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챕터11. 사냥가다 (5)
간단하게 횃불을 완성. 그리곤 겁도 없이 냉큼 허리를 굽혀 바위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으...’
노린내와 꿉꿉한 냄새가 가득해,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다.
대충 보니 어딘가에서 공기가 통하는 구멍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 답답한 기분은 가시질 않는다.
역시나 바위동굴은 입구는 좁고 안은 넓었다. 그렇다고 엄청 깊거나 하진 않았고, 그냥 백호가 넉넉하게 살 정도?
말로 표현하기가 참 애매한데 대충 7-8평 정도 되는 것 같다.
횃불을 휙휙 돌려가며 둥지를 살피자, 어김없이 백호의 흔적이 가득하다.
누가 식인호랑이 아니라고 할까봐 저쪽 한편에는 백골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그 뿐일까? 이놈은 지가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아는지, 호랑이가 무려 두 마리나 한쪽에 쌓여 짓눌려 있는 거 아닌가.
‘음...’
상한 정도를 보아하니,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아마도 백호가 가야산으로 오면서 원래 산의 주인을 잡아 죽인 게 아닐까?
지 딴에는 가죽만 남기려고 한 모양인지, 내장과 살점, 뼈는 어설프게 파먹었다.
물론 손이 없는 짐승이니 잔뜩 썩어서 파리가 들끓고 있었지만.
문제는... 핏물까지 빼서 가져온 모양? 생각보다 피비린내가 나지도 않고, 주변을 둘러봐도 피웅덩이도 보이지 않는다.
‘역시... 정상이 아니야. 뭔가 영향을 줬군.’
연오랑은 비상식의 극치를 보여주는 광경에 고개를 내저었다.
이게 어딜 봐서 정상이냐. 어떤 미친 호랑이가 전리품을 수집할까. 그것도 사람마냥 피를 빼서 가죽을 가져와?
나중에 먹으려고 보관해 놓은 사냥감이면 모를까. 같은 동족인 호랑이를 무슨 베게처럼 쓰는 호랑이는 없다.
‘이건 또 뭔 미친 변종이야.’
문뜩 그런 생각이 피어올랐다.
21세기 그가 만든 게임상의 스펙은 사라지고 현실의 호랑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뭔가 남아서 현실에 맞춰 바뀐 모양이다.
아무래도... 일이 더 커지기 전에, 확실히 때려잡아야 할 것 같다.
“끙차.”
물론 그렇다고 호랑이 가죽을 그냥 버려둘 수는 없지. 아껴야 잘 사는 법.
연오랑은 낑낑거리면서 죽어 있는 호랑이를 대충 분해해서 가죽만 벗겨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헙!?”
“어라?”
둘은 망을 보며 지키고 있었는데, 한참을 지나서 연오랑이 썩은 흔적이 역력한 호랑이 가죽을 들고 나타나자 기겁했다.
‘대체 저 안에서 뭔 일이 벌어진 거지?’라고 말없이 묻고 있다.
“백호가 미쳤나 보다. 오늘 확실히 때려잡아야겠어.”
“...?”
“...?”
둘은 눈에 연신 물음표를 피웠지만, 연오랑은 대충 사정 설명을 해주고선 명령을 내렸다.
“준비하자.”
“...?”
“옙!”
연오랑의 말에 사냥에 대해서 모르는 연전위는 재깍 답을 하고, 연조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키는 대로 하긴 하는데... 이건 사냥꾼의 방식을 한참 벗어났기 때문.
발자국이 나있지 않은 곳은 가져온 그물로 어설프게 막았다.
높은 나무에 끝을 묶고, 아래쪽엔 대충 돌덩이를 묶어 넓게 펼쳤다. 주변에 널려 있는 나뭇가지와 잡풀, 덩굴을 잘라와 그물에 치렁치렁 걸어 놨다.
그렇게 백호 둥지를 감싸며 둥글게 포위망을 완성.
다만 포위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설프다. 엄청난 덩치를 가진 백호가 들이받으면 그냥 찢어지거나 말려버리게 생겼다.
게다가 백호가 다니지 않는 길에 포위망을 만들어놔서, 어설프기 그지없다.
그리곤? 둘은 포위망이 만들어지지 않는 지점에 자리 잡고 나무를 탔다.
허리띠에 밧줄을 묶고선 나무 위로 오르기 시작. 만약 백호가 나타나면 위에서 열심히 화살과 투창을 날리라는 거다.
연오랑은 짊어지고 왔던 짐을 죄다 풀어놓고선, 포위망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나무 위로 기어올랐다.
이게 무슨 사냥이냐.
이건... 그냥 호랑이가 도망치지 못하게 어설프게 막고서, 맞짱을 까겠다는 것 아닌가.
