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46화 (46/538)

46. 챕터9. 보고받다 (5)

조선을 개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종이 죽고, 연오랑이 죽고 나서도, 조선이 향상성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성리학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후에 사림세력이 등장해서 교조화된 성리학이 조선을 완전히 집어삼키는 일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조선건국의 대의명분이자 국가기조인 성리학을 없앨 수는 없는 노릇.

지울 수 없다면 변질 시키는 수밖에.

유학이 유교로 변하기 전에 신성성神聖性을 날려버린다.

범접할 수 없고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아니라, 씹고 뜯고 맛볼 수 있는 학문의 하나로 만들면 된다.

하여 긴 고민한 끝에 나온 게 바로 자본유학이다.

운석핵꿀밤이 아니었다면,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계획인데... 이는 혼란한 조선상황과 맞물려 있었다.

원래 역사에선, 홍무제와 태조 때에 “아. 명나라 깡패새끼들. 상국대접을 해주니까 우리가 진짜 꼬붕인 줄 아네? 한판 붙을까? 엉?” 이러면서 으르렁 거렸다.

무려 요동정벌을 하네 마네. 했으니까.

이 살벌한 신경전이 왕자의 난과 홍무제의 사망으로 흐지부지 무산된 게 고작 십여년 전의 일이다.

이 시대는 유교 탈레반 십선비가 아니라, 음... 성리학 오선비 정도 되려나?

거기에 이상론의 끝판왕인 정도전 계열과 현실론의 끝판왕인 태종 계열의 유학자가 공존했다. 조선 성리학의 기조와 계보가 통일되고 잘 정리된 시대가 아니라는 거지.

지금의 조선은 어떨까? 아주 재밌게 돌아가고 있다.

황제를 달리 천자天子라 부른다.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

단순히 나라의 통치자를 넘어서서. 뭐랄까. 하늘이라는 신 비스므리한 존재의 “선택을 받은 자.”라는 거다.

이러니까 황제가 등극하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그러지. 서양의 왕권신수설과 비슷하다.

그런데 남경폭파 운석핵꿀밤이 떨어졌다.

이건 단순히 내전 중이던 나라에서, “누가 황제가 되냐? 마냐?”의 문제를 아득히 뛰어 넘었다.

가뭄이 들고, 홍수가 나도, 번개만 떨어져도 “천명이네, 하늘이 노했네 어쩌네.” 이러면서, 미신이 횡행하는 시대 아닌가?

그런데 하늘의 아들인 황제에게, 아버지인 하늘이 벌을 내렸다.

다른 자연재해라면 모를까. 운석은 너무나도 명확하고, 상징성이 뚜렷한 재앙이다.

가히 하늘의 벌. 천벌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지.

찬란하고 위대했던 남경이 개미새끼 한 마리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됐고, 무려 백수십만명을 한방에 날려버린 초특급 천벌이다.

“명나라 저거 문제 있던 거 아냐? 그게 아니면 천벌이 떨어질 리가 없잖아? 에라이. 저 빌어먹을 명나라가 문제였던 거지.”

이런 반응이 동아시아 전체를 뒤흔들었다.

한발 더 나아간다.

“아니. 명나라가 문제라면 주씨들만 벼락 맞아서 죽으면 되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큰 천벌을 내렸지? 단순히 주씨가 문제가 아니라, 더 큰 문제가 있던 거 아냐? 명나라의 문화와 사상, 체제가 하늘의 뜻을 잘못 이해한 거 아닐까?”하는 의문이 퍼져나갔다.

황제와 왕의 존재이자 명분이 되는 천명사상 또한 유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이는 곧 성리학에 대한 의문으로 번졌다.

이윽고 망둥이 꼴뚜기가 날뛰듯 온갖 사기꾼, 철학자, 사상가들이 튀어나와 백가쟁명百家爭鳴 시즌2를 찍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난 왕조 때는 주류학문으로 지내다가, 명이 들어서면서 성리학에게 밀려났던 비주류 학문이 한자리 해보려는 걸지도 모르고.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다.

탁상공론이자 안주거리로 남았을 백가쟁명 시즌2를 이용해서 한몫 잡아보려는 야심가들이 등장했다.

사상가들을 이용해서 야심가들은 대권에 대한 명분을 만들고, 욕망을 품고,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으니... 중국은 춘추전국시대 시즌2를 시작한 거지.

이 불길은 조선에도 옮겨 붙었다.

