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70화 (70/538)

70. 챕터13. 도착하다 (1)

역시 어린아이에게는 감투가 최고인 듯, 녀석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잘난 척을 했다.

“그래. 과장.”

청년 관리는 이제 하도 들어서 과장이라는 게 무슨 직책인지 알지만, 꼬마의 나이를 생각하면 자꾸 어울리지 않아 웃음만 흘러나왔다.

“아무튼... 방 자리는 남아?”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제가 관리하는 게 아니라서요.”

“으음.”

청년 관리는 하도 여길 들락날락 한 터라, 대충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지 알고 있었다.

흡사 조정의 육조마냥 각각 담당하는 게 따로 있었고, 이 꼬마는 건설연구소라는 생경한 조직에 속해 있으니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처음에 연구소라는 걸 들었을 때. 청년 관리는 조금 놀라긴 했지만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나라에 반하는 것도 아니고, 숨기기는커녕 오히려 대놓고 지들끼리 이것저것 하겠다는데 뭐라 하겠나.

무리가 만들어지면 당연히 통솔자나 지도자가 생기기 마련이니, 지들만의 직책이 생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저걸 남한테 강요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그럼 언제 완성 될 거 같나? 이과장.”

“헤헷. 음. 기와 올리는 일만 끝나면 되니까... 아마도 보름 내로 완성될 겁니다.”

현직관리가 이과장이라 불러줘서 일까? 꼬마는 “엣헴.엣헴.”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기와라...”

청년 관리는 저쪽 한편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기와를 바라봤다.

특이한 구조만큼이나 기와 또한 특이했는데, 일반적인 기와보다 2,3배는 크고 단촐 했다.

문양 따위는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넓적한 상판처럼 보인달까?

그럼에도 검은빛을 띤 기와가 저 큰 2층 가옥에 줄줄이 늘어설 걸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크고 웅장한 게, 정말 멋있을 게 분명하다.

“헌데 나리는 도성에 버젓이 집이 있지 않습니까? 뭐 하러 굳이 이 먼 곳에 와서...?”

“재밌지 않나.”

“재미...”

단순명쾌한 대답에, 꼬마는 “저것도 부잣집 도련님만 할 수 있는 허세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내저었다.

꼬마는 나이에 맞지 않게, 애어른처럼 굴었다.

“아무튼 이제 그만 가보시죠? 저쪽에서 나리를 찾는 것 같습니다만...?”

꼬마와 청년 관리는 나름 친분이 있는 탓에, “이제 귀찮게 굴지 말고 좀 비키시죠?”라는 예의 없는 발언에도 청년은 그저 웃어 넘겼다.

하여간 까칠하면서도 귀여운 꼬마 녀석이다.

“그래. 잊지말고 방 하나만 달라고 전해줘라.”

“여긴 돈 없는 하급관리들이 살라고 만드는 곳인데요.”

“나도 하급 관리 아니냐? 자격은 되잖아?”

“예에...”

꼬마는 떼를 쓰는 청년 관리를 보며 고개를 다시금 내저었고, 청년 관리는 저쪽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안 그래도 바쁜데, 자네. 뭐하고 있나.”

“바쁘긴 무슨. 가서 확인만 하고 오면 그만인데. 뭘.”

“쯧쯧.”

꼬마랑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 청년 관리는 다른 청년 관리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마을을 살짝 벗어나 송계천(중랑천)을 향해 걸음을 옮겨본다.

사박사박. 걸을 때마다 잘게 다져진 자갈이 발걸음에 맞춰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나름 정겨워, 청년 관리는 이리저리 발을 놀리며 아이처럼 뛰었다.

“거거. 체신머리 없게.”

“체신은 무슨. 이게 사대부하고 뭔 상관인가. 자넨 이렇게 좋은 도로를 보고도 할 말이 그것뿐인가? 왜? 이건 중국에도 없어서 그런가?

“끄응...”

한방 먹은 관리는 입술을 내밀며, 살짝 끓어오른 화를 삭였다.

저렇게 신경을 긁는 게 어디 한 두 번인가.

운석핵꿀밤 사태 이후. 계열이 다른 조정관리와 지방 유학자들간의 유치한 말싸움은 예삿일이 됐다.

뭐 어쩌겠나. 어느 하나가 압도할 정도가 되지 못하니, 서로 잽만 툭툭 날리면서 노는 거지.

물론 큰 건이 있을 때면, 조정에서 삿대질과 고성은 기본으로 튀어나오지만 말이다.

자자작. 저저적. 둘이 그렇게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할 때. 고약한 냄새와 함께 자갈 밟히는 소리가 곱게 들려왔다.

“또 오는 모양이군.”

“그러게 말일세. 얼른 피하지.”