연조운은 설마 하는 생각에 연오랑을 바라봤고, 연오랑은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에 “왜?”라고 쓰여 있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연조운이 생각했던 말이 그대로 흘러나온다.
“왜?”
“이렇게 해서 잡을 수 있습니까? 어르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서 반문해보지만, 연오랑은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도망치지만 않으면 잡을 수 있다. 걱정하지마라. 호랑이는 많이 잡아봤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연조운은 예의도 잊어버리고, ‘야 이 미친놈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호랑이와 맞짱을 까겠다고?’라고 쏟아낼 뻔했다.
다만 둘 모두 천하태평한 모습을 보여주니, 괜히 자기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애써 입을 다물었다.
물론 연전위는 사냥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지만, 그래도 풍문으로 들은 깜냥이 있지 않나.
‘이게 사냥이 맞나? 원래 이렇게 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마도에서 연오랑이 무슨 짓을 했는지 봤다.
혼자서 사람 수백을 때려잡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호랑이가 뭐 대수겠냐.’하고 납득한 거다.
“올 때까지 조용히 쉬자.”
“옙!”
“...”
그렇게 동상이몽을 꿈꾸며, 셋은 하나같이 나무와 하나가 되어 숨을 죽였다.
물론 연오랑도 이게 비상식적인 사냥 방법인 걸 안다. 그럼에도 통할 거라고 확신했다.
백호 이놈은 그냥 호랑이가 아니니까.
21세기 그가 박아 넣은 변종호랑이. 뭐... 굳이 따지자면 전설호랑이 쯤 되려나?
그게 아니고서야, 사지멀쩡하게 튼튼한 놈이 뭐 하러 마을까지 내려가서 사람을 잡아먹어? 이 땅에 널려 있는 게 사슴하고 고라니인데.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고, 김산에서 이곳 가야산까지 오면서 들리는 마을마다 사람을 잡아먹는다?
연조운이 흔적을 밟아 여기까지 쫓아온 걸로 봐선, 그가 모르는 희생자가 훨씬 더 많을 거다.
즉. 이 녀석은 사람을 보고 도망가기는커녕, 반대로 사람조차 자신의 도전자나 사냥감으로 인식해 때려잡으려고 할 게 분명했다.
아마 집 앞까지 쫓아온 셋을 보면 “뭐야? 시키지도 않은 도시락이 집으로 배달됐네? 잘 먹겠습니다.”하고선 달려들지 않을까.
‘이것도 나 때문인가.’
또 다시 왠지 모를 부채감이 밀려온다.
백호를 안 박아 넣었으면, 잘 살고 있었을 조선백성이 안 죽었을 거 아닌가. 괜히 미안해진다.
그렇게 상념 아닌 상념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자, 갑자기 공기가 싸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예의 달인” 효과이자, 소드마스터의 감각이 경고등을 켰다.
뭔가 온다. 그의 감각을 진동시킬 정도로 뚜렷한 뭔가가.
“온다. 조용히.”
“...”
“...”
연조운과 연전위는 입을 꾹 다물고, 손바닥에 차오르는 땀을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투창의 허리를 비틀 듯이 꽉 쥐어 잡으며 긴장을 떨쳐냈다.
연오랑이야 호랑이 사냥을 지겹게 해왔지만, 둘은 이번이 처음 아닌가.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머리가 울릴 지경이다.
쿵쿵쿵. 저쪽에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푹푹. 흙이 짓이겨지는 소리. 나뭇가지가 밟히는 소리가 가락처럼 이어진다.
드디어 눈앞에 등장한 백호.
‘오... 큰데?’
과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덩치가 크다.
연오랑이 지금껏 잡았던 호랑이 중에서도 제일 큰 것 같다. 몸길이가 정말로 3미터에 가까울 정도였으니까.
둥글둥글한 머리통은 무슨 방패를 박아놓은 것 마냥 큼직큼직했고, 발바닥은 솥뚜껑이 저리 갈 정도로 두툼해 보였다.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아니면 맨날 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단도만큼 커다랗고 날카로운 발톱을 뽑아 일부러 땅을 긁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럼에도 녀석은 셋이 나무 위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 걸 모르는 눈치다.
일부러 맞바람이 몰아치는 곳에 자리 잡았고, 냄새를 죽이기 위해 흙과 잡풀즙과 한 몸이 됐다.
흙냄새, 시큼한 풀냄새가 나면 났지, 사람냄새가 나진 않을 거다.
또한 머리가 몸통의 앞에 달린 짐승은 어지간해서는 고개를 꺾어 위를 쳐다보지 않는다.
지들이 사람도 아니고, 뭐 얼마나 허공을 경계하면서 살피겠냐.
그것도 초식동물도 아니고 가야산의 왕. 백호가 말이다.