운석핵꿀밤이 떨어진 건 태종 2년 때의 일. 아직 명에 대한 적개심이 가시지 않은 시절.

조선은 “명나라 개새끼들. 본때를 보여주고 싶지만, 일단 우리가 바쁘니까 넘어간다. 내가 쫄아서 이러는 건 아니고...”이러면서 눈치만 슬슬 보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거슬리던 명나라가 폭삭 망했다.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속이 시원했지만, 뒤에 몰려온 후폭풍이 조선을 강타했다.

“명나라가 망한 건 하늘의 뜻. 그러니 명을 더 이상 상국으로 여길 수 없다.”라고 외치는 건 공통의견이다.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춘추전국시대 시즌2가 벌어졌는데, 누굴 상국으로 모셔?

중국은 하나일 때 무서운 거지, 잘게 쪼개져 조선과 체급이 비슷하면 하나도 안 무섭다.

이 다음이 문제다. 백가쟁명 시즌2가 열렸는데, 조선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마냥, 조선 유학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자립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의 올바른 뜻을 찾아 명나라가 따랐던 법과 체계를 버리고, 다른 체계를 찾아야 한다! 조선만의 문화와 국가체계를 완성해야 한다.” 라고 외치는 전면개혁파도 있고,

“아니. 그건 조금 너무 갔잖아. 그럼 우리는 대체 뭘 국가기조로 삼자고? 고려가 불교 때문에 망했는데, 이제 와서 그걸 다시 따르자고? 일단 좀 고민해 보자고.” 이러는 진보중도파도 있고.

“명나라가 망한 건데, 성리학 배제까지 가는 건 너무 나간 거 아냐? 일단 지금 체제 그대로 유지해서 가보자고. 명나라가 망한 거지, 중국이 망한 건 아니지 않나?” 이러는 보수중도파도 있고.

“시부래. 천명을 잃어버렸는데 이러고 있을 때냐? 불씨든 뭐든 우리는 그냥 우리 뜻대로 하는 게 낫지 않겠어? 닥치는 대로 흡수해서 우리만의 사상을 만들자!” 라는 흡수자주파도 있고.

“이제 제대로 남은 문명국은 우리 조선 하나 뿐이다! 진정한 중화는 우리이며, 중화의 모든 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유학! 더 많은 유학! 유학만이 살 길이다!”

이러면서 시대를 역행하는... 아니. 시대를 초월하는 변형 소중화파도 생겨났다.

자본유학이 유학ver.5라면 성리학은 유학ver.4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ver4.0부터 ver4.9까지 생겨난 거지.

스펙트럼의 범위가 너무 넓어져서, 양극단의 주장은 21세기에 봐도 “이게 성리학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막 나는 경우도 있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태종과 세종 또한 유학자로서, 이 여파에 휩쓸렸다는 거다.

이 사상대립이 전면으로 등장한 건, 바로 연호의 문제였다.

원래 역사에서 조선은 명의 연호를 썼다. 년도를 쓸 때 홍무 몇년, 영락 몇년. 이런 식으로 썼단 말씀.

그런데 명이 없다. 조선은 어떤 연호를 써야할까.

이건 대충 뭉개고 미룰 수 없다. 당장 내년이 되면 조정이 올스탑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니까.

독자적인 연호를 써볼까? 하지만 연호라는 건 황제국만 쓰는 거다. 그럼 조선이 황제국이 된다는 뜻과 동일.

“아. 그건 좀 부담스럽지 않나?”하는 의견이 대두됐다.

나중에 중국에서 새로운 왕조가 등장하면 “감히 독자적인 연호를 써? 네가 황제국이냐? 뒤질래?” 이러면서 시비 걸 게 분명하다.

그때 가서 수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거고.

중국 연호에 보조하여 사용하던 '갑자', '을축' 등의 간지干支를 쓸까?

“60년마다 간지가 반복되는데 어떻게 하려고?”라는 반문이 나왔고.

“태조 원년, 정조 15년, 금상今上 5년.” 등의 재위在位 연도를 쓸까?

“죄다 금상이면 어떻게 구별 하냐? 묘호는 죽은 다음에 받는 건데 재위 동안에는 뭐로 쓰냐? 그게 연호랑 뭐가 다르냐?”라는 반문이 나왔다.

뭘 선택해도 애매했고, 앞으로 조선의 정체성을 가르는 일이라서 논란이 많았다.