둘은 재빨리 자갈도로에서 벗어나 잠시 기다렸다.

이윽고 짐을 가득 실은 이두마차가 곱게 갈린 자갈을 가르며 다가왔다.

“나리들.”

“냄새나니까, 말 시키지 말고 얼른 가게.”

두 사람은 코를 막고, 코맹맹이소리를 내며 연신 손을 내저었다.

그 모습을 본 마부는 알쏭달쏭한 미소를 짓고선, 연신 고삐를 잡아당겼다.

한두번 겪어본 일이 아닌 터라, 이젠 관리도 마부도 모두 익숙해졌다.

“똥마차라더니. 정말 냄새 한번 지독하군.”

“저게 다 거름이 된다고 하니, 그래도 좋은 일 아닌가. 그래서 우리 일도 편해진 거고.”

“끄응...”

관리는 또 뭐가 불만인지, 청년 관리의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이 생경한 도로와 똥마차가 만들어진 배경을 떠올리자, 자기도 모르게 머리가 아파왔기 때문이다.

처음 배봉마을이 만들어졌을 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성저십리와 붙어 있긴 하지만, 행정구역 상으로는 양주도호부에 속해 있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배봉마을에서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한성의 빈민들을 하나둘씩 끌어와 배봉마을 옆에, 일업마을이라는 마을을 세워 거주시켰다.

조정은 한성에서 골칫거리인 빈민이 사라지니 당연히 환영했지.

그런데, 그들을 이용해서 한성의 똥오줌을 모조리 가져가는 게 아닌가.

한성이 깨끗해지니 모두가 환영할 일이지만, 오물을 옮기는 똥마차가 운행되기 시작하자 문제가 생겼다.

도로사정이 엉망이다 보니, 똥마차가 지나가는 길은 말 그대로 똥길이 되어버렸고, 성저십리 백성들이 냄새나서 못 살겠다고 난리를 피운 것이다.

조정에선 “겪어보니 확실해졌어. 오물을 도성 밖으로 빼긴 빼야 돼. 근데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고 고민하던 찰나. 배봉마을에서 먼저 나섰다.

“좋은 도로가 있으면 문제없지 않습니까? 저희가 만들겠습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조정은 “니들이 뭔데 도로를 놔?”라는 입장이었지만, 무보수로 자기들이 알아서 한다고 하니, “그래? 얼마나 잘하나 보자.”하고 일단 지켜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 백성들에게 피해도 안주면서, 생전 처음 보는 자갈도로를 척척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그것도 한성의 대로만큼이나 넓은 도로를 만든 거다.

토목건축성애자인 청년 관리는 이걸 봤을 때 눈이 뒤집혔다. 그때부터 배봉마을에 주구장창 드나들기 시작한 거지.

그렇게 일부구간이 완성되자, 똥마차가 지나가는 경로의 마을백성들은 하나같이 도로가 자기 마을까지 이어지길 바랐다.

일단 편하고 좋잖아? 이 길은 관리나 군사들이 사용하는 길이 아니니 더욱 그러했고.

분위기가 이러하니, 순식간에 동대문 인근까지 도로가 이어지게 됐지. 물론 그래봐야 고작 몇 키로도 안 되지만.

조정은 도로가 점점 길어지려하자 “이거 이래도 되나?”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백성들 모두가 환영하니 난감할 따름.

또한 송계천 건너편의 전마훈련장을 오가던 무관들조차 만족하는 눈치였고, 배봉마을에 사는 하급관리들도 간절히 바랐다.

이래서 조정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다.

“돈 한푼 안 들이고 좋은 도로를 얻었는데, 뭔 상관이야?”

“이렇게 생경한 도로가 생기면 위화감이 든다. 다른 지방에도 다 만들어달라고 하면 어쩔 거냐?” “고작해야 10리 밖에 안 되는 데, 위화감은 무슨.”

“농지가 줄어드는데, 이거 가만 둬야 되나?” “농지가 줄어봤자 얼마나 줄었다고? 농지가 줄었어도 다들 편해서 좋다는 데 뭔 상관이야? 아니면 똥길을 그냥 놔둘까?”

결국 “똥마차의 운행을 멈추자!”라는 의견까지 나왔지만, 모두의 반대에 박살났다.

한성의 오물이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살기가 편해진 건 백성들 뿐만 아니라 관리들도 마찬가지다.

드디어 그나마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게 됐는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

그렇게 똥마차의 위력에 유야무야 넘어가다보니, 그냥 “일단 지켜보자.”라고 결론 났다.

배봉마을에서 뭔가 더 해보겠다고 난리를 피웠으면, 조정도 생각을 달리 했을 거다.