녀석은 주변을 힐끔 살피면서 자신의 둥지가 뭔가 이상한 걸 알아차렸지만, 그럼에도 그냥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사냥에 실패한 건지, 아니면 영역 확인만 하고 온 건지 모르겠지만... 빈손으로 온 녀석은 흡사 사람마냥 털레털레 발을 옮기는 게 아닌가.
진짜로 오만하고 거만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시건방진 놈은 일단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연오랑은 속으로 그리 생각하고선, 자신을 바라보는 둘과 눈을 마주쳤다.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려 수신호를 날렸다.
이윽고 드디어 녀석이 포위망 안에 들어온다.
“...”
백호는 이젠 확실히 뭔가 이상한 걸 느낀 모양이다.
항상 가는 둥지 옆이 웬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가려 있으니 의아한 게 당연.
게다가 아무리 냄새를 죽이기 위해 흙과 풀즙, 나무진액을 발라놨지만, 녀석이 아끼는 호랑이 가죽 베게가 집 밖으로 나와 있지 않나.
“크허헝!”
녀석은 “누구냐! 뒤질래!?”라고 말하듯 포효를 내질렀다.
‘그래. 아무리 짐승이라도 이 정도는 눈치 채야지.’
녀석이 “크와아!” 포효를 내지르며 성질을 부리려는 찰나. 쉐엑! 연오랑이 집어 던진 투창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양 옆에서 쏟아진 두 개의 번개자국.
녀석은 진짜로 지가 전설호랑이라도 되는 것 마냥, 훌쩍 뛰어오르며 연오랑이 집어던진 투창을 피했다.
푸학! 다만 연오랑도 만만치 않은 터라 녀석의 뒷다리를 날카롭게 갈린 투창날이 쓸고 지나갔다.
“크와왕!” 비명인지 포효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몸을 뒤집어서일까? 투창이 익숙하지 않은 둘의 공격은 애꿎은 땅만 때리며 빗나갔다.
“계속 날려! 조운은 활을 쏘고!”
투창에 익숙하지 않은 연조운은 익숙한 걸 하는 게 낫다.
연오랑은 다시금 투창을 집어 던지고선, 냅다 나무 위에서 뛰어내려 기창을 손에 쥐었다.
쾅! 땅에 떨어지는 동시에 타격음이 터져 나왔다.
백호는 날아오는 투창을 발로 휘둘러 쳐낸 것이다.
“호오?”
아무리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대충 던졌다지만, 저렇게 쉽게 날려버릴 줄은 몰랐다.
‘이 자식. 진짜로 전설호랑이 아냐?’
연오랑은 그런 생각이 불쑥 들자, 오히려 투지가 살아났다.
반대로 백호 또한 정상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짐승은 사람을 정면에서 보면 겁을 먹는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사족보행을 하는 짐승 입장에서,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은 너무 거대하다고 착각하기 때문.
사실은 눈앞에 보이는 게 전부지만, 짐승들은 자신처럼 사람 키 만큼 큰 몸체가 뒤에 붙어있다고 착각하는 거다.
그런데 이놈은 사람을 많이 잡아먹어서 그런가?
연오랑을 보고서 겁을 먹거나 다칠 걸 염려하기는커녕, 오히려 살기를 내뿜는 게 아닌가.
그의 예상처럼 백호 또한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게임 상의 괴수 스펙은 다 날아갔어도, 일반 호랑이보다 월등한 스펙은 남아 있는 모양이다.
“크와아!”
“시끄러!”
연오랑은 다시금 땅에 박혀 있던 투창을 뽑아 집어 던지고선, 겁 없이 기창을 세워 뛰쳐나갔다.
피식자의 심령을 옥죄는 저주파와 이지를 흔들게 만드는, 두려움과 공포를 뿌리는 포효가 날아들지만! 연오랑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쳤다.
“굳건한 신념”이 정신을 보호하는 이상, 짐승의 포효 따위가 뭐가 두렵겠는가.
연오랑의 투지는 전염이라도 되는 걸까?
생전 처음 본 백호에 눌려 있던 연전위와 연조운의 눈에서도 투지라 불리는 푸른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연오랑과 마찬가지로 둘 모두 “굳건한 신념”이 몸에 박혀 있지 않나.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두려움이 정신을 찌르자, 그 반대급부로 잠자고 있던 전설장수의 능력이 깨어난다.
대호 중에 대호인 백호를 상대로 오히려 투지와 살기가 치솟았다.
“와아악!”
“우어어!”
둘은 지들이 무슨 짐승이라도 된 것 마냥, 포효 아닌 고함을 내지르고선 사정없이 화살을 날리고 투창을 내던졌다.
빛살과도 같은 연오랑의 찌르기와 양옆에서 날아드는 번개들.
본의 아니게 합공을 당해버린 백호는 연오랑의 창을 피해 몸을 뒤집고선 성큼 발을 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