결론은 무미건조하고 간단명료한 “조선개국 몇 년.”이라고 쓰다가 이것도 줄여서 “조선 몇 년”으로 쓰게 됐다.

이 일로 인해 조선사상계가 서로 불만과 불복을 품고, 분열과 분화가 더욱 심화됐다.

또한.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사건은 실상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상국. 중국을 무조건 따르지 않겠다는 조정의 선언이나 마찬가지였고, 이로서 조선은 이른바 자주화에 눈을 뜨게 됐으니까.

이래서 연오랑의 10년대계가 성공할 수 있었다.

원래 역사와 다르게 조정은 매우 분열했고, 태종의 중앙집권화도 질질 끌리고 있다. 하동에서 벌어진 일은 그간 자주화라는 이름으로 벌어졌던 온갖 사건에 비하면 사소한 수준이다.

이내 곧 다음 후폭풍이 들이닥쳤다.

이른바 대명률의 문제다. 말 그대로 명나라의 법. 조선의 법은 대명률에 기초를 두고 만들어진 게 많았다.

그런데 천명을 잃어버린 망국의 법을 우리가 따라야 할까?

문제는 대명률 또한 유학에 뿌리를 뒀으니, 대명률을 거부하는 건 유학을 거부하는 꼴이다. 그렇다고 천명을 무시하는 것도 유학을 무시하는 거고.

하여 또 다시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삼한시대, 고려 때의 법을 되찾자.” “대명률에서 쓸만한 것만 뽑아내자.” “그딴 법을 왜 따르냐.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한다.” “관습법을 체계화시키자.” “우리야 말로 진정한 문명국이니 더욱더 대명률을 따라야 한다.”등등.

이 문제는 너무도 얽혀 있는 부분이 많아서, 십여년이 훌쩍 넘은 아직까지도 조선법의 개정, 폐지, 신설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정도전이 만든 경제육전은 더 이상 경제육전이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주석이 덕지덕지 붙거나, 구멍이 뻥뻥 뚫린 괴상한 법이 되어가고 있다.

아무도 모르지만, 원래 역사를 아는 연오랑은 식겁했다.

오백년 조선왕조를 지탱할 경국대전은 이미 날아갔다.

엉망진창인 경제육전을 대신해서, 훨씬 이른 세종 대에 경국대전mk2 초판본이 준비되고 있으니까.

이렇듯 외부의 위협을 받진 않았지만, 내부에선 학자, 선비, 관료들 사이에서 온갖 사상이 다 튀어나와 조선이 개판이 된 거지.

이 사상적 혼란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데, 문제는 이에 대한 명확하고 시원한 해답이 없다는 거다.

모범이자 사례가 될 중국은 조선보다 더 복잡하니까, 거긴 쳐다볼 필요도 없다.

그런데. 몇해전부터 새로운 이론이 변두리에서 떠돌기 시작했다.

성리학인 것 같은데, 또 성리학은 아닌 것 같은 괴상한 학문.

소수학설에 불과하지만, 연오랑의 개소리 모음집인 조선유학, 자본유학이 이 난장판에 끼어든 것이다.

과연 중앙조정에선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연오랑은 혹시나 싶어서 중앙조정이 이 일에 신경 쓰지 못하게 폭탄을 떨어뜨렸다. 대마도 초토화 작전과 거지떼 폭탄이다.

박홍신의 예측은 절반만 맞았다.

대마도를 날려서 그가 해외무역권을 독점할 계획을 세운 건 맞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목적은, 안 그래도 어지러운 중앙조정의 눈이 집중되지 못하게 조선을 계속 흔들어놓으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하동에서 해왔던 작업을 조선팔도에 퍼트릴 생각이니까.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까... 잘 되려나?”

‘적어도 무조건 배척하진 않겠지.’

완충을 위해서, 그가 연오랑의 이름이 붙은 온갖 것을 퍼줬다.

세종의 아이돌그룹 멤버에게 은근히 사상을 전파하고, 그의 복심을 알려줬다.

특전대에 속했던 중앙군 12사 소속 무관들.

이들은 지방, 한성의 양반가문 아니면, 최소한 부유한 양민출신이다. 그들은 연오랑의 실력을 봤고, 도움을 받았으니 어지간하면 그의 편이 되지 않을까?

연오랑이 사상은 조금 과격, 괴상해도 적어도 왕실에 충성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인물로 보지 않을까?

태종과 세종 또한 원래 역사와 다른, 무작정 성리학에 매몰된 유학자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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