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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54화 (54/538)

54. 챕터10. 정리하다 (1)

아무튼. 임방에서 한바탕한 연오랑은 거침없이 말을 몰아 고령읍성으로 나아갔다.

조선에도 평지성이 꽤 있다. 맨날 산성에서 싸운 역사만 알려져서 그렇지, 평지에도 고을을 둘러싼 성벽이 존재했다.

다만 여기 고령은 그리 중요한 고을이 아닌 터라, 성벽이라고 해봐야 한 3,4미터나 될까?

성벽의 본래 역할보다는 그냥 경계선의 역할이 더 큰 것 같다. 관리도 안 해서 상태가 영 좋지 않고.

그러니 저기 저 앞에서, 포졸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난리를 피우고 있지.

무장한 기마대가 등장하니, 지들끼리 난리가 난 모양이다.

“쯧쯧. 정말 조선의 미래가 암담하네. 얼마 전에 대마도원정을 갔다 온 게 맞아? 군기가 저래서야 쓰겠냐? 야. 십선비. 어떻게 생각 하냐?”

“...”

‘아니. 내가 고령현감도 아닌데, 왜 또 나한테 그래!’라고 속으로 쌍욕을 내지르곤, 김숙자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 미친놈을 이해하는 건 포기했으니까.

김숙자는 화전민에게 어사임을 밝히고 나서부터 불길했다. 그런데 당장 들이쳐서 양반 자제들을 죄인마냥 때려잡아?

“아. 나는 하동과 연오랑을 조사하러왔지. 고령을 조사하러 온 게 아닌데?”라는 말은 감히 꺼내지도 못했다.

나중에 알려지면 결국 김숙자 자신에게 처벌이 내려질 텐데... 당장 연오랑의 칼이 더 무서워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오랑은 시도 때도 없이 죄다 김숙자 탓을 하고 있으니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

‘아니지. 저 똑똑한 미친놈이 모를 리가 있나. 알면서도 나를 괴롭히는 게 분명하다!’

김숙자는 그리 결론 내렸지만... 달라질 게 있나.

그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 마냥, 질질 끌려갔다.

“누... 누구요?”

“누구요? 이 자식이 뒤질라고. 나는 연오랑이다. 대마도. 알지? 그리고 이쪽은 어사다.”

“오옷!”

“예... 에엑!?”

연오랑이라는 말에 다들 눈이 동그래져서 감탄과 환성을 내질렀다가, 어사라는 말에 하나같이 사색이 되어 발을 동동 굴렀다.

연오랑 일행은 딱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그 누구도 신분을 확인할 깜냥 따윈 없었다.

“현청으로 안내해라.”

“예? 그게...”

그래도 나름 포졸 중 선임이라도 되는 걸까?

포졸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던 사내가 ‘이래도 되나?’ 싶은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렸다.

하지만 뭐... 별수 있나. 연오랑이 무심하게 장도로 툭툭 때리자, 결국 안내하고 말았다.

일행이 척척 나아가자, 마을 주민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지금은 추수 전이라, 딱히 할 일이 없는지 모여서 노닥거렸던 모양이다.

이런 촌구석에 재밌고 신나는 일이 뭐가 있겠냐.

딱 봐도 뭔가 심상치 않고 수상쩍은 무리가 나타나니, 모두는 “이건 또 무슨 일이람?”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관아로 나아가는 행렬은 점점 많아졌고, 관아를 지키던 포졸들은 “혹시 민란이라도 났나?”하는 생각에 고함을 지르고, 무기를 챙기고 난리도 아니다.

“흐음.”

물론 그 모습을 보며 연오랑은 혀를 찼지.

아무리 천하태평한 내륙이라지만, 군기가 빠져도 너무 빠진 게 아닌가.

‘아니다. 차라리 잘 됐네.’

고령은 기업만 설립하고 가려고 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개조시켜야겠다.

‘성주를 노리는 시기가 더 빨라지려나?’

고령 바로 위에 성주가 있고, 성주는 이곳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번화하고 큰 고을이다.

애초에 여긴 고령현이고 성주는 성주목이니까.

당연히 조정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고, 덩치 큰 양반집안도 많아서, 본격적으로 건들기엔 부담이 너무 컸다.

해서 고령을 시작으로 주변 고을을 먼저 개발시키고 성주에 마수를 끼칠 계획이었는데... 시기가 빨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아가다보니, 어느새 현청 앞에 도착.

“머... 멈춰라...요?”

“닥쳐. 인마. 가서 현감이나 불러와.”

연오랑은 겁도 없이 앞을 가로막은 포졸에게 “왁!”내질렀고, 포졸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러면서 연오랑 주변에 있는 청년들을 살피더니... 결국 줄행랑을 치는 게 아닌가.

