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챕터13. 도착하다 (6)
상황이 이리되자, 당대의 서얼들은 백수 말고는 할 게 없어졌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뭐하나. 조정에 출사할 수도 없다.
뭔가 다른 걸 할 수 있을까? 농본주의를 밀어붙이는 시대상, 다른 걸 하면 집안체면을 깎아먹는다고 욕만 먹었다.
이러니 야망이 있는 이들은 현실에 낙담해 술만 퍼먹었고, 생각 없는 이들은 그냥 노느라 바빠서 술만 퍼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이 뭔가를 할 수 있게 해줄 면죄부이자, 명분이 될 자본유학이 등장했다.
비록 조정관리가 될 수는 없지만, 민간조정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기업을 마음껏 꾸릴 수 있다.
현실의 불만을 해소하고, 허전한 가슴을 채워 줄 꿈이자 기회가 생겼다.
사농공상의 경계에서 벗어나, 눈치 보지 않고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게 됐다.
이러니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이들 중에서, 자본유학을 싫어할 서얼은 아무도 없지.
보다 적극적인 이들은 행상을 통해서 연오랑과 하나둘씩 이어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배봉마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서 배봉마을은 계륵이 되어버렸다.
“쟤들을 관리로 만들어 직접 써먹을까?”
마을 인원만 천명이 넘는데, 지금 상황에서 관리를 더 늘린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더욱이 태종의 눈치를 봐서라도, 서얼을 대거 임용하는 건 힘들다.
“우리가 통제하면서 부려먹어 볼까?”
그런데 실체를 까보니, 어째 담당관리보다 저 녀석들의 실력이 더 뛰어나다. 오히려 한수 배워야 할 판국이다.
나아가 녀석들은 조정에서도 딱히 신경을 안 쓰는 온갖 것에 죄다 손을 뻗쳐 놨다.
이놈들을 직접 통제하려면, 새로운 관직과 관리를 더 만들어야 할 판이다.
“시건방진 놈들. 조정이 할 일을 왜 지들이 해? 서얼 놈들이 까부는 꼴은 보기 싫으니까, 그냥 해산시키고 날려버릴까?”
그러기엔 이미 꿀을 너무 빨았다.
배봉마을과 합작 아닌 합작을 해서 일하는 조정부서가 한둘이 아니니까.
당장 집현전에서 난리를 피울 거다.
만약 태종과 세종이 “뭐? 배봉마을을 날려버리자고? 그럼 집현전을 더욱 강화해야겠군?” 이런 반응을 보이면, 그건 더 피곤해진다.
더군다나 지금 시대의 서얼과, 원래 역사에서 서얼금고법 시행 후 조선 중후기의 서얼은 천지차이다.
애초에 머릿수부터 얼마 되지도 않고.
후대에 가면, 홍길동마냥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할 정도로 서얼의 위치가 바닥까지 떨어진다.
허나 지금은 고려 때의 귀족적인 혈통주의와 사대부 집안이 따르는 유학적 가족주의가 섞여서 더 애매해졌다.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고, 집안에서 차별이 있겠지만... 밖에서 보면 죄다 한집안 사람인 거지.
“패도 내가 팬다.” 이거다.
더군다나 고려 때라면 얼자는 천민취급을 했지만, 지금은 노비종부법으로 인해서 반대로 양민이 되어버렸지 않나.
이러니 배봉마을은, 따지고 보면 조선팔도 전국의 수많은 사대부, 지방호족의 혈육이 잔뜩 모여 있는 곳이 되어버린 거지.
이 벌통을 잘못 건드리고 싶은 신료는 아무도 없었다.
곁다리지만, 배봉마을이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몸만 달랑 온 서얼도 부지기수지만, 집안싸움을 하지 않고 나오면서 두둑하게 종자돈을 받고 나온 서얼도 부지기수였으니까.
이 상황을 방패삼아서 연오랑은 계속 신기술, 신제도를 풀어냈다.
이 자식들이 꽁꽁 싸매고 지들만 써먹으려고 했다면, 조정에서도 건들기 쉬웠을 거다.
이걸 이용해서 재물을 탐하거나, 세력을 넓히거나, 권력자에게 접근했다면 또 건드리기 쉬웠을 거다.
헌데, “자. 이거 한번 보시죠? 어때요. 좋죠? 써먹으셔야죠. 어떻게 하실래요? 공짜로 드린다니까요?”라고 계속 호객질을 하는 것 아닌가.
안 받으면, 왠지 모르겠지만 손해 같다. 실제로도 손해고.
분명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 받아서 챙기긴 하는데, 그래도 마음 한편에선 계속 거슬린다.
이 녀석들의 결과물을 제대로 써먹으려면, 지금의 체제로는 힘들다.
온전히 흡수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변화를 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서, 이 허무맹랑한 녀석들이 입버릇처럼 나불거리는 “자본유학”이 점점 파고들고 있다.
물론 주 정책에 영향을 끼칠 정도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도구의 범주를 넘어서서 손, 발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말이다.
