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62화 (62/538)

62. 챕터11. 사냥가다 (2)

“어때? 괜찮지?”

“이런 귀한 것을...”

“귀한 거 아니다. 아니다. 귀한 건가? 아무튼 그냥 먹어라.”

연오랑은 다시마 양식을 실험하던 기억을 떠올리자, 또 다시 뒷골이 당겨 애써 고개를 내저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거다. 개고생도 그런 개고생이 따로 없었다.

옆에 굽던 토끼고기에는 소금을 아낌없이 뿌려댔다.

“헙!”

물론 녀석의 눈은 빠질 만큼 커다래져서, 돌판에 구워지는 소금이 아까워 손으로 찍어먹으려 했다.

“거지도 아니고 뭐하는 짓이냐. 그게.”

연오랑은 가볍게 핀잔을 날려주고선, 익어가는 고기를 척척 뒤집으며 돌판에 붙은 소금을 싹싹 긁어냈다.

“이 비싼 걸!”

“안 비싸다니까?”

“...!?”

살짝 비웃는 듯한 단호한 대답에 녀석은 손이 딱 멈췄다.

연오랑이 정말 엄청난 부자인 걸 직감했는지, 이번엔 눈에 느낌표가 떠오르는 게 보였다.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겠지. 딱 봐도 지체 높은 양반에, 칼잡이처럼 보이는데 엄청난 부자네? 이건 대체 뭔 조합이야?

하지만 정말로 이 소금은 안 비쌌다. 천일염이니까.

천일염. 15세기에는 당연히 없는 소금제조법.

연오랑이 청어절임이나 도자기보다, 엄청난 떼돈을 벌게 해줄 천일염제조법을 그냥 내버려 뒀을까? 아니지. 당연히 손을 써야지.

게임 미디블워에서는 “천일염제조법” 업그레이드를 하면 수익이 몇배는 뻥튀기 된다.

게다가 21세기의 천일염은 이런저런 말이 많지 않나. 21세기 그가 천일염에 대해서 알아보는 건 당연한 수순이지.

결정적으로 천일염제조는 어렵지 않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갯벌을 찾아서 둑을 만들고, 층층이 이어지는 함수저장소를 이어 만든다.

바닷물을 말리고 조리고를 반복하면서, 점점 위쪽의 저장소로 소금이 농축된 함수를 옮긴다.

그리곤? 마지막 저장소에서 소금결정이 만들어져서 눈꽃처럼 피어나면, 그걸 긁어서 그늘진 창고에 모아둔다.

그렇게 내버려두면 쓴맛이 담긴 간수가 빠지면서 점점 괜찮은 소금으로 변하는 거지.

시간을 줄이려면 천일염을 가볍게 구우면 되고.

이런 염전을 만드는데 필요한 기술은 이미 다 준비되어 있다.

인력? 건설기업, 수산기업의 사원만으로 충분하다.

둑? 건설기업은 농지정리와 이앙법을 위해 저수지와 둑을 여러개 만들었다.

함수를 퍼 올리는데 필요한 수차? 풍차도 만드는 판국에, 고작해야 발로 밟아서 퍼 올리는 수차가 어렵겠냐. 이건 이미 논에다가 물을 대기위해 써먹고 있다.

바닥에 까는 판? 가마를 만들면서 이것저것 다 구웠잖아. 그 때 구워서 만들었던 물건 중에 전돌이 있다.

21세기의 넓적한 보도블럭처럼, 전돌은 애초에 바닥에 까는 포장용 벽돌 아닌가. 그걸 조금만 개량하고 크기를 늘리면 염전바닥에 까는 전돌이 되는 거지.

물론 기반이 다 준비되었다고 해도, 실제로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하지만 불변의 진리가 있지. 공돌이+자본+시간만 있으면 뭐든 해결되는 법.

결국 염전도 성공해 천일염을 뽑아냈다.

다만 소금은 사회, 정치적인 문제와 엮여 있어서 대규모로 만들 수가 없다.

해서 소규모로 만들어서 하동,구례,광양 내부에서만 소비했다. 돈 벌려고 만든 게 아니라, 최적의 효율과 방식을 찾기 위한 실험장 느낌으로 말이다.

이건 그냥 기업에게 풀기엔 너무 큰 건 아니냐?

나중에 제대로 건수를 잡아서 뽑아먹으려고, 꽁꽁 숨겨놓은 사업아이템이라 이거지.

아무튼 토끼소금구이는 노린내가 나긴 했지만 생각보다 먹을 만 했다.

참고 먹어야지. 별 수 있나. 이 시대는 21세기처럼 사료를 가려가며 품종개량을 통해 완성된 가축이 아니라서, 어지간한 육고기는 죄다 노린내가 난다.

식사를 모두 끝마치고 나서, 연오랑은 손수 차를 끓였다. 이 무식한 놈들이 차를 끓일 수나 알겠냐.