헌데. “자. 만들라는 거, 다 만들었습니다. 이제 끝!”이러면서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끝나버렸으니... 뭐라고 하기에도 참 애매해진 거지.

오히려 “이거 상을 줘야 하는 거 아냐?”하는 의견도 잠깐 나왔었다.

“대단하지 않나?”

“뭐가 말인가?”

“저거 말일세.”

두 관리는 똥마차의 아련한 냄새를 따라 계속 걸음을 옮기다가, 송계천 한 귀퉁이에 우람하게 서 있는 수차들을 가리켰다.

크고 아름다운 걸 좋아하는 청년 관리 입장에선,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쿵쾅.쿵쾅. 가까이 가지 않아도 굉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단단하게 둑을 만들어 지반을 다진 수차는 거대한 파쇄기가 되어 돌을 부수고 있었다.

강바닥에서 긁어온 자갈, 땅을 파면서 나온 돌, 산을 개간하면서 나온 돌, 등등.

하여간 한반도는 땅만 파면 돌이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긁어모은 돌을 저 여섯대의 수차파쇄기를 이용해서 작은 자갈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도로에 깔기 전에, 차돌만큼 작아진 돌을 망치와 정으로 사람이 직접 쪼개서 손가락만큼 더 잘게 부셨고.

그리곤 우,마 8마리가 끄는 엄청나게 무거운 돌덩이, 쇳덩이를 굴려가며, 자갈밭을 단단히 다졌다.

“저렇게 해서 이 도로가 만들어진 거란 말일세. 놀랍지 않나?”

“그래봐야 가뭄이 들면 못 쓰지 않나?”

“송계천이 마르는 거 봤나? 겨울에 꽁꽁 얼면 모를까.”

“유속이 느려서 안 될 텐데...”

“거참. 저렇게 잘만 돌아가는데 무슨. 자네가 공사하는 걸 봤어야 이런 소리를 안 하는데 말이야.”

청년 관리는, 전에 봤던 그 엄청난 공사현장을 떠올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온갖 신기한 기구를 이용해서 임시 둑을 만들어 물길을 세우고, 물길을 좁힐 진짜 둑을 만들고, 단단히 지반을 다지기 위해 바위와 돌, 자갈을 가져오고. 등등.

공사하는 걸 구경 만해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굉장하고 재밌었다.

이 배봉마을 청년들의 근성과 투지에, 다시금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끄응...”

“답답한 사람하고는... 자내가 좋아하는 중국에는 저런 수차와 풍차가 부지기수라는데, 뭐가 또 마음에 안 드는가?”

“이 사람이 진짜!”

“킬킬.”

청년 관리는 다시금 관리를 놀리며 웃어댔다.

도로가 만들어질 때도 조정이 시끄러웠지만, 이 거대한 수차가 만들어질 때도 시끄러웠다.

물론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었다.

나랏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백성들을 힘들게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흉물스러운 물건도 아니다.

그냥 생경하고 신기한 거지.

저렇게 거대한 수차는 처음 보지만, 고려 때도 수차를 도입하려 했기에 조정대신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수차 만드는 거 보통 일이 아닌데... 우리도 실패했다고. 니들이 할 수 있겠냐?”하는 얄량한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일단 지켜봤지.

그런데 이놈들은 수차를 만드는 건지, 둑을 만드는 건지, 간척을 하는 건지 모를 공사를 하더니 기어코 완성하는 게 아닌가.

저걸 이용해서 자갈도로를 뚝딱뚝딱 만들어냈다.

몇몇 신료들은 당장 달려와 이것저것 캐물었고, 완성이 되자 무려 세종과 태종조차도 한번쯤 구경하고 갔다.

물론 조정대신들에게 “뭐? 수차를 못 만들어? 얘들은 시키지 않아도 이런 걸 알아서 하는데, 니들은 뭐하고 있냐?”라는 말없는 핀잔을 날려줬고.

두 관리는 계속 투닥거리면서 걸음을 옮겼고, 드디어 구수한, 어쩌면 역한 냄새가 가득한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이라고 부르긴 조금 뭐하고. 그냥 기둥과 천장만 갖춰진, 탁 트인 창고가 가득한 곳이다.

창고마다 거름이 가득가득 썩어가고 있었는데, 이 악취에 이젠 익숙해졌는지 소매가 좁은 옷을 입은 청년들이 사방팔방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쪽에선 아까 봤던 똥마차에서 똥항아리를 넘겨받아 새로운 거름밭을 만들고 있었다.

몇몇은 모래성마냥 쌓아놓은 거름더미를 뒤적거리면서, 이것저것 확인하고 있었고.

“오셨습니까?”

“자네도 잘 있었나?”

“예. 일단 최근 것부터 보시겠습니까?”

“그러지.”

둘은 소매가 좁은 청년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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