하긴.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외모에, 생경한 복장에, 칼이니 활이니 하는 걸 차고 있으니 겁을 먹을 수밖에.

억지로 함께 온 선임 포졸은 연오랑의 눈치를 살피다가 냉큼 현청으로 달려 들어갔다.

아마 사정을 알리려는 모양인데... 연오랑이 더 빨랐다.

쿵쾅! 거칠게 문을 열고 휘적휘적 나아간다. 물론 옆엔 김숙자가 질질 끌려왔고.

“어사라고!?”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처자다가 나온 걸까?

입가에 흐른 침을 닦지도 못한 현감은 선임 포졸의 말에 화들짝 놀라 뛰쳐나오고 있었다.

어사가 웬 말인가? 왜인포로 때문에 이미 중앙에서 보낸 관리가 한차례 왔다갔다. 잘 대접해서 쓱싹하고 넘어갔는데, 왜 또 어사가 온단 말인가?

현감은 당혹을 감추지 못하고 허둥지둥 달려왔다.

거참. 클리셰를 벗어나질 못한다. 왜 꼭 부패하고 타락한 관리는 예상을 벗어나지 못할까?

바로 코앞에 탈주노비들이 화전을 일구고 살고 있는데, 그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정말 무능의 극치 아닌가.

‘하긴 예상을 벗어날 정도면 진짜 음흉한 악당이거나, 애초에 이런 짓을 안 저질렀겠지.’

연오랑은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과연 나는 어느 쪽일까?’라고 잠깐 생각했다가 비워냈다.

“십선비야.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알아서 할 테니까.”

“...”

김숙자는 말에서 내린 연오랑의 귓속말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연오랑을 따라 힘없이 따라왔다.

이윽고 대충 옷을 챙겨 입은 현감 앞에 도착한 두 사람.

“어...사 맞소?”

현감은 덩치 큰 연오랑을 보며 놀라서 말을 더듬거렸다.

어째 어사라는 말에 놀라서, 연오랑의 이름은 잊어버린 모양이다.

“어사 맞소? 능력도 없는 놈이 눈치도 없네. 봉서와 마패를 보여줘라.”

연오랑은 한껏 비웃었고, 김숙자는 품속에서 주섬주섬 봉서와 마패를 꺼냈다.

“감히...”

뜬금없이 욕을 처먹은 현감은 얼굴이 붉어져선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렇게 바짝 다가와서 확인하려는 찰나. 연오랑은 은근슬쩍 김숙자의 발을 걸었다.

“어억.”

“흐엑...”

봉서와 마패는 확인도 하기 전에 하늘로 떠올랐고, 현감은 앞으로 꼬꾸라지는 김숙자와 함께 땅을 뒹굴었다.

두 사람이 흙먼지를 뒤집어쓰기 무섭게 터진 우렁찬 음성.

“감히 어사를 공격하다니! 현감이 미쳤구나. 역도다! 뭐하느냐! 어서 향리들을 붙잡아라!”

“옙!”

“알겠습니다!”

연오랑은 어느새 장도를 뽑아들고 외쳤고, 기업가 청년들은 하나같이 큰 목소리로 외치고선 현청으로 쳐들어갔다.

앞을 막는 사람은 거침없이 칼집으로 두들기고 발로 걷어찼다.

포졸들은 “역도.”라는 말에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렸다. 그런데 역도라면서 왜 향리를 잡으러 가고, 현청을 뒤지려 할까?

뭔가 수상쩍긴 한데...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연오랑”이니, “왜구도살자.”니, “소년장군.”이니 하는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들려왔다.

이 정체 모를 거한이, 소문만 무성한 그 “연오랑.”이라는 걸 이제야 알아차렸다.

포졸들의 착각은 살을 붙여서 공상으로 뻗어나간다.

그 유명한 연오랑이 어사와 같이 왔다. 이게 모두 진짜라면? ‘까불다간 우린 다 죽겠구나!’라는 결론에 도달.

포졸들은 쥐고 있던 육모방망이를 냉큼 내던지고선,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넙죽 무릎을 꿇었다.

“너희가 현감보다 낫구나. 눈치는 있네. 봐라.”

연오랑은 피식 웃으며 마패를 포졸들 눈앞에서 흔들어댔다.

마패를 포졸들이 언제 봤겠냐만, 소문으로만 들었던 모습과 똑같지 않은가.

“휴우...”

“흐헙!”

역시나 자신들이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흰 가서 마을 밖에 구덩이를 파라. 스무개 정도. 사람이 푹 누울 정도로 깊고 길게 파라. 알았냐?”