사실 21세기 그는 차에 관심도 없었지만, 이 시대에 태어난 후론 바뀌었다.

양치도 제대로 못하니 차라도 마셔야지. 어쩔 수 없다.

“컥...”

생전 처음 먹어보는 차에 녀석은 입안이 타올라 도로 내뱉었다. 그 뜨거운 걸 무식하게 처넣고 있냐.

연전위는 ‘이게 이렇게 먹는 게 맞는 건가?’라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연오랑이 하는 짓을 따라하고 있다.

덩치에 안 어울리게 호로록호로록 소리 내며 조심조심 삼켰다.

“크음.”

멋쩍은 모양인지, 녀석은 눈치를 살피며 둘을 따라했다.

그렇게 뜬금없는 망중한을 즐겨 본다.

연오랑이야 당연히 느긋했고, 연전위는 고민했으며, 녀석은 고민을 넘어 의문에 빠졌다.

의문은 해소해 줘야지. 연오랑은 한방에 녀석을 무너뜨렸다.

“연정백의 아들 연조운 맞냐? 연오진 장군 밑에서 있었고, 경상도 하동현의 연씨 가문에서 가죽 다루는 방법을 배웠을 텐데? 사냥꾼이 됐을 줄은 몰랐군.”

“...!?”

“어... 아하!”

연조운이라 불린 녀석은 눈이 빠질 것마냥 커져서 입을 쩍 벌렸고, 연전위는 그제야 연오랑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이해하고서 탄성을 내질렀다.

어디서 들어본 질문 아닌가? 복사, 붙여넣기를 한 것 마냥 똑같은 물음이다.

그랬다. 21세기 그가 생성한 또 한명의 전설장수. 연조운이 이 촌구석에 짱박혀 있었다.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걸? 난 연오랑이다. 내 아버님이 연오진이지.”

“... 어르신!?”

‘뭐야. 너도 어르신이냐?’

연조운은 껄렁한 모습을 재깍 집어던졌다. 벌떡 일어나더니 연오랑에게 오체투지를 하듯 머리를 처박았다.

“일어나. 인마. 우리 사이에 뭐하는 짓이냐.”

연오랑은 성큼 몸을 날려 녀석을 일으키고선, 바지에 잔뜩 묻은 흙을 털어줬다.

어째 이것만으로도 감격을 한 모양인지, 이 녀석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앉아라. 네 이야기를 들어보자. 잘 살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여기서 혼자 뭐하고 있는 거냐?”

“크... 크으음.”

녀석은 연오랑의 따스함에 녹아내리기라도 한 듯, 목이 메어 제대로 답을 못했다.

‘뭐야. 이거 너무 격한 반응인데? 또 뭐가 꼬였나?’

연오랑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녀석의 어깨를 다독여줬다.

덩치도 산만한 녀석이 울음을 참으며 들썩거리니... 이것 참 뭐라 말하기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녀석의 사정은 흔하다면 흔한 이야기다.

이 녀석의 아버지 연정백 또한 연씨의 가솔로 있다가 떠났다.

그런데 왜 다들 떠났냐고? 21세기의 그가 배경설정을 그렇게 해놓은 것도 있고, 태종의 사병혁파 때. 연오진이 솔선수범을 한 거지.

아무튼 녀석의 아버지도 노잣돈 두둑하게 챙겼고, 이내 정착한 곳은 21세기의 김천. 지금은 김산이라 부르는 지역이다.

여긴 주변이 온통 산으로 덮여있어서 사냥감이 많았고, 그렇게 잡은 사냥감으로 가죽을 만들어 팔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감당치 못할 대적을 만나게 됐으니... 어디서 나타났을지 모를 백호가 튀어나와서 마을 사람을 잡아먹었다.

그렇게 희생당한 사람 중에서 연조운의 부모가 있었던 것. 연조운은 호환을 당한 부모님의 원한을 갚고자 그 백호를 쫓아 떠돌아다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 가야산 끝자락이다.

‘썩을... 이놈도 다른 곳에 있었네?’

연오랑은 속으로 혀를 찼다.

연전위 때도 그렇지만, 21세기의 그는 연정백의 배경설정까지 짜놓은 게 아니다.

그가 설정한 것은 “연조운이 식인 백호를 잡기 위해서 가야산 인근에 머물면서 사냥을 하고 있다.”였다.

21세기 그가 만든 이벤트는 연오랑이 가야산의 식인 백호를 잡으면서 연조운과 만나게 되고, 연조운은 연오랑의 도움을 받아 백호를 잡는 거다.

그리곤? 과거 자신의 아버지가 그러했듯, 연오랑의 부하로 들어오는 게 이벤트의 결말이다.

문제는 이 이벤트의 발생을 대마도 정벌 이후로 설정해 놨다는 것.