연오랑은 배봉마을에 대한 보고를 마저 듣고, 이번엔 그가 썰을 풀었다.
어사 김숙자를 만난 이야기부터, 고령과 합천에서 있었던 일. 여기까지 오면서 벌인 일들.
두 사람은 박수를 치며 웃고, 삿대질과 욕을 하면서 신나게 감상했다.
“그래서 말인데... 김숙자하고 양원경. 알아?”
“아뇨. 길재 어른의 제자라... 글쎄요. 전하께서 딱히 신경 써서 보내시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는데, 역시 모르는 눈치다.
김숙자는 벼락치기로 임시 임용된 관리잖아? 지금은 그런 관리가 한둘이 아니고.
내금위인 양원경은 정인지가 알기에는 너무 먼 사람이다.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지?”
“예. 뭐... 어차피 알려질 것들 아닙니까. 다음 계획으로 넘어갈 거니 상관없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지만... 혹시 몰라서 말이지.”
“에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쪽 계열은 영... 힘도 못 쓰고. 길재 어른이야 뭐...”
정인지는 슬쩍 눈치를 살피면서, 은근히 속내를 드러냈다.
‘옛날 사람이라 이거냐?’
연오랑은 정인지가 하는 꼴이 웃겨서, 속으로 웃고 말았다.
자기도 15세기 옛날 사람이면서, 어딜 옛날 사람이라고 비꽈?
‘뭐... 나한테는 잘 된 일이지만.’
그는 속으로 음흉한 속내를 숨겼다.
성리학의 복잡한 세부이론은 잠시 비켜두고.
기본논리 중 하나를 말하자면, 사람의 심성, 행동이 세상천지와 우주의 운행에 영향을 주고,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는 거다. 이기론의 시작은 여기서 부터다.
“군주가 덕이 부족하니 가뭄이 든 것이오.” “노처녀가 많아 음기가 많아져서 서리가 일찍 내린 것이오.” 등등.
“그거하고 이거하고 뭔 상관이야?” 싶을 거다.
이 시대의 신료들도 현실문제의 해결을 위해 꺼내든 명분이지만, 어찌됐건 논리구조상 말이 되는 이야기지.
그렇다면. 사람과 사회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으면, 운석핵꿀밤이라는 재앙에 가까운 영향을 일으켰을까?
성리학자들은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없어서 좌절했다.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둘 뿐이다.
“내가, 우리가 잘못했다. 잘못된 점을 찾자.” 아니면, “우리와 관계없으니 무시한다.”였다.
하지만 둘 모두 이미 근본성리학 유학ver4.0이 아니잖아? 이 해결 방안을 놓고, 조선 사상계가 갈기갈기 찢어진 거지.
조선이 건국되고 난 후.
이른바 정몽주 계열의 온건개혁파들은, 낙향해서 지방 향촌사회로 파고들었다.
원래 역사에서, 이들은 제자들을 무수히 길렀고, 훗날 사림파로 불리게 된다.
원리원칙과 예식, 수기修己를 중시하던 이들. 원론주의적인 성리학에 지극히 충실한 이들 아니냐.
그래서 역성왕조인 조선을 인정 못하고 향촌에 틀어박힌 것이고.
그런데 운석핵꿀밤은 솟아나는 사림의 싹을 밟아버렸다.
잘못된 점을 찾아 수정하지 않으면 모순을 해결할 수 없는데, 변화를 주면 그들이 주장하는 원론적인 근본성리학이 아니다.
이들의 핵심주장인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강조하면 할수록, “뒤진 중국놈. 망한 명나라.”라는 굴레와 약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으니까.
이래서 사학계열은 원래 역사와 달리 힘을 키우지 못했다.
제자를 키우고 지방 향촌사회를 장악하기는 무슨... 당장 자신의 내적갈등부터 해소하지 못하는 판국이었지.
김숙자의 스승인 길재조차 말년이 편치 못했으니까.
또한 연오랑 입장에선, 재밌는 일이 추가로 벌어졌다.
“우리와 관계없으니 무시한다.”라는 건, 사람과 사회가 세상천지와 우주의 운행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거다.
운석핵꿀밤이 떨어지든 말든, 그건 유학자들과 관계없고. 그래서 자신들은 잘못한 게 없다는 거지.
과격한 주장인 만큼 유학ver4.7이상 계열이 이쪽에 속했는데...
이건 자본유학에서 말하는 “실사구시.” 자연과학적 탐구론, 방법론과 일맥상통하잖아?
그렇다보니 몇몇 계열은 자본유학의 논리를 자신들이 써먹으면서, 은근슬쩍 자본유학을 긍정하는 뉘앙스를 풍기기 시작한 거지.
사정이 이러하니... 정인지는 조정에서 유학ver4.0계열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아는 터라, 걱정하지 말라는 거다.
“그건 그럼 넘어가고... 내 공훈은 어떻게 되고 있냐? 왜 아직도 연락이 안 와?”
“크큭. 그게 말입니다.”
정인지는 알음알음 훔쳐들었던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냈다.
연오랑은 일부러 그간 업적을 꽁꽁 숨겨 놨다.