“예...?”

뜬금없이 땅을 파라고 하니, 뭔 대답을 해야할까. 다들 영문을 몰라 머뭇거렸다.

다만 장도로 허벅지를 툭툭 때리며 대답을 종용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속으로 ‘설마 무덤을 파라는 건가?’라는 추측에, 자기도 모르게 부르르 떨면서.

그렇게 포졸들을 모두 내보내고, 연오랑은 현감의 목덜미를 쥐고 한손으로 들어올렸다.

힘도 좋지. 무릎을 조금도 굽히지 않고 허리힘만으로 그냥 끌어올린다.

“켁켁...”

“봐라. 인마. 넌 이제 뒤진 목숨이야.”

연오랑은 마패를 현감의 코앞에 들이밀고선, 봉서를 펼쳐 이리저리 흔들었다.

봉서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적혀 있지만, 지금 현감의 눈에 그런 게 들어오겠는가. 그저 봉서 끝에 찍힌 어인御印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대체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는 물음이 현감의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에 낯빛이 썩어 들어갔다.

“워매. 저거 봉춘이 아녀?” “길숙네도 있네?” “아이고. 오장네!” “다들 잘 살아 있던 거여?”라는 마을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허업!”

저 사람들이 누군지 모를 리가 있나. 노비의 단체 탈주 사건으로 인해 현감도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 탈주노비들이 어사와 함께 들이닥쳤으니, 눈앞에 캄캄해질 수밖에.

그랬다. 드디어 화전민도 관청에 도착한 것이다. 그 뿐일까.

“으억!” “흐헙!” “네놈들이 어디서!” “이 죽일 놈들!”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며 쌍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겁을 먹었다가 연오랑 일행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해진 화전민들. 평소엔 노비들을 사람 취급도 안하다가 이젠 자기가 노비 신세가 되기 직전인 네 집안의 사람들.

처지가 뒤바뀐 두 무리가 딱 맞춰서 도착했다.

“어르신. 데려왔습니다.”

“오냐. 가장들 빼고 나머지는 전부 옥에 처넣어.”

“옙!”

거침없는 명령에 끌려온 사람들이 죽네 사네 울부짖었지만, 누구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쫙쫙쫙! 오히려 시원하게 싸대기를 한방씩 날려주니, 조심스럽게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이 환호를 내지르는 게 아닌가.

이놈들은 정말로 탐욕스럽게 마을주민을 뜯어 먹은 모양이다.

“끄응...”

“헙... 좁아.”

촌구석 옥이 커봐야 얼마나 크겠는가. 네 집안사람들은 콩나물시루마냥 좁은 옥에 다닥다닥 붙어서 자리했다.

“나라꼴이 어찌되려고. 쯧쯧.”

연오랑은 혀를 차며, 앞에 있는 현감도 걷어찼다.

데굴데굴 굴러가 “어이쿠. 나 죽네.”라는 비명이 터졌지만, 누구도 현감을 도와주지 못했다.

어느새 끌려온 향리들 또한 살벌하게 얻어맞았는지, 다들 다리를 절고 있었으니까.

“십선비야. 이제 뭘 해야겠냐.”

“... 조사를 해야겠지요. 제대로 말입니다.”

땅을 굴렀던 김숙자는 흙먼지를 털지도 못하고, 눈을 질끈 감고 답했다.

‘망했다!’

정말 제대로 망했다. 사기를 거창하게 쳐서 현감과 호족, 양반들을 두들겨 패고 잡아왔다.

이제 이 일을 덮으려면, 진짜 어사처럼 움직여야 한다.

월권을 행한 건, 이 일을 잘 해결해서 어떻게든 무마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 사람을 붙여주마. 탈탈 털어봐라. 너도 화전민에게 이야기를 들어서 알지? 일단 족치고 털어라.”

“그... 그런데...?”

“뭐.”

“설마 막 죽이고 그러는 건...?”

“이 자식이 날 무슨 무법자로 아네. 사람들이 이렇게 보는 앞에서는 안 죽여. 인마.”

무법자가 맞으면서, 이건 또 뭔 개소리인가.

“...”

“...”

말도 안 되는 광경에 기겁해서, 입도 다물지 못하고 있던 양원경. 어쩌다보니 사기꾼이 되어버린 김숙자.

둘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얼빠짐도 잠시.

‘보는 앞에서 안 죽인다는 말은... 설마? 안 보이는 곳에서 죽인다는 건가?’

지금까지 연오랑의 행적을 떠올리자, 김숙자는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아... 내가 대체 왜!?’

그리고 다시금 자신의 처지에 낙담했다.

이 미친놈의 마수에서 빠져나오는 건,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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