이래서 연오랑이 아무리 사람을 보내 가야산 인근을 뒤져도 찾을 수 없었다.

녀석은 김산에서 지내다가 백호를 잡으려고 소백산맥을 따라 황악산, 대덕산, 덕유산, 수도산을 거쳐 이제 가야산에 도착했으니까.

백호도 그렇다. 그는 백호를 가야산에 박아놨지, 그 백호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는 설정해 놓지 않았으니까.

가야산에서 자라면서 계속 머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점점 크면서 가야산으로 내려온 모양이다.

‘그렇다는 건, 내가 원래 계획한 시나리오보다 더 빠르게 왔다는 건가?’

연오랑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시기상으로 보면 그게 맞는 것 같다. 대마도정벌이 끝나자마자 올해가 지나기 전에 가야산에 왔으니까.

원래 게임 미디블워의 이벤트으로 치면 내년 혹은 내후년쯤에 와야 맞을 거다.

“고생 많았다.”

“... 예에.”

연오랑은 연조운을 다독였고, 녀석은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참아냈다.

녀석이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지 이해가 됐다.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고, 어디 있을지도 모르는 백호를 찾아 떠돌아다녔으니 성깔이 까칠해지는 건 당연한 일.

누가 봐도 양반이 분명할 연오랑을 앞에 두고도, 껄렁껄렁한 모습을 보여준 건 이 때문일 테다.

“그게 뭐 별거냐?”하겠지만, 신분제가 살아 있는 이 시대에 이러는 건 목숨을 내놓고 하는 짓이다.

그런데 자신의 고민과 아픔을 함께 해줄 친구이자 은인이 등장했다. 전혀 생각치도 못하게 느닷없이.

녀석은 마음 준비를 할 틈도 없이, 자기도 모르게 격해져서 감동할 수밖에.

연오랑의 말에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는 거? 연전위 때와 마찬가지다.

21세기 그가 똑같이 배경설정을 해놨기 때문. 무려 성씨를 내려준 연씨 가문을 만나면, 공경하고 은혜를 갚으라고 말이다.

“내 소문은 들어봤지? 요새 내 이름이 널리 퍼졌을 텐데?”

“... 설마? 대마도...?”

“오냐.”

“오...!”

녀석은 이제야 감이 잡힌다는 듯, 다시금 감탄을 내뱉었다.

비록 산에 살긴 하지만 녀석이 마을과 왕래를 안 하는 건 아니다. 사냥만 하는 녀석이 가죽과 고기를 내다팔지 않으면 뭐 먹고 살겠냐.

주 고객이 바로 수륜마을의 터줏대감인 이자경 집안이었고, 그래서 연오랑의 설명에 이자경은 연조운을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전설장수인 연조운도, 이 시대의 평균키보다 머리하나는 더 큰 사람이다.

이런 특별한 외형을 가진 사람은 쉽게 잊어버릴 수가 없지.

아무튼. 이렇게 왕래를 했으니 대마도 정벌에 관한 소문도 들었을 게 분명.

다만 귀환병들 입에서 떠돌던 그 “연오랑”이 자신이 아는 “연씨 집안의 사람”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모양이다.

그 연오랑이 이 연오랑인 걸 알자, 눈이 동그래졌다.

“이곳 가야산에 사람 잡아 먹는 백호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알아보니 동성봉 인근에서 많이 목격됐다고 하더군.”

“... 예?”

녀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꿈뻑거렸다.

“너야 혼자서 찾았겠지만, 나는 부릴 사람이 많지.”

“흐음...”

물론 뻥이다. 알아보긴 뭘 알아봤냐.

아는 까닭은 21세기 그가 이벤트를 생성하면서, 백호를 가야산 동성봉에 박아놨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는 그놈을 잡아서 백호수호갑이라는 방어용 아이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현실에서 그게 되겠냐.

하지만 그냥 놔둘 순 없다. 경험치도, 아이템도 주지 않지만 대신 명성과 돈을 준다.

안 그래도 퍼진 명성에 불길을 확 키울 거고, 조정에서도 뭐라도 던져줘야 할걸?

또 백호가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쌀 테고.

나아가 백호를 때려잡아야 연조운이 그를 따라나설 것 아닌가.

연전위가 대마도주의 목을 썰고 나서야 마음의 응어리를 푼 것처럼, 연조운 또한 백호를 때려잡아야 시원하게 함께 할 거다.

“식인 백호에 대한 소식을 듣다보니, 이자경이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고.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와봤다. 그런데 정말 네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지.”

“어르신...”

연조운은 다시금 감격해서 울먹였다.

연씨의 가솔은 무려 십수년전에 떠나갔다. 그런데 연오진 본인도 아니고,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연오랑이 자신을 알아준다?

그건 연오진이 연정백을 가슴 깊이 기억하고 새겼다는 뜻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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