어린 시절에 호랑이 때려잡고, 온갖 기물을 만들어 낸 것? 당연히 조정에서 상을 줬을 거다.
헌데 고작 열 살 넘은 꼬맹이에게, 상을 줘봐야 뭐 얼마나 줬겠는가.
숨겨 놨다가 한방에 풀어서, 더 많이 뜯어내야지.
조선팔도가 그의 이름을 연호할 정도로, 엄청난 명성을 올려서 말이다.
계획은 적중했다.
그간 호랑이 수십마리를 때려잡은 것. 이젠 연오랑의 이름과 함께 퍼지기 시작한 온갖 농기계, 농기구들. 비기, 비법들.
연씨 비기로 알려진 군사지식, 훈련법. 화포를 개량한 일. 대마도주의 목을 베고, 수백의 왜구를 썰어버린 일.
끝으로 이번에 식인 백호를 때려잡은 일까지.
이 모든 공훈을 하나씩 쌓아 가다보니, 천장을 뚫고 올라갔다.
원칙대로 하면. 관직도 오르지 않은 어린 녀석에게, 연씨 가문이 가진 “하동부원군.” 작호를 수여해야 될 판국이다.
어쩌면 이거로도 부족할 지도 모르고.
조정은 당연히 기겁하고 깎으려고 했는데, 대마도 정벌에 종군한 무관들의 눈치를 봐야했다.
공훈을 밑에서부터 쌓아 올라가는 거 봤나.
당연히 상한선을 정해놓고, 위에서부터 잘라서 내려가는 거다.
그래야 밑에 사람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상을 받아도, “야. 너보다 공을 많이 세운 사람도 저거밖에 못 받았는데, 네가 욕심을 내면 되냐?”라고 핑계를 댈 수 있기 때문.
문제는 그렇게 공훈을 퍼줬어도 제일공신은 연오랑이니, 그가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무관들 입장에선 환영인 거지.
반대로 조정대신들 입장에선 미칠 노릇이다.
따로따로 계산하면 더욱 커지니까, 일부로 하나로 뭉쳐서 뭉개고 있었는데...
“그래서 아직도 싸우고 있었죠. 무관들은 어차피 이득이니,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구요. 그런데 어르신이 이번에 식인 백호까지 때려잡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달린 보상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큭큭. 이제 정리가 되나 싶었는데, 또 난장판이 벌어졌습니다.”
“흐흐.”
정인지는 자신을 일거리지옥에 떠민 대신들을 떠올리며, 이를 드러내며 웃어댔다.
연오랑 또한 계획대로 된 것 같아, 음흉한 미소를 지었고.
‘자. 그런데 한발 더 남았단 말이지.’
여기에 그가 가져온 종두법마저 풀어버린다면? 조정이 과연 이에 대한 대가를 또 뭐로 줄지... 정말 기대가 된다.
연오랑도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지금 조선은 원래 역사보다도 훨씬 짜게 놀고 있다.
공신전이 원래 역사보다 훨씬 줄은 거지.
까닭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연오랑의 조부. 연천후 때문이다.
지금 역사에선, 누가 뭐래도 조선건국의 1등공신은 연천후다.
연천후가 태조와 손을 잡지 않았으면, 건국자체가 꽤 복잡하고 지저분해졌을 테니까.
그런 인물이 딱히 엄청난 상을 바라지도 않았고, 공신전 또한 욕심내지 않았다.
이러면 아까 말했던 공훈측정원리에 따라서, 연천후보다 못한 인물들의 공훈이 죄다 깎여 나가는 거지.
조선의 첫 단추이자, 앞으로의 대대손손 이어갈 선례를 이렇게 꿰어버렸으니... 왕자의 난 이후의 공훈 또한 깎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조사의의 난 또한 벌어지지 않아서, 원래 생겨야할 공신이 없어졌고.
“전설장수 연오랑”의 탄생을 위해 만든 배경설정이, 전혀 다른 스노우볼과 나비효과를 일으키게 된 거지.
하지만 아무리 바뀐 조선이라고 해도, 신하가 뭔가 업적을 세워서 가져다바치면 그에 맞는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사기가 안 떨어지니까. 충성에 대한 보답도 필요하고.
그 보상 중에서 가장 싸게 먹히는 게, 의외로 품계를 올려주는 거다.
다른 건 전부다 조정에 부담이 되지만, 품계를 올려주는 건 별 문제없잖아? 거기에 물질적인 보상까지 제거한 품계면 금상첨화지.
품계를 올려준다고 해서, 실직에 임명하는 일은 드무니까.
그런데 종두법은 커도 너무 크다.
안 그래도 “더 이상은 안 돼! 부원군도 오바야!”라고 외치는 조정에서, 그에게 뭘 더 줄 수 있을까?
삼정승을 만나서 은근히 거래를 청하면, 아주 재미난 상황이 펼쳐질 것 같다.
헌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전혀 엉뚱한 인물이 튀어나왔다.
“잠깐. 상왕전하께서 어디 계신다고?”