저수지나 보가 필수고 항상 관리해야한다.

문제는 저수지나 보를 쌓는 게 쉬운 일 아니고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

원래 역사에서도 이앙법을 시행하려 하면 “백성들의 고통이 심해서 안 됩니다. 가뭄이나 홍수가 나면 농사 다 망합니다.”이러면서 진행이 지지부진 했다.

백성들? 그치들이야 효과가 나오는지 확신할 수도 없는데, 몇 달을 돈도 안 주면서 요역하라고 하면 누가 하고 싶겠냐. 그냥 하던 대로 쭉 하는 게 편하지.

그렇다면 지금은? 조정에선 강제시행도, 금지도 하지 않았다.

농본주의를 외치는 조선답게, 농업생산량 증가를 위해서 이런저런 방법과 노력을 쏟아 붓고 있는데... 연오랑이 보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일단 돈이 있어야 뭘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냐.

하지만 이들은 해냈다. 그것도 나라나 관의 힘이 아니라, 자신들의 돈으로서!

“너희 집안사람들 중에서도 이 일에 대해 반대하는 이가 있었을 것이다.”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하동에 십선비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걸 내가 봤는데, 잡색군 중에서 정신 못 차린 서생이 있더만.”

“...!”

연오랑이 핀잔을 주자, 청년들은 하나같이 눈에 불을 켜며 한쪽을 노려봤다.

저기 저쪽에서 놀고 있는 잡색군을 살피며, 어느 집안사람이 그런 개소리를 했냐고 찾는 모양새다.

“분명 ‘나라에서도 안하는 일을, 왜 우리가 엄청난 돈을 들여가며 저수지를 짓고 둑을 만들고 보를 짓냐.’며 투덜거렸겠지. 하지만 이게 남 좋으라고 하는 일이냐? 다 너희들 좋으라고 하는 일 아냐? 이번에 둑을 지으면 내년엔 수확량이 두 배는 늘어날 거고, 벼 수확을 끝마치면 보리를 비롯해 다른 겨울작물로 이모작을 할 수 있고, 모내기를 끝마치고 나면 유휴인력으로 하동의 다른 작업을 할 수 있다.”

“...”

“아무것도 안하고 50냥을 버느니, 100냥을 투자해서 200냥,300냥을 뽑아내는 게 더 낫지 않나? 나라에서 하지 않아도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백성을 돌보며 이득을 만들어내는 게, 우리가 꿈꾸고 나아가야할 길이 아니던가? 왜? 우리야 말로 진정한 사대부이자, 기업가니까. 우리는 자본유학자니까!”

“옳소!”

“맞습니다!”

“우리는 기업가!”

“우리는 자본유학자!”

연오랑이 벌떡 일어나 소리치자, 다들 세뇌라도 된 것마냥 하나같이 구호를 외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잔칫상에 모여 있던 많은 주민들은 “쟤들 또 저러는 구나.” 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꽤 많은 주민들은 함께 선동당해서 목청을 높였다.

솔직히 연오랑의 저 개소리를 듣는 건 꽤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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